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앙, 마리위스 Julien, Marius (1882~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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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줄리앙.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마리오. 한국명 은 권유량(權裕良) 1882년 5월 2일 프랑스에서 출생한 그는 1905년 4월 26일 파리 외방전교회 대신학교를 졸 업함과 동시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임지인 한국으로 떠 나 6월 15일에 도착하였다. 같은 해 9월 22일 무세(G. Mousset, 文濟萬) 신부가 담당하고 있던 마산(馬山, 현 완 월동) 본당 보좌로 임명되었으며, 여기서 그는 무세 신부와 의논하여 1906년 1월에 소촌(召村, 현 문산) 본당을 신설하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직후 그는 삼곡리(三谷里)에 초가 세 채를 매입하고 임시 성당으로 삼았으며, 새 성당 부지를 물색한 끝에 1907년 소문리 의 현 성당 부지 2,400평과 조선 시대 때 찰방관서(察房 官署)였던 기와집 10여 채를 매입하고 성당 공사를 시작 하였다. 그리고 1908년 9월 29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09년 5월 1일 초량(현 범일) 본당 7대 주임으로 전임된 그는 1911년 4월 8일 대구 대목구가 설정되면서 부산 지역이 대구 대목구 관할이 되자, 대 목구장 드망즈(F.Demange, 安世華) 주교에게 본당 이전 문제를 건의하여 1915년 범일동으로의 이전을 허락받았 다. 이후 1915년 10월 22일에 대구의 성 유스티노 신학 교 교수로 발령되었고, 1920년에는 신학교 교장 직무 대리에 임명되었다. 1922년 10월 19일에는 휴가 차 본 국으로 귀국하였다가 이듬해 8월에 돌아와 신학교 교수 로 활동하였다. 1932년 9월에 계산동 주교좌 본당 4대 주임으로 임명되자, 4구역제를 10구역제로 확대 개정하고 구역 회장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1933년 3월 18일에 발표된 가톨릭 운동에 관한 교서에 따라, 1934년 11월 1일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본당 평의회를 창립시켰다. 1935년에는 대강당 낙성식과 교구 설정 25주년 은경축 행사를 성대히 거행하였다. 1939년 5월부터 주교 비서로 재임하다가 1944년 7월 6일에 선종하였고, 유해는 대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파리 외방전교회) ※ 참고문헌  《뮈텔 주교일기》/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대구대교구 사편찬위원회 편, 《대구 본당 백년사》, 1986.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