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자증》 真道自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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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샤바냑(Émericus de Ch-avagnac, 沙守信)이 저술한 교리서. 샤바냑은 1701년 중국으로 건너가 복음을 선포하다1717년에 사망하였는데, 이 책은 그가 죽은 후인 1718년에 같은 예수회 선교사인 에르비외(J.-P.Hervieu, 赫蒼壁儒良子拱, 1671~1746)에 의해 <정진도자증기>(訂進道自證記)가 첨가되면서 북경에서 4권 2책으로 초간되었다.그리고 1796년에는 북경교구장 구베아(A. de Gouvéa, 湯士選) 주교의 감준 아래 중간되었고, 그 후에 상해의 토산만(土山灣)에서 1858년, 1868년(4권 2책, 크기 15.3cm×26.4cm, 분량 106장), 1887년(4권 1책, 11.9cm×18.4m,분량 99장), 1917년, 1927년에 각각 중간되었다. 이 책은 주된 내용으로 주요 교리의 해설과 불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의 문점의 규명 등을 싣고 있다. 먼저 1권에서는 천주, 삼위 일체, 천지 신인 만물 조화설 등 성리(性理), 즉 천성(天性)을 다루고 있으며, 2권에서는 원죄, 구세 등 사도(事道)를, 3권에서는 증거로써 의심을 풀어주는 박의인거(駁疑引據)를, 그리고 4권에서는 교(敎)를 설명하고있다. 한편 이 책은 1784년 북경을 왕래하던 이승훈(李承薰,베드로)에 의해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조선에 도입된 이후 이벽(李檗, 세례자 요한),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정약용(丁若鏞, 요한) 등한국 교회 창설자들을 비롯한 많은 실학자들에게 읽혀졌다. 이들 가운데 《진도자증》을 비판한 대표적인 인물은안정복(安鼎福)과 홍정하(洪正河)로, 안정복은 자신의저서 《천학문답》(天學問答)에서 《진도자증》을 주로 윤리적인 면에서 비판하였고, 홍정하는 <진도자증증의>(眞道自證證疑)라는 글을 통해 《진도자증》을 조목조목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들은 당시 서학에 관심 있는 인사들이그만큼 이 책을 가까이 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4)의 《조선 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에 의하면, 1718년에 간행된 것을 한글로 번역한 네 권의 한글 필사본 《진도ᄌᆞ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필사 연대는 미상(未詳)이다. (→한역 서학서)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와 역사》182호( 1990. 7)/ 유은희, <번역 논저ㅡ진도자증>, 《교회와 역사》325~338호(2002. 6~2003. 7.)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