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본당

竹島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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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2동 139-23 소재. 1950년 4월 15일 경주(현 성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관할 구 역은 포항시 죽도1 · 2동 전 지역과 용흥1 · 2동, 송도동, 양학동, 중앙동 일부 지역. 〔교 세〕 1964년 1,554 명, 1972년 1,600명, 1980년 3,511명, 1988년 5,783 명, 1996년 5,313명, 2002년 6,068명. [역대 신부] 초 대 김경우(金慶佑) 알렉시오(1950. 4~12), 2대 김두호(金 斗浩) 알로이시오(1952. 3~1953. 7), 3대 신상도(辛尙道) 프란치스코(1953. 7~1955. 9), 4대 펠리스(M. Pélisse, 배 세영) 마르철로(1955. 9~1958. 4), 5대 베르트란드(P. Bertrand, 안덕화) 베드로(1958. 4~1969. 8) 6대 김영환 (金榮煥) 베네딕도(1969. 8~1970. 11), 7대 전주원(全主 元) 바오로(1970.11~1975. 1), 8대 박병기(朴炳璂) 베네 덕도(1975. 1~1979.7), 9대 박원출(朴元出) 토마스(1979. 7~1984. 7) 10대 김무한(金武漢) 프란치스코(1984. 7~1990. 7), 11대 유승열(劉承烈) 바르톨로메오(1990. 7~1994. 9), 12대 조정헌(曺正憲) 파트리치오(1994. 9~2000. 2), 13대 박성대(朴成大) 세례자 요한(2000. 2~ 현재). 일제 시기 포항 지역은 인근의 경주 지역처럼 불교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프로테스탄트도 상당히 분포되어 있는 반면에 천주교 신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해방 후 당시 경주 본당 3대 주임인 정행만(鄭行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는 포항 지역의 발전을 예견하여 우선 공 소를 설립하기 위해 이 지역 신자인 석팔곤(베드로)과 함께 공소 자리를 물색하였다. 이런 가운데 1945년 9월 경 서 마리아의 집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후 시내에 좀 더 가까운 이복우(李福雨, 베네딕도)의 집에서 공소 예 절을 계속하였다. 이후 정행만 신부의 부탁으로 당시 대 구 대목구장인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는 매우 어 려운 재정 사정에도 불구하고, 1947년 11월 당시 포항 갑부인 김두하의 밭 1,024평(현 본당 소재지)을 매입하였 다. 한편 신자들은 1950년 3월경 포항시 중앙동 275-2 번지(구 경동 예식장 근처) 소재의 백화점 건물 한 동을 45 만 원을 주고 매입하여 포항 공소를 차렸다. 60여명의 신자들이 열심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전해 들은 제6 대 대구대목구장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는 1950년 4월 포항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경우 신부를 임명하였다. 하지만 곧이어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강당이 소실되어 다시 경주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52년 3월에 본당으로 복원되었으며, 2대 주임으로 김두호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두호 신부는 일 단 죽도동에 위치한 성모 자애원 시내 분원의 기와집 모 퉁이에 거처를 정한 후, 성당 건립에 전력하였다. 이에 이전에 교구청에서 매입해 두었던 현 본당 자리에 45평 의 목조 성당을 건립하여, 1952년 6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성모회와 청년회를 창설하여 본당 사도직 활동의 주축으로 삼았다. 3대 주임 신상도 신부는 2년 여의 재임 기간 동안 매년 신자 가정을 방문하는 한편, 청년회 모임을 활성화시켜 포항 성가대와 포항 가톨릭 학생회를 결성하였다. 4대 주임 펠리스 신부 재임기인 1955년 10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 소속의 수녀가 본당 에 파견되었는데, 수녀들은 교리반을 구성하여 예비자들 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5대 주임 베르트란드 신부는 평소 레지오 마리애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1958년 3월 본당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단체인 평화의 모후 쁘레시 디움이 창단되었다. 같은 해 6월 인자의 모후 쁘레시디 움이 창단되었으며, 8월에는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 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1959년 7월 본당 신부를 지도 신부로 하는 즐거움의 모후 꾸리아가 창설되었다. 한편 목조로 지어진 성당이 노후화되자 베르트란드 신부는 성 전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한 후, 1960년 4월 8일에 새 성전 착공식을 거행하였고, 10월 3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서정길(徐正吉, 요한) 주교의 집 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58년 9월에 송라 공소 축복식을, 1962년 12월 8일에는 청화 공소 축 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62년 4월에는 본당 관할의 영덕(盈德)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6대 주임 김영환 신부는 1년 3개월 여의 재임 기간 동 안 교구에 막 도입된 꾸르실료를 본당에 도입하기 시작 하여 본당의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아직 본당에 제도화되지 않았던 교무금 제도를 처음 도 입하였다. 8대 주임 박병기 신부는 1975년 5월 사제관 건립 기공식을 거행한 후, 9월에 완공하여 축복식을 거 행하였다. 한편 포항제철의 설립과 철강 공단의 형성으 로 1970년대 들어오면서 포항시 인구가 급증하자, 포항 본당은 이에 대한 사목 대책으로 본당 분가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에 1977년 8월 포항시 덕수동 53-5번지 소 재의 대지 214평과 연건평 70평 규모의 옛 일본식 건물 을 본당 신자들의 모금과 교구 보조로 매입한 후, 같은 해 12월에 덕수(德壽) 본당을 분리 · 설정하였다. 그리 고 1977년 12월에 오천 공소를, 이듬해 8월에는 수녀원 및 마을 금고 등 부속 건물을 신축하였다.
9대 주임 박원출 신부는 1979년 11월 성전 보수 및 확장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듬해 6월에는 성모상 조경 사업 및 유아실 확장 공사를 실시하는 등 본당 내 · 외부 환경 쇄신에 노력하였다. 점차 신자수가 증가하자 같은 해 12월부터 본당의 전 구역을 여러 교반으로 나누어 매월 교반 지도자 모임과 교반장 모임을 가진 후, 교반 회의를 개최하게 하여 본당 신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이 끌어 냈다. 1981년 5월에는 성당 확장 및 정문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7월에는 죽도 청년 연합회를 결성하였 다. 1982년 3월 신자들의 모임과 만남의 집인 가톨릭 회관 기공식을 거행한 후, 9월에 공사를 완료하여 이문 희(李文熙,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 다. 한편 1982년 대구대교구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200주년 기념 본당 설립 및 성전 건립' 을 교구 방침으로 정하였는데, 포항 지구는 죽도 본당 주관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1983년 1월 포항 시 해도동 235-1 · 2번지와 대도동 112-8 · 9번지 소재 의 대지 625.7평을 교구 예산으로 매입한 후, '200주년 기념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 를 발족시켰다. 같은 해 5월 새 성전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1984년 1월에 대해 (大海) 본당을 분리 · 설정하였다.
10대 주임 김무한 신부는 부임 후 우선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1984년 11월에 통합 성가대를, 이듬해 1월에는 포철 가톨릭 교우회를 결성하였다. 1985년 11월 성당 옆 중앙 화단을 철거한 후 시멘트로 포장하여 주차장을 확보하였고, 본당 단체들의 활성화로 이듬해 6 월에는 포항 지역 바다의 별 꼬미시움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계 성체 대회를 기념하는 성전을 설립하기 위해 1989년 4월 기공식을 거행한 후, 이듬해 5월에 공사를 완료하여 대잠(大岑) 본당을 분리 · 설정하였다.
11대 주임 유승열 신부는 1991년 4월에 수녀원과 성 모상 조경 공사를 실시하였고, 이듬해 4월에는 성당 외벽 페인트 작업을, 7월에는 가톨릭 회관 옥상의 조립식 건물 신축 공사를 실시하는 등 본당 내 · 외부 환경 개선에 노력하였다. 또한 1994년 5월 포항 지역 교육 문화 센터 역할을 할 가톨릭 문화관 신축 기공식과 무료 급식 소인 바오로의 집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2대 주임 조정 헌 신부는 1994년 12월 가톨릭 문화관 신축 공사를 완 료하여 이문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듬해 1월 본당에는 은총의 중재자 청년 꾸리아가 창단되었다. 그리고 조 신부는 1995년 2월 제1회 구역 사목 회의를 개최하여 교회가 추구하는 횡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였으며, 9월에는 훼손이 심한 성모상을 새 성모상으로 교체하였다. 1997년 8월에 본당 50년사 편 찬 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11월에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98년 7월에 안강 본당 관할 의 기계 공소가 죽도 본당 관할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9월에는 성당 새마을 금고 및 나눔의 집 개축 축복식과 포항 지역 초대 교우 유치수(俞致洙, 필립보), 임장하(林 長河) 부부의 사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12월에는 기존의 바오로의 집을 대체하여 본당 뒤편에 새로 요 안나의 집을 마련하여 무료 급식을 이어 나갔다. 13대 주임 박성대 신부는 2000년 6월 본당 50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죽도 본당 50년사》를 발간하였다. 현재 죽도 본당은 2003년 3월 15일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주임 신부와 전 신자가 하나가 되어 성당 건립을 위 해 진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대구 본당 백년사》,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 죽도 교회 《죽도 본당 50년사》, 2000.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