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례 본당 知禮本堂

글자 크기
10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김천시 지례면 교리 588 소재. 1960년에 설립된 지례 공소에서 1968년 11월 11일 본당으로 승격. 주보는 성 마르티노. 관할 구역은 김천시 지례면 · 구성면 · 증산면 · 대덕면 · 부항면. 관할공소는 4개. 〔교 세〕 1974년 400명, 1980년 516명,1985년 552명, 199 1년 575명, 1994년 620명, 2001년 602명. 〔역대 신부〕 초대 누스비켈(E. Nussbickel, 윤) 에릭(1968~1984. 1), 2대 권혁시(權赫時) 모세(1984. 1~5), 주임 직무 대리 정인용(鄭仁溶) 바르톨로메오 (1984. 5~7), 3대 원동수(元東秀) 바오로(1984. 7~1986. 5), 4대 김현종(金現鍾) 요한(1986. 5~1987.4), 5대 박석재(朴錫載) 가롤로(1987. 4~1990. 6), 6대 한재상(韓在相) 요한(1990. 6~1991.3), 7대 길젤라(S. Gzella, 길재광) 스타니슬라오(1991.3-199 10), 8대 최종현(崔鍾炫) 베드로(1993. 10~1994. 8), 9대 한명석(韓明石) 베드로 (1994. 8~1996. 2), 10대 최종현 베드로(1996. 2~1998. 8), 11대 손종현(孫宗鉉) 요한(1998. 8~2000. 11), 12대 김종기(金鍾基) 바오로(2000. 11~2003. 2), 13대 이상영(李相永) 그레고리오(2003 2~현재)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경기도, 충청도, 경남사천 등지의 신자들이 탄압을 피해 김천 지역 일원에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믿음의 싹을 틔우게 된다. 그 후 1960년에 증산면 황점 · 마구실 · 장자터 서무터 공소에서 지례면으로 이주한 신자들을 중심으로 지례 공소가 세워졌고, 김천(金泉, 현 황금동) 본당에서 파견된 이영희(요한) 전교 회장이 지례 공소에 상주하면서 전교 활동을 하였다. 1967년에는 신자수가 7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증가하여 협소한 공소 건물로는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당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인 오도하스(0do Haas) 아빠스는 왜관 낙산(洛山, 구 가실) 본당 임시 주임이었던 윤 에릭 신부에게 지례에 성당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윤 에릭 신부는 1967년에 지례 공소의 건물을 철거하고, 1968년 4월부터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교리실 등을 새롭게 건립하였다. 1968년 11월 11일 지례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11월 20일 황금동 본당으로부터 487명의 교적을 인수받아 본당 업무를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청년회를, 1973년에는 사도회 등을 조직하여 신자들의 신심을 강화하고 친교를 다져 나갔다. 1984년 2월에 지례 본당은 김천 지역의 지좌동(智佐洞) · 평화동(平和洞) · 황금동(黃金洞) 본당과 함께 사목권이 왜관 감목대리구에서 대구대교구로 이양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지례 본당의 모태였던 공소의 신자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6년 176명에서 1992년 138명으로 21% 이상 줄어들었고, 이후에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본당의 활동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에는 태풍 '루사' 로 인해 오랜 역사를 가진 황점 공소의 담벼 락이 무너지고, 지례면 소재지가 완전히 침수되어 교우 들이 사는 마을이 폐허로 변하는 등 큰 피해를 당하였으
나, 본당 신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복구 작업에 힘입어 피해를 극복하였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대구대교구 총람》, 천주교 대구 대교구, 1986/ 《빛》 173호, 천주교 대구대교구, 1997. 9/ 《옛 공소의 어제와 오늘 : 1815~1910》, 대구 가톨릭대학교 부설 영남교회사 연구소, 2000.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