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국가
敎會 - 國家
〔라〕ecclesia et publicus · 〔영〕church and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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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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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대제의 대관식.
교회와 국가는 그 발생 기원과 성립 과정이 다르고 구 성과 목적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회 집단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 대상을 인간의 현세 생활로 보기 때문에 상호 관련을 맺게 된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 이른바 종교와 정치는 그 이질성과 독자성 때문에 상호 분리될 때가 있고, 또 한편으로 그 활동 대상이 동일하여 불가분한 관련을 맺어야 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양자 모두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단체 인 동시에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대신할 수 없는 고 유한 기능을 가진 별개의 단체여서 인간 역사에서 서로 호의적으로 각기의 독자성을 존중하며 협조한 경우도 있 었지만, 그 독자성 때문에 충돌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이 양자의 차이는 무엇이고 둘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무 엇인가? 먼저 독자성, 관련성에 이어 관계사를 살펴보 고, 그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독자성 또는 이질성〕 교회는 원죄 중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느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세우신 초자연적 신앙 단체이다. 이에 반하여, 국 가는 어떤 모양이든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든 자연적 공 익 단체이다. 교회는 인간의 초자연적 구원 즉, 현세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착하게 살아 사후(死後)에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데 반해 국가는 국민의 자연적 복리 즉 현세적 행복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교회의 궁극적 목적지는 내세(來世)이고, 국가의 궁극적 목적지는 현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교회는 하느 님을 믿고 그 구원을 바라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 고 일정한 영토를 가지며 그 국가의 통치권 밑에 복속하 는 독립적인 정치 단체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종, 국적, 신분을 문제삼지 않는 보편적인 개방 단체인 반면 국가 는 각기 독립된 주권 밑에 분립된 폐쇄적인 대립 단체이 다. 이와 같이 교회와 국가 간의 이질성 때문에 종교와 정 치는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교 분리(政敎分離) 원칙 이 나왔다. 그러나 이 원칙은 실제로 단 한 번도 엄격히 지켜지지 못한 원칙론이었다. 특히 중세에서 근세로 이 행하는 과정에서, 교회에서 나온 정교 분리론은 당시의 역사적 현실이었던 고위 성직자(高位聖職者)의 속권 개 입(俗權介入) 금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 견해는 근세 정치가들의 호응을 얻어 교회와 국가 간의 상호 불간섭 을 내용으로 하는 근세 정치의 정교 분리의 원칙으로 확 립되었다. 즉 국가의 위치가 강화되면서 교회의 정치 간 섭을 배격하고 또 교회도 국가의 교회에 대한 신앙 간섭 을 배제하자는 데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도 교회와 국가가 서로 협동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관련성〕 교회와 국가는 이론적인 구분론을 인정하면 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불가분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어 왔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깊이 살펴 해명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와 국가가 서로의 독자성과 이질성을 인정하 면서도 항상 서로 관련되어 온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첫째, 교회와 국가의 구성원이 서로 중복되기 때문이 다. 두 단체 모두 동일한 현세인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교 회 내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국가 내에서는 그 국 가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교회의 구성원도 현세에 살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어느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는다. 교회에는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가견 교 회(可見敎會, ecclesia visibilis)와 창립자인 그리스도를 으 뜸으로 하는 불가견 교회(不可見敎會, ecclesia invisibilis) 가 있는데 국가와의 관계에서 문제되는 교회는 '가견 교 회' 이다. 이 교회는 지상에서 하느님을 믿는 모든 그리 스도교 신자들의 단체이며 국적과 국경을 문제삼지 않는 초국가적인 인류의 신앙 공동체이다. 신자들은 교회의 구성원으로 각 국가에 분산되어 살지만 하나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가르침을 따르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 러나 동시에 그가 속해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국가 의 백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자는 하느님의 백성인 동 시에 소속 국가의 국민으로서 서로 다른 두 개의 권한 밑 에서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런데 국가는 각기 독립된 주권 을 가진 단체로서 분립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는 분열된 권한 아래서 살게 된다. 아직 하느님의 백성이 되지 않은 백성도 교회의 소명인 선교(宣敎)의 대상이 되어 역시 교회와 관련을 맺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은 조만간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래서 모든 현세인은 교회와 불가분적인 관계를 갖고 서로 분 립된 두 권한 밑에서 살게 된다. 둘째, 교회와 국가의 고유 권한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 가 있기 때문이다. 둘 다 현세인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 기 때문에 불가분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는 인류의 내세적 구원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지만 그 구 원 사업은 현세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모든 현세 인을 활동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현세적인 조직을 갖게 된다. 한편 국가는 그 국민의 안전과 복리 증진을 목적으 로 하며, 하느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는 백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의 권한과 국가의 권한이 서로 구별 된다 해도 동일한 현세인에게 작용하고 권한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셋째, 교회와 국가는 목적에서 깊은 관계를 맺는다. 교 회는 하느님의 계시(啓示)에 따라 백성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가르치며, 성사(聖事)를 집행한다. 또한 그 백성들에게 초자연적 구원의 길을 따르게 하고, 모든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교회의 충실한 구성 원이 되기를 권유한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 모두가 현세 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세워 추진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세우고 추진 방법을 선택할 때 교회의 가르침 과 충돌되는 경우에 불행한 관계를 맺게 된다. 교회와 국 가는 다같이 백성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만 초자연적인 행복과 자연적인 행복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원래 초자연적 행복은 자연적 행복의 연장이어야 하고, 자연적 행복은 초자연적 행복 에 연결되어야 참된 의미가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런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넷째로, 교회와 국가가 각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사하는 관할권의 중복이 종종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 게 된다. I . 관계사(關係史)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는 항상 깊은 관련을 맺어 왔 다. 그러나 그 관련을 맺는 방식은 내용과 시대, 국가에 따라 동일하지 않았다. 때로는 국가가 교회를 탄압하기 도 했고 때로는 반대로 교회가 국가를 제어(制御)하거나 정치에 간섭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는 초창기부터 국가의 탄압을 받으며 이런 관계를 맺게 되었다. 유대인 들은 교회의 창립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초대 교회를 탄압하였다. 이때부터 이른바 교회 에 대한 '300년 박해' 가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의 네로 황제(Nero, 54~68)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는 교시(敎示, institutum neronianum)를 내려 로마 제국과 식민지 내에서 교회 활동을 금지하고, 신자들을 참혹하게 박해하고 학 살하였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신자수가 날로 증가하 고 번성하게 되자, 3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리스도교를 묵인하는 칙령(勅令)을 내린다. 이로 인해 약 40년 동안 일시 박해가 멈추었으나 곧 다시 재연되었다. 그래서 313년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칙령 콘스탄틴 1세(Constantin I)의 관용령이 반포되기까지 박 해는 계속되었다. 콘스탄틴 1세의 관용령으로 그리스도 교회는 로마 제국과 그 식민지 전역에서 선교할 수 있는 합법적인 종교 단체(ecclesia licita)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러나 이로써 교회와 국가 간의 갈등이 항구적으로 해결 되지는 않았다. 관용령으로 일단 선교의 자유를 얻은 당 시의 그리스도 교회는 곧 국가의 우대를 받아 로마 제국 의 국교(國敎)로 선포되었고, 독자적 자립에 위협을 받 게 되었다. 즉 콘스탄틴 1세의 아들인 콘스탄틴 2세 (Constantin ll)가 그리스도 교회를 우대하여 국교로 삼는 동시에 교회를 국가의 한 기관으로 격하시켜 스스로 그 주재자(主宰者)로 자처하면서 교회에 간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Cesaro-papinismus. 또한 대우받는 고위 성직자 가 속권에 개입하게 되었으며, 교회의 으뜸인 교황의 권 한을 제한하여 종교의 독립성을 상실하였다. 국가가 교 회에 현세적 특권을 부여하고 교황과 친의(親誼)를 맺어 국가 통치권을 강화하는 데 이용한 경우이다. 9세기에 유럽 전역을 거의 지배한 프랑크 제국의 경우 에도 마찬가지였다. 카알 대제(Karl, 768~814)는 레오 (Leo) 3세 교황이 대관(戴冠)하였고, '서양의 황제' (Imperator Occidentalis)라는 칭호로 프랑크 제국의 황제가 되 자 그리스도 교회(가톨릭 교회)를 국민 교회(國民敎會)로 삼고, 정치적 목적에서 모든 국민과 피정복민에게 가톨 릭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였다. 또한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교회의 고유권인 교도권(敎導權)을 빼앗아 고위 성 직자 임명뿐 아니라 교회 재산에까지 간여하기 시작했 다. 교회 재산은 신도들의 증여 · 유증 및 헌금으로 이루 어졌는데, 교회 재산이 증가하게 되자 국왕과 귀족들이 침범하기 시작하였고 이른바 사유 교회(私有敎會)가 생 기게 되었다. 그리고 사유 교회는 봉건 시대로 접어들면 서 영주(領主)들의 사유 교회제를 낳게 하였다. 그들은 교회 재산에서 나오는 수익 중에서 제전비(祭典費)와 교 회 유지비 및 성직자의 생활비를 제한 잔여 수익을 사재 (私財)로 흡수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 재산을 임의로 매 각하고 타인에게 증여하기도 하였다. 국왕이 교회의 교 도권을 장악하자 초국가적 신앙 단체인 교회는 국가의 정치 권력에 예속되었고, 교회의 독자성과 단일성은 상 실되었으며, 그로 인해 교황권(敎皇權)과 자주 대립하였 고 그 이후에 중세와 근세를 통한 정교 분쟁(政敎紛爭) 의 큰 원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교황직은 초국가적인 보편적 단체인 동시에 인류의 공동선(共同善)을 주관하 는 단체라는 면에서, 국가의 상위 기관으로서 대립을 조 정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을 발휘하였다. 봉건 제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카알 대제가 죽고, 프랑크 제국이 그의 세 손자에게 분할된 814년 베르던 (Verdun) 조약이 있은 후부터 919년에 프랑크 제국의 왕 통(王統)이 하인리히(Heinrich) 1세에게로 넘어간 10세 기 초반까지의 시기였다. 봉건 제도는 정치 권력이 의도 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질서의 혼란 속 에서 자생(自生)하였다. 즉 국력이 급속히 강화된 강대 국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그 국토가 일시에 방 대하게 되고, 전통과 문화가 다른 여러 이민족(異民族) 을 다스리게 되면서 지방에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 고 국왕은 통솔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 질서가 무너지면서 대혼란에 빠지자 국왕의 지위는 자기 세력이 미치는 지역의 주군(主君, senior)으로 전락하였 고, 방대했던 국토는 여러 세력권〔封領〕으로 분열되어 각기 다른 세력〔封主〕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영주들은 각기 봉령 내의 백성을 봉신(封臣)으로 삼아 독립된 권 한을 행사하였다. 이와 같이 봉건 제도는 대정복(大征 服)으로 국토가 갑자기 방대해지고, 여러 이민족을 동시 에 거느리게 된 국왕이 중앙 집권력을 잃게 되자 그 무질 서 속에서 대혼란이 생겨, 약육 강식 투쟁의 혼돈 상태에 서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강자에게 보호를 청하고, 강자 는 그 대가로 충성을 서약받는 이른바 봉신 계약(封臣契 約)을 맺음으로써 이루어졌다. 영주들간에도 약한 영주 는 강한 영주에게 보호를 청하여 하급 영주로 예속되어 하급 영주에게 중급 영주, 상급 영주, 최고 영주에 이르 는 피라미드형의 세력 계층으로 연결된 자위 단체(自衛 團體)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불안에 떨던 많은 백성들 이 교회로 몰려와 보호와 자비를 구하고 정신적인 위로 를 받게 되다 보니 자연 교회를 중심으로 주거 집단이 형 성되었고 그들의 보호를 맡은 교회의 성직자가 영주로 추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봉신을 다스리고 보 호하기 위한 성벽(城壁)을 쌓아 외침(外侵)을 물리치고 자치권을 행사하던 중세 교회를 변모시켰다. 한편 봉건 집단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교회가 그 지역 영주 의 사유 교회로 전락하는 영주의 사유 교회 제도가 생겼 고, 정치하는 성직자가 생겨 종교와 정치가 혼동되는 현 상도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직자의 속권 개입은 당시의 무질서한 정치 혼란을 극복하고, 불안에 떠는 백 성을 보호하고, 통치력을 상실한 왕권을 대신한 공로도 적지 않았으나 교회의 정통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많은 성직자와 신도들은 수도원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봉건 시대의 교회를 지킨 곳은 영주를 겸한 수도원이었다. 이 와중에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강화되어 정치를 조종하던 시대(특히 7세~보니파시오 8세 교황의 시대, 1073~1303)도 반대로 교황이 아비뇽(Avignon)으로 쫓겨가야 교황의 아비뇽 유폐 시대(1309~1377)도 그래서 교회 라기보다는 현 세적 그레고 리오 있었 고, 했던 이른바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항상 교회와 국가의 독자성과 고유한 소 명을 인식하고 정치적 목적에 교회가 이용당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교회가 세속적인 일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도 경계하였다(사십 주년 41항). 교회의 목적은 인류의 초자연적 구원에 있고, 교황은 모든 인류의 정신 세계의 지도자임을 강조하여 종교와 정치의 혼동을 막고 교회와 국가의 구분을 문제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교회 4항). 즉 교회는 그 창립자인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초자연적 인 세계를 지배하고, 국가는 국민의 현세적 복리를 위하 는 자연 세계를 지배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상호간에 각 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 서는 교회와 국가의 관할을 엄격히 구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항상 관련되어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II . 관할권 중복으로 발생하는 문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권과 윤리, 도덕, 정의와 공동 선, 혼인과 자녀 양육에 관한 것 등이다. 이는 인간의 본 질과 품위(존엄성)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인간 완성을 위 한 사회 조직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자연법 학자들은 인간 사회의 자연법 질서를 요약하여, 인간의 존엄성 (dignitas)과 정의(iustitia)와 공동선(bonum commune)을 보 장하는 질서라고 말한다. 또한 인권 문제는 인간의 본질 론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창조 의사에 맞는 인간으로서 의 품위와 존엄성의 보장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는 인간 자체의 존립을 문제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도 하 다. 인권에 대해서는 원시 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권(生命權)에서 시작하여 생활 양식과 사회 조직의 변천에 따라 점차 각성하게 되었다. 노예의 인격 인정과 노예 제도의 폐지, 인종 차별의 철폐, 신분 계급 의 폐지, 남녀 차별의 지양, 사회적 · 경제적 약자의 구 호, 쾌적한 생활을 위한 환경권,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 등에 이르기까지 내용과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국가 조 직이 강화되고 집합주의(集合主義)가 생겨 인간의 기본 권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되면서 인권 투쟁이 발생, 오늘의 인권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인권 의식은 시대, 국 가에 따라 달랐다. 국민의 인권에 관한 자각, 통치 권력 의 인권 의식과 국가관에 따라 그 질과 양은 같을 수 없 지만 대체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한 자각에 따라 발전해 왔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인권은 인간의 본질 로서 창조주로부터 받은 권리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다르지 않다. 인권에 대한 자각은 기다릴 것 없이 더구나 정치 권력에 의한 인정을 기다릴 것 없이 처 음부터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다. 즉 인권은 그에 대한 자각이나 쟁취와 관계없이 처음부 터 존재한 것이며, 불가침적이고 불가양적(不可讓的)인 인격권이며 그 인격에 전속된 절대권이다. 윤리 · 도덕에 관한 문제도 어느 국가나 민족의 전통 내지는 관습과 관계없이 하느님의 창조 의사에 따르는 인간의 생활 양식에 관한 질서이다. 비록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해도 그 기본은 인간이 선하고 정의롭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 질서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윤리와 도덕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또 윤리를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 나 그 모두가 보편적인 인간 생활의 기본 질서라는 데는 다를 것이 없다. 그 시대, 그 장소의 전통이나 관습과 합 하여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정의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인간 공동체의 기본 질 서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존엄성을 보장받게 하기 위하여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공동체적인 기본 질서이다. 그 정의를 분류하여 분 배 정의, 교환 정의, 교정 정의, 법적 정의, 사회 정의, 국제 정의라 하는 것도 설명의 편의에 의한 것이지 근본 이치가 다른 것이 아니다. 특히 사회 정의는 산업 혁명 이후에 인식된 근대의 사상으로 자유 경제 시대에 산업 이 대규모화되고 분업화되어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나타났다. 이른바 무산 계층의 유일한 생활 수단인 노동 이 상품화되어 노동 시장에 쏟아지고, 실업자가 속출하 여 경제 질서가 혼란에 빠졌을 때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자조(自助)할 힘이 없는 사회적 · 경제적 약자와 권력과 자본가의 억압에서 신음하는 빈민 대중이 인간다운 생활 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집단 사회의 정의로운 질서를 문제삼게 된 것이다. 비록 자유 경쟁 사회에서 버 틸 힘이 없는 약자라 할지라도 그 사회의 구성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경제 구조의 횡포로 아 사를 면하기 어려운 빈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인식하게 된 사회 질서를 사회 정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시기는 19세기 중엽이었다(Luigi Taperelli, 1845 ; Antonio Rosmlni, 1848) . 그 후 1891년에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이 공포되었고, 1931년에 그 40주년을 기념하 여 비오 11세 교황이 사회 정의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내 용을 언급하였다(사십 주년). 그래서 비오 11세의 이 회 칙을 '사회 정의의 회칙'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동선은 모든 인류를 위한 공통의 사회선(社會善)으 로서 개인선(個人善, 私的 善)에 우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공동체적인 선이다. 그러나 국가가 말하는 국민 전 체의 이익, 즉 공익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공동선은 인간 집단에 주어진 본래적인 존재 질서이며 개인선에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동선에도 상위의 선과 하위의 선이 있고, 아무리 상위의 공동선이라고 할 지라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선이 있다. 예컨대 양심에 따 라 하느님을 숭배하는 신앙의 자유는 인격적인 개인선이 지만 국가나 집단의 공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침범할 수 없는 지고선(至高善)이기 때문에 모든 선에 우선한 다. 통치자가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 공익이 라는 말을 남용할 경우 그 공익은 통치자의 사적인 개인 선에 불과하다. 결국 공동선은 집단의 합의에 의해 성립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는 공동체의 선을 의 미한다. 혼인은 사랑하는 남녀가 합법적이고 항구적인 성적 결 합으로 부부가 되기를 합의함으로써 성립되는 계약이다. 혼인으로 가정이 생기고, 사회의 세포적 공동체가 되는 성(性) 공동체가 이룩된다. 그 안에서 자녀가 출생하여 인류가 존속 번영하게 된다. 국가나 교회도 그 공동체를 통하여 지속하게 된다. 합당하게 혼인할 권리는 하느님 의 창조 계획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권리이 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박탈하거나 강제하지 못한다. 혼 인의 목적은 성적 공동체 속에서 인간을 성장시키고, 자 녀를 낳아 양육함으로써 인류를 존속시키는 것이다. 가 정은 교회의 세포적 존재인 동시에 국가의 세포이기 때 문에 그 관할이 중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는 순결 한 혼인 생활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을 육성하는 데 지대 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가르침을 주며, 국가 역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혼인 제도를 상세하게 규제하고 있다. 교 회는 세상의 창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부 일처 제가 원칙이었음을 주장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중혼과 이혼을 금지하며, 부부간이 아닌 사이의 성 행위 를 단죄하여 혼인의 순결과 가정의 평화를 보호하고 있 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일찍부터 거의 모든 문화에 영향을 미쳐 국가의 법이 교회의 혼인 제도를 본받아 상 세히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다만 국가의 인구 정책에 따 라 이혼의 허용, 피임, 임신 중절, 낙태 등을 허용하는 반윤리적인 법에 대하여는 교회의 가르침과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관하여도 교회는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자녀에게 인간 교육을 시킬 권리와 의무가 원 초적으로 그 부모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비록 생활 양식 의 변천과 집합 교육의 필요에 따라 자녀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게 된 후에도 그 집합 교육은 부모로부터 위 임받아 자녀 교육을 돕는 기능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보조성의 원리). 물론 자녀의 보육 제도나 학교 제 도가 매우 유용하고 특히 학문 교육이나 기술 교육에 있 어서는 그 기능이 부모보다 우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 나 집합주의 국가에서 국가 계획에 따라 모든 자녀의 양 육과 교육을 국가가 전담하고 부모는 오로지 국가의 자 원으로서의 자녀를 낳아 국가의 시설에 맡기는 기능만을 갖게 하는 강요된 제도는 부모가 자기 자녀에 대하여 가 지고 있는 전속적이고 불가양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반자 연법적인 제도라고 하여 배격하여 왔다. 아동 심리학자 들 중에는 어린이의 환경 적응성을 문제삼아 좋은 환경 을 만들어 줄 수 없는 부모보다는 적당한 시설을 갖춘 국 가나 전문가가 어린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하지만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양육 기능은 그렇게 평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자녀는 태어나면 서부터 부모에게 의존하고, 가족 공동체의 일원임을 의 식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부모의 사랑과 권위를 알게 된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인간 으로서의 품위를 배우게 되기 때문에 지식과 기술의 습 득이 아닌 인간 교육에 관해서는 부모가 지닌 천부적인 기능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부모와 자녀 간의 인격적인 유대 의식은 이론적인 습득보다는 체득되 는 것이므로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따라서 자녀의 양 육과 교육은 부모에게 주어진 권리이고 의무이며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제하여서는 안된다고 할 것이다.
Ⅲ. 권한의 구별 〔권한의 우월성 문제〕 이상에서 교회와 국가는 각기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서로 불가분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기의 고유한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하여 교회는 국가의 협조를 필요로 하고, 국가는 교회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 교회가 목표로 하는 초자연 적 복리와 국가가 목표로 하는 자연적 복리는 서로 모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완성을 위해 같은 행로를 걷고 있다. 초자연적 복리는 자연적 복리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하고, 자연적 복리도 초자연적 복리에 연결시키 지 못하는 한 그 의미를 상실하여 허무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의 현세적 정치는 자연법 질서를 지켜야 하고 적어 도 그것을 위배해서는 안된다. 반자연법적인 국가 권력 의 행사는 필연적으로 교회와의 충돌을 야기시킨다. 그 리고 그때 교회와 국가가 각자의 독자성과 고유 권한을 고집하면 그 권한의 우열을 두고 다투게 된다. 그런데 국 가가 어떤 이유를 들어 무리하게 교회를 탄압하면 종교 박해가 일어나고 백성이 불행을 겪게 될 뿐,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된다. 현세적 목적을 가진 국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유에 서 교회를 국가에 복속시킨 시대(Cesaro-papinismus)가 있 었고, 교회가 갖는 권한의 우위성에 입각하여 교회가 속 권에 개입하고 정치를 제어한 시대가 있었다. 각자의 독 자성을 고집하여 상호간의 간섭을 부정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이 이 와중에 나왔다. 그러던 중 모든 권한은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국가의 통치권도 그 나라 의 통치자에게 위임한 것에 불과하므로 교회는 국가를 감독하고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정치를 간섭하여 바로잡 아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견해(아우구스티노)가 나와 교회의 정설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국가 권력의 근원이 하느님 이 정한 자연법에서 유래한다고 하면서도 교회가 직접 모든 국가 권력의 행사에 간섭하는 것은 반대하였다. 즉 교회와 국가의 권한이 상충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 권한의 성질상 당연히 교회의 권한이 국가에 우월하고, 그 우월한 권한을 가진 교회는 국가의 반자연법적인 정 치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케 할 후견자(後見者)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하였다. 교회의 통설로 정립된 이 견해는 그 후 저명한 신학자들(토르궤다마, 벨라르미노, 수아레츠 등)에 의해 지지 보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봉건 시대가 무너지고, 국가 조직이 다시 강화 되고, 민족주의가 일어남에 따라 국가는 교회와 교황직 에 주어졌던 특권과 교회의 고유권인 초국가적 교도권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 내부에 있어서도 교황의 세속적인 권한 행사를 거부하고, 자기들 국가와 민족을 위한 교회로서의 자립과 자치를 희망하는 기운이 생겼 다. 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주장하는 교회 내부의 움직임 은 17세기 말엽 프랑스에 처음 시작되었는데(갈리아주의, 1682) 곧 이웃의 게르만 국가로 번졌다(페브로니우스주의, 요셉주의).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교황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고, 교회가 가지고 있던 권한 중 초자연적 복리 를 위한 권한과 자연적 복리를 위한 권한을 구별하여 자 연적 복리를 위한 권한은 국가에 맡겨 교회도 그 권한에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정교 분리〕 교회 내에서 대두된 정교 분리의 주장은 곧 근세 국가에서 정교 분리의 원칙으로 발전하였다. 이 원칙은 교회와 국가의 독자적이며 고유한 활동 영역을 구분하여 서로 간섭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어떤 특정 종교나 종파에게 특 권을 주어 우대하거나 혹은 억압하는 일 없이 동일하게 신앙 행사와 교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즉 국가가 교회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고, 종교도 국가의 신앙 간섭에서 해방되어 상호 간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국가가 법제화하기 시작한 것은 개척 시대의 미국에서였 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부터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며 가톨릭 교회에 주어졌던 특권을 박탈하 고 억압하여 국가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을 두게 되었다. 그들의 자유 평등의 부르짖음은 개인의 자 유를 억압하는 모든 결사(結社)를 해체하고 평등한 자유 시민을 구가하면서 교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 와 국가 간의 상호 불간섭을 내용으로 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 헌장>(Gaudium et Spes)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 였다. 즉 지상의 평화를 가로막는 전쟁의 광란(狂亂)과 위협을 단죄하고 국제 정의의 실현으로 진정한 지상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5항). 그 동안 사회 양상의 변천은 정교 분리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상호 협조를 통해 지상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협력을 요구하였다. 비록 정부의 횡포와 폭력에 대응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방법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거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근자에 그런 특수한 사정 아래 있는 제3 세계에서 이른 바 해방신학(解放神學)이 대두되었는데 교황청은 그 정 신은 이해하면서도 정당한 대항 폭력, 계급 투쟁 등은 용 인(容認)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와 같이 비리(非理)와 폭력이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는 정교 분리의 원칙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것만을 고 집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가 정치에 대한 후견권(後見 權, potestas indirecta)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론의 견지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초자연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현세적 복리만을 추구 하는 생활(finis operis)에는 만족할 수 없고, 초자연적 욕 구를 추구하는 생활(finis operantis)에 연결되어야 만족할 수 있다. 또한 현세적인 자연선(自然善, bonum temporalle)을 통하지 않고서는 초자연선(超自然善, bonum spirituallle)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종교와 정치는 서로 엄격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동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사회학적으로 보더라도 교회의 구성원은 동시에 국가 의 구성원을 겸하게 되므로 교회와 국가는 서로 완전히 분립될 수 없다. 그런 불가분한 관계 속에서 교회가 추구 하는 초자연선과 국가가 추구하는 자연선은 현세 생활 속에서 충돌되어서는 안되고, 또한 교회와 국가는 다같 이 인간 완성을 위해 필요한 단체이므로 서로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정교 분리의 원칙은 서로의 관할 영역을 분리하여 상호간의 간섭을 피하자는 데 그 의미 가 있으나 그 관할 영역이 서로 중복되는 경우가 많으므 로 완전한 정교 분리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Ⅳ. 고유 기능과 협조 〔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 로 사용되고 또 해석되어 왔는데, 근대 국가는 하나같이 종교의 자유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그 목적이 신앙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든, 정치의 편의를 위한 것이든, 또는 신앙 생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든 국가가 종교를 국법의 규제 사항으로 삼는 것이며 근세 자유주 의와 정교 분리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종교는 교회의 권한에 속한 것이므로 국법이 이를 규제하는 그 자체가 어떤 의미로든 국가의 교회 영역에 대한 간섭이 다. 또한 근대 국가가 말하는 종교의 자유란 어느 특정 종 교만이 아닌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며 따라서 종교 에 대한 정치의 중립화(中立化)를 의미한다. 그 결과 하 느님이 창립한 교회와 인간이 다른 목적에서 세운 종교 와 이른바 사이비 종교를 동일시하는 무차별주의(indifferentismus)가 생기게 되었다. 더구나 한국과 같이 이단 적(異端的)인 종교와 사이비 종교가 많은 국가에 있어서 는 종교에 대한 무차별주의가 그것을 방임하거나 보호하 는 결과를 낳아 무지한 백성을 현혹하거나 기만함으로써 국민의 정신 생활을 해치고 있다. 또한 범신론(汎神論) 과 다신론(多神論)을 용인하여 종교의 다원화 정책을 취 하는 국가에서는 그로 인해 진실한 종교를 부정하는 결 과를 가져오게 하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이 직접 창립한 진실한 종교만이 보호되어야 하며 다른 열교(裂敎)나 이교(異敎) 그리고 사이비 종교나 미신은 국가가 금지해야 마땅하다(Thesis) . 그래서 비오 9세 교황은 모든 종교를 동일시하는 종교 자유 선언은 진실한 종교를 모독하는 잘못이라고 하였다 (〈Quanta Cura>, Syllabus, 1864). 그러나 모든 국민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국가에 있어서 가톨릭 교회만을 보호하고 가톨릭 신앙과 포교의 자유만을 인정함으로써 신자가 아 닌 국민과 이교도(異敎徒)들의 질시와 반감을 사게 되어 오히려 가톨릭 교회의 선교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 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견해(Hypothesis)가 통설이 되었다. 즉 국가가 규정하는 종 교 자유의 선언은 그 정신이 무차별주의나 중립화의 선 언이 아니어야 하고 또 현세적인 정치의 이익이나 편의 를 위하는 데 그 본뜻이 있어서는 안된다. 원래 신앙은 자기의 양심에 따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행위이며 누구의 강제를 받아서는 안된다. 양 심의 자유가 그러한 것처럼 종교의 자유란 강제되거나 금지당함으로써 자기의 신앙에 거슬러 행동하기를 강요 당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종교 자유 1, 2 항). 누군가의 권유로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그 결정 은 자기 양심과 신앙 감각에 따라 하는 것이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국가 권력, 기 만이나 현혹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정교 조약〕 교회와 국가의 관련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 체로 교회의 견해가 국가나 영주들에게 수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와서는 교회와 국가 간에 충 돌이 많았고 그 충돌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거나 예방하 는 방법이 교회와 국가 간의 계약에 의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그 계약을 정교 조약(政敎條約, concordatum)이라 한다. 대상은 주로 교회와 국가의 권한이 중복되는 혼합 적인 사항(res mixtae)에 관한 것이었고, 교황에게 주어졌 던 특권의 제한 내지는 회수에 관한 것이었으며, 특히 국 가 내의 교회를 맡을 주교들의 서임권(敘任權)에 관한 것이었다. 정교 조약을 처음으로 맺은 것은 주교의 서임 문제를 둘러싼 12세기에 있었던 보름스 정교 조약(Concordatum Wormatiense)이었으나 많은 정교 조약이 체결되 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 어나자 주교 서임권과 교회 재산권이 국가로 넘어갔고 (1801, 비오 7세 교황과 나폴레옹 1세 사이에 맺어진 정교 조 약),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비오 11세 교황은 폴란 드(1925), 루마니아(1927), 이탈리아(1929), 바덴(1932), 오스트리아 및 독일(1933) 등 여러 나라들과 정교 조약 을 체결했다. 그 조약들은 국가의 강요에 의한 것도 있었 지만 교회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특히 1929년 이탈리아와의 정교 조약(Latran Pacts)으로 바티 칸이 주권 국가로서의 '바티칸 시국' 으로 인정되었다. 교회가 국제법상 조약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 추고 있느냐에 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교 회가 가지는 현세의 초자연적 주권(souveraineté spirituelle) 을 이유로 국제법 내지는 준국제법 또는 국제 관습법으 로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법인격(法人格)이 있다고 보 는 것이 통설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가 조약 당사국으로 서의 자격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교회에도 국가의 구 성 요소인 백성이 있고, 통치 조직이 있고, 교정권을 주 재하는 교황이 있는데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영토권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는 보편적인 교회의 특성상 국경을 가진 영토가 요구될 수 없다는 데 귀착되 었다. 비록 라테란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의 주권이 인정 되고 그 영역이 인정되었다 할지라도 전세계를 다스리는 공번된 교회에 배타적인 국경이 있을 수 없으므로 영토 권은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정교 조약의 성질 에 관하여도 논란이 있었으나 국가와 교황청 간의 국제 관례에 따르는 조약 내지는 협정이라고 보는 것이 통설 이다. 정교 조약은 교회와 국가 간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데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교회와 국가가 서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늘날 교황청과 여러 국가 간에 외교 사절을 교환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 시키고 있는 것은 교회와 국가의 협조를 위해 다행한 일 이다. 교회는 모든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국가간의 분쟁이나 지역간의 분쟁을 중재, 조정하여 세계 평화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각 국가의 주권이 독 립적이고 주권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사회 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 간의 갈등이 정교 조약으로 해결 되고, 그 충돌이 초국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중재로 해결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교회와 국가의 협조〕 교회와 국가가 상호간의 독자적 인 고유 기능을 존중하면서도 그 불가분적인 관련성을 이해하여 서로 협조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방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그러나 유물 사상이나 무신론에 빠져 있는 국 가나 정치 권력이 교회를 바르게 이해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 니라 신자가 아닌 사람은 하느님을 이 해하기도 어렵다. 교회를 하나의 현세 적인 사회 단체로 보거나, 하나의 수양 단체 혹은 도덕 단체로 보는 경우도 많 고 특히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종교라는 가면을 쓴 국제적인 비밀 결사로 보아 성직자를 국제 간첩으로 모는 예가 많 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 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이해될 수 없다. 그래서 예컨대 그리스 도가 가르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가 리켜, 못살고 병고에 시달리고 억압받는 불쌍한 백성들이 반항심을 가지고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 달래려는 기만(欺瞞)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런 데도 국제적인 입법례(立法例)에 따라 종교 자유의 원칙 을 헌법에 규정하고 동시에 종교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규정하였다(옛 소련과 중공 등). 그들로서는 기만에 대응하는 기만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진심은 종교를 가리켜 백성들의 공산주의 폭력 혁명을 마비시키 는 아편(阿片, 痲藥)이라고 외치는 데서 드러난다. 그러 므로 교회와 국가의 협조는 국가가 교회의 실체와 기능 을 바르게 이해하고, 교회도 국가의 고유성과 현실적 문 제를 바르게 이해하여 자연법에 반하지 않는 국가의 정 책에 대하여는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이는 교회의 목적 달성에도 도움이 된다. 교회가 국가의 영역인 현세적 복 리를 위한 난민 구호, 의료 사업, 교육 사업 등 여러 가 지 사회 사업을 대신하거나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 한 일이다. 그러나 근대 사상에는 교회와 국가가 협조하는 데 장 애가 되는 사상이 적지 않다. 서로 협조될 수 없는 무신 론이나 범신론뿐 아니라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 라 인간의 사변력(思辨力)이 신을 창조한 것이라고 우기 는 이신론(理神論, deismus), 인간으로서는 신의 존부(存 否)를 판별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 , 인간의 인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또 놓여진 환경에 따 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보는 주관론(主觀論) , 경험하거나 검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험론, 실증주의, 인간이 신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완전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근대 사상은 데카르트(R. Descartes) 의 사변 자족론(思辨自足論)에서 시작되어 종래의 신 본 위(神本位)의 세계가 인간 본위의 세계로 바뀌면서 인간 이 신의 왕좌를 빼앗아 거만스러운 망상(妄想)을 일삼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말 스펜서(H. Spencer)가 정립한 상 대주의(相對主義) 사상은 절대적인 존재와 진리를 부정 하고 다원화시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상대적인 현상으로 해명하면서 현대 문화를 발전시킨 토 양이 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반교회적인 사상이 시정 되기 전에는 교회의 실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교회 와 국가 간의 협조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는 불가분적인 관련성으로 인해 서로 이해하 고 협조하는 데 노력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 국가와 교회 ; → 교회와 정치) ※ 참고문헌 이태재,《법철학사와 자연법론》, 법문사, 1984/ 한용 희, 《가톨릭 정치 윤리》, 분도출판사, 1980/ J. Höffner, 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박영도 역,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J. Leclercq, Lecons de droit naturel, Louvain, 1947~1955/ <교회 헌 장>/ <사목 헌장>/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李太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