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계 질서

敎會 - 世界秩序

〔영〕church and world order

글자 크기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전쟁에 대해 과감하게 비난하지 못하였다.
1 /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전쟁에 대해 과감하게 비난하지 못하였다.


I . 교회와 세계 질서의 관계 〔교회와 세계의 상호 관련성〕 가톨릭 교회는 처음부터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는 교회가 "전인류 의 깊은 일치의 표지이자 도구" (교회 1항)로서 세계의 정 신적, 도덕적, 자연법적 단일성과 공동 운명을 부단히 주 장해 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보다 구조적인 수준에서 교회는 세계 질서와 관계를 맺어 왔다. 무엇보다 교회는 세계 '내' (內)에 존재하면서 세계와 상호 작용해 왔다. 또한 교회 자체가 많은 부분에서 '세계성' (globality)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초국경적(transborder) 선교 활동을 통해 세계의 공간적 확장을 주도해 온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는 유럽이라는 지리적 속박을 벗어났으며, 19세기 말에 이 르자 그리스도교는 명실 상부하게 '전지구적' 현상이 되 었다. 가톨릭 교회는 선교 활동의 성과로 설립된 지역 교 회들을 다시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위계적으로 조직화했 다. 세계 종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의 교리 들은 특정의 문화적 제한을 벗어나 전세계적 적용 범위 를 갖는 보편화의 추세를 보여 왔다. 20세기 후반에는 다른 세계 종교들과의 대화 및 교류의 폭을 확대하고 비 그리스도교적 문화들에 대해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함 으로써 가톨릭 교회는 세계 인구의 더 많은 부분에 영향 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세계 자체를 종교적 주제로 취급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교회 안에서 꾸준히 늘어났다. 한편으로 <어머니와 교사> 반 포 이래 교황들은 범세계적인 쟁점들에 관해 빈번히 발 언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 1960년대 말 이래 라 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들은 세계 경제 체계의 근본적 불평등과 그것의 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관심을 성공적으 로 환기시켜 왔다. 수많은 세계적 제국들이 흥망을 거듭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교회 내부의 많은 분쟁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계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모든 세계 종교들 가 운데서도 가장 '지구적' 이다. 교회의 이러한 '초국가적' (supranational) 성격은 교회의 운명을 세계 질서의 변화 과정과 긴밀히 연결시켰다. 〔가톨릭 교회의 세계 인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 교회의 초국가적 성격으로 인해 교회의 운명이 세계 질서의 변화 과정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야말 로 가톨릭 교회가 세계 자체를 정당한 사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또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구를 제기한다.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영성이 세계를 대상으로 전개되어 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는 문자 그대로의 세계를 본격적인 사목적 · 신학적 관심 대 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사십 주년>이 아시 아 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세계적 쟁점을 정식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와 교사>에서 국가간에 정의 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부터였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전의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세계 질서와 긴 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주 침묵에 안주하거나, 때 로는 불의한 세계 질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교회사에서 교회는 대부분 서구 백인 사회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다. 교회는 고대 노예 제도를 뿌리째 잘 라 버린 공적을 자랑하면서도, 근대 노예 제도들에 대해 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예컨대 교회는 처음 1세 기 동안 압도적으로 가톨릭적 국가였던 스페인과 포르투 갈의 상인들이 자행한 노예 무역을 명백히 단죄하지 않 았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파시스트들의 조직적인 유대 인 학살에 대해, 또 1950년대 초까지도 남아프리카의 흑백 인종 차별주의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식민주의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도 불명확한 측면들이 많았다. 16세 기 이후 외국에까지 확대된 국왕의 '보호권' (Patronato)을 매개로 가톨릭 교회의 선교 활동은 종종 식민주의와 결 부되었다. 따라서 베네딕도 15세는 일부 선교사들이 "하 느님 나라의 성장보다 특정 국가들의 이익을 더 열망"했 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으며, 선교사들에게 정치적 국 수주의와 경제적 탐욕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비오 12세 이전까지의 역대 교황들은 식민주의 문제 자체에 무관심 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비오 12세 이후 교황들은 식민지 주민들의 정치적 독립 노력을 지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입장은 '시대에 뒤졌으나 이익이 되는 봉사로 이를 승인하는 태도' 로부터 '식민주의는 식민지 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이득을 주기도 한 것' 으로 변화 했다. 식민주의는 역사적 죄과로서 명백히 단죄되지 않 았다. 20세기 초반 동안 제3 세계의 발전 문제에 대한 교황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 지역에서의 교회 발전에 국한되어 있었다. 특히 토착인 성직자의 존재와 수적 증 가는 이 지역의 교회들이 진정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가 장 확실한 징표로 간주되었으므로, 토착인 성직자의 양 성 문제를 크게 중시하였다. 비오 11세와 12세는 유럽 인과 토착인 성직자들 간에 '동등한 대우의 원리' (principle of equitable treatment)를 확립시켰지만, 토착인 성직자 들을 로마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레오 13세 이래의 정 책은 고수하였다. 토착 문화에 대한 존중이 점차 증가되 는 와중에도 그리스도교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서구 중 심적 신념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른 비그리스도교적 세계 종교들과의 대화나 교류의 활 성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구 선진국들이 세계를 분할 점령하게 되자, 서구 국가들간 의 국지적인 분쟁조차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들을 직 접 · 간접적으로 이 분쟁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여 지구 상의 모든 지역과 나라들이 참여하는 '전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세계의 가톨릭 교회는 힘을 합쳐 각 나라의 가톨릭 교회들이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 이론' (just war theory)을 명분으로 전쟁을 찬 양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비전투원에 대한 고의적 살인 의 금지, 직접 살인에 대한 금지의 원리는 1940년 훨씬 이전부터 교회가 분명히 가르쳐 온 것들임에도 불구하 고, 교회는 드레스덴과 동경에 대한 무차별적 집중 폭격 에 대해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 폭탄 투하 에 대해 과감하게 비난하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 확실히 제2차 바티칸 공 의회, 그리고 이 공의회를 이끈 요한 23세 및 바오로 6 세는 교회와 세계 질서의 역사적 관계에서 중대한 분수 령을 이룬다. 이제 모든 형태의 인종적 차별에 대한 교회 의 단죄는 아주 분명해졌다.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은 "인간 기본권에 관한 모든 차별 대우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이든지 문화적 차별이든지, 혹은 성별, 인종, 피부 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 기인한 차별이든지, 그것은 모두 다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하 고 제거되어야 한다" (사목 29항)고 천명하였다. 비오 12 세 이후 식민지의 독립 운동에 대한 교회의 지지는 확고 해졌고, 이와 함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한 층 뚜렷해졌다. 예컨대 바오로 6세가 <민족들의 발전> 7 항에서 무지와 질병을 퇴치하고 교통 · 통신의 혜택을 제 공하고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는 등 "식민지 개척자들의 공적"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가르침에도 식민주의의 긍정적 측 면들에 관한 언급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러한 언급들은 "식민주의의 악폐와 거기서 따라온 손해"에 관련된 식민 주의에 대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에 의해 압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진리와 진리 전달의 방법을 구분함으로써 문화의 다 양성 문제를 다룰 새로운 출구를 열었 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공의회는 복 음과 토착 문화 간의 상호 보완적 관계 를 부각시켰다. 공의회에 따르면, "교회 는 ··· 여러 형태의 문화와 접촉할 수 있 고 또 그로써 교회와 여러 가지 문화가 함께 풍요해진다" 58항). 같은 맥락 에서 바오로 6세는 인격과 존재의 필수 적인 부분으로 토착적 관습과 제도들을 보존할 것을 강조했다.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은 대부분 제3 세계 지역에 기반 하고 있는 비그리스도교적 세계 종교들 에 대해서도 전례 없이 개방적인 태도 를 취하기 시작했다. 즉 공의회는 "가톨 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 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비그 리스도교 1항)고 선언했다. 또 공의회는 다른 종교의 신봉 자와의 대화와 협조를 권유하고, 과거에 불목과 원한으 로 대했던 종교의 신자들과의 화해와 상호 이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회 정의와 평화를 옹호하고 촉진시킬 것 을 당부하였다(동 1, 3항). 공의회는 종교의 자유를 단호 하게 옹호함으로써 타종교와의 '법률적' 평등을 사실상 수용하였다. 1960년대 이후 제3 세계의 발전 문제는 단순한 지역 교회의 발전이라는 차원을 넘어 경제적 · 정치적 · 문화 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며,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핵 심 부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요한 23세는 서구 의 생활 양식을 강요하지 말고 제3 세계의 독창성을 존 중하는 가운데 제1 세계가 제3 세계에 협조할 것을 촉구 했다. 그에 따르면,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듯이 부유한 국 가들은 가난한 국가들의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하지 않으 면 안된다. <어머니와 교사>에서 발견되는 현실 인식의 소박한 생각들, 다시 말해 저발전된 나라들은 단지 늦은 출발자일 뿐이고 이들도 발전된 나라들과 동일한 발전 도상에 놓여 있으므로 저발전된 나라들은 발전된 나라들 의 효율성을 '모방' 해야 한다든가, 발전은 불가피한 것 이라거나, 후진국의 원시적인 경제 상태가 빈곤과 기아 의 원인이라는 등의 인식은 <민족들의 발전>에 이르러 매우 상이한 각도에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바오로 6세 는 국제 경제 관계가 더욱 가난해진 자들의 희생을 대가 로 이미 부유한 이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고, 불평등은 단지 소유에 국한되지 않고 권 력의 행사에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이른바 발전 의 과 정에서 제1 세계의 문명이 제3 세계의 문화 제도들을 파 괴 내지 종속시키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제3 세계가 겪은 고통을 나눠 졌던 예언자적인 일부 초기 선교사들의 고발이 이제 점 차 전세계적인 공명을 얻기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징 표이다. 전세계의 57개국이 참전하고 민간인과 유대인들, 전 쟁이 초래한 기근과 질병으로 사망한 무수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1,500만 명의 전사자와 행방 불명자라는 엄 청난 재난을 낳은 두번째의 세계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가 톨릭 교회의 전쟁관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1953 년에 비오 12세는 "어떤 종류의 불의로부터 자신을 방어 한다는 것이 전쟁에 의존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 다. 전쟁이 초래하는 손실이 용인된 불의가 초래하는 손 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때, 불의에 대한 복종이 의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는 A.B.C(원자, 생물학, 화학) 전쟁에 적용될 수 있다" (Allocution to Military Doctors, 1953. 12. 19)라고 말함으로써 '정당한 전쟁 이론' 의 적용 범위를 제한했다. 유사한 취지에서 요한 23세는 "분쟁들이 무기 가 아니고 협상들을 통하여 해결되어야 한다. 원자력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전쟁이 이미 침 범된 권리들을 정의대로 자리잡는 데에 적합한 수단이라 고 생각할 수 없다" (지상의 평화 76항)고 못박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은 요한 23세의 이 말을 염 두에 두고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태도로 전쟁을 바라보 아야 한다" (사목 80항)고 말했다. 주교들은 나아가 "군비 경쟁은 인류의 막심한 상처이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견딜 수 없도록 해치는 일" (동 81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군비 경쟁이 전세계적 빈곤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 하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 같은 공식적 가르침들을 통해 가톨릭 교회는 현대 무기 체계는 정당한 전쟁 교리의 핵 심을 이루는 합리성, 즉 비례(proportion)의 문제를 더 이 상 충족시키지 못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비오 12세와 요한 23세에 의해 정립된 전쟁 교리는 이후 거듭 반복되면서 더욱 풍요롭게 발전 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교회는 환경 문제를 공식적 인 가르침 속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그 공헌은 대부분 요한 바오로 2세의 것이다. 그는 일종의 환경 신학(environmental theology)을 발전시켰고, 특히 발전 문제와 연관 시켜 환경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개발' 과 관련하여 다 음의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자연 세계를 구성하는 제반 사물에 대한 존중"을 촉구했다. 첫째, 인간은 동물과 식 물, 자연 요소들을 자기 원대로만, 자기의 경제적인 필요 에만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각 사물의 본성과 그것 이 우주(cosmos)에서 차지하는 상호 연관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 둘째, 자연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 셋 째, 그 어느 때보다도 산업화는 환경의 오염을 초래한다 는 점(사회적 관심 34항). 그는 또 스스로를 창조주의 자 리에 올려 놓는 '인간학적 오류' 가 "자연의 반항을 자극 하고 자연을 다스리기보다는 학대"하고 자연 환경을 비 합리적으로 파괴한다고 진단한다(백 주년 37, 74, 75항). 1960년대 이후 가톨릭 교회는 일국적(一國的)인 문제 들에만 집착하여 세계 질서에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전에 비해 한층 자기 비판적인 태도로 세계 와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다. 세계 질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1960년대를 고비로 급진전된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교회는 세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 회는 세계의 객관적 존재와 그것의 자율성을 인정했으 며, 교회가 '이 세계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천명했다. 둘째, 교회는 세계 내 존재로서의 분명한 자의식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서구 백인의 자리에서 세계를 조망하지 않게 되었다. 제3 세계의 교회와 신자들은 제1 세계와 동등한 시민권을-갖 되었고, 세계 교회의 형성 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셋째, 교회가 바라 보는 세계의 범위는 최대한으로 '확장' 됨과 동시에 '중 층화' 되었다. 특히 이 세번째 변화에 대해서는 좀더 주 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 한편으로 전세계적 규모에서 민족, 국 가, 사회, 지역들 간의 '상호 의존성' 이 증가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으면서 교회의 세계 인식 자체가 '지구화'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빈곤, 전쟁, 환경 등 범세계적인 쟁점들이 새로운 빛으로 조망되었고, 직접적 인 사목적 · 신학적 · 영성적 관심 대상들로 간주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관계도 다양성, 불균등과 모순들을 내포하는, 따 라서 보다 변증법적인 상호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 으로 인정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이 비그리스도교들에 관한 태도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필 요성을 "인류가 날로 더욱 긴밀히 결합되고 여러 민족들 사이의 유대가 더욱 강화되어 가는 현실" (비그리스도교 1 항)에 대한 인식에 기초시켰던 것은 의미 심장하다. 〈어 머니와 교사> 59~60항에서 요한 23세는 지구화 과정 을 "사회 생활 내부의 여러 관계의 점진적인 증가"를 뜻 하는 '사회화' 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사회화는 기술 과학적 진보, 대량 생산 능력, 시민들의 생활 향상 등의 요인들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경향은 특히 최근에 굉장 히 많은 국내적 및 국제적 규모의 경제, 문화, 사회, 체 육, 오락, 직업,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 운동, 협회, 기구 등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요한 23세의 이 같은 인식은 세계적 수준의 사회화가 자립화되어 상대적 인 독자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한 사회 내에서의 사회화가 그대로 연장된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 에서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바오로 6세에 이르면 지구 화는 한 사회의 경계를 초월하여, 상당한 독자성을 지닌 채 진행되는 것으로 인정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적절 히 평가했듯이, <민족들의 발전>에서 바오로 6세가 이룬 탁월한 공헌 중 하나는 "사회 문제가 세계화되고 있다" 는 인식을 확립했다는 점이다(사회적 관심 9항). 이미 언 급한 바와 같이, <민족들의 발전>에서 바오로 6세가 강 조하고자 했던 사실은 세계화 과정이 불평등과 부정의를 세계 전체로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교회가 추구하는 공동선 역시 세계적 외연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 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23세는 '보편적 공동선' 내지 '세계 공동선' 의 필요성을 적절히 제기했으며, 이후 이 는 공의회와 후임 교황들에 의해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 으로 자리잡았다. 같은 맥락에서, 대안의 모색은 모든 나 라와 국민들이 힘을 합쳐 보편적 공동선을 추구하는 '만 민 공동체' 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간 주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세계의 모든 민족 들과 국민들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가 더욱 긴밀해져 가 는 오늘, 세계의 공동선을 적절히 추구하고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민족들의 공동체는 이제 현대적 사명에 부합하는 질서를 스스로 마련할 필요"(사목 84항)가 있음 을 주장했다. 요한 바오로 2세에 따르면, 이 같은 "참된 국제 체제"는 "모든 민족들의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민 족들간의 정당한 차이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사회적 관 심 39항). 일찍이 비오 12세는 1950년대 초에 '세계의 효과적인 정치 조직' , '자유 국가들의 법적 공동체' 의 필 요성을 주장한 바 있으나, 이는 전쟁과 뒤이은 냉전으로 갈갈이 찢긴 인류를 향한 외로운 호소에 가까웠다. 그러 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및 관련 교황들은 인류 가운데 에서 초국가적 협동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 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의회는 "여러 민족들의 연대 의 식"을 현대 세계의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제시했으며 나아가 "이 연대 의식은 날로 커가는 막을 수 없는 힘" 이 라고 평가하였다(평신도 14항). 바오로 6세 역시 "민족들 의 상호 연대 의식이 날로 효과적으로"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인정했다(민족들의 발전 65항). 나아가 요한 바오 로 2세는 상호 의존과 연대성에 관한 확신이 증가하는 현실을 희망적인 징후로 간주하였을 뿐 아니라(사회적 관 심 26항),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 (Opus justitiae pax)라는 사상을 발전시켜 "평화는 연대 의 식의 열매" (Opus solidaritatis pax)라는 정식을 새로 만들어 냈다(동 39항) . II .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전개와 구조 통합 및 동질화의 측면 :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 질서 의 변동 과정에서 가장 현저한 측면은 '지구화' (globalization)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지구화라 함은 지구적 밀도와 복합성(global density and complexity)이 증가됨에 따라, 지 구 전체를 가로질러 영역들과 지역들의 사회 활동의 매 우 높은 정도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인식에서, 그리고 지 구 자체와 관련된 의식의 성장에서, 세계가 하나의 장소 가 되어가는 과정(R. Robertson)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지 구화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공간이 초국가적으로 확장되 고 이것이 다시 압축되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지구 화의 핵심적인 부분은 국가, 사회, 문화들 간에 상호 의 존성이 심화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경계가 점차 약 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지구 화 과정은 일정하게 제도화되어 독자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고,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논리와 동학(dynamics)에 따 라 진행된다. 지구화 과정은 근자에 더욱 가속화되었지만, 이는 이 미 지난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이 과정은 공동체 적 규제로 특징지워지는 봉건주의적 제도 및 사회 관계 의 쇠퇴 그리고 자본주의적 제도 및 사회 관계의 확산, 봉건적 공동체를 대신하는 동질적이고 통일적인 민족 공 동체(국민 국가) 및 그와 관련된 관념의 확산, 국제적 혹 은초국가적 규제 및 의사 소통을 위한 기관들과 관행들 의 증가 등이 특징이다. 지구화 과정은 경제 영역에서 시 작되었지만, 이후 정치, 문화 등으로 대상 분야가 계속 확대되었다. 특히 20세기는 국제주의의 전례 없는 성장 을 겪은 시기였는데, 이 시기에 세계적 외연을 갖는 다양 한 국제 기구들이 등장했고 종교 영역에서도 국제적 에 큐메니컬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한편 국가, 다국적 기업 을 비롯하여 유엔 등 다양한 '비국가적 행위자들' 을포 함하는 식으로 지구화의 행위 주체가 다원화되었고, 20 세기 중반 이후에는 국가로부터 다국적 기업들로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교체되었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국 제적 공간의 확장은 원료와 공산품을 수출입할 뿐 아니 라 자본과 공장과 판로를 국경 너머로 자유 자재로 이동 시키는 초국가적 거대 기업 및 금융 제도들의 등장 그리 고 정보의 즉시적인 전달을 위한 지구적 커뮤니케이션 망의 구축을 통해 도래하였던 것이다. 자본의 운동은 상 품 및 화폐 자본의 국제화를 넘어 생산 자본의 국제화로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이 다양한 형태의 자본 운동들이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다. '포스트포디즘' (post-Fordism) 등 다양하게 명명되고 있는 1970~1980년대의 세계 경 제적 변화들은 일반적으로 시장, 교역, 노동의 탈규제 (deregulation) , 지구화, 경제 구조의 탈독점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정교한 컴퓨터 기술과 통신, 수송, 제조업의 급속한 발달을 핵심으로 하 는 이른바 '제3차 산업 혁명' 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 업들은 도처에 분산되어 있는 기업 운영 수단을 정보화 하고 다시 이 정보를 지역간에 연결하여 세계적 네트워 크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적 규모로 분업화된 생산 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지구화 과정은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을 경과하고 있다. 사회주의 블럭의 붕괴와 자본주의 진영으로의 재편입, 우루과이 라운드(UR)의 타결과 세계 무역 기구(WTO) 의 등장, 경제의 지역별 블럭화, 유럽 연합(EC)과 소련 해체 등에서 나타나는 국민 국가의 약화 현상 등에서 지 구화가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지구화 과정과 함께, 국가간(inter-state) 수준에서 뿐 아니라 초국가적 수준에서 발생하여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의 수로로 기능하는 '제3의 문화' 들의 총체로서 의 '지구 문화들' (global cultures)이 형성되어 왔다. 지구 문화는 문화적 통합과 해체 과정을 거듭하면서, 초국가초사회적인 의사 소통 과정을 발생시키는 재화, 사람, 정 보, 지식, 이미지 등의 교환과 흐름을 지탱해 준다. 이와 병행하여 여러 문화들간의 의사 소통을 위한 지구적 미 디어 체계가 발전해 온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결과이다. 지 구화는 각 사회들 및 개인들의 정체 의식에도 중요한 영 향을 미쳤다. 사회들간의 교류와 접촉이 더욱 빈번해지 고 강렬해지면서 대부분의 사회들이 점점 다문화성(multiculturality)과 다민족성(polyethnicity)의 문제들에 직면하 게 되었다. 개인관 역시 성, 민족, 인종 등에 대한 고려 들에 의해 더욱 복합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이처럼 문화 적 측면의 지구화는 한편으로 초국가적인 '지구 문화들' 을 형성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국가로서의 문 화적 동질성 내지 통합력을 약화시키는 측면을 갖고 있 다. 나아가 지구화는 '상징 분석가 , '디자인 프로페셔 널' 등으로 불려지는 새로운 범주의 전문직들로 구성된 다양한 '초국적 계층' 을 등장시킨다. 미래의 엘리트층이 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다양한 국적과 민족으로 구성되 어 있지만,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초문화적 으로 의사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들만의 (문화) 다원적이 고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문화를 발전시킨다. 이들은 또 한 킹(King)이 '세계 도시' 라고 불렀던 공간, 즉 지구적 인 금융 서비스와 문화 산업들이 집중된 지역에서 일하 고 거주한다. 지구화의 효과는 학문 영역에도 반영되어, 세계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학파들이 다 수 출현했다. 지구화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지구적 의 식' 도 고양되고, '유적 공동체' (species-community)로서의 인류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양되었다. 아울러 '세계 시 민 사회' 와 '세계 시민 의식' 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이제 부정적 의미에서든 긍정적 의미에서든 '인류의 단 일성' (oneness of humanity)은 하나의 이상 혹은 단순한 구 호가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현실' 이 되어가고 있다. 해체 및 이질화의 측면 : 그러나 지금까지의 서술은 지 구화의 과정에 대한 일면적인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지 구화는 다른 측면들, 즉 이질화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측 면들을 갖고 있다. 지구화는 모든 경계와 장벽을 허물고 단일한 경제, 단일한 정치 체제, 단일한 문화, 조화로운 합의를 산출하는 일방적인 동질화 과정이 아니다. 지구 화는 정치, 경제, 문화 영역에서 지배와 위계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내적인 불균형성과 모순을 증가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구화의 진전에 따라 심각하게 불평등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 문에 지구화는 그것이 낳는 대대적인 불평등과 좌절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체제적인(anti-systemic) 비판과 운동 을 동시적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또한 지구화에 대한 각 지역, 국가, 사회들의 반응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지 구화 자체는 독자적인 동력에 의해 구조적인 수준에서 계속되더라도, 이에 대한 각 사회, 사회 집단들의 선택은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같은 다양한 반응에 의해 지 구화의 형태는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지구화는 '보편 화' (universalization)의 경향뿐 아니라, '국지화' (localization)의 경향 또한 발전시킨다. 심지어 지구화는 다양한 반(反)지구화 혹은 탈(脫)지구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반 응들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지구화는 '동질화/ 이질화' , '통합/해체' 등의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포착되 기 어려운 다양성과 모순, 복합성을 산출한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중심부 - 반주변부 - 주변부로 세계를 위계적으로 조직화하는 분업 구조에 의해 경제적 불균등 발전을 항상적이고 본질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경제적 불평등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발전하 는 가운데 빚어진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위계적인 국제 노동 분업을 핵심적 기제로 하는 이 체제의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최종적으로 공고화되었고, 미국이 경제적, 정치-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C. Chase-Dunn).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 분의 식민지가 독립하고 '제3 세계' 라는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발전' (development) 주제가 세계적 관심사로 부각되었지만, 일부 주변부 국가들의 지위 상승에도 불 구하고 전반적으로 '남북' 간의 빈부 격차는 오히려 커졌 다. 1980년대 이후 ''북' 의 사회들 내에서도 유례 없는 규모로 빈부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특히 냉전 체제 가 붕괴됨에 따라 격화되고 있는 중심부 국가들간의 경 쟁은 한편으로 지역적 경제 블럭화를 자극하고, 다른 한 편으로 구(舊)사회주의권과 제3 세계에 대한 공세를 강 화하는 '재식민지화' (recolonizatio)를 초래하고 있다. UR 타결과 WTO 체제의 출범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1990년대 들어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가간의 상호 의존 성이 한층 커짐으로써, 정치 군사적 이해 관계보다 경제 적 이해 관계가 더욱 중시되고, '경제 전쟁' 이 더욱 격렬 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의 국제화와 그것의 국민 국가적 규정 사이의 모순' 도 표출 되고 있으며, 그 결과 자본의 국제화라는 세계 자본주의 의 보편적 요구와 국민 국가 단위 경제의 생존을 동시적 으로 해결하면서 자본간 국제 경쟁에 대처하기 위한 노 력의 일환으로 '경제적 지역주의' 가 가시화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지구화는 국가간의 힘의 차이에 따라 세계를 강력한 국가 기구를 가진 중심부 국가들과 취약 한 주변부 국가들로 나눠 놓았으며, 그 결과 '지구적 규 모의 권위주의' 가 일반화되었다. 냉전 체제 해체 이후 다시 한번 지구적 의사 결정 권력이 '북' 으로 집중되고 있다. 한편 지구화는 중심부에서 '국민 국가' (nationstate)의 발전과 쇠퇴, 주변부에서 복잡 다단한 국민 국가 형성이라는 과정을 동반했다. 지난 5세기 동안 서구의 국민 국가들은 지구화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으 며, 이 과정에서 꾸준하게 권력과 정당성을 증대시켜 왔 다. 동시에 로버트슨이 지적하고 있듯이, 지난 수세기에 걸쳐 '동질적이고 통일적인 국민 국가' 라는 관념이 급속 하게 확산되어 왔다는 점에서, 또 20세기에 이르러 국민 국가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국가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 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의 발전은 지구화 자체의 중심적 인 측면이기도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통치하는 공유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 국가 라는 신화' 를 통해 시민들은 혈연과 공동체 성원으로서 결속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국민 국가의 신화는 서구 백인 그리스도교인들이 이교도 야만인들보다 인종적으 로 우월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문명화의 사명' 이라 는 또 하나의 신화와 결합하여 서구인들의 전지구적 침 략을 자극하고 정당화했다. 그러므로 16세기부터 20세 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서구 식민주의의 전개 과정은 국 민 국가의 흥망과 사실상 일치한다(M.Miyoshi). 또한 자본 주의 세계 체제가 단일한 정치 체제에 의해 지배되지 않 고, 그 내부에 다수의 국민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 실은 이 체제의 급속한 확장을 가능케 한 구조적 조건이 기도 했다. 월러슈타인(Wallerstein)은 근대 세계 체제가 500년 동안이나 존속했으면서도 세계 제국으로 변화되 지 않고 강력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은 세계 경제가 자신의 경계 내에 하나가 아닌 '다수의' 정치 체제를 갖 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의 경제 양식으로서 자본주의는 어느 정치 체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작용하며, 이것이 자본 가들에게 구조적인 기반을 갖는 '기동(起動)의 자유' (freedom of maneuver)를 제공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부단 한 경제적 확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 민 국가의 복수성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존속하는 한 결코 소멸될 수 없는 요건으로서, 국민 국가가 쇠퇴한다 는 것은 곧 자본주의 세계 체제 자체가 결정적 위기에 처 해 해체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뜻한다고 할 것이 다. 그러나 절정에 도달한 경제의 세계적 통합으로 '국가 주권' 및 '주권 국가 업무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불간섭 원리' 라는 국민 국가의 기본 전제들이 위협받고 있다. '지구 체계' 는 주된 국제적 행위자로서의 주권국가의 전 통적 자기 이해를 시대에 뒤진, 또는 적어도 갈수록 무용 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오랜 동안 국제적 공간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였던 '정부들' 은 국제적 활동의 많은 부분 에서 여전히 중요한 행위자이긴 하지만, 여러 세계적 문 제들, 특히 다국적 기업 및 세계적 금융 제도들에 대해 갈수록 적은 통제력만을 행사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의존 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반면 국제 경제의 수준에서 작동 하는 제도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키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이들이 권력을 행사하 는 방식에 대한 통제도 매우 제한된 수준에서만 이루어 질 뿐이다. 정치 영역에 대한 경제의 절대화 경향은 국가 의 통제 능력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확 대 재생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정당성을 약화 시킨다. 중심부 국가들이 꾸준한 경제 성장을 계속해 온 1950~1960년대에 국민 국가는 자국의 대다수 국민들 에게 경제적 운명 공동체로서 비쳐질 수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이들 국가 내부의 빈부 격차가 급속하게 심화되고 있는 현실은 이 사회들의 빈곤층을 중심으로 이 같은 전제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새로 운 통신 및 수송 기술, 24시간 주식 시장과 같은 새로운 경제 제도 등은 기업 활동과 자본 이동을 규제하는 국가 의 '기술적' 능력을 훨씬 왜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더 많 은 이윤을 찾아 언제든 다른 나라로 이동할 채비가 되어 있는 자본을 국내에 묶어 두기 위해 더욱 유리한 투자 여 건을 자본에 제공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의 모습 역시 국 가의 정당성을 실추시킨다. 일단 개시된 국가의 정당성 실추는 일종의 자기 강화적 순환을 통해 가속화되는데, 국가에 더 적은 정당성이 부여될수록 국가가 질서를 강 제하거나 최소 수준의 사회적 복지를 보장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대부분 국민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간주하는 이러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록 국가에게 더 적은 정당성만이 부여될 것이기 때문 이다. 발전 문제에 무능력한 주변부의 국가들의 경우, 정당 성 상실은 한층 심각하다. 더욱이 '지구적 규모의 권위 주의' 라는 상황에서 중심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 약한 주변부 국가들은 자국민 전체의 복지 증진보다는, 중심부의 이해 관계와 일부 특권층의 이해 관계를 대변 하는 기관으로 기능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세계적 수준 의 빈부 격차 확대 그리고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점증하 는 부의 이전이 갈수록 명백해지는 데 비례하여 '국가의 주도 혹은 지원을 통한 개혁주의' 라는 기대가 깨지고 있 다. 주변부의 민중들은 개혁의 통로 및 안전의 방벽으로 서의 국가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짐에 따라 주변부의 민중들은 적극적으 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보호자로서 국가 의 자리에 종족, 종교, 인종 등 전통적 가치를 체현한 다 양한 '집단들' 을 대치시키고 있다. 지난 25년 간 민주화 요구가 취해 온 형태는 이 같은 '집단들' 에게 더 많은 권 리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옛 유고의 붕괴와 함께 발생한 사태에서 보듯이, '집단들' 로의 새 로운 전환 혹은 의존은 엄청난 혼란과 분규를 초래할 수 있다(I. Wallerstein). 주변부에서 '기존' 국민 국가의 정당 성 실추는 국민 국가 '형성' 의 과정과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문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토플러(Toffler)는 1990년대의 세계가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3개의 문명으로 분화되고 있 으며, 신세계의 3중 질서(tri-order)로의 전환이 세계적 권 력 투쟁의 초점을 이루면서 문명들간의 갈등이 향후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 측한 바 있다. 현재 서구에서는 국민 국가라는 신화가 점 차 해체되고 있는 반면, 많은 비서구 사회들은 아직도 국 민 국가 형성을 위한 갈등적인(때때로 유혈적인)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토플러의 주장은 부 분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독립과 함 께 근대 국민 국가의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채 탄생한 식 민지의 '국민 국가들' 은 대부분 국민들에게 그 정통성이 나 근거를 확신시켜 줄 고유한 역사와 논리를 갖추지 못 한 것이었다. 따라서 해방된 식민지 시민들은 분리하려 는 의지와 통합하려는 의지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 데서 국민 국가의 조건을 재조정해야만 하는 어려운 과 제와 씨름해 왔다. 더욱이 억압적 냉전 체제의 와해는 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3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자민족 중 심적 민(종)족 분규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될 계기를 제공 해 주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지구화의 효과는 매우 복합적이며, 정치 및 경제 변동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선 지구 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화적 지배라는 현상을 동반했다. 근자에 이르러 주로 지구적 미디어 권력을 통한 - 규모 와 영향력 면에서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 서구 문명 에서 비서구 문명으로 대규모적인 '취향의 이전' (taste transfer)이 이루어졌다. 이때 지구 문화를 가장한 서구 문 화는 일종의 문화적 동질성을 강요함으로써, 비서구 사 회 문화들의 가치 있는 것들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는 항상 인류 문명의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C. Muzaffar). 다음으로, 주변부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가 감 소하는 현상과 함께 월러슈타인이 '모든 나라들로 하여 금 근대화 혹은 발전의 프로그램을 추구하라는 문화적 압력의 역사적 구성' 이라는 뜻으로 '발전의 지리 문화' (geoculture of development)라고 부른 것에 대한 환상도 깨 지고 있다. 이 문화의 뼈대를 이루는 세 가지 믿음, 즉 국가는 정치적으로 주권적이고 경제적으로 자율적이다, 각 국가는 단일한 민족 문화를 갖는다, 모든 나라는 발전 한다는 믿음은 실제 현실과의 괴리에 의해 설득력을 잃 게 되었다. '발전의 지리 문화' 에 대한 실망은 전통 문화 에 대한 재강조로 이어지고 있다. 1945~1970년의 시 기에는 발전을 위해 신속히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논의 되어 온 문화가 오늘날 주변부 사회에서는 경제적, 정치 적 처지의 악화에 대한 저항의 방벽, 비판을 위한 전투적 슬로건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주 변부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광범위하게 또한 열정적으 로 일어나는 현상은 국지적 및 지구적 수준에서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I. Wallerstein). 마지막으로 타문화와의 접촉이 증대하고 사회들이 점점 다문화성과 다민족성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 국민 국가로서의 문화적 동질성과 통합력은 점점 약화된다. 초문화적 상호 작용 이 증대될수록 한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은 감소되는 것 이다. 이 상황은 이 같은 과정을 경험하는 지구상의 대다 수 사회들에서 '문화적 위기' 가 조성되고 있음에 따라 사회 성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 을 확인하려는 욕구도 그만큼 강해짐을 뜻한다. 거의 전세계적인 범위에서의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들의 부활, 보다 세속적인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서구 사회 전반에서 발흥하고 있는 신 보수주의 운동 등의 현상은 특정한 사회 혹은 문명의 전 통적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재주장하고 부흥시킴으로써 '거대한 지구적 상호 의존성의 상황' 에 의해 초래된 문 화적 위기로부터 탈출하고 자기 사회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의 남에 대한 문화적 지배, 지구 문화라고 간주되어 온 발전의 지리 문 화에 대한 남의 점증하는 저항, 위협받는 자신들의 '정 체성' 을 확인하려는 노력의 전세계적인 확산 등으로 구 성되는 이 같은 상황은 지구적 수준에서 복합적인 배경 을 갖는 대규모적 '문화 전쟁' 의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 체계의 파괴적 잠재력은 현저하 게 증가되고 있다. 그와 함께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과 불 안정성도 전반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냉전 적 양극성(bi-polarity)이 와해됨에 따라 세계 질서의 유동 성은 현저히 증대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불확실성 자 체가 제도화' 되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 면 오늘의 세계는 '세계 체제의 전반적 위기와 해체, 혹 은 거대한 세계적 무질서의 국면' 을 경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사적 재편이 진행되는 현재의 불안정하고 위기적인 국면에서 세계 체제 내의 유동성은 더욱 거칠 고 첨예해질 것이고, 따라서 특정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 소한 행동들조차도 체제 전체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냉전 구조가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유동성이 현저히 증가됨으로써 오늘날 전쟁의 위험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높은 경제적 상호 의존성으로 중심부에서 국가간 의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은 결정적으로 감소했지만 광 범한 실업자층을 포함한 내부 소외층의 동요는 커질 가 능성이 크다. 분출하는 민(종)족주의적 열기와 결합될 경우, 심화되고 있는 주변부 사회들의 절대적, 상대적 빈 곤은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무수한 전쟁들의 근 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구화의 복합적인 구조, 그리고 그것이 동시적으 로 결과하는 모순과 균열들은 다양한 형태의 반체제적 운동들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 운동들은 많은 경우 특정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조직화되었다. 이 운동들이 해 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이 대개 지구적인 발생 및 발전의 맥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 위기는 현대 인류가 직 면하고 있는 어떤 도전보다도 지구적 전망에서 치유책을 찾도록 강요하고 있다. 환경 위기 외에도 에이즈, 마약, 이민, 피난민과 같은 쟁점들 역시 국제적인 해결책을 요 구하기는 마찬가지이며 빈곤, 질병, 문맹 퇴치 등의 문제 들에 대한 해결책도 지구적 수준의 대대적인 노력 없이 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Ⅲ. 지구화와 종교 〔지구화가 종교에 미치는 효과〕 전세계적 통합 및 동 질화의 진전과 함께 모순과 불균형, 다양성, 잠재적 갈등 을 동시에 증대시키는 지구화는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 쳐 왔으며 앞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지구적 수준에서 볼 때 종교의 장래는 낙관적인가 혹은 비관적인가? 또한 종교간의 경쟁과 갈등은 약화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 격 심해질 것인가? 종교의 장래와 종교간의 관계에 관한 질 문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긍정하는 대답 이 가능하다. 지구화 과정이 종교에 미치는 영향의 세부 적 측면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통신과 수송의 발달로 인한 공동체적 장벽들의 붕괴, 그에 따른 내부 - 외부 구분(inside-outside distinction) 의 붕괴라는 의미에서 지구화는 '세속화' 로의 강력한 구 조적 압력을 낳는다. 지구화된 사회에는 지리적으로 혹 은 문화적으로 격리됨으로써 '사회적 악의 화신' 으로 봉 사할 국외자(outsider)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이 런 상황에서는 선의 세력을 판별하기도 곤란해진다. 지 구화와 더불어 종전까지 명백히 국외자였던 개인 혹은 집단들이 현재는 이웃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국외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덕' 은 한 사회 안에 서 중심적인 구조적 위치를 상실하며, 따라서 상황을 도 덕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점점 어렵게 되어간 다. 이 같은 상황에서 종교는 전체로서의 지구 사회 수준 에서 '공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맞게 되기 쉽다. 지구화의 맥락에서 공적인 영향 력을 추구하는 각 사회 및 사회 집단들은 두 가지 상이한 선택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의 선택은 악마의 해체 에 대한 순응을 의미하는 에큐메니즘과 관용, 보편주의 의 선택이다. 또 다른 하나의 선택은 비서구 사회의 근본 주의나 서구의 신보수주의 프로그램 등에서 보듯이, 근 대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재강조하고 악마의 실재성을 재주장하며, 많은 기능적 영역들(주로 종교와 정치, 종교와 가족, 종교와 교육 등)의 탈분화를 지향하는, 지구화 과정 에 대한 저항이라는 선택이다. 지구 사회가 점점 확고한 현실이 되어 간다면, 전자의 보다 자유주의적인 선택이 미래의 추세로 간주될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사회의 지구화에 대응하여 하위 사회적(sub-societal) 정치적 동 원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종교적 방식들(modalities)을 적 용한다면 공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Beyer). 문제는 이것이 특정한 민족 문화, 문명, 종교별 의 선택일 뿐 아니라, 한 종교 내에서도 양자의 선택이 공존하고 그 때문에 이들간의 잠재적 대립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가톨릭, 성공회 내에서 보다 복음주의적인 영향력을 반영하는 운동이 성장하는 등이 그러한 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세계적 범위를 갖는, 그리고 세계 자체를 문제시 하거나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하는 종교 운동들(예컨대 해방신학)이 크게 성장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 교회 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거론되고 또 부분적으로 실천에 옮겨 지고 있는 '국제 시민 사회' 운동이나, '초국경적 참여 민주주의' 운동 등도 이 같은 사례들에 포함시킬 수 있 다. "지역적 신학들 그리고 지구적 현실의 의미를 독해 하고자 하는 신학들 사이의 변증법적인 상호 교환"을 특 징으로 하는 지구 신학(planetary theology, Balasuriya)이나, 자기 나라의 경계를 넘어 이웃과 타자의 범위를 확대시 키는 '지구적 관심' (global concern)에 이끌리는 그리스도 교 영성(F.X. Meehan)이 주장되는 것 역시 유사한 현상이 다. 셋째, 지구화와 함께 비그리스도교적 세계 종교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그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특권적 지위 가 위협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 치적 독립을 획득한 많은 구식민지들에서 그리스도교 분 파들은 대부분의 특권들을 상실한 반면, 식민주의자들이 억압해온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맞았다. 북의 남에 대한 정치 경제적 지배가 변형된 형태 로 계속되고 1980년대 이후 '재식민지화' 가 관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부 지역에서 북의 정치 및 경제 력을 배경 삼아 그리스도교가 특권을 회복하게 될 가능 성은 거의 없다. 나아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에도 서 구에서 훈련된 지식인층이 가세함에 따라 변증의 세련화 가 이루어졌고,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이 적극적으로 세 계 선교에 나서고 있다. 서구와 비서구 간의 인구 증가율 의 차이로 인해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으로 소수 집단화되 어가고 있다(E.Benz). 예컨대 1993년 현재 프로테스탄트 와 가톨릭을 포함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세계 인구의 33.6%(18억 6,009만 명)으로, 그리스도교 인구는 100년 전(5억 5,000만 명)에 비해 수치적으로 3배 이상 성장했 지만 전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4% 증가 하는 데 그쳤다. 반면에 100년 전 세계 인구의 12.4% 를 차지했던 이슬람교도 수는 1993년 현재 18.2%(10억 1,400만 명)로 크게 성장했다. 넷째, 남반구와 북반구 지역 그리스도교 상황의 역전 이다. 그에 따라 종교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남의 교회 들에 의해 비그리스도교화하고 있는 북을 재선교, 재그 리스도교화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 다. 1900년에는 전체 그리스도교인의 49%가 유럽에 거 주했으나, 1985년에는 그 추세가 27.2%로 추산된다. 또한 1900년에는 전체 그리스도교인의 81.1%가 백인 이었으나, 현재의 추세대로 나아가면 서기 2000년에는 그 숫자가 39.8%로 감소할 것이다. 가톨릭의 경우, 1989~1991년 사이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사제 및 수도자 지망자가 뚜렷하게 증가한 반면, 유럽과 아메 리카에서는 퇴조했다. 다섯째, 주변부 지역에서 민족주의가 전반적으로 고양 되고 탈냉전 시대를 맞아 민(종)족 분규가 폭발하고 있 는 상황에서 종교는 탁월한 동원 능력과 민족 자존의 상 징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해 민족주의의 핵 심 요소가 되고, 민족 갈등의 운반자 내지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의 유고, 레바논, 아이레, 옛 소련의 남부 지역, 서남아시아, 중동, 중국 내의 티벳,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 등 민족간 경계가 종교간 경계와 일치하는 반주변부 혹은 주변부 지역의 경우, 이러한 가 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구화가 에큐메니즘과 종 교적 관용을 조장하는 구조적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종교간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 다. 여섯째, 남 - 북간 그리스도교의 힘 관계의 역전이라는 상황 전개를 감안할 때(출산율 등을 고려하면 이 추세는 지속 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 문화와 가치들에 대한 재주장 을 동반하면서 민족주의가 주변부와 반주변부에서 고양 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남 - 북간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남의 민중들이 느끼는 강렬한 상대적 박탈감이 자주 종교적 열정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 이 같은 상황들을 배경으로 하여 종교가 유 의미한 공적, 사회적 현상이 될 가능성은 세속화된 서구 에서보다는 여전히 종교적인 비서구 사회들에서 한층 높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사회들 가운데서도 특히 북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지역에서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특 정 종교 내에서도 남의 교회들과 북의 교회들 간의 갈등 이 심해질 수 있으며, 주로 남의 신자 분포를 갖는 종교 (압도적으로 이슬람교, 힌두교, 다소 적게는 불교)들과 북의 종교들(그리스도교) 간의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다. 〔전망과 과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세계는 교회 에게 진정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같은 세계 질서를 수립하는 데 투신하라는 도 전을 제기한다.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위한 진통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초점들로 부각될 문 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1990년대 의, 또 21세기를 맞는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들 역 시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지구화는 사회들을 정교한 상호 의존성의 망 안 에 편입시킴으로써 사회 문제들을 세계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전망은 교회에 외양상 모순된 과제를 부과 한다. 즉 지역주의의 강화에 '지역적으로' 대처하는 한 편, 세계 전체 수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세계적으 로' 대응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가 제기된다. 가톨릭 교 회는 지역 교회들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쟁점들, 유동적인 문제의 범위에 탄력 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유형을 모색해야 한다. 둘 째, 부국과 빈국 간, 부국 내의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 문제의 완화 내지 해결을 위해 초 지역 교회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커진다. 셋째, 탈냉전 에도 불구하고 주변부에서 국지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 그리고 이 분쟁이 급속도로 광역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 질 것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이미 진행 중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며, 평화를 국제 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군사 주의로부터 극적인 우선 순위의 전환' 을 이루고, 참된 평화를 구축하는 데 교회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넷째, 커뮤니케이션과 수송 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위기 의 식이 널리 확산될 것이며, 많은 주변부 지역에서 전통적 문화와 가치들을 복권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지역 교회들의 토착 문화와의 관계 설정 문제, 타종교들과의 건전한 관계를 정립하는 과제가 새로운 차원에서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다섯 째, 환경 위기는 오늘날의 경제 · 정치 · 군사적 문제, 문 화적 생활 양식과 사고 방식 모두가 응축(凝縮)된 문제 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속 가능한 지구 사회' (sustainable global society)를 만드는 데 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 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에이즈, 마약, 이민, 난민 문제 등 국제적인 공동 노력을 요구하는 쟁점들도 대응 여하에 따라 교회의 장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이다. (⇦ 교회와 제3 세계) ※ 참고문헌  Francis X. Meehan, A Contemporary Social Spirituality, New York : Orbis Books, 1990/Tissa Balasuriya, Planetary Theology, New York : Orbis Books, 1984/ The Ecumenical Review, vol. 46, No. 1, 1994/ 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서영일 역, 《근대 교회사》, 은성, 1988)/ Mike Featherstone, ed., Global Culture, London : SAGE Publications, 1990/ Masao Miyoshi, A Borderless World? : From Colonialism to Transnationalism and the Decline of the Nation-State, Critical Inquiry, Summer, 1993(김승순 역, <국경 없는 세계인가? : 식민 주의에서 초국적주의로>, 《창작과 비평》, 1993년 겨울호)/ Christopher Chase-Dunn, Global Formation, Cambridge : Basil Blackwell, 1989/ Immanua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New York : Academic Press, 1974/ Wallerstein, The Politics of the World-economy,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Wallerstein, The Geoculture of Development, Or the Trasformation of Our Geoculture?, A paper presented to Intemational and Inter-Agency Forum on Culture and Development, September 20-22, 1993, Seoul/ Chandra Muzaffar, Human Rights and the New World Order, Penang Just World Trust, 1993/ Roland Robertson, The Sacred and the World System, in The Sacred in a Secular Age, ed. P.E. Hammond,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Robertson, The Relativization of Societies, Modern Religion and Globalization, in Cults, Culture, and the Law, ed. Thomas Robbins and William C. Shepherd and James McBride, Chico, Cali : Scholar Press, 1985/ Stan Davis and Bill Davidson, 2020 Vision, Simon & Schuster, 1991(한성 호 . 하헌식 역, 《경제 이동》, 지식공작사, 1992)/ John Naisbitt and Patricia Aburden, Megatrends 2000, Washington D.C. : Raphael Sagalyn, Inc., 1990(김홍기 역, 《메가트렌드 2000》, 한국경제신문사, 1990)/ Alvin Toffler, War and Peace in the Post-Modem Age, 1993/ Toffler, Powershift, Bantam, 1990(이규행 역, 《권력 이동》, 한국경제신문사, 1990)/ Ernst Benz, Christianity and Other Religions in a Changing World Situation, in Readings on Church and State, ed. J.E. Wood, Waco, Texas : J.M. Dawson Institute of Church-State Studies, 1989. 〔姜仁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