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용 朱在用(1894~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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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본당(현 산정동) 주재용 신부 부임 환영식(19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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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본당(현 산정동) 주재용 신부 부임 환영식(1922. 9)


춘천교구 신부. 제2대 전주교구장, 제4대 대구교구장. 세례명은 바오로. 1894년 3월 8일 경남 거제군 거제면 교황리에서 출생.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수학 중 1914년 10월 1일 대구교구에서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설립하자 편입하여 제1회 졸업생으로 1918년 2월 23일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되었다. 함양 본당 주임을 거쳐 1922년 9월 목포 본당(현 산정동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9년간 사목하였다. 특히 주 신부는 1926년 6월까지 제주 본당 4대 주임을 겸하여 4년 동안 1년에 한 차례 제주를 방문하여 사목하였고, 1931년 5월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로 전임되어 사제 양성에 진력하다가, 1941 년 12월 제2대 전주교구장으로 피명되어 1942년 1월 7 일 착좌하였다. 해방 직후 전북 지방의 한국 역사 교육 강습회에 적극 참여하여 각지로 강연을 다닌 바 있다. 1946년 1월 대구교구 제3대 교구장 하야사카(早坂久兵 衛) 주교의 사망으로 대구교구 임시 관리자로 부임, 2월 27일 제4대 교구장에 착좌하였다. 주 신부는 교구에 1946년 왜관 순심중학교와 대구 대건중학교, 1947년 김천 성의중학교 등을 설립하였는데, 올바른 교육의 보급이 진정한 민주 사회의 건설을 가능하게 한다는 신념 아래 교육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주 신부는 지나치게 원칙주의를 내세워 독단적인 교구 운영을 하여 전주교구에서도 교구 신부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는데, 대구교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초대 교황 사절 번(Byrne, 方溢恩) 신부의 제의를 받아들여 주 신부는 1948년 5월 21일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춘천교구로 전출하여 1948년 9월 신설된 홍천 수곡리 본당(현 양덕원 본당) 주임을 맡았다. 1952 년에 성당을 건립하고 1959년 11월까지 수곡리본당에서 사목한 뒤, 춘천교구장 퀸란(Quinlan, 具仁蘭) 주교의 부탁으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련 지도 신부로 전임하여 1969년 은퇴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75년 11월 1일 춘천 까리타스 수녀회 사제관에서 선종하였는 데, 유지에 따라 대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 신부는 춘천교구로 이적한 뒤 한국 교회사 연구에 진력하여 《선유(先儒)의 천주사상과 제사문제》(경항잡지사, 1958),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擁衛)》(한국천구교교중앙협의 회,1970), 《배론(丹論) 성지》(가톨릭출판사, 1975) 등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가족계획에 대한 천주교회의 태도》 (가톨릭출판사, 1964) 등의 저서가 있다. ※ 참고문헌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I, 천주교 전주교구, 1988/ 《제주 천주교회 100년사》, 천주교 제주교구, 2001/ 《교구총람》,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6/ 朱在用, 《先儒의 天主思想과 祭祀 問題》, 경향잡지사, 1958 가톨릭출판사, 1988/ 一, 《韓國 가톨릭 史의 擁衛》,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0/ 一, 《배론(丹論) 聖 地》, 가톨릭출판사, 1975/ 一, 《家族計劃에 對한 天主教會의 態 度》 , 가톨릭 출판사, 1964.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