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본당

竹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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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본당 내에 있는 순교자 현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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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본당 내에 있는 순교자 현양비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430 소재. 1983년 9월 8일 구포동(九苞洞, 현 안성) 본 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순교자의 모후. 관 할 구역은 안성시 죽산면 전역과 삼죽면, 일죽면, 백암면 일부 지역. 〔교 세〕 1983년 1,395명, 1988년 1,576명, 1993년 1,795명, 1999년 2,091명, 2002년 2,351명. 〔역대 신부〕 초대 최재필(崔在弼) 안드레아(1983. 9~1984.9), 2대 김봉학(金奉學) 바오로(1984. 9~1985.2), 3대 조욱현(曹旭鉉) 토마스(1985. 2~1986. 7), 4대 한태 문(韓泰文) 치릴로(1986. 7~1990. 12), 5대 조영오(曺永 五) 도미니코 사비오(1990. 12~1992. 2), 6대 강정근(姜 正根) 마티아(1992 2~1998. 1), 7대 이인석(李仁錫) 헤론 (1998. 1~2002. 1), 8대 박만상(朴晩相) 스테파노(2001. 1~현재). 〔전사 및 공소 설립〕 현재 죽산 본당 관할 지역은 조선 시대 죽산현으로 이곳에는 지방 행정 기관인 도호부가 있었다. 도호부에는 각 지방의 죄인들을 잡아 처형하는 사형 터가 있었는데 이 사형 터에서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되었다. 《치명일기》와 달레(Ch. Dallet)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24명의 교우가 죽산 성지(안성시 일죽면 월정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해 이후에 신자가 살고 있었다는 기록은 단편적으로 남아 있으나, 신앙 공동체의 형성 기록은 보이지 않 고 있다. 이후 이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태동된 것은 1932년경 이병을(즈가리야), 우 엘리사벳 부부와 이듬해 조규오(요한), 김 아가다 부부가 이주해 오면서부터로, 1934년 조규오의 집에서 첫 미사가 봉헌됨으로써 죽산 장릉리 공소가 설정되었다. 1935년부터는 초대 공소 회장 우 엘리사벳 집에서 판 공 성사를 치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열심한 전교 활동으 로 죽산 지역에 많은 신자가 생겨났다. 2대 공소 회장인 이병을은 1956년에 공소 강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58년에는 이죽면 죽산리 430번지 소재 808평 의 부지(현 본당 소재지)를 확보한 후, 1961년에 20평 규모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이후 죽산 공소 신자들은 꾸준히 신앙 생활을 해오면서 본당 승격을 위해 노력하였다. 〔본당 설립과 발전〕 1979년 당시 구포동 본당 21대 주임인 이정운(李淨雲, 베드로) 신부는 병인박해 관련 교회 문헌에서 죽산에서 순교한 24위의 순교 선열들을 확인 · 고증한 후, 같은 해 12월 25일에 안성 본당 설립 80주년 기념 병인년 순교 성지 죽산 성당 건립 추진위원 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병인 순교 성지 경기도 죽산》 이라는 연구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1980년 6월 에 공소 부지 808평의 소유권 명의가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 재단으로 이전되었고, 9월에는 성당 신축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1981년 6월 신부 이동 및 자금난 등 의 사정으로 신축 공사는 중단되었으나, 같은 해 11월 5 일 교구 공문에 의해 죽산 공소는 준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성당 신축 공사가 재개되었다. 1982년에 성당 정 문을 설치하기 위해 100평의 대지를 추가로 매입하였으 며, 1983년에는 공소 강당을 증 · 개축하여 교육관으로 변경하였다. 1983년 9월 8일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 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최재필 신부가 부임하여 교 세 확장과 성당 건축에 전념하였고, 3대 주임 조욱현 신 부는 수녀원과 본당 사무실(1 · 2층 슬레이트, 연건평 50평) 을 신축하였다. 한편 본당 승격 후 추진되던 성당 건축 공사는 4대 주임 한태문 신부 재임시인 1987년 9월에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89년 3월 본당에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설치됨으로써 죽산 본당은 본당으로서의 체계가 갖추어졌다. 한편 본당으로부터 2.7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죽산 성지는 1990년대 초반까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지 개발이 소홀하였으나, 6대 주임 강정근 신부가 1992 년 2월에 비로소 성지 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성당과 수녀원 등을 건립하여 본당 외적인 환경 을 마련한 죽산 본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는 죽산 성지 개발과 함께 본당 신자들의 내적인 신심 강화에 노력하 였다. 하지만 2002년 5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대부 분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던 본당 신자들이 큰 피해를 입 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03년 현재 죽산 본당은 8대 주임인 박만상 신부의 사목 아래 신자들의 신심 활동 강화와 교세 확장에 진력하 고 있다. (→ 수원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 교구, 1993/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