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주교좌 본당 中央主教座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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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주교구 주교좌 본당. 전북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 동 639-40소재. 1947년 11월 12일 전주(현 전동) 본당 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창설 당시 본당 명칭은 '비석거 리' 였으나, 1948년에 '대동' 으로, 1957년에 현 명칭으 로 바꾸었다. 주보는 예수 성심. 〔교 세〕 1964년 4,928 명, 1972년 2,821명, 1980년 3,905명, 1988년 6,407 명, 1996년 4,664명, 2002년 3,888명. 〔역대 신부〕 초 대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1947. 11~1951.5) 2대 이대권(李大權) 바오로(1951. 5~1952. 1), 3대 김종택(金 鍾擇) 요셉(1952. 1~1954.5), 4대 박성운(朴聖云) 베네딕 도(1954. 5~1958. 1) 5대 이약슬(李若瑟) 요셉(1958.1~1961.3), 6대 김재덕(1961. 3~1966. 7), 임시 김이환(金 二煥) 스테파노(1962.9~12), 7대 박영규(朴永圭) 바르나 바( 1966. 7~1969. 12), 8대 안복진(安福鎮) 요셉(1969.12~1974. 6), 9대 이대권(1974. 6~1976. 12), 10대 서용복 (徐龍福) 토마스(1976. 12~1980. 1), 11대 문정현(文正鉉) 바르톨로메오(1980. 1~1985. 1), 12대 성민호(成珉浩) 야 고보(1985. 1~1989. 1), 13대 황인규(黃寅奎) 마태오 (1989. 1~1993. 2), 14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1993.2~1997. 8), 15대 조정오(曹正吾) 요셉(1997. 8~2001.8), 16대 경규봉(慶奎奉) 가브리엘(2001.8~현재). 〔공소 설립과 본당 설정〕 일제 강점기 전주 지역의 유 일한 본당인 전주 본당은 교세 증가와 넓은 관할 구역으 로 인해 사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33년 무렵 태 평동과 다가동 일대에는 많은 신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특히 비석거리(현 태평동) 일대에서는 약 20세대의 신자 1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이에 당시 전주 본당 4대 주임 이자 전라도 감목 대리인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 부는 이 지역 신자들의 공소 설립 요구를 받아들여 1933년 12월 전주 본당에 있던 한옥을 철거한 자재로 비석거리 공소를 설립하였다. 해방 이후 전주 본당의 교 세가 크게 확장되었으나, 전주 시내의 본당은 유일하게 전주 본당뿐이어서 여전히 사목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 다. 이에 지목구에서는 1947년 11월에 현재 전주 초등 학교 앞 천변 쪽 방향에 비석거리 본당을 신설하였고, 초 대 주임으로 김재덕 신부를 임명하였다. 하지만 교세가 늘어나 본당이 협소해지자 이듬해 9월 대동 소재 2층의 가옥을 임대 계약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본당 명 칭도 '대동' 으로 바꾸었다. 김재덕 신부는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본당에 머물러 있던 이대권 부제와 함께 내무 서원에 의해 체포되어 전주 형무소에 감금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3대 주임 김종택 신부 재임기인 1952년 3월에는 임대 하여 사용하던 성당 건물을 본당 신자인 김정기가 매입 하여 본당에 기증하였다. 이후 김종택 신부는 성당 구내 에 성모상을 설치하고 성모유치원을 설립하였다. 4대 주 임 박성운 신부는 부임 후 전동 본당 관할인 소양면 회문 리 · 다리목 · 왕정래 · 신원리 · 성지동 공소를 대동 본당 관할로 이관받았다. 한편 점차 늘어나는 교세로 인해 박 신부는 1954년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하여 1955년 7 월에 성전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1956년 8월에 공 사를 완료하여 전주 지목구장(제3대 전주교구장) 김현배 (金賢培, 바르톨로메오) 신부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 하였다. 〔주교좌 본당 설정과 발전〕 1957년 3월 7일에 전주 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된 후 5월 21일에는 본당에서 김현배 주교 성성식 및 은경축이 거행됨과 동시에 본당 명칭을 '중앙' 으로 바꾸었다. 같은 해 6월 11일에는 대 목구가 전주 지역 주교좌 본당을 전동 본당에서 중앙 본 당으로 변경함에 따라, 6월 28일에 주교좌 본당으로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이처럼 본당이 전주 대목구 주교 좌 본당이 되면서 본당 공동체는 주교좌 본당에 맞게 조 직화하고, 그에 걸맞는 위상을 정립하기 위하여 노력하 였다. 1958년 이약슬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어 본당에는 여러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으며, 1959년에는 교구 내 20개 본당의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교황 사절 람베르티니 (E.R. Lambertini) 주교의 집전으로 성체 대회를 성대히 개 최하였다. 그러나 주교좌 본당의 주임으로서 많은 노력을 하였던 이약슬 신부가 1961년 3월 6일 아침 미사 도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선종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한편 1961년 4월 13일에는 전주 대목구장(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렬(韓珍烈, 베드로) 주교의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6대 주임 김재덕 신부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 및 쁘레 시디움의 증설과 각종 단체들의 조직에 노력하였다. 1962년 4월에 수녀원을 신축하였고, 1963년 1월부터 본당 자체적으로 주간 행사표를 발행하였다. 같은 해 5 월에는 주간 행사표를 통해 본당 공동체의 일체감을 높 이던 본당의 7개 쁘레시디움이 삼례(參禮) 본당의 3개 쁘레시디움과 합하여 오월의 마돈나 꾸리아가 창단되었 다. 1963년 12월 사제관 · 강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하여 1964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한 후, 이듬해 10월에 공사를 완료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64년 6월 15일 덕진(德津)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 금암동, 덕진동, 효 성동, 전미동, 전당리 공소, 팔복동, 조촌면, 송천동 일 대의 신자 937명을 새 본당에 이관시켰다. 그리고 이듬 해 12월 16일에는 복자(福者)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 다가동, 태평동 2가, 중앙동, 고사동, 진북동, 화산동 일 부 지역을 새 본당에 이관시켰다. 7대 주임 박영규 신부는 1967년 2월 종전의 국산 종 이 파손되자 헌종 위원회를 조직하여 신자들의 헌금으로 프랑스제 종을 구입하여 설치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성모상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8월 15일에 완공하였다. 1968년 10월 1일 노송동(老松洞) 본당을 분리 · 설정하 여 중노송동, 남노송동, 인후동, 우아동과 완주군 소양 면, 옹진면 공소 일부를 새 본당에 이관시켰다. 그리고 박 신부는 1969년 4월 본당에 성체 수녀원 분원을 설치 하였으며, 본당 대지 북편의 유휴지를 활용하여 교회 사 업을 위한 자금 조달 및 자선 사업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 상가를 건립하였다. 8대 주임 안복진 신부는 1970 년 9월에 성당 내부 수리 공사를 실시하여 마룻바닥을 인조석으로 교체하고 그 나무로 벽에 방음 시설을 하였 다. 이듬해 9월에는 그동안 강당으로 사용해 오던 교실 을 보수하여 도서관(70평)과 강의실(150평)을 개관하였 다. 한편 1973년 3월 19일에는 제5대 전주교구장 김재 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9대 주임 이대권 신부는 1975년 3월 성모상을 성당 출입 시 잘 보이는 성당 앞 서쪽으로 이전하였고, 이듬해 12월에는 진북동(현 숲정이)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 서 신동, 진복1 · 2동, 태평1 · 2동, 금암동 일부의 212세대 신자 640명을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10대 주임 서용복 신부는 1977년에 상지회를 발족시켰고, 이듬해 3월에는 경로 사업으로 양로당을 설치하였는데, 이후 본당 단체 들의 주관으로 경로 잔치를 거의 해마다 개최하였다. 11 대 주임 문정현 신부는 본당의 쁘레시디움 창설과 활성 화에 노력하여 1982년 3월 본당에 하늘의 문 꾸리아가 창설되었고, 1984년에는 울뜨레야와 빈천시오회를 발족 시켰다. 한편 1981년 9월 29일 성당 건립 25주년 기념 성당(현 금암동 본당) 신축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1982 년 6월 18일 기공식을 거행한 후, 12대 주임 성민호 신 부 재임기인 1985년 1월에 완공되어 312세대 983명의 신자를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성민호 신부는 1985년 5 월 5일에 본당 구역을 33개 반에서 16개 반으로 축소 조정한 후 구역장을 임명하였고, 같은 해 12월 8일에는 오월의 마돈나 꼬미시움 발대식을 열었다. 또한 1986년 1월 5일 사제관 지하실을 소성당으로 개조하여 활용하 였으며, 11월 24일에는 성당 건립 30주년 기념 미사와 함께 사제관 · 수녀원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1987 년 5월에는 정문을 확장함에 따라 사무실을 상가 쪽으로 이전하였으며, 10월 4일에는 사제관 · 수녀원을 완공하 였다. 13대 주임 황인규 신부는 1989년 4월 본당 구역 16 개 반을 19개 구역 48개 반으로 조정하였고, 5월에 교 우회와 모니카회를 창립하였으며, 6월에는 현 레지오 회 관 개 · 보수 공사를 마쳤다. 또한 1990년 4월에 레지오 회관 보수, 성당 의자 교체, 창틀 도색 및 조경 공사를 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대성당 에어콘 시설과 성당 내 이중창 설치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1993년 1월 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중앙 교회 사회 복지회를 창립하 여 지역 사회의 불우한 소년 소녀 가장과 무의탁 노인들 을 지속적으로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14 대 주임 김환철 신부는 1996년 6월에 성모 동산을 조성 하였고, 7월에는 정문 옆 관리실을 신축하였다. 한편 본당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시내 변두리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건설되어 시내 중심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이주함에 따 라 교세가 감소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16대 주임 경 규봉 신부는 2002년 11월 18일 30~40대 남성 신자들을 주축으로 양업회를 조직하여 본당 청년회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포장 마차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 중앙 주교좌 본당은 현 위치에 건립된 이래 주교좌 본당으로 교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사회 속의 교회로 굳게 자리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전주교구사》 I ·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白秉根〕 ② 부산교구의 공동 주교좌 본당 중 하나. 부산시 중구 대청동 1가 48 소재. 1948년 8월 1일에 부산진(현 범일)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창설 당시의 본당 명칭은 '대청동' 이었으나, 1957년 5월에 현 명칭으로 바꾸었 다. 주보는 성 십자가. 관할 구역은 광복동, 남포동, 대 청동, 동광동, 부평동, 신창동, 중앙동, 창선동 전 지역 과 보수동 1가 일부 지역. 〔교 세〕 1948년 523명, 1953 년 6,319명, 1957년 4,630명, 1963년 7,838명, 1967 년 8,462명, 1973년 9,916명, 1978년 9,808명, 1984 년 10,180명, 1990년 11,864명, 1996년 12,690명, 2001년 13,215명. 〔역대 신부〕 초대 이명우(李明雨) 야 고보(1948. 8~1950. 3), 2대 장병용(張丙龍) 요한(1950. 3~1957.3), 3대 장병화(張炳華) 요셉(1957.3~1968. 10), 4 대 제찬규(諸燦) 시메온(1968. 10~1972. 1), 5대 이철우 (李喆雨) 바오로(1972. 1~3), 6대 이철희(李哲熙) 바오로 (1972. 3~11), 7대 김유재(金有宰) 그레고리오(1972.11~1976. 11), 8대 백응복(白應福) 스테파노(1976.11~1978. 1), 9대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1978. 1~1979. 2), 10대 이경우(李慶雨) 가브리엘(1979. 2~1985. 10), 11 대 이병만(李炳萬) 요셉(1985. 10~1990. 2), 12대 김계춘 (金啓春) 도미니코(1990. 2~1996. 2), 13대 윤경철(尹景 哲) 바오로(1996. 2~2000. 1), 14대 권지호(權支浩) 프란 치스코(2000. 1~현재). 해방 전 부산 지역의 본당은 부산진 본당과 청학동 본 당 두 개가 있었고, 공소 또한 법원 뒤 도청 남쪽의 일본 인 공소와 하단동 439번지 소재의 하단 공소 두 곳이 있 었다. 해방과 함께 박중희(미카엘) 가족을 주축으로 한 10여 명의 신자들이 일본인 공소에서 거행된 주일 미사 에 참석하였는데, 매주 부산진 본당의 정재석(鄭在石, 요셉) 주임 신부와 안달원(安達遠, 베드로) 보좌 신부가 교대로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공소에 중구, 서구, 동구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모여듦에 따라 두 신부는 청학동과 범일동의 중간 지역인 중구 관내에 성 당 건립이 절실하다고 판단하여 성당 부지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1월 미군정측과의 교섭을 통해 지 은사(智恩寺) 법당을 인수하여 법당 내부를 보수하기 시 작한후, 6월 20일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 다. 같은 해 8월 1일에 대청동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이명우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명우 신부 는 부임 후 1년 동안 혼자서 사목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사목 협조자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이에 해방 후 공산군의 횡포로 남하하여 청주와 안동 등지에서 활 동하고 있었던 연길 수녀회에 파견 요청을 한 후, 1949 년 초여름 무렵에 5명의 수녀가 도착하여 본당의 전교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2대 주임 장병용 신부는 1951년 6월에 수녀원을 개설 하였고, 1953년 3월 8일에는 대한 가톨릭 학생회 부산 중앙교회 학생회를 창립하였다. 한편 성당으로 쓰던 지 은사 대웅전 건물의 이음새에 이상이 생겨 비가 샐 뿐만 아니라 보수가 잦아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성당을 신축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이에 1954년 4월부터 준비 와 설계에 들어갔고, 장차 부산교구가 설립되면 이곳을 주교좌 성당으로 설정한다는 취지의 신부 회의를 거쳐 7 월에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55년 11월에 제3 차 경남교구 기성회 총회에서 성당 신축 기금을 경상남 도 전체 본당이 참석해야 한다고 결정한 후, 모금을 위해 각 본당 순회 유세 위원을 선임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 한 과정을 거쳐 공사 시작 2년 만인 1956년 9월에 성당 을 준공하였다. 한편 1957년 1월 21일 교황의 인가로 부산 대목구가 설립됨에 따라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는 1957년 5월 30일에 성성 식을 거행한 후 본당을 주교좌 본당으로 지정하였고, 본 당명도 현 명칭인 '중앙' 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중앙 본 당은 서품 미사와 중요한 교구 차원의 전례 집전의 성전 이 되었다. 3대 주임 장병화 신부는 1960년 5월에 성가 신용 협 동 조합을 설립하였고, 1962년 2월에는 범일 본당이 관 리하던 용호동 공동 묘지를 인수하여 관리하기 시작하였 다. 이후 인근의 임야 6,789평을 추가로 매입하여 묘지 를 확장하고 묘지 중앙 지대에 성직자 묘소를 조성하였 다. 1963년 5월 몬시놀로 서임된 장병화 신부는 1964 년 5월에 교구청을 중앙 본당에서 대청동 가톨릭 센터로 이전시켰다. 4대 주임 제찬규 신부는 기존의 성당이 노 후화되어 여러 차례의 대수리와 보수 공사에도 불구하고 우천 시에는 비가 새고 시멘트가 갈라질 뿐만 아니라, 많 은 교구 전례와 행사를 감당하기에 성당 자체가 협소하 자 보다 큰 성당 신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 여 1970년 3월 성당 신축 준비 회의를 시작으로 1971 년 2월에 성당 신축 기성회를 구성하고 8월에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김유재 신부는 1972년 4월 골조 공사를 완 료하고 미완성 성당이지만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하였고, 1973년 5월에 대지 594평, 연건평 1,100평(지하 1층, 지 상 3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여 이갑수(李甲秀, 가브리 엘)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여 주교좌 성당으로 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성 당 지붕 공사를 하였고, 1974년 7월에는 용호동 공동 묘지 관리권을 교구에 이양하였다. 1975년 12월 사제관 옆에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조성하였고, 1976년 7월에 는 성당 정문 과 현관문을 수리하였으며, 11월에는 《중 앙 교회사》를 발간하였다. 8대 주임 백응복 신부는 1977년 6월에 본당 제대 개수 공사를 착공하였고, 9대 주임 이갑수 주교는 1978년 봄에 예비자 교리반 동기들 을 주축으로 한 수교회를 결성하여 부산 시민을 대상으 로 신앙 강연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10대 주임 이경우 신부는 지역 복음화의 활성을 위해 본당 내의 전교 단체 조직 확장과 지역 레지오 마리애 조 직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3개의 쁘레시디움이 본당에, 17개의 쁘레시디움이 지역에 창단되었다. 한편 1979년 11월에 지하 휴게실과 교리실의 방수 공사를 착공하였 고, 1981년 12월에는 성당 내 성모상 좌대 및 벽면 공 사 성당 남쪽에 있던 담장 철거 및 재공사 · 수녀원 창 고 철거 및 개축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1984년 11 월에는 성당 지붕 개축과 조명등 개선 및 외벽 도장 공사 를 실시하였고, 1985년 10월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공사 를 시작하였다. 11대 주임 이병만 신부는 1986년 6월 사제관 및 수녀원에 에어컨을 설치하였고, 1988년 7월 에는 성당 외부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0년 1월 초에는 서독 뮌스터 교구의 브로켄 본당으로부터 파이프 오르간을 기증받아 본당에 설치하였다. 12대 주임 김계춘 신부는 1990년 4월 제대 옆에 구리 로 만든 피에타상을 설치하였고, 1991년에는 본당 루르 드의 성모 쁘레시디움이 레지오 마리애 새벽 주회를 교 구에서 최초로 실시한 후, 타본당 쁘레시디움으로 확장 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1994년 9월 제45회 본당의 날 행사 개최와 함께 성전 스테인드 글라스 공사를 완료 하였으며, 1995년 9월에는 외짝 교우의 밤 행사를 개최 하였다. 13대 주임 윤경철 신부는 1997년 2월에 사제관 건물 증 · 개축 공사를 시작한 후, 1998년 4월 공사를 완료하여 사제관, 수녀원을 신축 건물에 입주시켰고 6월 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99년 2월에는 《중앙 성당 오십년사》를 출판하였고, 11월에는 교황 강복장 수여식 을 거행하였다. 14대 주임 권지호 신부는 2000년 9월에 종탑을 수리하였고, 2001년 6월 18일에는 본당이 상가 지역이 밀집된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을 위한 교리반을 운영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2년 3월에는 사무실 창고 증축 공사를 시작으로 성 전 출입문 공사, 유아실 개수 공사, 고백소 개수 공사, 성전 조명등 공사, 도시가스 공급 공사 등을 완료하였다. 중앙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된 본당은 초량 본당(1951. 5), 신선 본당(1955. 1), 서대신 본당(195.2), 초장 본당 (1959. 10), 송도 본당(1961.12), 동대신동 본당(1964. 10) , 영주 본당(1969.3) 등이다. 이처럼 부산교구의 모태(母 胎) 역할을 한 중앙 주교좌 본당은 현재 관할 구역이 상 업 지역이라는 특성상 주일학교 학생 수는 적지만, 2,000차 주회를 한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 8개가 넘을 정도로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 사연구소 편,《교구 삼십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1990/ 중앙성당 50 년사 편찬위원회, 《중앙 성당 오십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 성당, 1999.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