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송, 에티엔 앙리 Gilson, Etienne Henri(1884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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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사가. 그리스도교 철학자. 토마스주의자. 〔생 애〕 1884년 6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가톨릭 신자인 상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질송은 생트 클로틸드(Sainte-Clotide) 성당 학교에서 공부한 후, 노트르담 데상 중학교(Collège de Notre Dame des Champs)와 앙리 4세고등학교(Lycée Henri Ⅳ)를 졸업하였다. 1년 동안 군복무를 마친 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델보(V. Delbos,1862~1916)와 레비브륄(L. Lévy-Bruhl, 1857~1939)에게서철학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France)에서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의 지도를 받으며 철학을 공부한 후 1906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 주제는 레비브륄이 제안한 '데카르트 체계 형성에서 중세 사상의 역할' 이었다. 1907년 결혼한그는, 이 해부터 1913년까지 여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가르쳤다. 1913년 파리 대학에서 '데카르트의 자유 개념과 신학' (La liberté chez Descartes et la théologie)이라는 주 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릴(Lille) 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나자참전한 그는 1916년 베르됭(Verdun) 전투에서 부상으로붙잡혀 2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무공 훈장(Croix leGuerre)을 받았다. 1919년부터 그는 스트라스부르(Strshoug)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1921년 소르본 대학교의 중세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그는 파리 고등연구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의 중세 철학 연구소장이되었다. 1926년 소르본 대학교의 중세 철학 학장이 된그는, 이 해에 미국과 캐나다를 처음 방문하여 여러 대학을 순방하며 중세 철학과 토마스주의에 대해 강연하였다. 질송은 1929년 토론토 대학교의 세인트 마이클 대학 부설로 중세 철학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파리와토론토를 오가며 학문 연구를 하였고, 1932년 콜레주드 프랑스의 중세 철학사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가 설립한 중세 철학 연구소는 1939년 교황 비오 12세(1939~1958)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파리에 머물던 그는 194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gaise, 프랑스 한림원)의 회원이 되었다.195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직을 은퇴하고, 토론토에 있는 연구소의 전임 교수로 활동하였다. 1968년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971년 크라방(Cravan)으로 이사하였으며, 1978년 9월 19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연구 업적과 사상〕 중세 철학사 : 철학사가였던 질송은 레비브릴의 지도로 중세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전학에 대한 관심이 노트르담 데 상 중학교의 성직자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평생의스승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를 알려 준 사람은 종교와 형이상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콩트(A.Com-te, 1798~1857)의 제자인 레비브릴이었다. 그는 질송에게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와 스콜라학(schola-sticism)의 관계를 연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토마스아퀴나스를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질송이 중세에 머무른 이유는 17세기의 형이상학적 체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도 중세 형이상학의 몇몇 단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관념론적 철학이사멸하였으며 오늘날의 모든 철학은 개별자에 대한 철학아니면 악에 대한 철학인데, 이미 토마스주의는 인간의운명에 대해 완성된 철학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토마스주의를 삶으로 충만해 있는 미래의 철학로 이해하였다. 그는 실존(existence)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매우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이에 따라토마스주의를 '그 자체로 실존 철학' (an existential philo-sophy in its own righ)이라고 주장하였다. 질송은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철학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아 가면서 철학적 역사가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그의 방법은 철학적 문제들을 추상적인 철학적용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실재의맥락 안에서 이해하며, 동시에 그것의 가장 객관적인 철학사적 가치를 통해서 이해하는 데 있다. 질송은 하나의 '동일한 스콜라 사상' (homogeneousscholasticism)은 없다고 여겼다. 중세의 사상가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로서 모두 그리스도교 믿음을 공통적으로가지고 있었고, 철학을 신학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매우 달랐으며,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에 서 있었다. 질송은 스콜라 사상이 결코 하나의 학설이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질송은 중세에 '그리스도교 철학' (Christian philosophy)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그는 중세에 단지 철학이 있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매우 심오하고 심도 있는 철학적 사변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그리스인들이 알거나표현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세계관의 특징들을 표현하기위해 그들 고유의 관념을 창조해 냈다. 즉 신의 자유, 사랑, 자비, 창조, 시간과 역사의 본질, 영적 영혼과 신체의 복합물로서의 인간 본질, 인격성,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 인간의 지복 등이다.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그들 고유의 세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모든 개념을 창조해 냈다. 질송에 의하면 중세 철학은 그리스 철학을 파괴하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고 개선하고 변모시켰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통해 중세 철학은 고대 철학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었다. 중세 철학은 단지 그리스도교화된 고대 철학이 아니라, 그것의 변모되고 보다 향상된 형태인 것이다. 중세의 그리스도교 사상은 그리스 철학의 모든 진리를 포함하며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유일하게 포함하지 않는 것은 철학적 오류들일 뿐이다. 그 사상은 그리스 철학에서 참된 것은 모두 받아들였고, 거짓된것은 교정하였으며, 그리스인들이 알지 못했던 철학적개념들을 추가하였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교 사상은 그리스 철학의 합리성을 존중하고 증진시켰으며, 종교적기반 위에서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였다.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질송도 철학이 철학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어야만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그는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계시의 영향 아래서 중세의 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합리성 개념 자체를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를 만나서 철학은 자신의 본성에서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였으며,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리스도교 철학 : 질송은 중세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철학' 이라고 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교 철학이란신앙과 이성의 두 질서를 형식적으로는 구분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계시를 이성과 분리할 수 없는 이성의 보조물로 간주하는 모든 철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질송은 그리스도교의 믿음 속에서 그리고 그 믿음에 의해 자라난그리스도교적인 철학 전통이 실제로 존재하였다고 하며,그러한 철학을 그리스도교로부터 추상적으로 분리하려는 어떤 시도도 소득 없는 논리적 오류일 뿐이라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질송은 그리스도교 철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못했을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철학적 사변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질송은 '그리스도교 철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가장간단한 대답을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1879. .8.4)에서 구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그 결과 많은 오류와 무지에 빠지게 된다.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복종을 철학 연구에결합시키는 사람은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철학을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질송은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도 그리스도교 철학이라고 부른다. 반 스테인베르겐(F. VanSteinbergen)은 토마스가 신학자였기 때문에 위대한 철학자일 수 있었다는 질송의 주장을 거부하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였다. 위펠(J.F. Wippel)도 반 스테인베르겐의주장에 동조하였지만, 마리탱(J. Maritain, 1882~ 1973)은자신의 철학을 지적함에 있어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리스도교 철학의 문제는 누구보다도위펠이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형이상학의 시원 : 토마스 아퀴나스는 형이상학의 탐구 대상인 존재 일반(ens commune)을 질료적이고 또한비질료적이라고 하였다(In Meta., Proem ; trans. by ArmandMaurer, The Division and Method of the Sciences, p. 89 ; In de Trin., V, 4c; Maurer, 같은 책, p. 45 ; In de Trin., V, 4, ad 5m ; Maurer, 같은 책, PP.48 ~49 ; In Meta., Proem ; Maurer, 같은 책,p. 89 ; In de Trin., V, 4c ;Maurer, 같은 책,p. 44). 토마스는 또한 존재 일반을 질료와형상의 가능태-현실태 복합물로서, 그리고 실체와 실존의 그러한 복합물로서 기술하였다(Summa Contra Gentiles Ⅱ,trans. by James F. Anderson, Notre Dame Univ. Press, 1975, pp. 157~158). 마리탱은 존재에 대한 직관뿐 아니라 실존(esse)에 대한 직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토마스주의 형이상학자의 특징은 실존을 직관한다는 점과 세 번째 단계의 추상 작용에서 존재(ens)의 비질료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The Degrees of Knowledge, pp.215, 218 ; A Preface to Metaphysics,p.49 ; Existence and the Existent,pp. 19~20). 그러나 그는 이후 '존재에 대한 직관' 이라는말로 '지각 가능한 사물의 실존에 대한 숙고된 파악' 을가리킨다(Reflexion sur la nature de l'esse et sur l'intuition de l'etre,Revue Thomiste 68, 1968, pp. 17~18, 25, 26, 31). 질송은 실존이 하나의 존재가 아니며 그것으로 인해존재하게 되는 하나의 실체와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없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의 실존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Propos sur l'etre et sa notion,SanTommaso e il pensiero modemo,p.8). 질송은 같은 논문에서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실존 그 자체에 대한 지성적직관은 순수하게 가지적(可知的)인 것에 대한 직관인데,성 토마스에 따르면 육신과 결합되어 있는 현상태에서는우리의 지성이 환영(phantasm)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현실태에 있는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질송은 더 나아가 실존이 "연장된 추상적 반성의 내실"이라고 하였다(같은 책,p. 14). 그는 이것을 자신 의 저서들에서 반복한다(Elements of Christian Philosophy, p.131). 마리탱 역시 실존이 판단에서 이해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직관을 거론하지만, 질송은 그렇지 않다. 마리탱은 여기서 직관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로사용하였다. 질송은 인간이 항상 하나의 존재자를 있게해 주는 것으로서 실존을 파악하며, 인간은 오직 감각상을 통해서만 어떤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리탱 역시 이와 같은 주장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실존에 대한 직관을 거론할 때, 질송은 마치 인간 정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특정한 방법을가질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는 인간 정신이실존 그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으며, 또한 그렇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질송의 이러한 두 가지 요점에 대한 마리탱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마리탱과 질송 모두 실존에 대한 이해에 있어 하나의 추상적 과정을 거론한다. 마리탱은 존재의 비질료성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형이상학이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질송은 형이상학이 그런 이해와 함께 시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탱은존재로서의 존재가 이해되는 세 번째 단계의 추상을 거론한다. 그러나 질송은 존재가 감각 가능한 질료적 실체를 통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세 번째 단계의 추상이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였다. 직접적 실재론 : 근대 철학과의 대화와 관념론의 극복을 위해 벨기에의 추기경 메르시에(D.J. Mercier, 1851~1926)는 철학이 인식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의 후계자들은 정신 외부의 세계 존재를 증명하는 인식론이 형이상학을 앞선다고 공언하였다. 그들은 '소박한 실재론' (naive realism)에 대비되는 자신들의 입장을 '비판적 실재론' (critical realism)이라고 불렀다. 질송은 몇몇 토마스주의자들이 토마스주의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여 토마스주의를 소박한 실재론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하였다. 질송은 저서《토마스주의 실재론과 인식 비판》(Réalisme thomiste etcritique de la connaissance, 1939)에서 루뱅 학파의 입장을비판하였다. 그의 주된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일토마스주의가 상식에 기반한 실재론이라면 이것은 철학일 수 없다. 따라서 루뱅 학파가 '소박한 실재론' 과 '비판적 실재론' 을 두 종류의 철학으로 구분하는 것은 부당하다. 둘째,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의 문제를 관념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그 문제의 해답을 구하려는 시도는 불필요하다. 셋째, 토마스주의는 존재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다. 존재는 제일 먼저 알려지며, 또한 가장 잘 알려진다(primum notum). 그러므로 토마스주의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에 앞서는 인식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념론적인 문제 제기에 대한 토마스주의적해답을 구하려는 시도나, 토마스주의 실재론을 하나의선행하는 인식론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자기 모순적 이다. 넷째, 토마스주의는 마음 밖에 있는 실제적 존재에대한 이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재론' 이다. 그러므로토마스주의 인식론은 '직접적 실재론' 이다. 저서 : 질송의 첫 번째 저서는 《토마스주의 :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체계 입문》(Le Thomisme, Introduction ausystème de saint Thomas d'Aquin, 1919)이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강의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저서로 대표적인 것은그리스도교 철학의 이념을 설명하고 변호한 《중세 철학의 정신》(L'Esprit de la philosophie médiévale, 1932), <철학적경험의 통일성》(The Unity of Philosophical Experience, 1937) ,《존재와 철학자들》(Being and Some Philosophers, 1949) 등이다. 그밖의 저서로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사》(Historyof Christian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1955) 외에도 많은철학 관련 저서들이 있다. 미술 애호가이며 수집가이기도 했던 그는, 미술에 대해 《그림과 실재》(Painting andReality, 1957), 《아름다움의 예술》(The Art of the Beautiful,1965)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술에서 마지막 작품은 《단테와 베아트리체 : 단테 연구》(Dante et Béatrice :Etudes Dantesques, 1974)였다. 〔평 가〕 질송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토마스주의자가되었다. 토마스주의자란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주된 원리들의 진리를 확신하고 수용하는 자를 뜻한다. 그런데 질송은 토마스의 철학을 신학적 문맥에서분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토마스의 철학을 그의 신학에서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질송의 그리스도교 철학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질송이 중세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전제하거나 그것을 내포하는 철학은 넓은 의미에서신학이거나 아니면 매우 넓은 의미에서만 그리스도교 철학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이 마치 그리스도교가 존재하지 않는 듯 그것을 무시하고 철학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렇지만 철학은 그 자체로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니다. 루뱅 학파는 이 사실을 명확히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을 마치 수학과 같이 완전히가치 중립적인 학문으로 오해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리스도교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에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침투시키면 안 된다. 그럴 경우 그것은 순수한 철학일 수없다. 그래서 좁은 의미, 즉 엄밀한 의미의 그리스도교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교리에 반하지않는 모든 철학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철학이다.토마스를 포함한 중세의 사상가들 대부분은 우선적으로신학자이고 동시에 철학자였다. 그들의 철학적 사색은신학적 저서들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철학적 사색은분리되어 이끌어내져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사상을 철학적 사상으로 간주하거나, 그들의 전체적인 신학적 사상을 그리스도교 철학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철학적 입장에서뿐 아니라 신학적 입장에서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질송의 가장 큰 업적은 20세기 토마스주의의 부활에 대한 기여에 있다. 그는 마리탱과 함께 20세기의 가장위대한 토마스주의자로서뿐만 아니라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 마리탱, 자크 ; 중세 철학 ; 토마스주의) ※ 참고문헌  E. Gilson, Elements of Christian Philosophy, Doubledayand Co., Garden City, New York, 1960/ 一, San Tommaso e il pensieromoderno, ed. Antonio Piolanti, Pontificia Accademia Romana de S.Tommaso d'Aquino, Città Nuova, 1974/ 一, The Spirit of Med.Philosophy, Gifford Lectures 1931~1932, trans. by A.H.C. Downes,London, 1936 ; rep. 1950/ 一, Thomist Realism and the Critique ofKnowledge, trans. by Mark A. Wauck, Ignatius Press, San Francisco, 1986/J. Maritain, Existence and the Existent, trans. by Lewis Galantiere · GeraldB. Phelan, Vintage Books, New York, 1966/ 一, The Degrees ofKnowledge, trans. by Gerald B. Phelan, Scribner's Sons, New York, 1959/一, A Preface to Metaphysics, Mentor Omega Books, New York, 1962/A. Maurer ed., The Division and Method of the Sciences, PIMS, 1963/ A.Pegis ed., A Gilson Reader, image book, Garden City, N.Y., 1957/ JF.Wippel, Metaphysical Themes in Thomas Aquinas, Studies in Philosophyand The History of Philosophy, vol. 10, Cath. Univ. of Am. Press, 1989/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3, Mcmillan, New York, 1980, pp.332~333/ A. Maurer · L.K. Shook, 《NCE》 6, 2003, pp. 227~228. 〔張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