주일학교 主日學校 〔라〕Schola Dominicalis 〔영〕Sunday School

글자 크기
10
주일학교는 신앙을 전수하는 곳이다.
1 / 2

주일학교는 신앙을 전수하는 곳이다.


주일마다 본당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학년에 따라 구분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을 심화시키는 조직적 교리 교육의 한 형태. 이를 통해서 교회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다시금 신앙에 입문시키고, 그들의 신앙을 교육하고 양성하여 하느님의 부르심에 전인적(全人的)으로 응답하는 신앙인으로 육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기원과 역사〕 주일학교라는 조직적 교리 교육 형태가 교회의 역사 안에 언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이는 특히 한국 교회에 있어서 더 욱 그러하다. 하지만 주일학교가 어린이를 위한 교리 교 육의 조직적 형태라는 것을 생각할 때, 주일학교 정의에 맞는 몇 가지의 전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것을 통해 서 주일학교의 기원과 역사를 밝힐 수 있다. 먼저 주일학 교는 어린이에 대한 신앙을 육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 회가 어린이들에 대한 교리 교육적 관심을 갖게 된 시점 을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둘째로 주일학교는 신앙을 전수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리서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나이에 따른 구분과 교리 교사가 존재해야 한다. 서양의 주일학교 : 중세 시대에 종교적 삶과 사회적 삶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형태였다. 그러기에 교리 교육이라는 것은 교회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분위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가정 안에서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교리 교육을 시행할 수 있었다. 이러 한 분위기 속에서 파리 가톨릭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던 제르송(J. de Gerson, 1363~1429)이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 서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생을 리용에서 보내 면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맞는 교리서를 발간하였 다. 청소년들, 그리고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단순한 이들을 위한 ABC》라는 교리서와 어린이의 눈 높이에 맞춘 《어린이들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방법》(De parvulis ad Christum trahendis)이라는 교리서는 구텐베르크(J. Gutenberg, 1390~1468)에 의해 대량 출판된 이후, 모든 신부들이 어린이 교리서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 다. 하지만 그가 만든 어린이 교리서를 통해 그가 어떤 형태로 어린이를 위한 교리 교육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종교 개혁이 일어난 후 교리 교육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력과 이에 대응하는 가톨릭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많은 교리서가 출판됨으로써, 교리서를 통한 신앙 교육에 힘쓰게 되었다. 1529년에 발간된 루 터(M.Luther, 1483~1546)의 교리서에 대응하여, 가톨릭에 서도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톨릭 교리서를 출판 하였지만 큰 성공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후 가니시오 (P. Canisius, 1521~1597)는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 리아에서 프로테스탄트에 대응하는 많은 교리서를 편찬 하였다. 이런 교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교황 비오 5세의 명에 의해 발행된 본당 신부들을 위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Catechismus ex Decreto Concilii Tridentini ad Parochos Pii V Pontificis Maximi iussu editus, 1566) 즉 《로마 교리서》(Catechismus Romanus)가 출판되었다. 다량의 교리서가 출판되던 이 시기에 어린이들과 관계 된 교리서와 교리 교육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종교 개혁자인 칼뱅(J. Calvin, 1509~1564)의 교리서이다. 그는 1537년 《제네바 교회에서 이용하는 신앙 고백과 가르침》(L'instucion et confession de foi dont on use en I'Église de Genève)이라는 교리서에서 어린이를 위한 23개 항목 의 신앙 조문을 기술하였다. 그는 1541년에 저술한 《교 회적 훈령들》(Ordonnances ecclésiatiques)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교리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 훈령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교리 교육의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는 어린이 신 앙 교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매 주일 정오 에 모든 시민과 주민은 어린이들을 교리반에 출석시켜야 한다. · · · 어린이들에게 요약된 신앙 조문들을 가르치고, 교리를 전달해 주며, 질문을 통해 이를 확인하여 그들이 잘 이해하였는지를 봐야 한다. · · · 한 어린이가 교리서의 모든 내용을 충분히 교육받았다고 한다면, 그 어린이는 그 내용의 모두를 장엄하게 다시금 외워야 하고, 이는 교 회 안에서 마치 신앙을 고백하는 것처럼 행하여져야 한 다." 이러한 훈령의 내용을 통해, 지금의 주일학교와 비 슷한 형태의 교리 교육이 칼뱅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음 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 현재 형태의 모태가 되는 주일 학교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프로테스탄트의 활 동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에서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주일학교가 등장하였다. 1580년경 지금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과 프랑스 북부 지방에 주일학교가 세워져 교리를 가르치고, 글도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 안 에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일반 학교에서 가난한 이들 을 위해 한 것이었는지, 또 교리만을 위한 학교인지, 아 니면 규칙적인 모임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1605년 교황 글레멘스 8세(1592~ 1605)는 그리스도교 교리 협회(The Confraternity of Christian Doctrine)를 인준하였다. 이 협회는 16세기 이후 교리 교육 실천을 위한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회 원들이 교리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은 후 각자의 가정에 서 자신이 배운 바를 자녀들에게 설명해 주는 방식이었 다. 이탈리아 교회를 중심으로 퍼진 이 교리 교육 방법은 어린이들과 청소년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 도록 만들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교리 교육은 16~17세기에 태동하였지만, 그 형태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1620년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된, 본당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교리 교육 방법은 현재 주일학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1622년 파리 샤르도네의 성 니콜라(St.Nicola du Chardonnet) 성당 주임 신부였던 부르되즈(A.Bourdoise, 1584~1665)는 매 주일 저녁 어린이들을 모아 나이에 따 라 5개 반으로 편성하였다. 각 반에서 교리 교사들은 계 획표를 나누어 주고, 이 순서에 맞게 어린이들을 가르쳤 다. 교육의 내용은 주로 교리 문답 형태였는데, 어린이가 교리의 질문을 읽으면 그 답을 알려 주는 형태로 이루어 졌다. 부르되즈 신부는 어린이들이 교리를 쉽게 이해하도 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런 그의 교리 교육 방법은 지금의 주일학교 방법과 유사한 것으로서, 이 방법은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그의 교리 교육 방법을 가톨릭 주일학교의 시작이자 기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르되즈 신부의 교리 교육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은 쉴피스회의 설립자인 올리에(J.J.Olier, 1608~1657) 신부였 다. 1642년 파리의 생 쉴피스(St. Sulpice) 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그는 생활 교리 방법을 고안하여 주일 교리 교육 시간에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만든 교육 방법의 특징은 어린이의 연령 수준에 따라 교리의 내용을 쉽게 했다는 것과 교리 내용을 어린이들이 삶 안에서 실천하 게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암기 중심의 문답식 교리 교육 방법을 지양하고, 교리를 생활에 옮기도록 교리 내용의 완전한 이해를 지향하였으며, 사랑의 분위기에서 어린이 들을 대하도록 하였다. 특히 교리 시간이 재미있고 유익 한 시간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학급에 명예석을 두 었으며, 상품을 주어 시상하였고, 성가를 부르기도 하였 다. 이런 교리교육 방법은 어린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 고, 긴장을 풀어 주어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하는 데 도움 을 주었으며, 전례와 결부되는 교리 교육으로 이끌었다. 이와 같은 17세기 본당에서의 주일학교 모습은 18세기 에 학교 교육이 의무화되고 신앙 교육도 학교 교육으로 흡수되거나 대체되면서, 유럽 교회 안에서는 그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학교 교육과 더불어 주일학교를 유지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본격적인 주일학교라는 개념이 시 작된 시기는, 1780년 레이크스(R. Raikes, 1735~1811)가 고안한 주일학교부터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영국 글로 스터(Gloucster)에서 주일에 유급 교사를 두고 빈민들, 직공들,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켰다. 많은 교회들이 그의 방법을 변형 · 수용하였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그의 교육 방법을 이어받아 1786년부터 각 교회에 주일학교를 개 설하기 시작하였다. 1791년에는 주일학교 연맹이 생길 정도로 급격히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주일학교 : 유럽과 마찬가지로 주일학교가 한 국 교회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문헌상으로 정확 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박해 시기에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전수하였는지, 그리고 어느 만큼 비중을 차지하 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그 것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교리 교육은 비록 체계를 갖추 지는 못하였지만 한국 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시행되었 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박해가 끝나는 시기부터 선교사들 과 수도자들이 활발히 선교를 하였기 때문에 그때를 주 일학교의 본격적인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헌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다. 1922년에 반포 되고 그 이듬해 간행된 《서울교구 지도서》 102조에는 "각 본당에 가능한 한 교리학교를 두어 적어도 주일마다 어린이들을 모아 교리와 기도문을 가르쳐야 한다" 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일학교가 1923년 이전부터 이 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교 리 교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주일학교는 어른들과 같은 교재로 어린이들이 신앙의 진리를 배우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교리서는 1932년에 《어린이 문답》이라 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1934년 평양 교구에서 발행한 월간지 《가톨릭 연구 강좌》 제1권에는 "주일학교라 함은, 이름 자체가 명시하는 것과 같이 주 일을 이용하여 배우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교육의 한 기관" 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것으로 볼 때 한국 가톨 릭에서는 박해 이후 시기부터 아이들을 위한 교리 교육 을 실시해 왔지만,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발간한 어린이 교리서 이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57~1958년에 《학생 교리》를 필두로 주일학교 교리 서들이 출판된 것으로 보아서 한국 전쟁 이후부터 주일 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초 · 중 · 고등학생들을 위 한 주일학교 교재가 발간된 1970년대부터 비로소 체계 화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론〕 주일학교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유 일하고 체계적인 교리 교육 체제라는 점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신앙의 형성은 유아 때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일학교를 통 해서 어린이들이 더 깊게 교회의 삶과 전통적 유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스스로 신앙을 정립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주일학교의 장점을 더욱 크게 부각하기 위해서, 리(James M. .Lee)는 주일학교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제시 하였다. 그에 의하면, 교리 교육은 학교 교육의 연장선상 에서 보아야 한다. 즉 학교 교육이 사회적 유산을 후손에 게 물려주는 사회적 체계이듯이, 주일학교도 교회의 전 통적 유산과 신앙을 자라나는 미래의 신앙인에게 물려주 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리는 주일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일반 교육학에서 강조되고 중요시되는 모든 원리 들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학교 교육 과 주일학교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있다고 하였다. 즉 주일학교에서는 신앙을 전달 해 주는 것이고, 학교 교육에서는 사회적 유산을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의 주장은 그가 주일학교의 중요성을 이론적 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또한 많 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교육적 체계로 볼 때 학교 교육과 주일학교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신앙 을 전수하는 측면에 있어서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활동에 대한 신앙적 측면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교리 교육에 대한 문헌들은 일반 교육학의 원 리를 이용함을 권장하지만, 그 원리가 신앙 전수에 있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측면도 강조하는 것 이다. 또 다른 비판은 사회적으로 학교의 기능에 대한 전 반적인 비판적 시각에서 기인한다. 리는 자신의 이론을 밝히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미국 학교 교육의 기능에 대 한 평가를 간과하였다. 그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사회 적으로 문제가 발생되면 이에 기인한 주일학교의 기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미국 교육의 문제점들을 간과하고 넘어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교리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이론과 주일 학교 전체에 대한 문제점은 '교리 교육의 장소' (Lieux catéchétiques) 개념에서 출발한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학교-사회가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교리 교육이 이루어 졌다. 즉 교리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서로 유기적 으로 단일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앙 교육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는 교회에서 신앙을 배웠다 하더 라도 가정이 그 신앙을 이끌어 주지 못하면, 주일 학교의 기능은 단지 교회 안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안에서 교회의 신앙을 느낄 수 있는 구조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신앙은 삶으로부터 쉽게 분리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장소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느냐가 교리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이며, 주일학교의 성패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1970년대 초부터 공동체를 통한 교리 교육 이론이 등장하였다. 웨스터호프 3세(John Westerhoffim)에 의해서 제시된 이 이론은 주일 학교의 틀을 벗어 버리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는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의 신앙을 자 연스럽게 교환할 수 있고,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전수가 삶의 모든 분야에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 교육 이론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구체화되기 시작 하였는데, 주로 몇몇 가정들의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행 해졌다. 하지만 이 이론도 교육의 체계화를 이룰 수 없는 불규칙적인 교리 교육 형태이기 때문에 주일학교를 위한 대안으로 특별히 부각되지 못하였다. 주일학교에 대한 문제점들과 발전 방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구체적이며 실천 지향적인 측면에서의 한계 때문에 주일학교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 제시는 어려 운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학교 형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그 형태 안에서 교리 교사와 학생들, 학생들과 교리 교사, 학생들과 부모들을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다. (→ 교리 교육) ※ 참고문헌  Thabor, L'encyclopédie des catéchistes, Paris, Desclée, 1993/ J.C. Dhotel, Les origines du catéchisme moderne, Paris, Aubier, 1967/ C. Wackenheim, La catéchése, coll. qui sais-je? n. 2049, Paris, PUF, 1983/ E. Germain, 2000 ans d'education de lafoi, Paris, Desclée, 198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현대의 교리 교육》,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0/ 정달빈, 《교회학교 지침서》, 대한기독교서회, 1960/ 존 웨스터호프 3 세, 김재은 역, 《기독교 교육 논총》, 대한기독교출판부, 1978/ 사라 리 틀, 사미자 역 , 《기독교 교육 교수 방법 론》,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출판국, 1988/ 황규남, <우리 주일학교의 역사>, 《디다케》, 천주교 서 울대교구 교육국, 1996년 7월~1998년 2월 . 〔鄭信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