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츠, 에른스트 Siebertz, Ems(1907~2000)

글자 크기
10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선교사. 수도명은 에른 스트. 세례명은 빌헬름. 한국명 지인수(池仁洙) .지베르츠는 1907년 4월 24일 독일의 콜른Köln) 교구 니더카셀(Nieder Kassel)에서 태어 났다. 21세 되던1928년 5월 9일 오틸리엔 연합회의 모원인상트 오틸리엔(St.Ottilien) 수도원에 입회하여, 그해 6월부터 수련을 시작하여 1929년 5월 13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1932년 5월 13일 종신 서약을 하였고, 1934년 3월7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12월 2일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지베르츠 신부는 1935년 1월 30일,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 출신인 파렌코프(W. Far-renkopf) 신부와 함께 덕원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이후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베르츠는 수도원 성가대의 일원으로 발탁되었고, 신학생들과 덕원 본당의 야학교 학생들에게 그레고리오 성가와 조선어 성가를 가르치며 도서관에서 봉사하였다. 1935년 9월 고산 본당에서 사목실습을 한 후, 그해 11월 담(F.Damm, 卓世榮) 신부가 주임으로 있던 원산 본당의 보좌 신부로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8년 8월 고원 본당 주임 신부로임명되었고, 1944년 12월 수도원 경내에 위치한 덕원본당의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1949년 5월 덕원 수도원이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폐쇄된 후, 평양 인민 교화소와 자강도 전천(前川)의 옥사독 수용소에서 생
활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후 4년 동안 수용소에갇혀 있다가, 1954년 독일로 송환되었다.
956년 11월 왜관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재파견된 지베르츠 신부는, 1957년 1월 성주 본당 보좌, 1957년 5월 가은 본당 초대 주임, 1961년 1월 화령 본당 주임, 1964년 12월 성주 본당 주임 등을 역임하면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1969년 1월부터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지도 신부, 1980년 4월에는 왜관 수도원 본원장,1983년 8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 지도 신부로 여러 수도 공동체들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고령으로 일선 현장에서 은퇴한 후, 1995년 11월부터 경북 칠곡군에 소재한연화동 기도의 집에서 거주하였다. 2000년 1월 25일 93세의 나이로 선종하여 경북 칠곡군 석전면 중지리에 있는왜관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베네딕도회)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위원회, 1981/A. Kaspar · P. Berger hrsg., Hwan Gab 60 Jahre(還甲), Münster-chwarzach, 1973/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 《원산 수녀원사》,1988/ F. Renner hrsg., Der funfarmige Leuchter, Bd. Ⅱ, 1971. 〔宣智勳〕
((Reference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