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본당 進永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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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 신부와 본당 신자들(1936.12, 왼쪽). 현재의 진영 본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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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 신부와 본당 신자들(1936.12, 왼쪽). 현재의 진영 본당 전경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 230소재. 1935년 6월 16일 삼랑진(三浪津)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동정 마리아. 관할 구역은 김해시 진영읍, 한림면, 생림면, 창원시 대산면 전 지역. 공소는 대산, 한림, 봉림, 장방 등 4개소. [교 세] 1968년 2,539명, 1978년 2,273명, 1984년 2,226명, 1990년 2,452명, 1996년 2,761명, 2001년 1,751명. [역대 신부] 초대 정재석(鄭在石)요셉(1935. 6~1939. 5), 2대 장병화(張炳華) 요셉(1939.5~1940. 7), 3대 김동언(金東彥) 베드로(1940. 7~1942. 1)4대 정재석(1942. 1~1945. 12), 5대 김경우(金慶佑) 알렉시오(1945. 12~1946. 4), 6대 이종필(李鍾弼) 마티아(1946. 11~1948. 8), 7대 박재수(朴在秀) 요한(1948.8~1955. 5), 8대 정삼규(鄭三圭) 요한(1955. 5~1957. 11),9대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1957. 11~1960. 7), 10대유창호(劉昌鎬) 토마스(1960. 7~1969. 12), 11대 박흥섭(朴興燮) 세바스티아노(1969. 12~1972. 11), 12대 박유식(朴裕植) 안드레아(1972. 11~1973.5), 13대 김종익(金鍾益) 베드로(1973. 5~1976. 1), 14대 김석좌(金錫佐) 베드로(1976. 1~1979. 12), 15대 임상엽(林常葉) 마르코(1979.12~1983. 2), 16대 강윤철(姜允喆) 요한 보스코(1983.2~1986. 2) , 17대 정흥식(鄭興植) 마르코(1986. 2~1989.7), 18대 김길상(金吉相) 안드레아(1989. 7~1991.6) , 19대 김용민(金鎔珉) 레오나르도(1991. 6~1994. 8), 20대김대열(金大烈) 가브리엘(1994. 8~1997.8 21대 송재훈(宋在燻) 라파엘(1997. 8~2000. 1), 22대 최재상(崔在庠)마티아(2000. 1~현재). 진영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마산(현 완월동) 본당의 4대 주임인 베르몽(J. Bermond, 睦世榮)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박수창(시몬)이 1923년경에 진영면 철하리로 옮겨 살면서부터이다. 3년 뒤인 1926년 5월 밀양 명례(明禮, 현 삼랑진) 본당이 세워짐에 따라 진영 지역은 명례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1931년 가을에진영읍 철하리 김 베네딕도의 집에서 삼랑진 본당 3대주임인 파르트네(M. Parthenay, 朴德老) 신부가 첫 미사를 드림으로써 진영 공소가 발족하였고, 그 뒤 진영읍 서구 120번지에 아연 지붕의 건평 18평의 목조로 된 공소건물을 세웠다. 이어 1935년 6월에 진영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정재석 신부가 부임하였다. 정 신부는 1936년 12월 40평 규모의 성당과 18평 규모의 강당을 신축하였고, 1937년에 해성학원을 설립하였다. 2대 주임 장병화 신부는 13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30여 명의 영세자를 배출하여 조금씩 본당이 제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데 기여하였으며, 문맹자 퇴치와 민족 혼을 불어넣기 위해 해성학원 운영에 진력하였다. 4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한 정재석 신부는 일제 말기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진영읍 청년들과 치안대를 조직하여 진영 지역의 치안 유지에 노력하였다. 한편 5대 주임 김경우 신부가 1946년 4월에 진해(현중앙동) 본당이 설정되어 새 본당으로 전임되어 간 후, 진영 본당은 몇 개월간 주임 신부가 공석이 되었다. 1946년 11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종필 신부는 본당 최초의 신심 단체인 성모회를 조직하였는데, 이후 성모회는본당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많은 활동을 하였다. 7대 주임박재수 신부는 1949년 20평 규모의 사제관과 10평 규모의 주방을 신축하였고, 1950년에는 관할 구역인 김해읍에 성당 예정 부지 1,080평을 매입하였다. 8대 주임정삼규 신부는 1955년 12월 이전에 매입하였던 부지 위에 80평 규모의 현 성당을 건립하여 이듬해 5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1957년 10월에는 성모의원을 개원하였다. 9대 주임 김두호 신부는 1959년 3월에 진영읍 여래리 247번지 소재의 공원 묘지 2,194평을 매입하였고,같은 해 10월에는 삼방 공소가 김해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0대 주임 유창호 신부는 1961년에 대산면 우암리공소를 신축하였고, 본당에 성모상을 건립함과 동시에축대를 공사하고 종각을 증축하였다. 1962년 1월 묘지설치 허가를 받은 후, 1963년 3월에는 묘지 대지로 진영읍 여래리 246번지 420평, 244번지 769평을 추가로매입하였다. 11대 주임 박흥섭 신부는 1971년 10월에현 사제관과 101평 규모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한편 13대 주임 김종익 신부의 재임기인 1973년 7월에 교구 관할 재조정으로 진영 본당은 마산교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1월에는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14대 주임 김석좌 신부는 부임 직후에 장궤틀을 구입하고, 사제관을 수리하였으며, 1977년 8월에는 대성 공소를 신축하였다. 15대 주임 임상엽 신부는 1980년 3월에 봉림공소를 신축하였고, 16대 주임 강윤철 신부는 1985년 6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사업을 주관하면서 《진영 본당 50년사》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1986년 2월에는 전 자 오르간을 구입하고, 사제관 · 수녀원 · 성모의원을 수리하였다. 17대 주임 정흥식 신부는 1987년 6월에 제의실 증축과 제대 바닥 · 창틀 공사를 시행하는 등 성당 내부를 전면적으로 수리하였고, 1988년에는 성모 회관(현사제관 건물 2층 103평)을 증축하였다. 19대 주임 김용민 신부는 1992년 5월에 사제관 개축공사를 완공하였고, 1993년 5월에는 유아방을 신설하였으며, 9월에는 자본당(현 수산 본당)을 분리하기 위해 부지 222평을 매입하였다. 20대 주임 김대열 신부는1994년 10월에 성당 감실을 교체하였고, 11월에는 지하수 개발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6년 10월 수산 본당을 분리 · 설정하였고, 공소 강당에도 신경을 써서 1996년 5월 장방 공소와 1997년 5월 봉림 공소의내 외부를 전면 보수하였다. 21대 주임 송재훈 신부는1998년 1월에 진례 공소를 준본당으로 승격시켰으며,10월에는 노인 학교를 개교하였고, 11월에는 공원 묘지조경 공사(묘지 제대, 십자가 축복길)를 실시하였다. 한편1999년 8월에 진영 산복 도로 개설 공사 관계로 성당부지 총 201.8평이 도로로 편입되었으며, 9월에는 성모의원 철거와 함께 별관을 전면 보수하였다. 22대 주임최재상 신부는 2000년 9월 24일에 창원 지역의 반송(盤松)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었으며, 2002년 6월에는봉림 공소의 이전을 위해 961평의 부지를 매입하였다.한편 2002년 여름에는 본당 관할의 한림 공소가 수해로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됨에 따라 주임 신부와 전 신자가 하나가 되어 복구 사업에 진력하였다. (-) 마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진영 본당 50년사》, 천주교 마산교구진영 교회, 1985.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