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라이스, 빅토린 Zeileis, Viktorin(1888~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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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라이스 신부.

차일라이스 신부.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빅토리노. 세례명은 테오도르. 한국명 서상열(徐相烈) 차일라이스는 1888년 7월 1일 독일 헤르비폴(Herbi-pol) 교구의 하펜로(Hafenlohr)에서 태어나, 1908년 오틸리엔 연합회의 상트 오틸리엔(St.Ottilien)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은 후 1909년 3월 21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1912년 3월 21일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으로 소속을 옮긴 그는, 1912년 5월 10일 그 수도원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22년 2월 19일 서울 백동(栢洞, 현 혜화동)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한 차일라이스 신부는그해 말 간도 지역의 삼원봉(三元峰) 본당(대립자 본당의전신)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1925년 10월 팔도구(八道溝) 본당 주임 신부로 쾨스틀러(B. Köstler, 高) 보좌 신부와 함께 부임하여 1926년 8월 본당 관할이었던 대령동(大嶺洞)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1932년 6월대령동 본당의 아쇼프(S. Aschoff, 安) 주임 신부가 장티푸스로 목숨을 잃자 장례 미사에 참석하러 대령동으로가던 당시 부지목구장 랍(K. Rapp, 朴) 신부가 술에 취한일본군에게 피살된 후 부지목구장이 되었다. 그리고1931년 스위스 캄(Cham)의 성 십자가 수녀회가 연길지목구에 진출하자, 연길 수녀원 지도 신부로 임명되어1946년 5월까지 수녀회를 영적으로 이끌었다. 차일라이스 신부는 퀴겔겐(K.Kügelgen,具) 신부와 《조선어 복음》(Koreanische EvangelienㅡHarmonie)을 1941년에 출판하였고, 한국인 수녀들을 위해 《수녀 공과》(Offizium Divi-num)와 《수녀 기구 예절서》를 간행하였다. 차일라이스 신부는 러시아 군대의 진주와 일본 군대퇴각, 중국 공산당에 의한 세 차례의 청산 · 남평 수용소생활을 거쳐, 1949년 12월 12일 12명의 일행과 함께선교지 연길을 떠나 1950년 1월 12일 본국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1957년 5월 28일 세상을 떠나 뮌스터슈 바르자흐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연길교구) ※ 참고문헌  왜관 수도원 편,《옛 등걸에 새 순이》, 분도출판사,1984/ W. Hermenegild, 정학근 역, 《승리의 십자가》, 분도출판사,197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위 원회, 1991/ 부산성 베네딕도 수녀원 편, 《은혜의 60년》, 1995/ A. Kaspar · P. Bergerhrsg., Hwan Gab 60 Jahre(還甲), Münsterschawarzch, 1973/ F. Rennerhrsg., Der finfarmige Leuchter, Bd. Ⅱ, 1971/ D. Drexl hrsg., Necrolo-gium, St. Ottilien, 2000.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