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동 본당 竹田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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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달서구 죽전동 211-1 소재. 1983년 2월 4일 죽전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달서구 죽전동 전 지역과 감삼동, 장기동, 서구 내당동, 중리동 일부 지역. 〔교 세〕 1983년 915명, 1987년 2,250명, 1992년 3,519명, 1996년 3,333명, 2001년 3,400명. [역대 신부〕 초대 윤임규(尹任圭) 토마스(1983. 2~1986. 1), 2대 원유술(元裕術) 야고보(1986. 1~1990. 6), 임시 최휘인(崔輝寅) 바오로(1990. 6~12), 3대 박영식(朴永 植) 야고보(1990. 12~1992. 6), 4대 황용식(黃龍式) 타데 오(1992. 6~1994. 2), 5대 최창덕(崔昌德) 프란치스코 사 베리오(1994. 2~1997. 8), 6대 정인용(鄭仁溶) 바르톨로 메오(1997. 8~2003.2), 7대 원동수(元東秀) 바오로(2003. 2~현재). 〔전사와 공소 시기〕 1885년부터 신나무골(현 경북 칠곡 군 지천면 연화동)에 정착하였던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는 1887년 3월 이 지역을 보두네(Baudounet, 尹沙 勿) 신부에게 맡기고 대구 인근 새방골(新坊谷, 현 대구시 서구 상리동과 죽전동) 송골〔竹田〕에 위치한 이장언(李章 彥, 프란치스코)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로베르 신부는 새방골에 초가 한 채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을 마련하고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대구(현 계산동) 본 당' 의 설립이다. 로베르 신부는 1891년 초 '대구 교안' 사건으로 잠시 대구 지역을 떠나게 되었으나 4월에 다시 대구로 돌아와 그해 말 새방골에서 대어벌(待御伐, 현 대 구시 중구 인교동)로 임시 본당을 옮겼고, 이로 인하여 새 방골은 대구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한편 로베르 신부 의 거주지였던 송골도 이 시기부터 공소로 사용되기 시 작하였다. 1930년 11월에는 계산동(桂山洞) 본당 보좌 장순도(張順道, 바르바라) 신부가 판공 성사를 위하여 죽전 공소를 방문하였다. 죽전 공소는 1932년 2월 계산 동 본당에서 비산동(飛山洞) 본당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40년에는 인접 지역인 감삼동에 감삼 공소가 설립되 었으며, 죽전 공소는 1945년 현 본당 위치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이후 공소는 1968년 상리동(上里洞) 본당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본당의 설립과 발전〕 대구대교구는 1982년 11월 9 일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죽전동 본당을 신설 할 것을 확정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 2월 4일 죽전 공소와 감삼 공소가 통합되어 죽전동 본당이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윤임규 신부가 부임하였다. 윤 신부는 임시로 마련한 천막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1983년 5 월부터 죽전 공소 자리에서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 다. 그 결과 지상2층 지하 1층 성당(448평)을 완공하고 1984년 9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수녀원의 신축 공사도 2월부터 시작하여 7월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5대 주임 최창덕 신부는 1994년 교육 관과 수녀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242평)을 신축하였다. 최 신부는 본당 구역 내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신자수가 증가하자 1996년 9월 성서 본당과 1998년 2월 이곡 본당을 분리하였다. 6대 주임 정인용 신부는 1997년부터 평신자로 구성된 예비 신자 교리 위원회를 조직하고 예비 신자 교리를 전담하게 하여 선교의 새로운 모습을 실천하며, 한층 도약된 평신도상을 보여 주었다. 7대 주임 원동수 신부는 2003년 7월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행사를 갖고 전 신자들이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로베르 ; 상리동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대구 본당 백년사》, 대건출판사,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