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진 본당 中江鎮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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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평안북도 자성군 중강진 읍 소재. 1930년 10월 창설되었으나, 1941년 폐쇄되어 공소가 되었다가 1949년 공소마저 폐쇄되었다. 관할 지 역은 자성군과 후창군 전 지역. 〔교 세〕 1937년 211명. 〔역대 신부〕 초대 스위니(L. Sweeney, 徐) 레오(1930~1930 말), 2대 클리어리(P.J. Cleary, 吉) 파트리치오(1931.2~1933), 3대 레이(Ray, 李) 토마스(1933~1933. 9), 4대 펠로퀸(Peloqin, 白) 레오(1933.9~1935.2), 5대 클리어리(1935.2~1938.2), 6대 카펠(Cappel, 慶) 요셉(1938. 2~1941.12). 신의주(新義州) 지역의 복음 전파는 1926년 초대 평양 지목구장 번(J.P.Byme, 方溢恩)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백레지나에 의해 시작되었다. 백레지나는 이듬해 중강 진으로 이주하여 두 병자에게 대세를 주었다. 또한 메리 놀 외방전교회 소속 페티프렌(Petipren, 邊聖行) 신부도 중강진 복음 전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남녀 전교 사를 채용하고 미개척지 전교 사업에 열중한 그는 백 레 지나의 집에 머물며 전교하였는데, 중강진읍 내에서 4명의 신자가 탄생하였다. 1929년 12월 16일에는 중강진 예비 신자 몇 명이 무순교구(撫順教區) 임강교회(臨江敎 會)에서 스위니(J. Sweeney, 徐)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1930년 2월 12일에는 당시 지목구 비서였던 부드 (W. Booth, 夫文化) 신부가 중강진에 와서 성사를 주고 공소를 순방할 때 3명이 세례를 받았다. 중강진 본당은 1930년 10월 28일 창설되고, 초대 주 임으로 스위니 신부가 부임하였다. 스위니 신부는 형 신 부의 도움으로 중강진 시내의 당구장 하나를 구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삼았고, 그 뒤에 다시 초가 한 채를 구입 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스위니 신부는 백 레지나 를 비롯한 신자들과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2개월 후 진남포 본당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때 지목구장 모리스(J.E. Morris, 睦怡世) 몬시놀이 중강진 본당에 와서 14명에게 세례성사와 최초의 견진성사를 주었다. 그리고 2대 주임으로 클리어리 신부가 1931년 2월 26일 부 임하였다. 클리어리 신부는 전교와 교세 확장에 주력하 여 관할하고 있던 강계(江界) 공소를 1933년 본당으로 승격시켰으며, 같은 해 누룩골, 서수덕 등의 공소를 개설 하였다. 4대 주임 펠로퀸 신부는 1933년 9월에 부임하여 후창 (厚昌)에 빈민 아동을 위한 학교를 개설하는 한편, 1934 년에는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펠로퀸 신부가 1935년 2월 휴가차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5대 주임 으로 클리어리 신부가 재부임하여 1935년 11월 27일 건축 중에 있던 신축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 였다. 클리어리 신부는 펠로퀸 신부가 시작한 지방 공소 사업도 계속 추진하여 1936년 2월 16일 자성(慈城) 공소 강당을 건립하고, 공소에 전교사를 파견하였으며, 1936년 6월 16일에는 구(舊) 성당을 수리 개조하여 교 리 강습소를 개설하는 등신자 재교육을 위해서도 노력 하였다. 이후 6대 주임으로 1938년 2월 부임한 카펠 신부는 특이한 선교 방법으로 사목 활동을 벌였으나,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인해 카펠 신부가 평양 지목 구내의 메리놀 외방전교회 성직자들과 함께 일본 당국 에 의해 체포되자 중강진 본당은 폐쇄되어 의주(義州)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43년 4월에는 의주 본당에 서 강계(江界) 본당으로 이관되었으나, 이후 공소마저도 1949년 북한 정권에 의해 강계 본당과 함께 폐쇄되어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참고문헌  《경향잡지》 839호(1936. 10) ; 4권 5호(1937. 7)/ 天主 敎 史編纂委員會, 《天主教 平壤教區史》, 1981.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