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는 생물의 진화에 관해 연구하는 이론으로서, 모든 생물은 공동 조상에서 유래되었으나 생물들의계보가 세대에 따라 변하면서 계속 갈라져 나가기 때문에 생물계에 다양한 종류가 생긴다는 가설. 〔역 사〕 이러한 가설은 우리 나라의 고대 신라 98호고분에서 출토된 항아리에서도 엿볼 수 있으나, 동양에서는 진화론이 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이 만물의 생성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갖고 생물의 진화를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는 인간이 물고기 모양의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말하였으며, 우주의 운동과 질서를 기계론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 이후부터, 특히 중세에는 창조론이지배하면서 생물의 자연 발생설이나 진화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진화에 대한 혁신적인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반그리스도교적인 유물론과 계몽주의가 대두하고,뉴턴(I. Newton, 1642~1727)의 촉발로 모든 현상을 인과발생론(因果發生論)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유행하면서부터였다. 특히 라마르크(J-B. Lamarck, 1744~1829)가 《동물철학》(Philosophie Zoologique, 1809)이란 저서에서 유기체의 진화설을 제시함으로써 진화론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생명체는 수십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연 발생적으로 우연히 무기물로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원시 생명체로, 그 다음에는 복잡하고 질서 있는 체제를 갖춘 고등 생물로 서서히 한 종(種)으로부터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물의 기관 중에서 많이사용되는 것은 발달하고 잘 사용되지 않는 것은 퇴화해버린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제기하고, 이렇게 해서얻어진 '획득 형질' 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는 주장을하였다. 다원(C.Darwin. 1809~1882)이 라마르크의 진화설을 받아들여 획득 형질의 유전과 자연 도태와 적자 생존에 의해 새로운 종이 발생한다고 자신의 저서 《자연 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means of natural selection, 1859)에서 발표한 다음부터 진화론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원의 진화론은 일곱 가지 가정을 제시하였다. 첫째,생명은 무생물로부터 생물로 자연 발생하였다. 둘째, 생명의 자연 발생은 한 번만 일어났다. 셋째, , 박테리아와식물과 동물은 모두 상호 연관되어 있다. 넷째, 원생 동물에서 후생 동물이 나왔다. 다섯째, 무척추 동물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여섯째,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 동물이나왔다. 일곱째, 척추 동물이 양서류로, 양서류는 파충류로, 파충류는 조류나 포유류 동물로 진화되었다. 그는 진화가 생기는 요인으로 자연 도태설을 제안하였다. 그의자연 도태설의 요지는, 생물은 종족 유지를 위해 필요한수보다 많은 자손을 만들고 개체 간에는 생존 경쟁을 하며, 개체 간에는 변이(變異)가 생기고 개체 변이 중에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보다 많이 살아남으며(적자 생존),개체 변이에 의한 획득 형질이 후손에 전해지고 오랜 세월 동안 변이가 쌓여서 새로운 생물이 생긴다는 것이다.예컨대 기린은 식물을 구하기 위하여 낮은 나무의 잎을따먹고 나서도 높은 나무의 잎을 따먹을 수 있기 위하여목이 길게 늘어지게 되고, 후손에게 더 긴 목을 유전시켜주어 이것이 여러 세대 반복됨으로써 긴 목을 가지게 되 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드 브리스(H. de Vries, 1848~1935)는 1901년 획득 형질과 자연 도태에 의해서 생물이 진화한다는 설을 거부하고 '돌연변이' 에 의해 생물이 변종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바그너(M.F. Wagner, 1813~1887)는 생물군의 일부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이주하거나 생리적 격리가 있을 경우 새로운 변종이 생긴다는 '격리설' (isolation theory)을 주장하였다. 바이스만(A. Weismann, 1834~1914)은 생쥐의 꼬리를 잘라 꼬리 없는 생쥐를 만들어 보려고 20세대에 걸쳐 실험을 하였으나, 조상과 똑같은 꼬리 길이의 생쥐만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른바 '획득 형질의 유전' 을 부인하였다. 이밖에 코프(ED. Cope, 1840~1897)의 '정향(定向) 진화설' (ortho-genesis theory) , 로치(J.P. Lotsy, 1867~1931)의 '교잡설'(hybrization theory) , 헉슬리(J.S. Huxley, 1887~1975)와 도브잔스키(T. Dobzhansky, 1900~1975)의 '현대 종합 이론' 등다양한 진화설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생물 진화의 가설들과 논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자들의진화론에 대한 기대는 약화되지 않았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유전학과 분자 생물학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생물의 진화설은 계속 주장되고 있다. 최근에 진화론은 새로운 종의 발생, 즉 대진화(大進化)와 생명의 우연적인자연 발생설을 거부하는 창조 과학을 지지하지 않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환경에 의한 종의 변화〔變種〕와 같은 생태적인 소진화(小進化)는그리스도교의 창조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신학자들도 있다. 예컨대 테야르 드 샤르댕(P.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은 그리스도교의 창조 신학을 진화론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진화론은 무신론적인 유물사관(唯物史觀)을 통해 인문 · 사회 과학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한때 그리스도교의 창조 신앙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진화론은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또는 철학적 다윈주의(philosophicalDarwinism)의 이름으로 사회학, 철학, 문학, 역사학, 심리학, 교육학, 예술론, 종교학 등에서 많이 논의되었다. 우리 나라에 진화론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부터 일본인의 번역서를 통해서였다. 1900년대에는중국의 학자인 엄복(嚴復, 1854~1921)과 양계초(梁啓超,1873~1929)의 저서를 통하여 자연 과학적인 측면보다는사회 과학적인 측면에서 '생존 경쟁' , '우승 열패' , '적자 생존' 등의 용어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가르쳐 왔다. 진화론의 문제점은 처음부터 생물학적인 관점보다는 정치 · 경제적인 이념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화론 대두의 사회적 배경〕 다원이 발표한 《자연 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는 단순히 생물학에서의하나의 가설적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산업 혁명에 뒤따라온 중상주의(重商主義)와 특히 강대국의 식민주의(植民主義)의 풍조를 반영한 것이다. 예컨대 스펜서(H. Spencer, 1820~1903)는 사회적 다원주의를 제창하고, 생존 경쟁에 의한 인종 차별이나 약육강식을 정당화하고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하는 데 진화론을논거로 삼았다. 당시의 자연 과학자들은 뉴턴이 제창한 인과율(因果律)을 절대시하였을 뿐만 아니라인문사회 과학자들까지도 모든 것엔 원인과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을 신봉하였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의 진보와발전은 당시의 사람들에겐 매우 고무적이었다. 모든 높은 것은 낮은 것에서부터 진화하거나 진보한 것이고, 모든 복잡한 것은 단순한것에서부터 진화한 것이며, 더 나아가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그래서 진보 및 진화라는말은 정치가와 사업가, 학자를 막론하고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유행어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진화론을 가설이 아닌 진리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세계관의 기초로 삼기까지 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당시의 풍조들을 받아들였고, 모든생물의 기원을 인과 발생적으로 추론하고 종내에는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로 귀속시키고나중에는 이 유기체를 다시 무기체(無機體)로환원시켰다. 그리고 18세기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범과 문화 생활에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된 단순한 동물에 불과하다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해방감을 맛볼수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혼란상은 그 리스도교의 창조 신앙을 약화시켰고, 장원(莊園) 제도의붕괴에 따라 등장한 소위 제3 계급, 즉 '부르주아' (bour-geois)라고 불리는 신흥 계급은 복잡한 문화 양식에 대한열등 의식에서 해방되길 원하였고, 지키기 어려운 규범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였으며, 동물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였다.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무거운 짐이 되었던 윤리와 문화의 굴레로부터 해방될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문화와윤리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였던 사람들에게인간이 근본적으로 동물에 불과하고 원숭이나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되었으며, 약육강식과 우승 열패와 적자 생존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을것이다. 그래서 다원의 자연 도태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신도 물질로 환원될 수 있고, 물질로부터 생겨 나온 것이라는 유물론적인 일원론은 체계적인 이론을 추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었다. 진화론은 20세기에 들어 마르크스(K. Marx, 1818~1883)와 레닌(V.I.Lenin, 1870~1924)에 의해 유물사관의 과학적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더욱이 생명의 우연적인 자연 발생을 주장하는 진화론은 하느님에 의해서 모든 생명이 우연이 아니고 합목적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창조 신앙에 동요를 초래하기도 하였고, 무신론의 논거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뿐만 아니라 진화론 자체에도 맹점이 많다. 특히 성서의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창조 과학자들은진화론의 가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지 못하는 부분이있을 뿐만 아니라 이론의 설정과 전개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논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문제점〕 첫째,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과 출현을 논하면서 생명의 우연적인 자연 발생설을 제창하는데, 이 가설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생명의 출현은 과거에 단 한 번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며, 자연 과학은 현재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으로 측정이불가능한 아득한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우연히 한 번 일어났고 어떤 인간도 관찰한 적이 없는 신비에 가득 찬 생명의 발생은 엄격한 실험 과학의 증명 대상이 될 수 없기때문이다. 생물학적 진화론도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산물인 '진화 모델' 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진화 모델은 생물이 우연히 저절로 생겼다고 보는 가설로서, 원자들의 무작위적인 반응에 따라 무기물이 간단한 원시 생물로 되고, 이 원시 생물이 오랜세월을 지나는 동안 형태와 기능이 변하면서 처음에는간단한 하등 생물이던 것이 점차 복잡한 고등 생물로 되어 오늘날 무수한 생물들이 있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진화론자들은 처음부터 진화하였다는 가정을 설정하고 나서 이 가설에 적합한 사례들만을 찾아내어 진화 모델을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화론자들 간에도 진화의조건을 두고 상이한 견해 차이가 있어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둘째, 다윈이 말한 획득 형질의 변이에 의한 새로운 종의 발생은 이미 멘델(G.J. Mendel, 1822~1884)의 유전 법칙에 의해 부정되었다. 진화론의 핵심인 환경에 의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멘델의 완두콩실험에서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노새가 유전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또 자연 도태설은 드 브리스의 돌연변이설에 의해 부정되었다.생물의 종류에 따라 돌연변이가 있으나 매우 드물게 발생할 뿐만 아니라 대체로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고, 더군다나 대진화, 즉 새로운 종의 발생을 가져올 수가 없다는 것이 오늘날 분자 생물학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진화 모델' 과는 정반대로 초자연적인 존재, 즉 창조주의 지혜와 설계에 의해 처음부터 모든 생물들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창조 모델' 이 있다. 창조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얼마든지 이 창조 모델에 적합한 사례만을 찾아내어 창조설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창조 모델론자들은 다양한 생물들이 각기 질서를 가지고 있고 정교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창조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생물은 각기 유전학적 한계 내에서 같은 종끼리만 교배하고 번식하며,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자연히 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유전 질서에서는 엄격하게 유전 정보가 유지되며,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고유한 유전 정보가 들어 있다는유전 법칙과 그외 열역학의 법칙 등은 진화 모델보다 창조 모델에 더 부합된다고 한다. 셋째, 진화의 증거 자료로 화석(化石)을 제시하는데,화석을 지질 연대순으로 배열해 보면 화석들 사이에 유사성 또는 점진적인 차이에 따라 일정한 변화와 순서가보인다고 하여 그러한 순서대로 생물은 진화하였을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등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화석 간의 차이는 점진적인것이 아니라 격변적이며, 오히려 진화 과정에서 있어야할 중간 화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화석이 반드시 진화를 증거하는 자료라고 단정할 수 없다. 더구나 인류의진화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의 중간 화석으로해석되고 있는 직립인 두개골도, 한국의 생물학 교과서에서는 완벽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사실은 두개골의위 부분에만 해당하는 부분적인 화석이다. 양치 식물(고사리)의 화석이나 가오리의 화석을 조사해 보면, 수십만년 동안 아무런 변이를 발견할 수 없다. 헤아릴 수 없이많은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사리와 가오리는 왜 진화하지 못했는가를 진화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화석은 종(種)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것으로 남아있음을 증명해 준다고 해석될 수 있다. 넷째, 동물들 간의 해부학적 유사성이 곧 진화의 증거라는 추론도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원승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것을 입증할수 있는 증거가 없다. 어린 원숭이와 어린이는 해부학적으로 어른 원숭이와 어른에 비하면 훨씬 유사점이 많다.따라서 원숭이로부터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것은 성립되지 못한다. 다섯째, 적자 생존은 일부의 동물에게서는 쉽게 관찰된다. 체력이 강한 동물은 허약한 동물을 지배하고, 허약한 동물보다 더 오래 살며, 종족 번식을 주도한다. 특히들짐승에게서 생존 경쟁과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현상들은 쉽게 관찰된다. 그러나 적자 생존이 모든 생물에게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우수한 생물이고,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더 고등한 생물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적자 생존의 법칙이란과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이 세상을 오로지 대립과 투쟁의 세상으로 보는 정상배나 깡패들이 지어낸 조어이다.다시 말해서 이 말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부 동물계에서 관찰되는 적자 생존 내지 자연 도태를 확대 해석한 것이다. 또 1960년대 말에등장한 분자 진화의 중립설에 의하면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진화한다고만 할 수 없고, 선택적으로 중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분자들은 자연 도태보다는 유전적 부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자는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은 부분적인 임의의관찰과 이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통한 가설에 불과하며, 객관적인 실험과 검증을 통한 엄밀한 과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느님을 배경으로 하고 창조 신앙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엄밀한 과학의 영역이 아니므로 창조론이 배척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아무튼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결코 사실이나진리가 아니다. 오늘날에는 환경에 의한 어떤 생물의 변이, 즉 소진화는 대체로 인정되나 새로운 종의 발생과 같은 대진화는 어디서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다윈 ;종(種) ; → 멘델 ; 스펜서 ; 헤겔) ※ 참고문헌 A. Gehlen, Der Mensch. Seine Natur und Stellung in derWelt, Frankfurt, 1966/ B. Rensch,Neuere Probleme der Abstammungslehre,19471 E. Coreth, Was ist der Mensch? Grumdziige einer philosophischenAnthropologie, Innsbruck, 1973(진교훈 역 《철학적 인간학》, 종로,1984)/ J.S. Huxley, Evolution. The Modern Synthesis, London, 1942/ J.Ritter Hg., Historisches Worterbuch der Philosophie, Bd. 2, Basel, 1972/ 0.Kuhn, Die Deszemulenzheoroie, 1951/ W. Brugger S.J. Hg., PhilosophischesWorterbuch, Freiburg, 1953/ 김영길 외 26인 공저, 《자연 과학》, 생능,1990/ 한국창조과학회 편,《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1981. 〔秦敎勳〕
진화론 進化論 〔라〕Evolutionismus 〔영〕evolutionary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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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다원의 진화론 주장을 비판하는 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