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본당 中央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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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627-75 소재. 1953년 9월 7일에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명칭은 '안양' 이었으나 이후 안양4동, 장내동(墻內 洞)의 명칭을 거쳐 1995년 9월에 현 명칭으로 바꾸었 다. 주보는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안 양3 · 4 · 5 · 9동, 박달동 전 지역과 안양1 · 2동 일부 지 역. 〔교 세〕 1964년 2,447명, 1972년 4,572명, 1980 년 4,873명, 1988년 11,099명, 1996년 12,148명, 2002년 9,943명. 〔역대 신부〕 초대 구천우(具天祐) 요 셉(1954. 9~1962. 12), 2대 정원진(鄭元鎮) 루가(1962.12~1966. 1), 3대 손태섭(孫泰燮) 마르코(1966. 1~1968.5), 4대 한종훈(韓鍾勳) 스테파노(1968. 5~12), , 5대 장금 구(莊金龜) 크리소스토모(1968. 12~1970. 6), 6대 양병묵 (楊柄默) 루가(1970. 6~1975. 10) 7대 서강하(徐康夏) 마 태오(1975. 10~1978. 3), 8대 최재용(崔在鎔) 바르톨로메오(1978.3~1980.4), 9대 박건순(朴建淳) 베네딕도(1980. 4~1984. 2), 10대 정지웅(鄭址雄) 요셉(1984. 2~1987. 2) , 11대 김화태(金華泰) 제르바시오(1987. 2~1990. 11), 12 대 고건선(高建善) 바오로(1990. 11~2002. 1), 13대 정영 식(鄭英植) 바오로(2002. 1~현재). 1953년 12월 하우현(下牛峴)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구천우 신부는 한적한 산간 마을에 위치한 하우현 본당 보다 근처에 생산 공장들이 많아 발전성이 예상되는 안 양 읍내에 진출하여 본당을 창설하고자 노력하였다. 하 지만 성당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큰 애로 사항이었다. 1937년 9월 5일에 서울 대목구에서 장래 성당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던 6,657평의 토지(현 성당 부지)가 1949년에 시행된 토지 개혁법에 의해 27명의 토지 연고 자들에게 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구천우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지주들을 설득한 결과 거의 모 두가 무상으로 토지를 교회에 반납해 주었다. 이에 1954년 3월 7일에 목조 함석 지붕 성당을 건축하여 서 울 대목구장인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당 신축 후 구천우 신부는 1954년 9월 7일에 안양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 고, 하우현 본당은 안양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구 신부는 1956년에 안양 지역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 · 개원 하여 이 지역 유아 교육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한편 목조 로 지어진 성당이 노후되자 1957년 7월 30일에 성당 신 축 공사를 시작한 후, N.C.W.C(가톨릭 구제회)에서 지급 한 구호 물자와 교구청의 보조 그리고 신자들의 건축 기 금 봉헌과 노력 봉사로 2년 만에 성당을 완공하여 1959 년 8월 20일에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 하였다. 2대 주임 정원진 신부는 1963년 11월에 사제관을 준 공하였으며, 특히 안양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사목 활 동에 진력하였다. 3대 주임 손태섭 신부 재임기인 1967 년 8월에는 본당에 인보 성체 수도회 소속 수녀들이 파 견되어 전교와 유치원 교육을 담당하였다. 5대 주임 장 금구 신부는 1969년 9월에 성당 바로 맞은편에 근로자 회관을 개관하여 가톨릭 액션 및 문화 활동을 활발히 전 개하게 하였다. 6대 주임 양병묵 신부는 1971년 11월 금정리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고, 1974년에는 사제관(현 수녀원)을 신축한 후 이전의 사제관은 유치원 원사로 사 용하였다. 한편 양 신부는 날로 넓어지는 본당 구역을 분 할하기 위한 준비로 명학(鳴鶴), 비산동(飛山洞), 호계 동(虎溪洞) 3개 성당 신축 후보지를 매입하였다. 7대 주 임 서강하 신부는 1975년 12월에 호계동 본당을 분리· 설정시켰으며, 1977년 4월에는 본당 주보를 창간하였 다. 8대 주임 최재용 신부는 1978년 6월에 하우현 공소 를 본당으로 부활시켰고, 10월에는 안양6동(현 명학) 본 당과 비산동 본당을 동시에 분리 · 설정시켰다. 9대 주임 박건순 신부는 1981년 5월에 수암(秀巖) 공소를 본당으 로 승격시켰고, 1983년 8월에는 석수동(石水洞) 본당을 분리 · 설정시켰다. 한편 이와 같이 안양 시내에 본당이 증설됨에 따라 안양 본당이란 명칭이 곤란해지자 잠시 안양4동 본당이라고 했다가, 1980년 8월 15일부터 장 내동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장내동 본당 공동체는 내적 · 외적으로 발전하였는데, 박건순 신 부는 1981년 이웃 전교의 해에 1,000여 명 이상의 영세 자를 배출하였고, 교육관을 준공하였으며, 주일 헌금 배 가 운동을 훌륭하게 전개하였다. 또한 한마음 봉사회, 바 오로회, 안나회 등 많은 신심 단체를 설립하여 사도직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0대 주임 정지웅 신부는 1984년 103위 복자의 시성 을 계기로 수리산 성역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기획하였으 나, 많은 어려움 끝에 제대와 성로 14처상을 건립하였 다. 11대 주임 김화태 신부는 1987년 400만여 원의 공 사비를 들여 성모 동산을 아름답게 조성하였으며, 1989 년 3월 7일에는 수원교구 최초의 노인 대학인 성체노인 학교를 개교하였다. 12대 주임 고건선 신부는 부임 후 우선 새 성당 신축 사업을 확정하고 1991년 4월 성당 신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1993년 2월 7일에 성당 신축 건립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같은 해 9월 25일 에는 가두 선교단을 발족하여 예비자를 직접 찾아다니는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시장과 역 상가 등으로 밀집된 본당 관할 구역의 정화를 위해 각 구역 신자들로 방범대원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민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 1995년 9월경에는 본당 명칭을 장내동 에서 현 명칭인 '중앙' 으로 변경하였다. 13대 주임 정영식 신부는 부임 후 성당 신축 공사를 원활히 진행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2002년 10월 22일에는 굳건한 기초 공동체를 다져 나가고자 본당 구역 반장들의 모임인 반석대를 창립하였다. 현재 중앙 본당은 문화관광부 종교 시설 문화 공간화 시범 공간으로 선정되어 본당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 수원교구) 大學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 교구, 1993/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白秉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