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 하인리히 Suso, Heinrich(1295?~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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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 하인리히 수사.

주조 하인리히 수사.


복자. 도미니코회 수사. 독일의 주요 신비주의자 중 한 사람. 철학자. 〔생 애〕 언어권에 따라 '헨리 수소' (Henry Suso) 또는 '하인리히 조이제' (Heinrich Seuse)라고도 불리는 그의 본명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이다. 1295년 또는 1300년 3월 21일 귀족인 베르크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속한 주조 가문의 이름을 따랐다. 그는 13세에 독일 남서부 콘스탄츠(Konstanz) 근처의 도미니 코회에 입회하여 신비 생활과 신적 사랑을 통해 강한 영적 변화를 체험하고는, 18세에 '영원한 지혜와 영적 결 혼' 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콘스탄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콜른의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7/1328)의 학교 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1322~1325). 공부를 마치고 콘 스탄츠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단죄받은(1329) 에크하르트를 옹호한다고 하여 수도회의 관구 총회로부터 견책을 받고 신학 강의를 포기하였다. 그 뒤 그는 오직 설교와 영성 지도에만 전념하 였다.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4세(1314~1347)가 교황 요한 22 세(1316~1334)를 거슬러 대립하자, 루트비히 4세는 교황 에게 충실한 주조를 1339년 라인 강변의 디센호펜(Diessenhoven)으로 추방하였다. 하지만 그는 라인 강변을 따 라 스웨덴, 스위스, 알사스 지방 등의 수많은 수도 공동 체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적 · 학문적 활동을 펼쳤다. 그는 특히 '하느님의 벗회' (Gottesfreunde)라는 영적 모임에서, 그리고 그의 영적인 딸 엘리사벳(Elisabetta Staglin)이 지도하고 있던 퇴스(Töss)의 도미니코 수녀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347년경 콘스탄츠로 돌아왔 지만 온갖 중상모략과 박해로 고통을 받은 그는, 1348 년 울름(Um)으로 가서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생활하다가 1366년 1월 25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 나 그의 '문화의 길' (viam cultus)은 높이 평가되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에 의해 1831년 4월 16일 시복되었다. 〔저 서〕 학자들은 주조를 "독일 신비가들 가운데, 아니 어쩌면 모든 신비 저술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 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에크하르트보다는 덜 사변적이고, 타울러(J. Tauler, 1300?~1361)보다는 덜 명료한 신비가이지만 감정, 부드러움, 시, 서사시, 표현력과 문 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영혼 속에 있는 깊은 떨림을 일깨 울 수 있는 직접성 등에서는 그들을 능가하였다.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서에 토대를 둔 내면 생활을 하 는 그의 방법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수사' (Fra Amando)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결국 그의 일생은 한 편의 끝없는 사랑의 찬가였다. 주조의 영성 작품들은 독일어 형성 과정에서 한 부분을 이룰 정도로 가치가 있으며, 중세의 독일 산문뿐만 아니라 13세기 중세 신비 신학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는 자신의 영적 딸인 엘리사벳 수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주요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모범》(Exemplar, 1362)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에는 엘리사벳 에 의해 수집된 자료들에 기초하여 그 자신이 부족한 부 분을 추가하여 3인칭으로 기술한 자서전 <생애>(Leben) 가 포함되어 있다. 1327~1329년 사이에 쓰여진 그의 첫 작품인 《진리 에 관한 소책자》(Das Biichlein der Wahhrheit)에서 주조는 '자유 정신을 가진 형제들과 자매들의' 이단, 즉 비상한 신비 현상에 대한 환상 및 베가르회와 영적 자유의 형제회가 가르친 정적주의의 과도한 수도성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면서, '고상한 사람' (von dem edele Menschen)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목표인 '변형적 일치' 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열렬하게 옹호하였다. 에크하르트가 사용한 '버리고 떠남' (Abgeschiedenheit) 대신 '내말 김' (Gelassenheit)이라고 표현하는 절대적인 '자기 비움'을 통하여,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탄생' (Gottesgeburt)o] 라는 에크하르트의 개념에 해당되는 영적인 '새로남' 에 이르기까지 에크하르트가 가리키는 길을 설명하였다. 1328년이나 1334년에 집필된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Das Büchlein der ewigen Weisheit)는 대화 형식으 로 쓰여졌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79/1380~1471)의 작품으로 알려진 《준주 성범》(遵 主聖範, Imitatio Christi)과 함께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인기를 누린, 주조의 문학적 · 신비학적 걸작이다. 또한 1334년쯤에 마무리된 《영원한 지혜의 시계》(Horologium aeternae Sapientiae)는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를 원 본으로 삼은 라틴어 저서이거나 그 작품의 초고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저서는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에 비해 종교적 · 윤리적 사회적인 성격의, 그리고 특히 수도원 생활에 관련된 경험들과 문제점들을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지혜에 대한 강좌》(Cursus de aeterna Sapientia)도 라틴어로 쓰여졌다. 〔영성적 가르침〕 주조의 가르침과 개인적인 경험의 특징은 친밀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인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실상 《모범》의 머리말에서 그는 그 책이 "하느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하느님이 자신의 친밀한 친구들에게 늘 그러하듯이 커다란 고통을 예비해 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하느님과의 강한 친밀함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평생 열렬히 사랑한 대상은 '영원한 지혜' 이고, 그래서 "영혼들 속에 신적 사랑의 불 길을 되살리기 위해서" 쓴 자신의 걸작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를 이 영원한 지혜에 헌정하고 있다. 이 작 품은 분명히 다른 어느 작품들보다도, "사람들을 그 죄스러운 생활의 높으로부터 일으켜 미(美)를 향해 고양시키고 그들을 거짓된 인간적 사랑으로부터 해방시켜 '영원한 사랑' 을 사랑하도록 만들려는" 그의 근본적인 지향 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머리말과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와 제2부는 '지혜' 와 '제자' 사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3부는 '주님의 수난에 관한 백 가지 묵상 을 담고 있어서, 과거에는 종 종 분리되어 출판되었다. 제1부에서는 속죄의 개념이 지 배적인데, 그리스도와 인간의 고통과 주조 자신이 아들과 같은 효성으로 사랑한 성모 마리아의 고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제2부에서는 죽음의 전망이 분명히 드러나고, 죽음에 대한 계속적인 준비의 수단으로 잦은 영성체를 권고하고 있다. 성체에 대한 묘사는 《준주 성 범》처럼 대단히 탁월하다. 제3부에서 주조는 예수의 수난과 마리아의 고통에 대한 애정 어린 명상을 보여 준다.이 명상들은 이 주제에 관하여 쓰여진 것 중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명상들이며, 15세기 독일 회화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진리에 관한 소책자》와 자서전인 <생애>의 후반부에서 잘 드러나듯이, 주조는 사변의 교리적 토대를 특히 부각시키면서도 실천적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신비적 은총에 대한 분석에 몰입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 정화와 수동적 정화를 묘사하는 데 몰두하였다. '초심자, 중급자, 완전자' 에 대해 말할 때(<생애> 36), 전통적 분류 방식을 따르면서도 영성 생활의 단계들과 정화 작업의 단계들 사이의 병행 관계를 설정하였다. <생애>에서 그의 가르침 전체를 종합하는 하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 다. 즉 "영혼은 피조물로서의 형식들을 벗어 버리고(1단계), 그리스도와 일치되어야 하며(2단계), 신으로 변형되어야 한다(3단계)"<생애> 49). 첫째, 영성 생활의 시작은 '성서에 따른' 첫 번째 회개 를 전제로 한다. 초심자는 피조된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자기를 죽여 마음을 감각적이고 상상적인 형상들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영원한 지혜의 시계》 11, 3). 자기 자신을 잊고 오직 하느님에게만 몰두하기 위해서 외적이고 내적인 고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내말김' 이라고 부르는, 즉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내맡기는 수동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 '내말김' 이라 는 개념은 주조의 신비 신학의 열쇠 개념이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 전체가 '내맡긴 인간' (gelassenen Mensch), 즉 완전히 포기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하느님의 손에 온전히 내맡기는' 인간을 형성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생애> 20). 둘째, 여기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열렬히 명상하고 그의 삶을 본받으려는 '두 번째 회개' 가 시작된다. 온전한 '내맡김' 은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추종으로 변형되어, '영원한 지복(至福)으로 이끄 는 왕도(王道)' 가 된다.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하기 위해 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애정 어린 고찰 속에 침잠 해야 한다. '지혜' 는 그에게 말한다. "나의 인간성은 따 라 걸어야 하는 길이고, 나의 수난은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 2 : 《영원한 지혜의 시계》 1. 2). 셋째, 그리스도를 닮게 된 '내맡긴 인간' 은 자기 자신 안에 하느님 '아들'' 의상을 지니게 되며, 그의 영혼은 신성으로 변형되고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기원, 그 '영원한 원형(元型)' 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피조물들은 하느님으 로부터 '아들' 의 모상에 따라 태어나며, 창조의 '형상 인' (causa formalis)인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하느님에 게로 되돌아간다. 이 기원의 관계 때문에, 그리고 이 순 환 운동' 때문에 피조물들은 삼위 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전개 과정들의 반영들(widerblk)이다. 피조물들은 자신 들의 존재를 하느님의 본질 중 '스스로 확산되는 선 (bonum diffusivum sui)으로부터 받았지만(<생애> 31), 신적인 전개 과정들에서 일어나듯이 원인적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것들과의 유사성을 통해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은 '신의 탄생' , 즉 '아들 의 출산에서 하느님에게 발생하는 것의 반영이고, 완 전한 인간 안에서의 신격화 및 신비적 죽음에 상응한다. 영혼은 하느님, 즉 '무' 안에 온전히 몰입하여 그외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주조의 신비 신학은 신학적 · 구성적 요소들의 측면에서는 독창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 특별한 성격 때문에 다른 것들로부터 뚜렷이 구별된다. 그는 라틴어로 된 매우 까다로운 전통적 개념들을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입각하여 대단히 정교하고도 풍부한 의미들을 부여하면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성공하였다. 〔후대에 미친 영향〕 주조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신비주의의 중심이던 카타리빈탈(Kahhninenhal), 외텐바흐 (Oethenbach), 퇴스 등지에 있는 도미니코회 관상 수녀원 들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하느님의 벗회' , 특히 메르스 빈(R. Merswin)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깊은 신비 사상에 경탄하였던 프란치스코회의 오토(Otto de Passau)와 마카르(Marquard) 의 사상과도 매우 흡사하였다. 그는 <영원한 지혜의 시계》와 《백 가지 묵상》을 통하여 빈데스하임(Windesheim) 의 현대적 신심 운동, 특히 그뢰네텔(Augustn von Groenendael), 그로테(Gerhard Groote, 1340~1384), 라데빈(Florenz Radewijn, 1350~1400)과 로이스브루크(Jan van Ruysbroeck, 1293~1381)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수리오 (Surio)에 의해 이루어진 《모범》의 초판(1482)에 대한 라 틴어 번역본(1555)은 급속도로 전파되어 1555~1658 년 사이에 6쇄나 거듭되었다. 또 유럽의 주요 언어들로 번역되는 기초 역할을 하였다. 이 번역본들을 통하여 많 은 사상가들이 주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중 대표적인 사 상가로는 가니시오(P. Canisius, 1521~1597), 샤르동(L.Chardon, 1595~1651), 피니(A. Piny, 1640~1709), 프란치 스코 드 살(프란치스코 살레시오, 1567~1622), 알퐁소 마 리아 데 리구오리(1696~1787) 등을 들 수 있다. (⇦ 하인 리히 조이제 ; → 신비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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