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설화 創造說話 〔라〕Narratio de creatione 〔영〕Naramiveofeof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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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여러 가지를 창조하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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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여러 가지를 창조하신 하느님.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 즉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ㄱ절까지의 내용.
좁게는 유대인들이 가장 중시하던 모세 오경, 넓게는구약 또는 신구약 전체의 첫머리에 있는 창조 설화(창세1, 1-2, 4기는 오랜 전승사(傳承史)의 결과물이다. 그전사(前史)는 고대 근동의 여러 전통에까지 이어진다.오경의 최종 저자 또는 편집자들은 창조와 관련된 다양한 전통을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정화한 다음, 자신들의 고유한 자료와 혼합하여 독창적인 창조 설화를만들어 내었다. 〔구약의 다양한 창조 서술〕 배경 : 구약성서는 천지 개벽 때 야훼 하느님이 한 일을 노래한다. "당신(= 야훼님)힘으로 바다를 놀라게 하시고 당신 통찰로 라합을 쳐부수셨네. 그분의 바람으로 하늘은 맑아지고 그분의 손은'도망치는 뱀' 을 꿰찌르셨네"(욥기 26, 12-13).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내(= 야훼님)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말하였다).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욥기 38, 8. 10-11). 욥기의 이 두 대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 근본줄거리는, 현세가 시작되던 때에 지고하신 하느님, 곧 야훼가 바닷괴물과 싸워 그것을 죽이거나(시편 74, 13-14 ;89, 11 : 이사 27, 1 : 51, 9), 완전히 제어하여 야훼가 지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바닷괴물(욥기 7, 12 : 이사 27, 1 ; 51, 9)은 라합(욥기 9, 13 ;26, 12 : 시편 89, 10 : 이사 51, 9), 레비아단(시편 74, 14 ;104, 26 ; 이사 27, 1), 용(시편 74, 13), 도망치는 범(욥기26, 13 ; 이사 27, 1), 구불거리는 뱀(이사 27, 1) 등 여러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및 메소포타미아에서 공통적으로 전해 오던 신화에서 빌려 온 내용이다. 바빌론의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에서는(기원전12세기 이후), 마르둑(Marduk) 신이 티야마트(Tiamana)와격전을 벌여 이긴 다음, 갑각류 짐승처럼 생긴 이 괴물을둘로 갈라 그 위 부분으로 이른바 천상대양(天上大洋)을만들고 그 물이 넘치지 못하게 잘 가두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신화가 창조주의 무한한 권능을 노래하는 시적 요소로만 이용된다. 이는 위의 욥기26장 26-27절에서 '라합' 의 동의적 대구(對句)로 '바다' 가, '도망치는 뱀' 의 반의적 대구로 '하늘' 이 쓰인 데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또한 '라합' 에 대한 승리에 이어 "하늘도 당신의 것, 땅도 당신의 것, 누리와 그 안에가득 찬 것도 당신께서 지으셨나이다"(시편 89, 10-11)라고 한다. 그리고 탈신화화가 완벽히 이루어진다. "그곳(= 넓은 바다)에 배들이 돌아다니고 당신께서 만드신 레비아단이 노니나이다"(시편 104, 26). 레비아단은 하느님의 적수가 아니라 창조의 덕을 누리며 창조주를 찬양하는 피조물일 뿐인 것이다. 인간의 창조 : 통상 야훼 전승 문헌(J)으로 분류되는창세기 2장 4ㄴ-25절의 주제는 하늘과 땅의 전반적인창조가 아니라 특수하고 단편적인 아담과 하와의 창조이다. 기원전 17세기경 메소포타미아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창조의 신이 진흙에다 자기가 살해한 신의살과 피를 섞어 사람을 만들어 낸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고 그의 코에 당신 생명의 숨을불어 넣었다. 또한 근동의 신화에서는 신들이 음식 장만같은 허드렛일을 시키려고 사람들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모자람 없이 살 수 있도록하느님이 손수 에덴 동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장만해주었다. 창세기의 이 둘째 단락(2, 4ㄴ-25)은 신인 동형론(神人同形論)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신화적이나 마술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창조주의 권능을표현한다. 또한 하느님의 인간 창조 행위는 고대 근동의신화와 달리 외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와 인간 사랑으로 가득 찬 고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창세기 또는 모세 오경의 최종 편집자들이 이 2장 4ㄴ-25절의 내용을 둘째 단락으로 배치한 의도는, 1장 1 절ㅡ2장 4ㄱ절에 이어 또 다른 창조 설화를 들려주려는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인간의 행복을 밝히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탓으로 창조주 하느님이 마련해준 행복을 잃고 만다. 그래서 둘째 단락은 3장 24절까지이어지는 단락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단락은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성서의 가장 큰 두 주제를 도입한다.그리고 2장 4ㄴ절-3장 24절은 하느님이 행복을 누리라고 만든 인간의 타락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지혜 문학 : 몇몇 지혜 문학서의 본문에서도 천지 창조가 언급된다. "주님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시고 슬기로 하늘을 굳히셨다. 그분의 지식으로 심연이 열리고 구름이 이슬을 내린다" (잠언 3, 18-19). 여기서 언급된 지혜가 의인화된다. 지혜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가장 먼저 지은 피조물의 맏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지혜는 곁에서 그분의 모든 활동을 지켜보게 된다(잠언 8, 22-31 ; 지혜 9, 9). 더 나아가서 지혜를 "모든 것을 만든 장인"이라고 노래한다(지혜7, 21). 그러나 지혜 문학에 고대 근동 창조 신화의 잔영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느님이 심연의 테두리를 만들었다는것이나, 바닷물이 당신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경계를 지정하였다는 것은(잠언 8, 27. 29 ; 시편 104, 9) 바닷괴물에 대한 승리와 제어라는 신화의 주제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에 남아 있는 것은 신화의 색채가 완전히 제거된 흔적일 따름이다. 지혜 문학은 자연역시 절도와 균형 그리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슬기롭게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지혜를 의인화함은 세상을 만들고 이끄는하느님의 지혜를 그만큼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시편 147, 4-5 : 예레 10, 12 ; 51, 15). 일부 시편과 이사야서 : 몇몇 시편 구절과 제2 이사야 서(이사 40-55장)에서는 창조 설화처럼 말씀에 의한 창조가 강조된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생겨났도다"(시편33, 6. 9 ; 148, 5-6) 제2 이사야서에서는 하느님이 천지의 유일한 창조주라는 것이 근본 명제이다(40, 26 : 44, 24 ; 45, 12. 18 ;48, 13). 특히 이 예언서에서는 하느님의 창조적 말씀이창세기 1장에 비해서 더욱 역동적이다(44, 27 ; 50, 2).창조는 또한 한처음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며,그러한 하느님의 창조력은(40, 26) 현재의 인간사에까지깊숙이 작용한다.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45, 7). 하느님은 특히 이스라엘을 창조하였고, 당신의 이 백성을 역사를 통하여 계속 이끌어 주는 분이다(43, 1. 7. 15 : 44, 24 : 54, 5). 창조주 야훼는 우상에 불과한 다른 신들과 달리 참 하느님이다(40, 18-26 ; 시편115, 3-7 ; 이사 17, 7-8 : 예레 10, 11-12 : 51, 15-19 ; 다니 14, 5). 그렇기 때문에 유배라는 '불행' 을 반전시켜해방이라는 '행복' 을 당신의 백성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분이다. 태초의 창조는 현재에도 이어지며, 특히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새로운 정점에 다다른다(이사 48, 7). 〔구조와 유형〕 이상에서 살펴본 구약성서 구절들은 창조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단편적으로 드러낸다. 이에반해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은 두 가지 점에서 이구절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첫째, 이 단락은 완전한 꼴을갖춘 설화이다. 둘째, 창세기의 이 첫 구절이 창조에 관한 논문은 결코 아니지만, 이렇게 완벽한 설화 형태와 성서 안에서 갖는 위치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구약성서의창조 신학을 대표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구조 :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은 일목요연하게구성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구조를 다음의 표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먼저 같은 낱말과 내용으로 짜여진 짧은 두 문장, 곧 1장 1절과 2장 4ㄱ절이 시작과 끝을 알린다(ㄱ과 ㄱ , ). 이어서 1장 2절에서는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를 서술하고, 2장 1-3절에서는 천지와 그 안의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완성되었음을 이야기한다(ㄴ과 ㄴ =' ) . 혼돈 곧 '카오스 (chaos)에서, 우주 곧 만물이 보편적 질서와 규칙 속에 일치를 이루는 '코스모스' (cosmos)로 변환된 것이다.1장 3-31절에서는 엿새, 곧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여섯단계에 걸친 창조가 자세히 말해진다. 매번 동일한 과정에 따라 수행되는 창조의 각 날은 특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라는 식의 고정 표현이 후렴처럼 사용됨으로써 서로 확연히 구분된다. 창조의 엿새 가운데에서 제3일과 제6일이 두드러진다. 이 두 날에는 다른 네 날과 달리 하느님의 창조 명령이 두 번 내려짐으로써(9절과 11절, 24절과 26절) 이중의 창조가 실행되고, 그에 따라 하느님의 만족감을 표현하는 정형도("보시니 좋았다") 두 번씩 되풀이된다(10절과 12절, 25절과 31절).창조가 '분리' 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반 사흘과 분리의결과로 생긴 '공간' 에 피조물을 채우는 후반 사흘이 또한 서로 짝을 이룬다(ㄷ과 ㄷ ' , ㄹ과 ㄹ ' , ㅁ과 ㅁ ' ). 창조는 구체적으로 하늘과 땅을 두 축으로 이행되는데(앞과 뒤의 종합, 곧 1, 1과 2, 4ㄱ), 초점은 하늘에서 출발하여 땅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을 보인다. 유형 : 이렇게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은 구조가율동적이고 흐름이 장엄하며 또 문체가 정교하다. 그렇다고 이 단락을 창조의 서사시 또는 창조 찬가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운문의 요소나 특징을 찾아 볼 수 없다. 저자는 어떠한 표상이나 시적 감흥도 없이 산문적으로만 서술해 간다. 하느님에 관해서도 창세기 2장 4ㄴ절-3장 24절과 달리 신인 동형론적인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절대적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말씀 이외에,'보다' , '부르다' , '만들다' 등 그분의 행위도 최소한으로 절제한다. 더러 이 단락을 말씀에 의한 창조와 행위에 의한 창조의 두 개 문학층으로 나누어 전자를 사제계 문헌 저자의고유한 이야기로, 후자를 저자가 이어받은 전승으로 나누기도 한다. 저자가 전통적인 자료를 이용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자료의 층을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구분하고 분류하고 정의를 내리기를 즐겨하며 교의와 제의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이 저자는, 전승 자료를가지고 자기만의 독특한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저자의 이중 저술 의도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수 있다. 첫째, 성서 자체에도 다양한 흔적을 남긴 근동의 여러 창조론을 논박하고 참된 창조 신학을 정립하는것이다. 둘째, 특히 십계명과 예언자들의 선포로 체험한하느님 말씀의 위력과 권능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은 독특할 뿐만 아니라특이한 설화이다. 설화는 통상 긴장이 조성되는 상향 곡선을 그리다가 정점에 다다르고 긴장이 해소되는 하향곡선과 함께 마무리된다. 그러나 창세기의 첫 단락은 이러한 단계 없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진다. 제3일과 제6일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의 폭이 넓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이 설화도 일정한 정 점, 곧 창조가 가장 상세히 기술되는 제6일의 인간 창조에 이어 제7일의 하느님 안식을 향해 전개된다. 이는 강이 마지막으로 넓어졌다가 무한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꼴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유형은 해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은 설화이기 때문에 설화로 알아들어야 한다. 창세기는 우주나 인간의 생성을 과학적으로 논하는 글이 아니다. 우주 생성론이라든가 진화론, 인류가한 조상에서 나왔느냐 아니면 여러 조상에서 나왔느냐는일원 또는 다원 발생설 같은 과학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창세기의 저자는 신학을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해서 "성서의 창조가 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창조와 다르냐?" 라는 물음에 대한, "성서는 낙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낙원에 갈 수 있느냐를 이야기한다"라는 한 교부의 답이 시사적이다. 〔구약성서의 창조 신학〕 모세 오경 또는 구약성서 최종 편집자들이 창세기 1장 1절-2장 4ㄱ절을 첫머리에배치한 것은 이 첫 장에 대표성을 부여하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위에서 본 다양한 창조 서술도 근본 내용은 성서의 이 첫 단락과 맥을 같이한다. 하느님 :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에서는 신들도 태어난다.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한처음' 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첫머리에서 선포한다(1, 1). 하느님은 모든 면에서 피조물의 세계를 초월하는 분으로 천지를 '세상' 밖 에서 창조하였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여러 신들이 성적결합이나 격렬한 싸움 끝에 세상을 만들었다고 믿었다.그러나 창조주는 오직 한 분뿐이다. 이 한 분이 당신 밖의 어떠한 필요나 강제 없이 오로지 당신의 자유 의사와계획에 따라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창조 이전은 이른바 혼돈(chaos) 상태였다(1, 2). 이 혼돈의 특징은 생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이나 질서를불허하는 비어 있음과 형체 · 구조가 없음이다. '심연' 은무정형을 일컫는 상징이다. 창세기 둘째 절은 창조의 재료가 아니라 창조 이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하느님은 곧무(無)에서 창조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고 방식을 지녔기 때문에, 추상명사를 잘 만들지 못한다. '무에서의 창조' 라는 개념은 마카베오 하권7장 28절에 가서야 조금 더 명확히 표현되는데("하느님은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이미 있는 것에서 만들지 않으셨다" ) 창세기 1장 1절에도 이러한 생각이 이미 들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은 물질이 영원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들은 물질에서 생겨나 신성한 그 물질을 재배치하고 정리 · 정돈함으로써 세상을 만들었을 따름이다. 반면 창세기의 저자는 모든 물질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피조물 아닌 물질이 없음을 명확히하였다. 하느님은 먼저 빛을 창조하였다(1, 3). 이는 어떤 면에서 제4일에 실행된 해와 달과 별들의 창조와 겹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빛을 첫째로 창조하셨다고 밝힘은 하느님 창조의 내외적 광명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있다. 이는 "보시니 좋았다" 라는 창조의 선성(善性)으로이어진다. 고대 근동에서는 천지 개벽은 신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과 살해의 결과로 보았다. 곧 어둡고 부정(不淨)한 분위기 속에서 천지 개벽이 이루어진다. 반면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에 마련해 준 이 광명이 장차 연이어 암흑을 불러오는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태초에만이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여 세말(世末)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하늘의 궁창에 빛을 내는 물체들을 만들었다(1, 14-19). 사제계 저자는 '해' 와 ''달' 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큰 빛물체' 와 '작은 빛물체' 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고대 근동인들은 예외 없이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들을 신으로 여겼다. 반면 창세기 저자는 그것들이 피조물에 불과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천체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빛을 내고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피조물일 따름이다. 찬란히 빛나는 해든 이름없는 풀이든 모두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그들 사이에는아무런 차이가없다. 피조물이기는 짐승들도 마찬가지이다. 근동 사람들은 일부 짐승들을 신으로 받들었다. 특히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은 창조 신의 적수로 창세기 1장21절에 언급된 '큰 바닷괴물들' 을 생각하였다. 창세기첫 단락은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의 창조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와 질서도 정립한다. 창조주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고 그 밖의 모든 존재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모든 피조물의 정점은 또 신으 로 추앙받는 천체나 동물이 아니라 가장 나중에 창조된사람이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말씀 하나로 창조하였다. 말씀은 곧 지상 명령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에 맞설수 없다. 무에서 창조하는 말씀이며, 창조된 모든 것들이지키고 또 지켜야 하는 분부이다. 창조의 말씀은 피조물들을 종말까지 존속시켜 가는 법이다. 인간 : 하느님은 사람을 당신 모습으로 만들었다(1,26). 창조주의 위대함에는 창조의 정점인 인간의 위대함도 내포된다. 피조물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사람만은 피조물이면서 하느님 쪽에 더 가깝다. 곧 이어지는 인간의 타락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사제계 저자도 인간의 나약성과 불완전성과 무상성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을 그야말로 '신적'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과 선의와 자비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시편 8편의 저자는 '예술가' 하느님이 만든 자연, 특히 피조물의 으뜸인 인간에 대한 경탄을 노래하는데, 근본 내용은 창세기첫 단락과 같다. 주변 민족들은 신들이 자신들의 시중을들게 하려고 사람을 만들었다고 믿지만, 창세기는 하느님이 당신의 신성(神性)에 참여시켜 행복과 구원을 누리게 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밝힌다. 하느님은 특정 인간이 아니라 '아담' (אָדַם), 곧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은 다 똑같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인간도 다른 인간 위에 있지 않다. 사람은 모두 동등한 존재로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피조물을 다스리지만(1, 26), 그 통치는모든 것을 좋게 창조한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그분에대한 책임 아래 다스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1, 27). 남녀 양성(兩性)은 인간의 근본 조건이다.피조물들 사이에 차등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 상하가 없듯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인간의동등성과 남녀의 동등성은 그 옛날에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평등성이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근본까지 숙고하고 반성하는 저자에게 그것은 창조주가 원하는 창조질서였던 것이다. 하느님은 짐승들과 사람을 창조하고 나서 번식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한다(1, 22. 28).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은 성(性)과 생식력까지 신성화하였다. 그래서 다산을촉진하려고 신들의 이름으로 신전에서 공공연히 성행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성과생식력이 하느님의 선물임과 동시에 그분이 내린 과업이기도 하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서 둘이 함께 하느님의창조에 참여하고 그것을 이어간다. 역사 : 창조가 완성되는 '이렛날' 은 다른 날들과 달리세 번이나 연이어 언급된다. 이 낱말이 들어간 세 문장은(2, 2-3ㄱ) 히브리어 일곱 낱말로 이루어짐으로써, 창조제7일이 다른 날과 다르고 중요하다는 것이 부각된다.7 은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이다. 창조는 하느님의 안식 이라는 이 완전함으로 흘러들어간다. 다른 날들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시간의 흐름으로 다음날에 이어지는데, 이렛날에는 그러한 시간의 흐름이 없다. 이날은 곧영원을 의미한다. 이렛날은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으로서창조의 목표인 것이다. 이 안식은 최종적 구원이고, 창조는 하느님이 주는 구원의 시작이다. 이러한 제7일이 있기에 서로 연결될 수 없는 시간과 영원이 이어진다. 제7일은 시간과 영원, 지상과 천상, 인간과 하느님을 연결해주는 다리와도 같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바로 하느님의 이러한 창조 목표를 재확인하고 미리 맛보는 날이다. 시간의 창조와 함께 '역사' 가 시작되었다. '한처음' 이있으면 궁극적인 끝도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느님과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이 구원의 역사는 창조주의 뜻과지속적인 인도 아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창조의 시작인 시원(始原)은 창조의 완성인 종말로 이어지고, 종말은 시원을 전제한다. 이 처음과 마지막을 아우르는 분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하느님이다. 제2 이사야서는 이러한 사실을 "나는 시작이요 나는 마침이다"라고표현한다(이사 44, 6 ; 48, 12 : 41, 4). 인간은 '시작' 인하느님에게서 나와,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 , 곧 '마침'인 하느님을 향해,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존재이다(창세5, 22. 24 : 6, 9). (→ 낙원 ; 아담 ; 안식일 ; 인간학, 신학에서의 ; 창세기 ; 창조 ; 하와) ※ 참고문헌  J. Nelis, Schöpfung, Bibel Lexikon, Einsiedeln,Benzinger Verlag, 1968, pp. 1546~1552/ H. Haag, Schöpfungsbericht,Bibel Lexikon, Einsiedeln, Benzinger Verlag, 1968, pp. 1552~1556/ C.Westermann, Genesis 1. Kapitel 1-11(Biblischer Kommentar I-1),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2nd ed., 1976/ G.J. Wenham,Genesis 1-15(Word Biblical Commentary I), Waco-Texas, WordBooks, 1987.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