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부터 전례에 사용되는 시편을 제외한, 성서의 서정적 가사, 곧 노래. 시편에 속하지 않는 전례 노래로 성서 가사에 의한 노래라는 점에서, 새롭게 작시된 영성적 · 전례적 가사에 의한 찬미가(Hymmus)와는 다르다.그러나 찬가, 찬미가, 시편은 성서적 · 전례적 내용과 시(詩) 형식의 구조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의 미〕 찬가는 일차적으로 신약성서의 세 가지 노래를 의미한다. 일명 '복음 찬가' (Canticum de Evangelia)혹은 줄여서 '신약 찬가' 라 불리는 이 노래들은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의 노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 루가 1, 46-55), 아들 요한에게 할례 예식을 거행한 후 노래한 즈가리야의 노래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Benedictus Dominus Deus Israel, 루가1, 68-79) 그리고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부른 시므온의 노래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Nunc dimittis, 루가2. 29-32) 등이다. 경우에 따라 이 세 가지에 사은 찬미가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Te Deum)이 추가되기도한다. 이 세 편의 복음 찬가들은 늘 안티포나(antiphona,후렴)와 함께 노래되며,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끝기도(Completorium)의 절정을 이룬다 한편 구약성서의 찬가들은 신약 찬가의 탄생 이전부터, 이미 유대교 전례에서 중요한 기능을 행사하였다. 초대 교회는 부활 저녁 미사에서 모세의 찬가 <주님께 노래 불러라>(Cantemus Domino)를 부르는 등 구약 찬가들을 대축일 전야의 미사 독서 후에 응답송적(mesponsorial)으로, 즉 독창자와 합창단의 교창(交唱)으로 연주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 안에 흡수 · 고정되었다. 베네딕도(480?~544?)는 구약 찬가들이 이미 로마 시대의 아침 기도에서 불렸고(《베네딕도 규칙서》 13장),4세기 후반과 5세기초 시간 전례의 체계화와 맞물리며널리 보급 · 실천되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찬가는 부활저녁 축제 등 몇 미사를 제외하면, 항상 시간 전례에서핵심 구성 요소로 사용되었다. 〔종류와 내용〕 《베네딕도 규칙서》(Regula Sancti Bene-dicti)는 예컨대, 주일 새벽 기도(Mantinum)에서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찬가들이(11장) 함께 불렸다는 등 신구 약 찬가들이 교회와 수도회의 전례 생활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이것은 먼저 전례력을일반 시기와 속죄 시기로 나누고, 한 주간을 전례 주기로정하여 매일 서로 다른 시편과 찬가를 노래하도록 하였다. 즉 아침 기도의 경우 주일에는 여섯 개의 시편을, 주중에는 다섯 개의 시편을 노래하되, 마지막 두 번째에 구약 찬가를 부르도록 하였다(12~13장) . 이러한 그의 찬가지침은 거의 그대로 지켜졌다. 현행 시간 전례(1985)도이를 근간으로 한다. 물론 후자는 전례 주기를 1주간에서 4주간으로 확대하고, 그 주기의 모든 평일 아침 기도에 고유한 찬가를 허락하며,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 찬가들뿐 아니라 교황 비오 10세(1903~1914)가도입한 찬가들 그리고 구약의 여러 책에서 발췌한 새로운 찬가들을 아침 기도에 추가, 삽입하였다. 마찬가지로현행 저녁 기도에는 신약의 서간이나 묵시록에서 선택한새로운 많은 찬가들이 포함된다. 규칙서가 언급하는 일반 시기의 찬가 지침을 아래에소개한다. 이 지침이 정한 요일별 구약 찬가들은 거의 그대로 현행 시간 전례의 제1 주간 아침 찬가로 사용된다.옛 지침과 현행의 작은 차이들은 화살표 '→' 뒤에 표기한다. 즉 주일은 세 소년의 찬가 <모든 피조물들아, 주님을 찬미하라>의 둘째 및 셋째 부분(Benedicite, omnia ope-ra Domini, Domino : 다니 3, 57-90 → 3, 57-88. 56), 월요일은 다윗의 찬가 <오직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Bene-dictus es Deus : 1역대 29, 10-13), 화요일은 토비트의 찬 가 <주여 당신은 너무나도 크시고>(Magnus es Domine :토비 13, 1-10 → 13, 1-8), 수요일은 유딧의 찬가 <주님께 찬미가를 부르자>(Hymnum cantemus Domino : 유딧16, 15-21 → 16, 1-2. 13-15), 목요일은 예레미야의 찬가 <주님의 말을 들으라>(Audite verbum Domini : 예레 31,10-14), 금요일은 이사야의 찬가 <당신은 진정 숨어 계신 하느님>(Vere tul es Deus : 이사 45, 15-25), 토요일은벤 시라의 <하느님 저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Mi-serere nostri Deus omnium : 집회 36, 1-19) → 홍해를 건넌다음에 부른 모세의 찬가 <주님을 찬양하세>(출애 15,1-4ㄱ. 8-13. 17-18) 등이다. 그리고 속죄 시기의 전통 찬가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현행 제2~제4 주간의 주요 찬가들로 전승된다. 즉주일은 세 소년의 찬가에서 첫 부분 <우리 조상들의 주하느님 찬미 받으소서>(Benedictus es Domine : 다니 3,52-56), 월요일은 이사야의 찬가 <주여 당신께 감사드리오니>(Confitebor tibi Domine : 이사 12, 1-6), 화요일은 히즈키야의 찬가 〈나는 말했습니다)(Egodixi : 이사 38, 10-20), 수요일은 안나의 찬가 <내 마음은 주님 생각으로 울렁거리고>(Exultavit cor meum : 1사무 2. 1-10), 목요일은모세의 찬가1 <주님께 노래 불러라>(출애 15, 1-19), 금요일은 하바국의 찬가 <주여 나는 당신의 명성을 듣사옵고>(Domine audi auditionem meam : 하바 3, 2-19), 토요일은 모세의 찬가2 <하늘아 들어라>(Audite caeli : 신명 32,1-43) 등이다. 베네딕도는 즈가리야의 노래 <베네딕투스>(Benedictus,찬미하여라)를 중세의 전례와 수도회 전통에 따라 아침기도의 마지막에, 같은 이유로 마리아의 노래인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는 저녁 기도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마침 기도에는 예외적으로 복음 찬가를 요청하지 않았다. 시므온의 노래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가 현행 끝기도에 삽입된 것은 전적으로 중세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본래 수도회의 찬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시므온의 노래가 연주 실제에서 언급한 다른두 편의 복음 찬가들과 달랐다는 데서도 분명하다. 시므온의 노래는 구약 찬가와 마찬가지로, 시편과 같은 연주 방식으로 곧 시편창(Psalmody)이라는 특정한 음악적 구조로, 고유한 안티포나 없이 대창송적(antiphonal)으로, 즉 독창자 없이 두 합창단의 교창으로 노래된다.반면 마리아의 노래와 즈가리야의 노래는 고유한 안티포나와 함께 특히 선율적인 장엄한 시편 성가 구조로 불린다. 한편 이 세 편의 복음 찬가들은 똑같이 모든 시행을시작 선율(Initum)로 반복한다. 이는 두 번째 시행부터시작 선율을 포기하고, 테너음에서 출발하는 구약 찬가들과 다른 점이다. 물론 신약성서의 복음 찬가들이 시간전례의 각 기도 시간을 절정으로 이끈다는 점도 동일하다. 찬가들은 16세기 이후 특히 영국 작곡가들에 의해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5세기 이후의 성서 필사본들은 9~14편의 찬가들을시편의 부록으로, 시편과 묶어서 편집하곤 하였다. 이는찬가들의 폭넓은 사용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찬가들은 중세에 수도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기도 노래로 보존, 육성되었다. 찬가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교황 비오 10세는 비잔틴 교회가 찬가를9편으로 축소시켜 아침 기도에 사용한 것(알렉산드리아판)을, 다시 14편으로 확대하여 월요일~금요일의 아침기도에 나누어 부르도록 하였다(1911). 또한 교황 비오12세(1939~1958)는 이 찬가를 시편과 함께 라틴어로 새롭게 번역하였다(1945) 현재의 찬가는 시편, 찬미가와함께 현행 시간 전례의 핵심적 구성 요소를 이룬다. 한편찬가는 루터교와 칼뱅교 교회 음악에서도 주요 음악 자산으로 이어졌다. (→ 끝기도 ; 마리아의 노래 ; 시간 전례 ; 시므온의 노래 ; 아침 기도 ; 저녁 기도 ; 즈가리야의 노래 ; ← 찬미가)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 J.Mckinnon, 《MGG》 2, Bärenreiter, 1995, pp. 378~379/ D.L. Thieme · M.Tilmouth 외, 《NGDMM》 3-13, Macmillan, 1980, pp. 497~501, 736/ W.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Sachteil, Schott's Söhne, 1967, p. 142.〔趙善宇〕 텍스트를 입력하세요 (종료: Exit): 시편, 찬가(Canticum)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 루며, 새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해 주 로 시간 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 가사의 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 〔정 의〕 찬미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힘노스' (ὕμνος)는 신들과 영웅들을 칭송하는 축제적 성격의 노래로, 예배 의 틀 안에서 고양된 언어 형식으로 불렸다. 가사는 이야 기, 탄식, 서약, 찬양, 숭배 등의 내용을 포괄하였다. 아 우구스티노(354~430)는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 mos, 392~416)에서 찬미가를 "하느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라고 하였다. "찬미가의 찬양은 노래로 불린다. 찬 미가의 노래는 하느님을 찬양한다. 만일 찬양이 하느님 을 향하지 않으면 찬미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찬양이 하느님을 향하나 노래로 부르지 않으면 찬미가라 부를 수 없닡� 찬미가가 되기 위해서는 '찬양' , '하 느님' , '노래' 라는 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라틴어 찬미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이 정의는 스페인의 이시 도로(560?~636)에 의해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찬미가는 찬양 노래다. 그리스어 힘노스 는 라틴어로 찬양(laus)이다. 그래서 찬미가는 기쁨의 찬 양 노래여야 한다. 당연히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여야 한다."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룬 다. 이 세 가지 교회 노래는 음악적으로, 그러나 무엇보 다 가사의 출처에 의해 구분된다(에페 5, 19 : 골로 3, 16). 성서의 '영가' (靈歌)는 라틴어 '칸티쿰' (canticum)을 옮 긴 것이다. 시편은 구약성서의 150개 시편을, 찬가는 시 편을 제외한 신구약의 성서 구절을, 그리고 찬미가는 초 대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작시된 라틴어 산문시를 가사로 하여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야훼를 찬양하던 시편은 현 재도 시편 성가(Psalmodia)라는 음악적 틀로 낭송된다. 음악은 시행(詩行)의 구조를 따른다. 찬가와 찬미가는 이 시편 성가에서 발전한 본격적인 의미의 서정적인 노 래들이다. 찬가가 홍해를 무사히 건네 준 야훼께 이스라 엘 백성을 대신하여 노래한 미리암의 노래 <야훼를 찬양 하여라>(출애 15, 20-21)에서부터 마리아의 노래 <내 영 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 루가 1, 46-55) 등으로 구약과 신약을 잇는 성서적인 노래라면, 찬미가는 신약 의 교회에서 새로 창작된 영성적 · 전례적 내용의 노래 다. 후자는 가사의 절수에 따라 선율을 반복한다. 찬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례와 음악에 대한 시대적 요청과 맞물리며 간혹 행렬 음악이나 미사 음악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사실, 찬미가는 라틴어 전례에서 사용되는 교회적 가사들과 이들의 노래 작업으로 계속 그 영역을 넓히며 고대와 그리스도교회 그리고 동방 교 회와 서방 교회를 잇는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 초대 교회가 찬미가를 자주 '다윗의 찬미가' 로 불렀다는 언급에서도, 그리고 이 언급이 찬미가가 정신적 · 음악적 으로 다윗의 시편과 이를 노래하던 유대교의 시편 성가 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 난다. 실제로 광의의 찬미가는 앞서 서로 다른 것으로 언 급한 시편과 찬가, 그리고 9세기 이후 새로 나타난 트로 푸스(tropus)와 딸림 노래(sequentia) 등의 그레고리오 성 가, 나아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민족 언어에 의한 모든 자 국어 교회 노래를 포괄한다. 그래서 찬미가는 이들 전체 를 엮는 상위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협의의 찬미가는 새 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한, 주로 시간 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 가사의 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를 의미한다. 이것은 후에 그리스 도교 공동체 성가(현행 《가톨릭 성가》)의 전형이 되었다. 〔역사와 용도〕 찬미가는 시리아의 교회 학자인 에프렘 (306?~373)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는 푸아티에의 힐라 리오(315?~367)와 함께 많은 신작 찬미가를 발표하며 동 방 및 서방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집트의 옥 시린코스에서 발견된 3세기경의 그리스어 찬미가는 현 존하는 몇 개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데, 선법이나 리듬 면에서 그리스 문학의 찬미가를 연상시킨다. 특히 신을 부르며 모시는 초대(invocatio) 신의 업적을 기리는 칭송(pars epica, 서사적 부분) 그리고 필요한 것을 청원하 는 기도(preces)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기원전 8세기경 에 활동한 그리스의 호메로스(Homeros)가 지은 《일리아 스》(Iias)에서 나오는ㅡ사제의 기도 양식과 거의 동일하 다. 이 특징은 호메로스 이후의 문학적 · 예배적 찬미가 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라틴어 가사에 의한 서방 교회의 찬미가는 동방 교회 보다 한 세기 늦게 암브로시오(339~397)에 의해 시작되 었다. <세상의 영원한 창조자여>(Aeteme rerum conditor), 사은 찬미가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Te Deum), <만물 의 창조자 하느님>(Deus creator omnium) 그리고 <인류의 구세주여 오소서>(Veni redemptor gentium), <아버지 영광 의 광채>(Splendor paternae gloriae) 등 그의 14편의 찬미 가는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높이 평가되며, 찬미가의 전 형으로 이어졌다. 찬미가는 5~6세기의 대표적 작가였 던 포루투나토(V. Fotunato, 540?~600?)의 <내 입술이여 찬미하라>(Pange lingua) 스페인 출신의 프루텐시오(Pu- dentius, 348~405?)를 거쳐, 카롤링거 왕조 시대 바오로 부제의 <요한 찬가>(ut queant laxis), 마우로(R. Maurus)의 <오소서 성령�Veni creator spiritus), 12세기 클레르 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의 <감미로운 예수>(Jesu dulcis memoria) 그리고 14세기 야코포네(Jacopone da To- di, 1230?~1306)의 <고통의 어머니께서 서 계셨다>(Sta- bat mater dolorosa)까지 약 1,000년 동안 교회 안에서, 특 히 수도원을 중심으로 창작되었다. 그러나 작가들은 거 의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찬미가는 3세기부터 시간 전례에 사용되었다. 5세기 에는 이미 다양한 찬미가들이 여러 지역 교회의 전례에 서 불렸다. 베네덕도(480?~547?)는 《베네딕도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에서 찬미가를 시간 전례의 매 기 도 시간에 노래하라고 하였다. 그로 인해 찬미가는 한동 안 '성무 일도 노래' 로 좁혀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넓은 의미로는 트로푸스, 딸림 노래 등 라틴어 가사의 모든 장 절적(章節的) 교회 시들을 포괄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 른 찬미가는 알려진 것만도 약 3,500곡에 달하였다. 교 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찬미가가 성서 구절을 가 사로 한 찬가와 달리 새로 작시된 가사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찬미가의 전례적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 의 사후에 찬미가는 《찬미가집)(Hymmminim)이란 별도의 책에 수록되는 등 가치가 재평가되며 로마 교회의 시간 전례 음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는 하느님을 찬양 하는 가사가 비록 성서를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성 서의 이해를 돕고 전례의 완성에 기여한다는 전례학적 시각에서였다. 교황 비오 2세(1458~1464)는 재속 사제들을 위한 《성 무 일도서>(Brevianium)의 개혁을 감행하였다. 이 개혁은 교황 레오 10세(1513~1521)로 이어지며 언어(말씀)와 음 악의 관계를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중세로부 터 전승된 찬미가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내용적으로 수준 이하거나 왜곡된 많은 찬미가들을 폐기시켰다. 시 간 전례의 품위를 높이려는 찬미가 개혁 운동은 교황 우 르바노 8세(1623~1644) 등을 거쳐 마침내 1971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노선에 따라 새로운 《성무 일도 서》를 발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앞선 많은 개 혁들을 수용하면서 보완하였다. 무엇보다 시간 전례에 자국어 찬미가의 사용을 허락하였다. 공의회는 이러한 민족 언어 찬미가가 라틴어 찬미가의 시적 언어와 장절 노래 형식에 상응하고, 나아가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 와 자국어 교회 노래 사이를 중재할 수 있기를 원하였다. 현재 찬미가는 시편보다 교회의 전례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훨씬 적다. 그러나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 전례의 중심을 이루며 각 시간경과 축일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이렇게 찬미가는 특히 대중적 · 문학적 아 름다움으로 하느님의 영광 찬미와 개인의 성화라는 본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한다. 모든 찬미가는 전통적인 규범에 따라 영광송(Doxologia)으로 끝맺는다. 〔연주의 실제〕 찬미가는 전례서, 시편 성가, 안티포나 모음집, 성무 일도서, 미사 경본, 찬미가집 등 여러 분야 의 수사본에 흩어져 전해진다. 악보와 함께 기록된 가장 오래된 서방 교회의 라틴어 찬미가는 1000년 전후의 것 이다. 이는 4세기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찬미가 이후 약 600년 동안 찬미가가 구전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현재 까지 알려진 10~18세기의 찬미가는 약 550개다. 이들 은 500여 개 수사본과 인쇄본, 1년 주기의 찬미가집(예 를 들어 P. Abelard)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이 찬미가들의 약 2/3 정도가 암브로시오 찬미가처럼 얌부스 리듬이다. 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가사를 새 음악 대신 옛 선율에 적 용하는 사례가 매우 잦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옛 선율 이 특정한 기도 시간 혹은 특정한 내용 진술과 오랫동안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전례 시간과 가사 내 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자주 그리고 아주 자연스 럽게 옛 표준 선율들을 차용하곤 하였음을 알려 준다. 찬미가의 구전은 가사와 음악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 의 전체' 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물론 미비한 기 보(記譜) 체계 때문이지만, 학문이 아직 세분화되지 않 았던 중세에 시인이 바로 음악가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 지 않다. 1960년대의 찬가학(Hymnologie)은 찬미가를 노래로 파악한다. 찬가학은 찬미가 가사 · 전례 적 의미만을 규명하던 차원을 넘어, 음악학과의 공동 작 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찬미가의 중심은 교회 음악의 일 반 규범처럼, 선율(음악)보다 가사(말씀)에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음악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미가를 예술적 차원으로 높여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 명 찬미가는 더이상 그레고리오 성가의 범주 안에서 가 사와 분리된 음악만으로 접근될 수는 없다. 찬미가는 가 사뿐 아니라 노래 자체, 기원과 역사, 작곡가 및 편곡자, 연주의 실제 등에 대한 음악적 고찰을 통해 올바로 이해 될 수 있다. 찬미가는 10세기경부터 그레고리오 성가의 네우마 (neuma) 기보 체계로 기록되어 전승되었다. 기보를 모르 던 초기 밀라노 찬미가들은 얌부스 리듬, 4줄 구조, 8절 가사, 단성부, 신자 공동체를 위한 평이한 선율의 대중적 장절 노래였다. 이 특징들은 <탄툼 에르고>(Tantum ergo), <판제 링과>(Pange lingua), <오소서 성령님>(Ve- ni Creator) 등 《리베르 우수알리스》(Liber Usualis, Vatican, 1954)가 함축하고 있는 133곡의 초기 찬미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율은 각 음절이 한 음(punctum) 내지 두 음(pes,clivis)의 기본적인 네우마들로 구성되어 악보 없 이도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다. 또한 간혹 종지를 준비 하며 세 음(torculus)의 네우마가 등장한다. 선율은 가사 의 절수에 따라 응답송적 교창으로 반복되었다. 중요한 것은 찬미가의 선율적 단순성이-가끔은 친숙한 선율을 대입하므로-긴 가사를 쉽게 암기하게 하며, 4세기부터 오늘까지 찬믄�리 애창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찬미가는 전례의 장엄성과 예술 성을 대중적 기반 위에서 구현하려고 태어났음을 확인시 켜 준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만든 한글 찬미가였 다.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는 자신이 지은 것 혹은 기존의 천주가사들을 우리의 민요 선율에 맞추어 노래하 도록 하였다. 이 방법은 무엇보다 당시에는 무척 생소한 천주가사의 교리 내용을 큰 거부감 없이 쉽고 흥미롭게 접근케 하여 신자들이 빠르게 암기하고 자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천주가사는, 서양의 찬미가와 동일한, 우리 의 찬미 노래였다. 그러나 특히 서울 대목구의 서양식 한 글 성가집 《죠션어셩가》(1924)의 출판으로, 민요적 특성 때문에 기보를 포기하였던 천주가사는 교회 밖으로 내몰 렸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한국화를 위한 최 초의 탁월한, 그러나 아쉽게도 실패한 시도였다. 〔다성부 찬미가〕 찬미가는 9세기부터 진행된 그레고 리오 성가의 다성화 과정을 동행하며 14세기에 폴리포 니(polyphony) 찬미가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단성부의 기 존 선율을 사용하여 새롭게 작곡된 합창 음악으로, 단성 부 찬미가보다 화려하고 장엄하였다. 그리고 하나 혹은 여러 성부에 장식되며 나타난 이 모티프는 15세기에 고 정 선율(cantus firmus)로 발전하였다. 뒤폐(G. Dufay, 1400?~1474)는 단성 찬미가를 고정 선율로 사용하며 다 성부 찬미가의 새 길을 열었다. 중세 교회의 시와 선율을 인본주의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1년 주기의 4~8성부 찬 미가는 이어지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영국 찬미가 의 전형이 되었다. 다성 찬미가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 하면, 모두 한 절씩 나누어 다성부와 단성부가 교대로 연 주되었다. 보존된 대부분의 다성 찬미가들은 시간 전례 의 저녁 기도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조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ez, 1440~1521)의 <바다의 별>(Ave maris stela)처럼, 처음부터 전승 가사를 전례 밖의 사용을 목 적으로 창작한 작품들은 더이상 찬미가가 아니라, 모테 트(motet)의 범주 안으로 수용되었다. 이렇게 찬미가는 모테트로, 그러나 곧 칸타타(cantata), 오라토리오(orato- rio) 등의 교향적 큰 형식으로 변화를 지속하였다. 그러나 협의의, 전례 음악으로서의 다성부 찬미가는 불과 한 세기 조금 더 지난 16세기 말 팔레스트리나 (G.P. da Palestrina, 1525~1594)에 의해서 창작 전통이 마 무리되었다. 17세기에 쓰여진 평범한 4성부 합창 찬미 가들이나, 악기를 동반한 1~2성부의 콘체르탄테(con- certante) 양식의 새로운 찬미가들은 예술성이 크게 떨어 지고, 18세기의 찬미가는 더이상 유명 작곡가들의 관심 을 끌지 못하였다. 뒤페가 시작하고 페스타(C. Festa, 1480~1545)와 빌라르트(A. Willaert, 1480/1490~1562) 등 을 거치며 발전하여 팔레스트리나에 의해서 마무리된 다 성부 찬미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르로 좁혀서 이해될 수 있다. 후에 작곡된 많은 찬미가들도 이들의 양식적 틀 을 고수하였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의 찬미가는 가톨릭의 보편적 성격 의 정교한 폴리포니와는 달리 자국 민요의 생명력을 흡 입하여 민족적 성격이 강하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이 작업은 라틴어 찬미가를 자국어 찬 미가로 옮긴 루터(M. Luther, 1483~1546)의 작업에서도 분 명히 드러난다. 그는 먼저 가사를 번역하고, 번역된 자국 어 가사에 민요풍의 새로운 음악을 입히는 과정으로 진 행하였다. 그의 대표적 독일어 찬미가는 자국어, 민요성 그리고 장절적 형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에 그는 음 악적 진지함을 권고하였다. 루터의 이러한 찬미가 정신 은 현재도 프로테스탄트 코랄(chorale, 합창곡)의 원초적 에너지로, 새로운 가사 및 음악 창작의 규범으로 작용한 다. (→ 그레고리오 성가 시간 전례 ; 시편 성가 ; 찬가 ; 천주가사)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 K. Schlager 외, 《MGG》 Sachteil 4, Bärenreiter, 1996, pp. 464~508/ K.G. Fellerer hrg., Geschichte der katholischen Kirchenmusik I, Baren- reiter, 1972, pp. 282~292/ W. Anderson 외, 《NGDMM》 8, Macmillan, 1980, pp. 836~851/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Sachteil, Schott's Söhne, 1967, pp. 383~386. 〔趙善字〕 ^D [전처리된 텍스트]: 시편, 찬가(Canticum)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루며, 새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해 주로 시간 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가사의 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 〔정 의〕 찬미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힘노스' (ὕμνος)는신들과 영웅들을 칭송하는 축제적 성격의 노래로, 예배의 틀 안에서 고양된 언어 형식으로 불렸다. 가사는 이야기, 탄식, 서약, 찬양, 숭배 등의 내용을 포괄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 392~416)에서 찬미가를 "하느님을 찬양하는 거룩한노래"라고 하였다. "찬미가의 찬양은 노래로 불린다. 찬미가의 노래는 하느님을 찬양한다. 만일 찬양이 하느님을 향하지 않으면 찬미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찬양이하느님을 향하나 노래로 부르지 않으면 찬미가라 부를수 없다. 그러므로 찬미가가 되기 위해서는 '찬양' , '하느님' , '노래' 라는 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라틴어찬미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이 정의는 스페인의 이시도로(560?~636)에 의해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져 오늘에이르고 있다. "찬미가는 찬양 노래다. 그리스어 힘노스는 라틴어로 찬양(laus)이다. 그래서 찬미가는 기쁨의 찬양 노래여야 한다. 당연히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여야한다."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룬다. 이 세 가지 교회 노래는 음악적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가사의 출처에 의해 구분된다(에페 5, 19 : 골로 3, 16).성서의 '영가' (靈歌)는 라틴어 '칸티쿰' (canticum)을 옮긴 것이다. 시편은 구약성서의 150개 시편을, 찬가는 시편을 제외한 신구약의 성서 구절을, 그리고 찬미가는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작시된 라틴어 산문시를 가사로하여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야훼를 찬양하던 시편은 현재도 시편 성가(Psalmodia)라는 음악적 틀로 낭송된다.음악은 시행(詩行)의 구조를 따른다. 찬가와 찬미가는이 시편 성가에서 발전한 본격적인 의미의 서정적인 노 래들이다. 찬가가 홍해를 무사히 건네 준 야훼께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노래한 미리암의 노래 <야훼를 찬양하여라>(출애 15, 20-21)에서부터 마리아의 노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 루가 1, 46-55) 등으로구약과 신약을 잇는 성서적인 노래라면, 찬미가는 신약의 교회에서 새로 창작된 영성적 · 전례적 내용의 노래다. 후자는 가사의 절수에 따라 선율을 반복한다. 찬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례와 음악에 대한 시대적요청과 맞물리며 간혹 행렬 음악이나 미사 음악 등으로다양하게 확대되었다. 사실, 찬미가는 라틴어 전례에서사용되는 교회적 가사들과 이들의 노래 작업으로 계속그 영역을 넓히며 고대와 그리스도교회 그리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잇는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초대 교회가 찬미가를 자주 '다윗의 찬미가' 로 불렀다는언급에서도, 그리고 이 언급이 찬미가가 정신적 · 음악적으로 다윗의 시편과 이를 노래하던 유대교의 시편 성가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실제로 광의의 찬미가는 앞서 서로 다른 것으로 언급한 시편과 찬가, 그리고 9세기 이후 새로 나타난 트로푸스(tropus)와 딸림 노래(sequentia) 등의 그레고리오 성가, 나아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민족 언어에 의한 모든 자국어 교회 노래를 포괄한다. 그래서 찬미가는 이들 전체를 엮는 상위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협의의 찬미가는 새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한, 주로 시간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 가사의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를 의미한다. 이것은 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성가(현행 《가톨릭 성가》)의 전형이 되었다. 〔역사와 용도〕 찬미가는 시리아의 교회 학자인 에프렘 (306?~373)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는 푸아티에의 힐라리오(315?~367)와 함께 많은 신작 찬미가를 발표하며 동방 및 서방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집트의 옥시린코스에서 발견된 3세기경의 그리스어 찬미가는 현존하는 몇 개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데, 선법이나리듬 면에서 그리스 문학의 찬미가를 연상시킨다. 특히신을 부르며 모시는 초대(invocatio) 신의 업적을 기리는칭송(pars epica, 서사적 부분) 그리고 필요한 것을 청원하는 기도(preces)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호메로스(Homeros)가 지은 《일리아스》(Iias)에서 나오는ㅡ사제의 기도 양식과 거의 동일하다. 이 특징은 호메로스 이후의 문학적 · 예배적 찬미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라틴어 가사에 의한 서방 교회의 찬미가는 동방 교회보다 한 세기 늦게 암브로시오(339~397)에 의해 시작되었다. <세상의 영원한 창조자여>(Aeteme rerum conditor),사은 찬미가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Te Deum), <만물의 창조자 하느님>(Deus creator omnium) 그리고 <인류의구세주여 오소서>(Veni redemptor gentium), <아버지 영광의 광채>(Splendor paternae gloriae) 등 그의 14편의 찬미가는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높이 평가되며, 찬미가의 전형으로 이어졌다. 찬미가는 5~6세기의 대표적 작가였던 포루투나토(V. Fotunato, 540?~600?)의 <내 입술이여찬미하라>(Pange lingua) 스페인 출신의 프루텐시오(Pu-dentius, 348~405?)를 거쳐, 카롤링거 왕조 시대 바오로부제의 <요한 찬가>(ut queant laxis), 마우로(R. Maurus)의<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 12세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의 <감미로운 예수>(Jesudulcis memoria) 그리고 14세기 야코포네(Jacopone da To-di, 1230?~1306)의 <고통의 어머니께서 서 계셨다>(Sta-bat mater dolorosa)까지 약 1,000년 동안 교회 안에서, 특히 수도원을 중심으로 창작되었다. 그러나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찬미가는 3세기부터 시간 전례에 사용되었다. 5세기에는 이미 다양한 찬미가들이 여러 지역 교회의 전례에서 불렸다. 베네덕도(480?~547?)는 《베네딕도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에서 찬미가를 시간 전례의 매 기도 시간에 노래하라고 하였다. 그로 인해 찬미가는 한동안 '성무 일도 노래' 로 좁혀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넓은의미로는 트로푸스, 딸림 노래 등 라틴어 가사의 모든 장절적(章節的) 교회 시들을 포괄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찬미가는 알려진 것만도 약 3,500곡에 달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찬미가가 성서 구절을 가사로 한 찬가와 달리 새로 작시된 가사에 의한 것이라는이유로, 찬미가의 전례적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찬미가는 《찬미가집)(Hymmminim)이란 별도의책에 수록되는 등 가치가 재평가되며 로마 교회의 시간전례 음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비록 성서를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성서의 이해를 돕고 전례의 완성에 기여한다는 전례학적시각에서였다. 교황 비오 2세(1458~1464)는 재속 사제들을 위한 《성무 일도서>(Brevianium)의 개혁을 감행하였다. 이 개혁은교황 레오 10세(1513~1521)로 이어지며 언어(말씀)와 음악의 관계를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중세로부터 전승된 찬미가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내용적으로수준 이하거나 왜곡된 많은 찬미가들을 폐기시켰다. 시간 전례의 품위를 높이려는 찬미가 개혁 운동은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 등을 거쳐 마침내 1971년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노선에 따라 새로운 《성무 일도서》를 발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앞선 많은 개혁들을 수용하면서 보완하였다. 무엇보다 시간 전례에자국어 찬미가의 사용을 허락하였다. 공의회는 이러한민족 언어 찬미가가 라틴어 찬미가의 시적 언어와 장절노래 형식에 상응하고, 나아가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자국어 교회 노래 사이를 중재할 수 있기를 원하였다.현재 찬미가는 시편보다 교회의 전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적다. 그러나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전례의 중심을 이루며 각 시간경과 축일의 성격을 가장잘 드러낸다. 이렇게 찬미가는 특히 대중적 ·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하느님의 영광 찬미와 개인의 성화라는 본래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한다. 모든 찬미가는 전통적인규범에 따라 영광송(Doxologia)으로 끝맺는다. 〔연주의 실제〕 찬미가는 전례서, 시편 성가, 안티포나모음집, 성무 일도서, 미사 경본, 찬미가집 등 여러 분야의 수사본에 흩어져 전해진다. 악보와 함께 기록된 가장오래된 서방 교회의 라틴어 찬미가는 1000년 전후의 것이다. 이는 4세기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찬미가 이후 약600년 동안 찬미가가 구전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현재까지 알려진 10~18세기의 찬미가는 약 550개다. 이들은 500여 개 수사본과 인쇄본, 1년 주기의 찬미가집(예를 들어 P. Abelard)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이 찬미가들의약 2/3 정도가 암브로시오 찬미가처럼 얌부스 리듬이다.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가사를 새 음악 대신 옛 선율에 적용하는 사례가 매우 잦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옛 선율이 특정한 기도 시간 혹은 특정한 내용 진술과 오랫동안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전례 시간과 가사 내 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자주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옛 표준 선율들을 차용하곤 하였음을 알려 준다. 찬미가의 구전은 가사와 음악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 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물론 미비한 기보(記譜) 체계 때문이지만, 학문이 아직 세분화되지 않았던 중세에 시인이 바로 음악가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의 찬가학(Hymnologie)은 찬미가를노래로 파악한다. 찬가학은 찬미가 가사의 신학적 · 전례적 의미만을 규명하던 차원을 넘어, 음악학과의 공동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찬미가의 중심은 교회 음악의 일반 규범처럼, 선율(음악)보다 가사(말씀)에 있다. 그러나이 규범은 음악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미가를예술적 차원으로 높여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 찬미가는 더이상 그레고리오 성가의 범주 안에서 가사와 분리된 음악만으로 접근될 수는 없다. 찬미가는 가사뿐 아니라 노래 자체, 기원과 역사, 작곡가 및 편곡자,연주의 실제 등에 대한 음악적 고찰을 통해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찬미가는 10세기경부터 그레고리오 성가의 네우마(neuma) 기보 체계로 기록되어 전승되었다. 기보를 모르던 초기 밀라노 찬미가들은 얌부스 리듬, 4줄 구조, 8절가사, 단성부, 신자 공동체를 위한 평이한 선율의 대중적장절 노래였다. 이 특징들은 <탄툼 에르고>(Tantumergo), <판제 링과>(Pange lingua),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 등 《리베르 우수알리스》(Liber Usualis, Vatican,1954)가 함축하고 있는 133곡의 초기 찬미가들에서도마찬가지다. 선율은 각 음절이 한 음(punctum) 내지 두음(pes,clivis)의 기본적인 네우마들로 구성되어 악보 없이도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다. 또한 간혹 종지를 준비하며 세 음(torculus)의 네우마가 등장한다. 선율은 가사의 절수에 따라 응답송적 교창으로 반복되었다. 중요한것은 찬미가의 선율적 단순성이-가끔은 친숙한 선율을대입하므로-긴 가사를 쉽게 암기하게 하며, 4세기부터오늘까지 찬미가가 널리 애창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찬미가는 전례의 장엄성과 예술성을 대중적 기반 위에서 구현하려고 태어났음을 확인시켜 준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만든 한글 찬미가였다.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는 자신이 지은 것 혹은기존의 천주가사들을 우리의 민요 선율에 맞추어 노래하도록 하였다. 이 방법은 무엇보다 당시에는 무척 생소한천주가사의 교리 내용을 큰 거부감 없이 쉽고 흥미롭게접근케 하여 신자들이 빠르게 암기하고 자기화하는 데성공하였다. 천주가사는, 서양의 찬미가와 동일한, 우리의 찬미 노래였다. 그러나 특히 서울 대목구의 서양식 한글 성가집 《죠션어셩가》(1924)의 출판으로, 민요적 특성때문에 기보를 포기하였던 천주가사는 교회 밖으로 내몰렸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한국화를 위한 최초의 탁월한, 그러나 아쉽게도 실패한 시도였다. 〔다성부 찬미가〕 찬미가는 9세기부터 진행된 그레고리오 성가의 다성화 과정을 동행하며 14세기에 폴리포 니(polyphony) 찬미가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단성부의 기존 선율을 사용하여 새롭게 작곡된 합창 음악으로, 단성부 찬미가보다 화려하고 장엄하였다. 그리고 하나 혹은여러 성부에 장식되며 나타난 이 모티프는 15세기에 고정 선율(cantus firmus)로 발전하였다. 뒤폐(G. Dufay,1400?~1474)는 단성 찬미가를 고정 선율로 사용하며 다성부 찬미가의 새 길을 열었다. 중세 교회의 시와 선율을인본주의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1년 주기의 4~8성부 찬미가는 이어지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영국 찬미가의 전형이 되었다. 다성 찬미가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한 절씩 나누어 다성부와 단성부가 교대로 연주되었다. 보존된 대부분의 다성 찬미가들은 시간 전례의 저녁 기도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40~1521)의 <바다의 별>(Ave marisstela)처럼, 처음부터 전승 가사를 전례 밖의 사용을 목적으로 창작한 작품들은 더이상 찬미가가 아니라, 모테트(motet)의 범주 안으로 수용되었다. 이렇게 찬미가는모테트로, 그러나 곧 칸타타(cantata), 오라토리오(orato-rio) 등의 교향적 큰 형식으로 변화를 지속하였다. 그러나 협의의, 전례 음악으로서의 다성부 찬미가는불과 한 세기 조금 더 지난 16세기 말 팔레스트리나(G.P. da Palestrina, 1525~1594)에 의해서 창작 전통이 마무리되었다. 17세기에 쓰여진 평범한 4성부 합창 찬미가들이나, 악기를 동반한 1~2성부의 콘체르탄테(con-certante) 양식의 새로운 찬미가들은 예술성이 크게 떨어지고, 18세기의 찬미가는 더이상 유명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뒤페가 시작하고 페스타(C. Festa,1480~1545)와 빌라르트(A. Willaert, 1480/1490~1562) 등을 거치며 발전하여 팔레스트리나에 의해서 마무리된 다성부 찬미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르로 좁혀서 이해될수 있다. 후에 작곡된 많은 찬미가들도 이들의 양식적 틀을 고수하였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의 찬미가는 가톨릭의 보편적 성격의 정교한 폴리포니와는 달리 자국 민요의 생명력을 흡입하여 민족적 성격이 강하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이동을 의미하는 이 작업은 라틴어 찬미가를 자국어 찬미가로 옮긴 루터(M. Luther, 1483~1546)의 작업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먼저 가사를 번역하고, 번역된 자국어 가사에 민요풍의 새로운 음악을 입히는 과정으로 진행하였다. 그의 대표적 독일어 찬미가는 자국어, 민요성그리고 장절적 형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에 그는 음악적 진지함을 권고하였다. 루터의 이러한 찬미가 정신은 현재도 프로테스탄트 코랄(chorale, 합창곡)의 원초적에너지로, 새로운 가사 및 음악 창작의 규범으로 작용한다. (→ 그레고리오 성가 시간 전례 ; 시편 성가 ; 찬가 ;천주가사)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K. Schlager 외, 《MGG》 Sachteil 4, Bärenreiter, 1996, pp. 464~508/K.G. Fellerer hrg., Geschichte der katholischen Kirchenmusik I, Baren-reiter, 1972, pp. 282~292/ W. Anderson 외, 《NGDMM》 8, Macmillan,1980, pp. 836~851/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Sachteil,Schott's Söhne, 1967, pp. 383~386. 〔趙善字〕
찬미가 讚美歌 〔그〕ὕμνος 〔라〕Hymnus 〔영〕Hy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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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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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기경 그리스 교회에서 사용된 찬미가 사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