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유프라시아 펠티에(Marie Euphrasie Pelletier, 1796~1868) 수녀가 1835년 1월 16일 프랑스 앙제(Angers)에서 절망 속에 있는 여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한 수녀회로, 에우데스(Joannes Eudes, 1601~1680) 신부가 1641년 창설한 애덕 성모 수녀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총원은로마에 있고, 한국 지부는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194번지에 있다.
〔설립과 성장〕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한 펠티에 수녀는 1796년 7월 31일 프랑스 서부의 작은 섬 누아무티에(Noirmotier)에서 태어났다. 1810년 우르술라회(Con-gregation des Ursulines)에서 운영하던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학교 옆에 위치해 있던 애덕 성모 수녀회 수녀들의 활동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 1814년 10월 20일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817년 9월 9일 서원한 뒤 '유프라시아' 라는 이름을 받고 1825년에 투르(Tours)에 위치한 수녀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수도 성소를 받은 여성들이 봉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상 수녀회인 '성 막달레나 수녀회' (현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유프라시아 원장 수녀는 수녀원의 활동들이 활성화되고 성소자가 증가하자 새 수녀원을 창설하고자 하였는데, 마침 이때 앙제의 주교로부터 그 도시에 수녀원을 설립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에1829년 5월 5명의 수녀와 함께 현재 수녀회의 모원으로사용되고 있는 시의 서남쪽에 건물을 마련하고 '앙제의착한 목자 애덕 성모 수녀원' 을 설립하였다. 유프라시아원장 수녀는 몇 달간 그곳에서 머물며 새로 설립된 수녀원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829년 7월 성 바오로의 마리아 수녀를 앙제의 원장으로 임명하고 투르로 돌아와 원장 수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앙제 수녀원은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어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수녀원의 수녀들을 비롯한 앙제 교구 주교와 수녀회의 일에 협조하던 신부들은 유프라시아 원장 수녀에게 앙제로 와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유프라시아 수녀는1831년 5월 18일, 총회에서 수도회 예식에 따라 직책을내놓은 뒤 앙제로 갔다. 이후 유프라시아 원장 수녀를 비롯한 수녀들은 수녀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고, 앙제수녀원은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점차 '착한 목자 수녀회' 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르망(Le Mans) 교구를 시작으로 여러 교구로부터 수녀원을 세워 줄 것을 요청받게 되자, 유프라시아 수녀는 지방 주교의 관할 아래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체제로는 수녀원이 지향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총장 제도를 설립하고자 하였다.투르를 비롯한 여러 수녀회에서 유프라시아 수녀의 뜻에반대하여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착한 목자 수녀회는 1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로부 터 인준을 받았다. 수녀회는 앙제 수녀원을 모원으로 국제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이 해를 창립 연도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수녀회는 이후 프랑스의 20여 개 지역에 창설되었고,국경을 넘어 로마 · 이탈리아 · 벨기에 · 독일 · 영국 · 오스트리아 · 미국 · 캐나다 등지에도 창설되었다. 2002년현재 68개국에서 4,300여 명의 착한 목자 활동 수녀들과 660여 명의 관상 수녀들이 한 사람은 온 세상보다더 소중하다' 는 모토 아래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착한 목자 수녀회 영성의 중심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인성, 특히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에 있다. 회원들은 "보아라, 나의양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 양떼가 마구 흩어지는 날, 목자가 제 양떼를 돌보듯이, 나는 내 양떼를 돌보리라. 먹구름이 덮어 어두울지라도 사방 흩어진 곳에서 찾아오리라.··· 내가 몸소 내 양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몸소 내 양떼를 쉬게 하리라.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나도록 잘 먹여 주고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구실을 다 하리라"(에제 34, 11-16)라고 한 에제키엘 예언서에 나타나 있는 목자의 모습처럼, 하느님 자비의 체험을 통해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들 가운데서 착한 목자 이신 예수님의 현존이 되고자 노력한다. 또한 착한 목자 수녀들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정결 · 청빈 · 순명 서원 외에 제4 서원인 '열성(熱誠) 서원' 을 한다. 열성의 중요한 특징은 각 개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모상을 소중히 여기고, 각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구원 계획을 인식하는 것이다. 착한 목자 수녀들은 이 열성 서원을 통하여 구해야 할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예언자적인 용기를 가지고 자비와 화해를 전달하며 자신을 투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활동〕 한국의 착한 목자 수녀회는 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렬(韓珍烈, 베드로) 주교의 요청으로 1966년 5월 19일 필리핀과 중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미국 관구(管區) 소속의 로즈 버지니아 헤이스(Rose Virginia Hayes) 수녀와 안나 마리 월리그(Ama Ma-rie Willig) 수녀가 입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후에 입국한 수녀들과 함께 한국말을 배우면서, 미군 부대가 주둔하는 전라도 옥봉에서 가난한 소녀들을 대상으로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1968년 옥봉에 초가로 된수녀원을 마련한 수녀들은 소녀들이 윤락의 길로 빠지는것을 막기 위해 양재와 미용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 학교와 기숙사를 마련하였고, 혼혈인들을 위한 사목도 시작하였다. 홍콩 · 마카오와 함께 필리핀 관구에 속해 있던한국의 수녀원은 1973년 이들과 분리되어 미얀마 · 태 국 · 베트남과 함께 극동 관구에 속하게 되었다. 다양한활동을 수행하던 수녀회는 앞으로의 사도직 확대를 고려하여 1973년 큰 도시로 수녀원을 이전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공장 밀집 지역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 2가의 부지를 매입하여 수녀원과 사도직 활동을 위한 건물을 신축하였다. 1976년에는 옥봉의 기술 학교를 폐쇄하고 모든 건물을 전주교구로 이관한 뒤, 서울대교구로 진출하였다. 서울대교구로 옮긴 뒤 주로 근로 여성들의 휴식처를제공하는 사목 활동을 수행하던 수녀회는 휴식처를 이용하는 여성들 중 기숙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성수동 근로자 휴식처에 근로 여성 기숙사인 '마리아 자매원' 을 개원하였다. 또한 1977년에는신촌에 미혼모를 위한 '마리아의 집' 을 개원하였고, 점차 이용자가 증가하자 집의 증축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춘천교구 스튜어트(T.Stewart, 토마스) 주교가 수80녀회를 초청하자, 1979년 마리아의 집을 춘천 교육원으로 옮겼다. 1985년 춘천시 석사동 194번지에 새 건물을 마련하여 수녀원과 마리아의 집을 이전하였고, 1989년 11월에는 춘천 석사동 수녀원 부지에 본원 및 수련원을 추가로 완공하여 1994년 8월부터 성수동 수련원을그곳으로 이전하였다. 1996년부터는 가출 소녀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착한 목자의 집' 을 운영하고 있다. '마리아의 집' 의 후속 프로그램으로서 19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유프라시아의 집' 은 아기를 입양 보낸 10대 ·20대 초반 미혼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한 중장기쉼터이다. 또한 춘천 가톨릭 사회 복지회의 천주교 여성상담 전화를 위탁받아 가정 폭력 예방 상담을 해 오던'여성 1366 긴급 상담' 은 2001년 '강원 여성 1366센터' 로 승격되었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상담을 해 주고 있으며, 필요 시에는 쉼터 ·전문 상담소 · 경찰 · 병원 등과 연계해 주고 있다. 본당및 이주민 사목 활동은 2003년 현재 서울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 본당과 대구 군종교구 무열대 본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의 수녀원에서는 필리핀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을 시작하였고, 2001년부터 외국인매매춘 여성을 위한 쉼터인 '벗들의 집' 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6월에는 마리아의 집의 미혼모들 가운데 아기를 양육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양육모의 집인 '요셉의 집' 을 시작하였다. 2003년 3월 현재 착한 목자 수녀회 회원은 종신 서원자 23(한국인 20, 외국인 3),유기 서원자 15, 수련자 2, 지 · 청원자 3명으로, 총 43명의 회원이 있다.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 수녀회는 같은 영성 아래 착한 목자 수녀회와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ContemplativeSisters of the Good Shepherd)의 두 가지 생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착한 목자 활동 수녀들이 사회로부터 상처 입은사람들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한다고 하면, 착한 목자 관상 수녀들은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한다. 한국의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는 1993년 춘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고독 과 기도 안에서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 특히 착한 목자 수녀회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다. 그들은 침묵 중에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묵주 만들기, 채소밭 일구기, 수놓기 등의 단순한 노동을 하고, 한편으로는 하느님 안에 머물고싶어 고요한 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작은 피정의 집도운영하고 있다. 2003년 3월 현재 착한 목자 관상 수녀회 회원은 종신 서원자 3(한국인 1, 외국인 2), 유기 서원자 4, 수련자 1, 지 · 청원자 2명으로, 총 10명의 회원이있다. ※ 참고문헌 착한 목자 수녀회 엮음, 《착한 목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2/ G.F. Powers, 착한 목자 수녀회 역, 《착한목자를 따라서》, 가톨릭 출판사, 1996/ 《교회와 역사》 336호, 2003.〔착한 목자 수녀회편찬실〕
착한 목자 수녀회 牧者修女會 〔영〕Congregation of Our Lady of Charity of the Good Shepherd(R.G.S.) 〔프]Bon Pa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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