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어떤 행위가 그 행위의 주체에게 돌아가는 것.넓은 의미의 법률적 의미로는 법률상의 불이익 또는 제재가 지워지는 것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위법 행위를 한자에 대한 법률적 제재를 의미한다. 이는 형사 책임과 민사 책임으로 나뉜다.
〔어 의〕 이 개념은 고대 로마 법정에서 피고인이 고발이나 심문에 답하는 '응답' (respondere)에서 비롯되었다.따라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고발에 대해 변론하거나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임' 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서도 사용되었다. 이경우 인간이 최고 심판자인 하느님 앞에서, 또는 최후 심판 때 그리스도의 법정에서 자신을 정당화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런 언어적 용법부터 한편으로는 황제의 생각과 로마법의 일부를 이루는 특정 표현들이 그리스도교로 들어왔고, 다른 한편 책임과 같은 개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서, 특히 각 개인의 독특성과 무한한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내면성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근대와 계몽주의 윤리학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가리키기 위해서 중세 스콜라학에서 고안된 '귀책' (imputatio)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다. 그래서 칸트(I. Kant, 1724~1804)는 '귀책' 을 어떤 행위에 대한 판단이라고 정의하였다. 그것이 특정 실천적 법칙들과 연관된 인격의 자유로부터 유래되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책임' 이라는 단어는 규칙적으로 '귀책' 과 함께 사용되고, 이 둘이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최근의 철학 사전들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책임은 도덕적 인격으로서의 인간이, 그런 귀결들을 자기 자신에게, 자기 의지의 자유로운결단 탓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이끌렸다고 느끼게 되는 자신의 행위의 귀결들을 떠맡는 것이다" (호프마이스터). 또는 "책임은 인간 의지의 자유와 그 안에 토대를 두고 있는 귀책 가능성의 필연적 귀결이다" (부르거). 근대 주관주의와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가르침에뿌리를 두고 있는 이 어의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책임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 앞에서의 책임' 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경우 '인간의 근본적 자유'와 동등시된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처지〕 책임은 분명 '응답' 과연관된다. 보다 심층적으로는, 어떤 사람의 활동과 이것을 통해 그의 자아가 의문시될 때에 그 사람 자신을 드러냄을 의미한다. 오직 인격자만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의문시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은 인격 특유의 태도이다.엄밀히 말해 사물들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즉 그 사물들에 대한 사용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명되어야만 하는경우에 한해서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책임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문제시되고 그가 이 소환에 응답할 수 있을 때에만 성립된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오직 하느님앞에서만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문제시할 수 있고, 인간은 오직 하느님에게만자기 자신을 총체적으로 돌려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과 이웃에 대한 책임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문제시될 수 있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과 남들에 대한 그의 능력에 의해서 제한된다. 성서는 창조를 설명하면서 인간을 하느님의 말씀의 상대자이자 하느님의 요구를 받는 자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책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창세 1, 28 이하 : 3, 9 ;4, 9 : 요한 1, 1). 인간은 피조물 관념에 의해서 표현되는관계인 능동인으로서의 하느님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그의 책임에 의해서 하느님의 파트너 관계로 불리기도 하였다(로마 8, 19 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창세 1, 27)이자 협력자이기 때문에 피조물들의 주인이란 사명을 지니고 있다(창세 1, 26). 또한 인간은 이웃에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 헌신함으로써 이 파트너 역할에 응답한다(루가 10, 27 참조). 이리하여 인간은 남자와 여자의 형태로 하나의 사회적 · 대화적 존재로 창조되었다(창세 1, 27). 신학은 이 진리를 구원 확실성의 범위와 한계라는 가르침 속에서 주장한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당신의구원 제공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평가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직 하느님만이 응답자를 전적으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답자는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로운 처분권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처분권 그 자체에 대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자신이 자유로운 선택을하였으면, 그것에 대해서 그 대상화에 달려 있는 제한된정도로만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주체성 역시 자신의 동료들에게 접근될 수 있지만, 오직 외부적인 표현들로 자신을 대상화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 따르면, 인간은 오직 넓은 의미로 만 구원의 확실성을 가질 수 있다(DS 826). 인간에게는자신의 동료 인간을 결정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단호하게 금지되어 있다(마태 7, 1 : 루가 6, 37). 그러나상호 의존성의 틀 속에서 그리고 특히 그의 권한의 범위내에서 자신의 동료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또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게 힘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책임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해명하도록 소환될 수 있다는 데에 성립된다. 그는 하느님과 자기 동료들 및 자기 자신에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행위들을 해명해야 하는 한에서 책임이 있다. 이것은 그가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거기에 있는 것은 그의 자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관련해서 이것은 그분께 대한 총체적 의존과 인간의 총체적 자기 실현에서 충족되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절대적 구속력을 인정하는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최고로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의 본성〕 책임은 자유를 전제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행위하는 한에서만 책임 있게 행위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의 본질은 자유로운 행위가 이웃의 선익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책임의 토대는 인격의 존엄성에 맞갖은 존중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임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인격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대화적 본성에 대한 표현이다.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활동들에 대해 책임을짐에 따라, 자신의 결정적인 총체적 구원이냐 파멸이냐를 결정한다. 이것은 인간이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도덕적 행위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행위들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의 핵심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은 그의활동들을 통해서 거기에 있다. 인간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바라보며 결단하는 그만큼 그는 또한 자신의행위들에 책임이 있고, 그래서 그의 책임은 단지 자신의개인적인 자유 행위들로 환원되거나 동일시될 수 없다.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행위들을 자기 동료들에게로,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로 자유롭게 향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행위들 자체는 다만 이런 인격적 책임의 조건적이고 제한된표현들일 뿐이다. 인간이 모든 엄격하게 도덕적인 행위 안에서 자신의최종적 구원을 위해 또는 그것을 거슬러 결단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충만에 도달하기까지 인간은 자신의 행위들 안에서 오직 조건적으로만 지상 실재의 법칙들을 표현할 수 있는 역사적 존재자이다. 그래서인간은 다만 자신을 행위들과 조건적으로만 동일시할 수있을 뿐이고, 이론적으로는 그것들에 대한 교정이 언제나 가능한 채로 남아 있다. 이 교정 가능성은 자신의 지상 생애의 끝에서 인간이 자신에게 제공된 모든 구원의 기회들에 관해서 단호하게 결단하고 그 모든 가능성을소진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배제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총체적인 자기 이해와 자기 자신에대한 근본적 기획이라는 틀 속에서만 자신의 개별적 행위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 행위들은 오직 그것들이 어떤계획으로 정향되거나 거기서부터 연원되는 한에서만 인격 자체에 돌려질 수 있다. 책임의 불가분성, 차이 그리고 등급은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긴장과 그것으로부터 결과되는 자기 자신의 객관성을 제어할 수 있는 제한된 역량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덕적 책임은 인간의 행위를 자기 존재의 심층적 차원들, 선택들을 안내하는 궁극적 지향성, 성장의 여러 단계에서 인간 성장을 특징짓는 항구한 역동성 등과 묶어주는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또한 자유의 실행이최선의 수준에 도달한 곳에서도 결코 온전히 극복될 수없는 한계들과 주체적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책임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인간과 가정에 대한 소외의 원천이 될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할 과제로만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무엇보다도 선을 위한 긍정적 투신으로 그리고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악을 퇴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모든 형태의 불의들을 극복하려는 계속적인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책임의 면제〕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서 자기 자신을처분하는 한에서만 책임이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선한지 악한지를 결정짓는 기준이다. 그의 행위들은 동일한기준 안에서 그의 책임으로 놓여 있다. 인간의 책임은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본질적 존재 방식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행위들이 자신의 존재 방식들을 표현하는 한 그것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리고 오직 인간의 행위들이 그의존재 방식에 근거 있게 돌려질 수 있는 한, 그것들로부터그의 책임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주체적 존재 방식은 대상화를 통해서만 조건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 책임은 어떤 주어진 경우에 오직 조건적으로만 취해질 수 있다. 어떤 행위를 행위자가충분히 통제할 수 없었다고 근거 있게 취해질 수 있는 동기들(무지, 내 외부적 강제, 행위자의 통제력을 넘는 상황, 능력이나 기회의 결여)에 의해서 충분하게 설명될 수 있는한, 책임은 면제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가 피할 수없는 법칙들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내면적 충동이나 외부적 강요에 의해서 동기 선택이 너무도 제한되어서 책임 있는 행동 방식을 선택할 힘을 전혀또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지고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교회 가르침에서의 책임] 교회는 우선 자유와 책임을연결지어 가르친다. 인간은 행위의 자발성에 따라 자유로이 행한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특히 숙고한 후에이루어진 행위는 그 자신의 것이며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개인적 행위인 죄에 협력하였다면, 그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예를 들면 그죄에 직접 · 고의적으로 관여하거나, 그 죄를 명령하거나권하거나 칭찬하거나 승인하는 경우, 그것을 알릴 의무 가 있을 때 알리지 않거나 막을 의무가 있을 때 막지 않은 경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경우 등이다.그렇다고 해서 복음서의 예수의 재판에 대한 언급에서등장하는 선동을 받은 군중들의 외침이나(마르 15, 11),성령 강림 뒤에 회개하라는 호소에 포함된 일반적인 책망이 있었다 해도(사도 2, 23. 36 : 3, 13-14 : 4, 10 : 5,30 7, 52 : 10, 39 ; 13, 27-28 ; 1데살 2, 14-15), 그 재판의 책임을 예루살렘의 유대인 전체에게 지울 수는 없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용서함으로써(루가 23, 34)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나아가 그 지도자들의 무지를 인정하였고, 예수를 따라 베드로도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다(사도 3, 17). 나아가 책임 인정(사도 5, 38 ; 18, 6)의 표현인 "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감당할 것입니다)"(마태 27, 25)라는 군중의 외침을 근거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속한 유대인들에게까지 그 책임을 확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하느님인 구세주가 겪은 모든 고난의 장본인이고 그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처형에 대한 가장 중대한 책임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를 짓는 이들에게 있다. 타락과악에 빠지는 사람들은 마음 안에서, 그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아들을 거듭 십자가에 못박고 욕을 보이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무지, 폭력, 공포나 그 밖의 정신적 또는 사회적 요인들이 어떤 행위에 대한 인책성이나 책임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교회는 자신이 행한 행위들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것이 인간의 양심이라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사회 교류에 투신하는 사회 참여를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책임을 맡고 있는 분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기 가족의 교육에 정성을기울이고, 자신의 일을 양심적으로 수행하여 타인과 사회의 선익에 이바지하는 것 등이다. 인간이 사회 참여를해야 하는 것은 창조주의 모습을 닮은 인간에게 세상에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유한 나라들은 자신의 발전 수단을 스스로 확보할 수 없거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발전에 방해를 받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것이 연대성과 사랑의 의무이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은 자녀들과 부모의 책임을 상기시켜 준다. 자녀들은 힘 자라는 데까지 부모의 노년과 병환중에, 고독하거나 곤궁한 때에 물질적 · 정신적인 도움을드려야 한다(집회 3, 2-6. 12-13. 16). 또한 부모는 자녀교육의 첫째가는 책임자이다. 왜냐하면 혼인성사의 은총으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명 전달과 복음을 전달할 책임과 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 인간적 행위 ; 인격 ; 자유) ※ 참고문헌 요한 바오로 2세 , 정승현 역, <진리의 광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이재 룡, <인간의 자유와 책임>, 《인간 연구》 창간호, 2000/ ㅡ, <자유의 토대와 한계>, 《사목》 198호(1995.7)/ Ch. 테일러,<자아에의 책임>, 게리 왓슨 엮음, 최용철 역 《자유의지와 결정 론》, 서광사, 1990/ P. 테일러, 김영진 역 ,《윤리학의 기본 원리》, 서광사, 1985/ M. Adler, The Ideas of Freedom, 2 vols.,Garden City, N.Y., Doubleday, 1958~1961/ R.A. Duff, 《EP》 8, pp.290~2941 W. Molinski, 《SM》 5, pp. 321~322/ B. Mondin, L'uomo libero, Roma, Dino, 1989/ G. Piana, Liberta e responsabilita, Nuovodizionario di teologia morale, F. Compagnoni et al. ed., Milano,Edizioni Paoline, 1990, pp. 658~674/ J. Schwartlaender, Concettifondamentali di filosofia, vol. Ⅲ, H. Krings et al. ed., Brescia,Queriniana, 1982, pp. 1809~ 1822/ G. Semerari, Enciclopedia Filosofica,vol. V, Firenze, Sansoni, 1967, pp. 722~723. 〔李在龍〕
책임 責任 〔라〕Responsabilitas 〔영〕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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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