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 본당 中央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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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진해시 중앙동 13 소재. 1946년 4월 10일 마산(현 완월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 되었다. 설립 당시 명칭은 진해(鎭海) 본당이었으나, 1965년 12월 경화동(慶和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현 명 칭으로 바꾸었다.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진해시 근화동, 대영동, 대죽동, 무송동, 대흥동, 광화동, 부흥 동, 수송동, 속천동, 송학동, 안곡동, 인의동, 익선동, 인 사동, 제황산동, 승인동, 중평동, 중앙동, 충의동, 창선 동, 평안동, 통신동, 충무동, 회현동 전역. 〔교 세〕 1946 년 190명, 1951년 950명, 1956년 1,719명, 1960년 3,509명, 1975년 5,007명, 1979년 2,726명, 1985년 3,426명, 1990년 3,904명, 2000년 4,143명. 〔역대 신 부] 초대 김경우(金慶佑) 알렉시오(1946. 4~1950.4), 2대 장병보(蔣柄輔) 베드로(1950. 4~1953. 8), 3대 신상조(申 相祚 스테파노(1953. 8~1955. 8), 임시 김동한(金東漢) 가롤로(1955. 8~1956.5), 4대 장병화(張炳華) 요셉(1956. 5~1957.4), 임시 김창석(金昌錫) 타대오(1957 4~7), 5대 김충무(金忠務) 글레멘스(1957. 7~1961. 1), 6대 이영식 (李永植) 히지노(1961. 1~1962. 7), 7대 정삼규(鄭三圭) 요한(1962. 7~1969. 4), 8대 박해준(朴海俊) 치릴로(1969. 4~1971. 11), 9대 정순구(鄭淳九) 요한(1971. 11~1976. 1), 10대 이윤호(李潤浩) 필립보(1976. 1~1977. 12), 11 대 김차규(金且奎) 필립보(1977. 12~1981.2), 12대 이종 창(李鍾昌) 바르돌로메오(1981.2~1985.2), 13대 김용백 (金容白) 요한(1985. 2~1988. 10), 14대 임상엽(林常葉) 마르코(1988. 10~1990. 7), 15대 정중규(鄭中奎) 클라로 (1990. 7~1994. 8), 16대 제찬석(諸璨鈺) 요한(1994.8~1998. 1), 17대 황봉철(黃奉鐵) 베드로(1998. 1~2002.2) , 18대 조재영(趙在英) 안드레아(2002.2~현재). 〔신앙 전래와 공소 시절〕 1929년에 마산 본당 4대 주 임이던 베르몽(J. Bermond, 睦世榮) 신부는 진해 지역의 전교를 위해 충청도 출신의 이 마리아를 전교 회장으로 파견하였다. 이 마리아는 그곳 신자인 김백수(金伯守 , 나보네오)의 집에 거처하면서 예비자들을 가르치는 등 전교에 진력하여 이듬해에 진해 충무동에 진해 공소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1932년 태풍으로 인해 초가집 공소 가 파괴됨에 따라 신자들은 석동의 신자 배정원 집을 임 시 공소로 사용하면서 공소 재건에 노력하였으나, 일제 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 1934년 신자 들은 자신들이 모금한 돈으로 경화동의 개인 주택 두 채 를 매입하여 공소 건물로 꾸밈으로써 신앙 생활을 이어 나갔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으로 외국인 신부에 대한 체포령을 내림에 따라 성사를 집전할 사제가 없게 된 경화 공소 신자들은 판공 때 마산 본당까지 가서 성사 를 보게 되었고 교세는 점점 약화되었다. 해방 후 미군이 진해에 주둔하자 이들을 위해 군종 신부인 드레그(Dreg) 신부는 경화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12월 25일 미군정청 강당(현 진해여고)에서 드레 그 신부의 집전으로 한국인 신자 150명, 미군 신자 500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 미 합동으로 자정 미사가 봉 헌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성당 건립을 결의하였다. 이리 하여 신자들은 드레그 신부와 협의하여 성당 자리를 물 색한 후, 안국사(安國寺)라는 일본인 절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여 매입하였다. 〔본당 설립과 발전〕 1946년 4월 경화 공소는 본당으 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경우 신부가 부임하 였다. 김경우 신부는 1946년 7월 본당 주보를 예수 성 심으로 정하고 가톨릭 청년회를 발족하였으며, 12월에 성모회를 조직하였다. 1948년 2월에는 본당 부지 확보 에 노력하여 안국사 주변 6개 건물을 구입한 후 사제관 과 수녀원을 신설하였고, 1948년 9월에는 원아 50명으 로 비인가 유치원을 운영하다가 1949년 12월 10일에 성심유치원으로 정식 개원하였다. 2대 주임 장병보 신부는 1950년 5월 본당에 성모병원 을 개설하여 자선 의료 사업을 시작하였고, 1950년 한 국 전쟁 발발 후 여러 어려움 속에서 12월 24일에 제1 회 성가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52년 7월 성모 상 건립에 착공한 후, 10월에 공사를 완료하여 성모상 축성 및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3대 주임 신상조 신부는 1954년 3월에 남자 신자들의 단체인 신우회를 조직하였 으며, 5월 22일에는 본당에서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 弘, 요한) 주교의 집전으로 대규모의 성체 거동식을 거 행하였다. 4대 주임 장병화 신부 재임기인 1956년 7월 10일에 본당 최초로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었 고, 곧바로 결약의 궤 쁘레시디움과 다윗의 적루 쁘레시 디움이 조직되었다. 장병화 신부는 1956년 8월 15일 성 모 승천 대축일 신자 대회에서 성당을 신축할 것을 결의 한 후 성당 건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5대 주임 김충무 신부는 1957년 8월 성당 건축 공사 를 완료하여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 참석하에 봉 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성당 건립을 기점으로 기존 의 본당 운영 위원회를 교무 위원회로 개칭하였다. 1958년 5월에는 극빈자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를 설치하 였고, 10월에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점심 급식을 시작하 였다. 김 신부는 이러한 자선 사업 외에도 레지오 확장에 주력하여 1957년 본당에 능하신 정녀 쁘레시디움, 1958년 9월 샛별 쁘레시디움을 조직하였다. 1958년 12월에는 부산교구 순교자 현양 대회에 진해 중앙 레지 오 단원들이 대거 참석하였으며, 1959년 2월 파티마의 성모 소년 꾸리아가 창단되었다. 6대 주임 이영식 신부 는 1961년 2월에 교회 행정 기구 강화와 개편을 위해 교무 위원회를 발전적으로 쇄신시켰으며, 3월에는 사제 관과 수녀원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7대 주임 정삼규 신부는 1962년 7월 사제관과 수녀원의 신축 공사를 완 료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고, 레지오 발전에 진력하여 11월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1965년 1월 매괴의 모 후 쁘레시디움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성당 신축과 단체 활성화에 따라 본당의 교세가 점점 증가하자 신자들의 효과적인 복음 사목을 위해 1965년 12월 경화동 본당을 분리 · 설립시켰다. 8대 주임 박해준 신부는 가톨릭 중앙 청년회를 재조직하였으며, 1970년에는 본당 사무실의 신축과 함께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9대 주임 정순구 신부는 1972년 7월에 성당 의자를 교체하였고, 8월에는 청년회 주관으로 천주교 공동 묘지 에 제대 및 십자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73년 10월 본당 마당 및 주위 도로 포장 공사를 전개하였다. 10대 주임 이윤호 신부는 1976년 5월 유치원 1학급 증설(4학 급)을 시작으로 12월에는 유치원 놀이터 보수 작업을, 1977년 2월에는 유치원 책상 및 내부 도색 작업을 전개 하였다. 아울러 본당 성모당 조경 사업과 함께 수녀들의 월동 대책으로 수녀원에 보일러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신부는 본당 이외의 진해 지역 타본당 및 군 기관과의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1977년 1월 1일 본당 주관의 진 해 지구 신자 신년 교례회를 실시하였고, 1월 16일에는 진해 지구 해군 장교단 환영 미사를 거행하였다. 11대 주임 김차규 신부는 1979년 1월 5일에 여좌동(余佐洞)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고, 1980년 6월 1일 성모회를 설립하였다. 12대 주임 이종창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벨라넷다상 설치와 사무실 2층 증축 공사 그리고 선교 200주년 기 념관 및 수녀원 2층 증축 공사 등 성당 내 · 외부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본당에는 1982년 7월에 평화의 모 후 쁘레시디움이, 1984년 1월에는 구세주의 모친 쁘레 시디움이 창단되었다. 13대 주임 김용백 신부는 마산교 구 레지오 도입 3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본당에 5개의 쁘레시디움이 신설 확장되고 진해 지역의 꾸리아 가 꼬미시움으로 승격됨으로써 진해 레지오의 획기적인 발전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내부 공사가 잦았 던 사제관의 신축 공사를 1988년 4월 25일에 착공한 후, 8월 23일에 완료하여 장병화(張炳華, 요셉) 주교의 참석하에 사제관 준공 및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4대 주임 임상엽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성당 지붕 공사와 성당 마룻바닥 교환 등 각종 보수 공사를 실시하 여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1989년 5월에는 본당 주보인 예수 성심상을 설 치하는 등 본당 신자들의 전교 활성화에 주력하여 의욕 적인 사목 활동을 펼쳤다. 15대 주임 정중규 신부는 부 임 후 첫 사업으로 지하수를 개발하여 본당 신자는 물론 진해 시민들에게 좋은 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본당을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기 위해 글라스 데코 공사, 제대 올림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본당에 성서 학교를 개설하여 평신도들이 성서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3층 강당 공사에 이어 성모상 교 체, 성모당 조경 사업, 야외 14처 설립, 제대 장식과 감 실 교체, 제대 십자가상 교체 등 본당 환경을 새롭게 단 장하였다. 16대 주임 제찬석 신부는 1995년 2월 본당 설립 50주년 및 은경축 행사 준비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1996년 5월 16일에 성대히 거행하였다. 17대 주임 황봉철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본당 단체 활성화에 주력하여 그리스도의 어머니 꾸리아(1998. 4) 종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1999. 1), 하늘의 문 쁘레시디 음(2000. 6), 요아킴회(2000. 10), 믿음의 샘 쁘레시디움 (2001.9) 등을 창단시켰다. 그리고 18대 주임 조재영 신 부 재임기인 2003년 10월 12일에는 본당 성모당에서 마산교구 레지오 마리애 기념비 제막 및 기념 행사와 묵 주 기도의 밤 행사가 안명옥(安明玉, 프란치스코 사베리 오) 주교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 마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마산교구 편,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1976/ 《중앙동 본당 50년사》, 천주교 중앙동 교회 , 1996.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