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주의 主知主義 〔라〕Intellectualismus 〔영〕Intellectu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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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지성(intellectus) 또는 지성의 개념 포착 활동이 의지(voluntas)나 정서에 비해 우위를 차지한다는 철학적 또는 신학적 체계. 여기서 문제는 영적 존재인 인간의 구조와 지성 및 의지가 차지하는 위치와 관련된다. 실상 인간의 삶은 본질 적으로 지성과 의지의 활동 유형과 활동 원리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이 활동들을 통해서 그 존재자는 행동하 고 자기 자신의 새로운 충만 속에 통합된다. 먼저 표상적 소유를 지니고 이어 존재적 소유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 로 이 두 기관들 가운데서 지성은 대상을 순수 표상적으 로 소유하지만, 의지는 그것을 실재 속에서 실존적으로 소유하며 통합한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 383~322/321)와 토마스 아퀴나스(1224/225-1274)의 사 상 노선을 '주지주의' 라 부르고, 그와는 대조되는 아우 구스티노(354~430)와 스코투스(1265/1266-1308)의 사상 노선을 '주의주의' (主意主義, Voluntarismus)라고 부른 다. 그리고 현대 사상가들이 주관적이고 실존적인 관심 사들을 배제하고 추상적 일반화와 합리성만을 강조하는 철학 체계들을 경멸하여 부를 때 '주지주의' 라고 한다. 경멸적이 아닌 뜻으로는, 실재를 지성적인 용어들이나 지성에 접근 가능한 것으로 보는 해석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용어는 베이컨(F. Bacon,1561~1626),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 칸트(I. Kant, 1724~1804) 등의 표현에 기초해서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용어이다. 〔개념과 역사〕 고대 그리스 : 근대에 생긴 '주지주의'라는 용어를 훨씬 더 오래된 가르침들에 적용하는 것은 혼선을 빚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은 경멸적 의미 에서 조금도 '주지주의적' 이 아니었다. 주지주의는 일종 의 외면화와 형식의 공허성, 자기 고유의 영역 밖으로 옮 겨진 형식적 추상성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그리스인들에 게 있어서 형상, 즉 '에이도스' (εἶδος)는 전혀 외면적이 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지극히 구체적인 실재였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르침들이 형상들 과 관련하여 표현되기 때문에 '주지주의적' 이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형상이 그리스인들에게 의미하던 것에 대 한 오해와 훨씬 후대의 형상 개념을 그들에게 적용한다 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의 기본 사상은 서구 사상사에 주지주의적 색조를 깔아 놓았다. 그에게 있어 서 실재란 근본적으로 '에이도스' 였는데, 이때 '에이도스란 어떤 순수한 지성적 요소가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능동적인 형상이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본질적으로 영원하고 신적인 '에이도스' 에 대한 명상으로 압축된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469~399)의 경우, 그가 "선을 아는 자는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주지주의라고 불린다. 이것은 오비디우스(Ovidius, 기원전 43~서기 17)가 더 훌륭하고 정직한 길을 보면서 도 나는 나쁜 길을 좇고 있구나"(video meliora proboque, deteriora sequor)라는 문장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와 정반 대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선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아는 것으로 넉넉하다' . 그러나 이로 써 그것이 추상적이고 아무런 인격적 참여도 없는 지식을 가리킨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주지주의' 라고 불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실용적인 인식 기관들에 대한 이론적 인식 기관들의 우위를 선호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우위는 특별히 아 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확인된다. 그의 윤리학에서 행복은 인간의 가장 고유한 활동의 수행(《니코마코스 윤리학》 X, 8, 1178 b22)에서 성립된다. 그리스인들의 삶은 실제로 '인식' 이 인간의 최고 목적이라는 사상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신은 순수한 정신이요 순수한 사고이며, 특히 자기 자신을 명상하는 사 고(noesis noeseos : <형이상학> XII, 9, 1074 b34)이다. 그러 나 인식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행동에 반대되는 순 수한' 생각이 아니라, 수동성이 가장 적게 섞인 가장 순수하고 능동적인 행동이었다. 이런 주지주의적 태도는 우주를 가지성(可知性)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플로티누스(205~270)에 의해서 더 한층 강화되며, 자연과 윤리 속에도 '로고스' 의 내재성이 스며들어 있다고 보는 스토아 학파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중세 : '지성' 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사실이 중세의 가르침들에 대해서도 '주지주의' 라는 용어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그 자체로 볼 때 그 리고 단적으로 지성이 의지보다 더 높고 더 고상하다" (secundum se et simpliciter intellectus altior est et nobilior voluntate : 《신학 대전》 1,q.82,a.3)라는 말을 기초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주지주의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지성은 '누스' (νοῦς), 즉 정신에 상응하는 것이지 논술적 추론(ratiocinium)이나 이성(ratio)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경멸적인 주지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의미를 지닌다. 주지주의는 정신의 두 가지 활동 가운데 지성이 감각 영역을 극복하는 문제에 있어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고 부각시키고, 의지 활동의 역할과 비중을 상대적으로 경 시하는 태도를 취할 때 생겨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 리스토텔레스의 주지주의적 입장에서 지성의 대상이 단 순한 구체적 '선' (bonum)이기보다는 '선의 근거' (ratio boni)이고, 따라서 '더욱 단순하고 더욱 추상적' 이기 때 문에 우위를 차지한다고 하였다(《신학 대전》 1,q.82, a.2). 그리고 지성 속에 행복의 본질을 설정하는 이유는 지성이 그 '목적 추구' (consecutio finis)를 실현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신학 대전》 I-Ⅱ,q.3, a.4). '의지' 는 그리스도교가 하느님이 창조적 권능과 사랑이며 자유와 인격적 사랑의 관념이 영의 삶의 절정이라 고 강조할 때부터 전면에 부각되었다. 그러나 주의주의 는 주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또는 적어도 그 상대역으 로 생겨났다. 실상 주의주의는 지성적인 진리와 관련된 기능을 의지에 돌릴 때 생겨난다. 존재와 그 구조를 자체 로서 그리고 행동 규범으로서 인정하고, 그러한 이유가 이 규제 속에서 진리적 기능이 수행되기 때문이라고 설정하는 것은 지성에 고유한 일이다. 그러나 중세에는 성 서에 나타나는 일부 까다로운 윤리적 태도들을 해석하는 가운데 선과 악의 규범에 대한 온갖 규정이 (그 자체 행동 의 규범을 구성하는) 인간의 본질적 구조와는 독립적으로 하느님 의지의 판단에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런 경향은 아벨라르(P. Abélard, 1079~1142) 에게서 처음으로 나타나고(In epist. ad Rom., II, 5 : PL, 178, col.806), 스코투스에게서는 유한한 실재의 우연성이라는 문제의 근거로 제시된다. 유한한 실재의 존재는 신의 의지에 의존하고 있고,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을 설정하는 것도 절대적인 방식으로 신에 속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런 법칙이 신 자신에게도 부과되었을 것이다(Cf. In Ⅲ Sent.,d.37,q.).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주의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적 구조들이 영원한 관념들처럼 신적 지성 안에서 이미 어떤 규정된-그래서 의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없는-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 오컴(W. of Ockham, 1285?~ 1349)에게 있어서는 진리 자체가 신적 의지에 달려 있다. 결국 토마스에 의하면 하느님이 선을 선하기 때문에 원하는 데 반해, 오컴에 의하면 선은 하느님이 원하기 때 문에 선하다. 인간 행위에 대한 분석에서 토마스는 자유의 뿌리가 원하는 가치를 판단하는 지성에 있고, 이미 여러가지 이유에서 의지에 의해 배정된 다양한 비중에 달 려 있는 결정적인 실천적 판단을 의지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주지주의자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스코투스에 의하면 아무리 지성이 더 낫다고 결정적 으로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의지는 그것을 따르기를 거부 할 수 있다. 근대와 현대 : 주지주의적 태도는 근대에도 발견된다. 17세기에 철학자들은 진리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수 단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들은 관찰의 방법 에 호소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방법을 선호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결국 수학적 방법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 수학적 방법을 물리학에 적용할 때 자연이 지니고 있지 않은 필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공통의 태도 로부터 근대의 두 가지 주지주의적 조류가 생겨났다. 하 나는 베이컨(F. Bacon, 1561~1626), 로크(J. Locke, 1632~ 1704), 흄(D. Hume, 1711~1776), 콩트(A. Comte, 1798~ 1857), 스펜서(H. Spencer, 1820~1903)로 이어지는 경험 주의적 · 실증주의적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데카르트(R. Descartes,ㅜ1596~1650), 말브랑슈(N. Malebranche, 1638~ 1715),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 라이프니츠 (G.W. von Leibniz, 1646~1716), 피히테(J.G. Fichte, 1762~ 1814),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 헤겔 (G.W.F. Hegel, 1770~1831)로 이어지는 합리주의적 · 관 념주의적 노선이다. 이러한 두 조류에서 인간의 가치와 능력은 방법상의 견고성 때문에 거의 모든 경우 자유가 끼여들 여지가 없는 비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형식에 있어서는 스피노자를, 그가 자신의 윤리학을 기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기 때문 에 주지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용의 관점에서는 가장 높은 형태의 지식인 '지성' 이 직관이며 또한 '지성적인 신 사랑' (amor Dei intellectualis)이다. 그 리고 헤겔에 관해서도, 변증법에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이 그가 제안하는 것과는 달리 지성적 차원에 남아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젊은 시절 작품 들이 사랑에 근접시켰던 '이성' 을 선호하고 있음을 드러 내기 때문에, 최소한 그의 의도는 반지성주의를 표방하 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세계를 '관념' 의 현현으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에 주지주의자로 간주한다면, 주지주의에 부적절한 의미를 부당하게 전가 하는 것이다. 그때 주지주의는 세계의 뿌리가 맹목적이 고 비합리적인 '의지' 라고 보는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의 이론과는 대립되는, 이성적 본성을 지닌 또는 이성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실재의 궁극적 토대를 견지하는 모든 가르침을 가리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상가들이 사용하는 주지주의의 경멸적인 의미는 특히 대다수의 반주지주의자들의 비판에서 그들이 믿 고 있는 의미에서의 주지주의적이 아닌 이론들에 연루된 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지주의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부당하게 비판되는 이론들을 지지하며, 예컨대 진리가 '지성과 사물의 일치' (adaequatio intellectus et rei)임을(《신학 대전》 I,q.16, a.1. 2) 인정하지 않는 실 용주의와 같은 가르침들에 반대해서, 인간의 인식 능력들이 실재를 포착할 수 있고 진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주지주의라는 용어의 보급에 크게 기여한 사람 중 하 나는 베르그송(H. Bergson, 1859 ~1941)이다. 그는 물질적 실재를 포착하도록 되어 있는 '지성' 의 형식들을 전혀 다른 대상들(오직 직관에 의해서만 포착될 수 있는 의식 심층 의 삶)의 지식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을 주지주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1907)의 제4장에서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에서 그러한 주지주의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그가 이해한대로의 주지주의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베르그송 학파에 속하는 르 루아(E. Le Roy, 1870~1954)는 '근대주의자들' 과 함께 '교리에 대한 주지주의적 개념' 을 거슬러 투쟁 한다(Dogme et critique, Paris, 1906, p. 111). 르 루아에게 있어서 교의들은 인식 또는 언명들의 대상들로 이해되어 서는 안 되고, 오히려 어떤 실천적 태도를 얻기 위한 것 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지주의는 특히 실제로 성공한 것을 진리라고 보는 실용주의(pragmais)에 의해서 대변된 다. 제임스(W. James, 1842~1910)와 더불어 주지주의에 대한 반대는 심리학 영역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갖게 되 었다. 여기서는 심리적 삶을 지성적 표상들 또는 거기서 부터 파생된 것들로 환원하는 가르침들이 주지주의적'인 것들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헤르바르트(J.F. Herbart, 1776~1841)는 정서적 상태들을 정신 안에서 서로 대립되 거나 서로 일치되는 관념들의 공동 실존으로 설명하며, 이 관계들에 대한 혼란스러운 지각이 감정을 낳는 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 이 제임스가 견지하는, 정서의 육체적 또는 생리학적 이 론이다. 제임스에게 있어서는 어떤 가공스러운 대상의 지성적 표상이 공포의 감정과 그에 이어지는 생리학적 반응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반응들이 공포와 같이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것의 육체적 토대이다. 〔평가와 의의〕 중세 후기에 토마스주의자들과 스코투 스주의자들 사이에는 오랜 힘겨운 논쟁이 있었다. 토마 스주의자들은 진리를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지성의 우위 를 주장하였는 데 반해, 스코투스주의자들은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의지의 우위를 고집하였다. 근대에 이루었다고 믿는 커다란 혁명들 가운데 하나는 이전에 지성이 차지하던 자리를 의지가 차지하게 된 것 이었다. 조금은 이상하지만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닌 논리에 힘입어 근대 세계는 처음에는 이성의 깃발을 크게 나 부끼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모든 것(신앙, 종교, 전통, 권위, 신비 등)을 추방해 버리더니, 그 다음에는 다시 이성 으로부터 지휘봉을 빼앗아 의지에 넘겨주었다. 이러한 경과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 사물들에 대한 그의 효과적인 힘이 이성(앎)보다는 의지(힘)에 더 의존하기 때문에 정당화되었다. 이처럼 '빛의 시대' , 즉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전지(全知)를 선언하더니, 그 다음에는 합 리성으로부터의 자유까지도 포함하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총체적 자유를 외쳤다. 이렇게 해서 근대 문화는 점점 더 의지의 문화, 자유의 문화가 되어 갔다. 인간은 어떤 존재론적 · 역사적 · 사회적 결속으로부터도 해방된 최고의 총체적인 자유로 이해 되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자기 본질, 자신의 역사, 자기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의 조형자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유의 동일시 덕분에 고대 및 중세 문화가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 종교 등을 통하여 부과하였던 모든 유대들이 끊어지고 파괴되었다. 일단 인간에게 절대적 주권과 총체적 독립성이 보장되자, 근대 문화는 마침내 '신의 죽음' 을 선포하고 인간으로부터 편취하여 신에게 돌려졌던 속성들, 전지와 전능(全能)을 다시 회수하였다.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런 문화 유형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들로 눈길을 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규범도 없고 경계도 없는 자유의 실행, 또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힘의 수행은 폭력과 테러리즘 그리고 '야만인' 의 문화를 초래하였고, 강제 수용소, 굴라크(gulag), 빈민촌 등의 설립을 가져왔 다. 모두 절대 자유에 의해서 비롯된 예속의 지옥들이다. 오직 권리만 있고 그 어떠한 의무의 규제도 받지 않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숭배는 인간 사회를 힘의 법칙밖에 모르며 소유, 힘, 쾌락의 본능들로만 행동하는 맹수들의 밀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연의 난폭한 힘들은 극복되었지만,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다른 원시적 힘들이 현대 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지성의 가치와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맹목적인 행동은 아무런 결실도 낼 수 없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은 결국 선일 수 없는 것 이다. 자연의 법칙들을 발견한 현자들은 인류의 고마운 은인들이고,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준 분은 구세주이다. 그러나 주지주의는 자칫 합리주의와 결정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존재자는 필연적이고 가지적(可智的) 일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기도 하다. 만일 지성적 사고가 내재적 행위이고 그 자신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위 를 차지한다면, 의지 역시 그 자신을 원할 수 있고, 그로 써 자율적이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지성적 사고는 진리의 질서에서 첫째이지만, 의지는 선의 질서에서 첫째이다. 인간을 포함한 정신적 존재자들의 삶은 지성과 사랑의 상호 보완적 활동들을 통하여 풍요롭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 사회 철학 ; 의지 ; 자유 의지 ; 주의주의 ; 지성)
※ 참고문헌  M. Wundt, Der Intellectualismus in der griechischen Ethik, Lipsia, 1907/ A. Fouillée, La pensée et les nouvelles écoles antiintellectualistes, Paris, 1911/ A. Aliotta, La reazione idealistica contro la scienza, Palermo, 1912/ P. Rousselot, L'inellectualisme de St. Thomas, 3a ed., Paris, 1936/ M. De Munnynck, L'antiintellechalalis contemporain, Roma, 1936/ D. Seidler, Intellektualismus und Volumtarismus bei Albertus Magnus, Miinster, 1941/ W. Buteval, Lefauc intellectualisme, Paris, 1948/ A. Rigobello, Genesi dell'intellttualismo classico nel pensiero presocratico, Studia patavina, 1956, pp. 307ff./ 一, La sofistica come intellettualismo strumentale, Studia patavina, 1957, pp. 99~124/ ㅡ, L'intellettualismo come ideale : Socrate, Studia patavina, 1957, pp. 301~331/ 一, L'intellettualismo in Platone, Padova, 1958/ F. Bartolone, L'origine dell'intellettualismo dalla crisi della libertà, Palermo, 1959/ G. Rizzo,Intellettualismo, volontarismo e idealismo attuale come coincidenza del volere e del pensare, Teoria, 1961, pp.165~180/ F. Morandini, Critica, 5th ed., Roma, 1963/ V. Mathieu, Enciclopedia filosofico, vol. Ⅲ, Firenze, Sansoni, 1967, pp. 974~9781 E. Michel, Nullus Potest Amare Aliquid Incognitum : Ein Beitrag zur Frage des Intellektualismus bei Thomas von Aquin, Freiburg, Universitätsverlag, 1979/ J. Hause, Thomas Aquinas and the Voluntarists, Medieval Philosophy and Theology 6, 1997, pp. 167~182. 〔李在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