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중국 요동(遼東) 지역 사적지. 중국요녕성(遼寧省) 장하시(莊河市) 소재. 차쿠(Tcha-keou)는 마을 이름으로 지금의 이름은 용화산(蓉花山)1838년에 설정된 요동 대목구(1840년 만주 대목구로개칭)의 사목 거점으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첫 사목지 중 한 곳이다.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인1868년 12월 제2차 조선 대목구 성직자 회의(synode)가이곳에서 개최되었고, 다음해 초에는 조선 선교사들에게재치권(jurisdictio)이 이양되면서 조선 입국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차쿠는 그 북방에 위치한 양관(陽關, 현 개주시 羅家店)과 함께 일찍이 한국 천주교회와 관련을 맺은 곳이다.1842년 마카오를 떠난 조선 신학생 최양업과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이 태장하(太莊河, 현 장하)에 상륙한 뒤백가점(白家店)과 차쿠 · 양관을 거쳐 만주 북쪽의 소팔가자(小八家子)로 갔었고, 이후에도 차쿠를 만주 여행의경유지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파리 외방전교회의 초대 요동 대목구장 베롤(Verrolles, 方若望) 주교는 1840년 양관에 주교좌 성당을 건립한 뒤 이곳 차쿠에도 '눈의 성모 성당' (聖母雪之殿聖堂, Notre Dame desNeiges)을 건립하고 그 일대의 사목 거점으로 삼았다. 또훗날 제4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되는 베 르뇌(Berneux, 張敬一) 신부는 1844년 이래 양관 성당에 거처하면서 사목하다가 1849년에 한때 차쿠 성당에서 거처하였다. 바로 이 해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만주에 도착한 최양업 신부는 1849년 5월부터 12월 3일 조선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7개월 동안 베르뇌 신부의 보좌로양관과 차쿠에서 사목하였다. 차쿠 성당은 1866년의 병인박해가 시작된 뒤 다시 한국 천주교회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요동 지역에서도이 지역이 조선과 가장 가깝고, 1867년 이래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박해로 조선에 입국하지 못한 채 이 차쿠 성당에 거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선교사로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리샤르(Richard, 蔡)신부와 마르티노(Martineau, 南) 신부 그리고 훗날 제7대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되는 블랑(Blanc, 白圭三) 신부등이 있었다. 이어 조선을 탈출한 칼레(Calais, 姜) 신부가 합류하였고, 훗날 제6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되는리델(Ridel, 李福明) 신부도 1868년 말과 1869년 4월말에는 차쿠로 와서 조선 입국을 모색하였다. 그에 앞서 리델 신부는 조선 대목구의 장상으로 조선선교사들과 함께 1868년 12월 차쿠에 모여 제2차 조선대목구 성직자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 조선 입국과 전교, 전교 후의 사목 방향 등이 결의되었다. 이어리델 신부는 1869년 초 만주 대목구장 베롤 주교와 협의하여 차쿠 지역의 재치권을 이양받았다. 그 결과 만주 대목구의 일부요, 요동 교회의 중심지인 차쿠 지역의 사목 관할권이 조선의 선교사들에게 위임되면서 여기에 조선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이후 1870년 로마에서 주교성성식을 갖고 차쿠로 돌아온 리델 주교는 차쿠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리샤르 신부를 차쿠 본당 주임으로 임명하여 대표부 일과 경리를 맡아 보도록 하였다. 이곳 신학교에서는 1872년 이래 중국인 배 야고보, 민 다미아노등이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한국인 요셉과 도미니코도이곳에서 공부하다가 1876년에 귀국하였다. 이후 리델 주교는 1876년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자 다시 조선 입국을 시도하여 블랑 신부와 드게트(Deguette,崔東鎮) 신부를 입국시키고, 다음해에는 그 자신이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 및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와함께 입국하였다. 그러나 1878년에 체포되어 중국으로추방되었고, 다시 차쿠로 돌아와 《한불자전》(韓佛字典)과 《한어문전》(韓語文典)의 편찬에 노력하던 중 차쿠의대표부를 일본으로 이전하기 위해 1881년 일본을 방문하였다가 나가사키(長崎)에서 발병하여 프랑스로 귀국한 뒤, 1884년 고향 반(Vannes)에서 선종하였다. 이처럼조선 대표부가 나가사키로 이전되면서 조선 선교사들이갖고 있던 차쿠 지역의 재치권도 자연 소멸되었다. (→리델 ; 최양업) ※ 참고문헌 A. Launay, Mgr. Verrolles et la Mission de Mand-chourie, Paris, 1895/ 柳洪烈, 《한국 천주교회사》 하, 가톨릭출판사,1975/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리델 문서》, 1991/ 一, 《리델 문서I》, 1994/ 車基眞,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선교 활동의 배경>, 《교회사 연구》 14집, 1999/ 一, <중국 안의 한국 천주교회 사적지 -양관 · 차쿠의 위치 및 교회사적 의미>, 《교회와 역사》 290호,1999. 〔車基眞〕
차쿠 岔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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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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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좌 성당으로 건립된 당시의 양관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