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초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조각가. 라틴어식 이름은 지슬레베르투스(Giaebemus). 처음에 클뤼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1115년경에는유명한 공방의 도제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곳에서 클뤼니 수도원을 장식하는 일에 참여했으며, 도제를 마친후 베즐레(Vézelay)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 성 마딜렌(Ste. Madeleine) 성당의 팀파늄(tympanum, 아치나 페디먼트 안의 장식면)도 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125년 오툉(Autun)에 도착했을 때 그의 미술 양식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현재의 주교좌 성당인 성 나자로 성당 동쪽 부분의 장식을 1130년까지 하였고, 그 뒤 4~5년간 서쪽의 팀파늄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가 성 나자로 성당에만 국한하지 않고 도시 내의 다른 건물에도 조각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조가 남아있다. 일부에서는 지슬베르가 성 나자로 성당의 건축가였다고 추측하는데, , 이 가설은 성당의 여러 곳에 있는 조각들로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고 그가 오툉에 도착한 후성당의 후진(後陣, apse) 설계가 바뀌었다는 사실과도 부합된다. 지슬베르는 성 나자로 성당의 팀파늄뿐만 아니라 성가대석의 기둥 조각, 익랑(翼廊, transept)과 회중석(nave, 身廊)은 물론 현재는 파손된 북측 출입문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조각을 제작하였다. 중세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자신의 서명(署名, sign)을남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나, 지슬베르는 오툉의 성 나자로 성당 서측 팀파늄에 "이것은 지슬베르투스가 만들었다" (GISLEBERTUS HOC FECIT)라는 명문을 남김으 로써 기록에 남은 중세 유일의 조각가가 되었다. 이 명문은 사각의 띠 안에 당시에 사용되던 필사체로 이 팀파늄주제가 <최후의 심판>임을 나타내는 다른 명문과 함께새겨졌다. 일반적으로 이 명문은 조각가의 서명으로 간주되며, 또한 '만들다' 라는 의미의 동사 '파체레' (facere)는 봉헌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오통에서 그의 작업은 이명문이 있는 서측 출입문에서 최고조를 이루는데, 그 시기는 약 1120~1135년으로 본다. 특히 서측 출입문의<최후의 심판>은 로마네스크 조각에서 수작으로 손꼽힌다. 아몬드형의 후광에 둘러싸인 채로 앉아 있는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3단으로 나뉘어 가장 아래층은 죽은자들, 중간층은 그리스도의 좌우에 지옥과 천국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지옥을 묘사한 그리스도의 왼편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울에 달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가장 상단에는 주님 탄생 예고와방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 작품은 표현주의적인 조각술과 뛰어난 기교로 유명하며, 인물상의 일부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조각의 인물들은 가늘고 길며, 작고 갸름한 머리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악마의 형상들은 20세기의 초현실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 가톨릭미술) ※ 참고문헌 Jane Turner ed., The Dictionary of Art, New York,Grove's Dictionaries, 1996/ James Snyder, Medieval art : painting-sculpaure-architiecture, 4th-14th century, New York, H.N. Abrams,1989/ Rolf Toman ed., Romanesque : architecture, sculpture, painting,Köln : Könemann, 1997. 〔鄭恩賑〕
지슬베르 Gisle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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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지슬베르가 자신의 서명을 남긴 오통의 주교좌 성당 서쪽 팀파늄 (예수의 발 아랫부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