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天道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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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천도교 중앙 교당인 봉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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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천도교 중앙 교당인 봉황각.

손병희(孫秉熙, 1861~1922)가 1905년에 동학을 계승하여 개칭한 한국의 자생 종교. 〔역 사〕 동학의 제1대 교조(敎祖)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사도난정(邪道亂亂正)이란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이후, 동학 교도들은 교조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달라는교조 신원 운동(敎祖伸寃運動)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이 운동은 1890년대에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으며 ,1894년에는 동학 혁명으로 진전되었다. 동학 혁명 이후도피 생활을 하던 제2대 교조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1897년에 도통(道統)을 손병희에게 전수하고, 그 다음해인 1898년에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최시형의 죽음 이후, 손병희는 흩어진 신도들을 수습하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관헌의추적이 심해지자, 1901년 일본으로 피신하였다가 중국상해를 거쳐 귀국하였다. 다음해 3월 그는 유학생 24명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청년 자제들의 교육에 힘쓰는 한편,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국제 정세와근대 문물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변화는 동학 교단의 사상적 폭을 확대시키고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강화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개혁 기구로 참여하기위해 1904년 9월부터 전국 규모로 조직되기 시작한 진보회는, 이용구(李容九, 1868~1912)의 주도 아래 친일단체였던 송병준(宋秉峻, 1858~1925)의 일진회(一進會)와 통합함으로써 친일 단체로 변모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손병희는 동학이 지녀 왔던 교정 일치(敎政一致)의 입장을 철회하고 오직종교로서의 관심만 갖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으며,1905년 12월에는 교명(敎名)을 '천도교' 로 개칭하고일진회와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1906년 1월에 귀국한손병희는 <천도교 대헌>(天道敎大憲)을 반포하고 서울에 '천도교 중앙 총부' 를 설치하는 한편,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이용구를 비롯한 친일분자 60여 명을 출교 처분하였다. 그는 각 지방에 280개의 지방 교구를 설치하고, 교리 · 교체(敎體) · 교제(敎制)를 제정하는 등 교단의면모를 일신하였다. 또한 보문사(普文社)라는 인쇄소를설립하여 수많은 교서를 발간하고 사상 체계를 확립하는등 선교는 물론 교육과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교세도 크게 증가하였다. 천도교는 1919년의 3 · 1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손병희를 비롯한 많은 교도들은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일제 당국에 의해 옥고를 겪었다.3 · 1 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식민 정책이 소위 문화 정책으로 바뀌자, 천도교의 활동은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20년 3월 1년 전에 세웠던 '천도교 청년 교리 강연부' 를 '천도교 청년회' 로 개편하여 전국 지부를 결성하였으며, 같은 해 6월부터는 《개벽》(開闢)이라는 종합잡지를 발간하고, 이어 《신여성》 · 《학생》 · 《어린이》 등의 월간지도 발간하였다. 《개벽》은 1926년 일제에 의해72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기까지, 천도교의 교리를 통한 민중의 주체적 자각과 근대 문물에 대한 지식 보급에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1923년에는 천도교 청년회의조직과 명칭을 개편하여 '천도교 청년당' 을 창립하고, 그안에 학술 연구부를 두어 《자수 대학 강의》(自修大學講義)를 통한 대학 교양 과정을 강의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들과 함께 1921년에는 교단 조직을 중앙 전제 체제(中央專制體制)에서 지방 대의제(地方代議制))로 개편하였으며, 교주제(敎主制)를 중의제(衆議制)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혁신 운동은 1922년 5월 손병희의사망을 계기로 심각한 분쟁을 낳았다. 즉 중의제를 주장하는 신파는 '천도교 연합회' 를 설립한 반면, 구파는 이에 대립하는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또한박인호(朴寅浩)를 교주로 인정하는 교인 대회파(敎人大會派)와 이를 부정하는 중앙 종리원파(中央綜理院派) 그리고 통일 기성회파(統一期成會派) 사이의 대립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1926년에 교인 대회파와통일 기성회파가 타협하여 '중앙 종리원' 으로 개칭함으로써 신 · 구 중앙 종리원의 출현으로 연결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구파 종리원에서 교인 대회파가 다시 분리되어 사리원(沙里院) 중앙 총부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립과 분파 과정을 겪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교단 단합 운동과 교세 확장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1931년에는 신파 측의 '천도교 청년당' 과 구파 측의'천도교 청년동맹' 이 '천도교 청우당' (天道教青友黨)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1932년에는 500호를 1포(包)로하고 포의 구성을 5단계의 세포 조직으로 하는 등 교회조직의 강화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1934년 조선 독립만세 운동을 기도하였다는 혐의로 중심 인물 230명이검거되는 '천도교 오심당 사건' (吾心黨事件)을 겪었으며, 1937년에는 일제 당국에 의해 천도교 청우당이 해체되었다. 8 · 15 해방 후, 천도교는 남북으로 갈라졌다. 즉 서울에서는 1945년 9월에 김병제(金秉濟)를 당수로 '남조선천도교 청우당' 이 결성되었으며, 북한에서는 1946년 2월에 김달현(金達鉉)을 당수로 하는 '북조선 천도교 청우당' 이 결성되었다. 당시 북한 지역에는 32만 5천 호에달하는 신자들이 있었는데, 많은 신자들이 반공 운동을하였다는 혐의로 검거되었다. 또한 1948년 남한 지역에서는 신 · 구파가 통합된 반면, 북한 지역에서는 연원제(淵源制)가 폐지됨으로써 교회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북조선 천도교 청우당' 은 1950년 1월 북한 내의 '남조선 천도교 청우당' 을 흡수하여 '천도교 청우당' 으로 개편되었다. 이 단체는 '조선 노동당' 의 정강과 정책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조선 노동당의 외곽 정당이기도 하였다. 1995년 실시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집계 결과에서는 남한 내의 천도교 신자수가 28,184명인 것으로 집계됨으로써, 일제 강점기나 해방 직후보다 교세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 리〕 천도교의 신앙 대상은 동학과 마찬가지로 한울님' 〔天主〕이다. 그러나 '한울님' 의 성격에 관한 교리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동학의 창교자인 최제우의 '한울님' 신앙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천주' , 즉 '한울님' 을 알아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이었다. 그는 '한울님' 이 어떤 존재인지에관해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에게 외재하는초월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신으로 가르쳤다. 또한 그가 설명한 '한울님' 은 생성(生成) 자체인 '조화' (造化)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삼라만상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한울님' 의 조화로서,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화생(化生)한 것이다. 최제우는 <교훈가>에서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 말가" 라고가르쳤다. 즉 한울님을 밖에서 찾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곧 '한울님' 임을 깨달아 공경하라는 것이었다. 반면 최시형의 '한울님' 신앙은 '인즉천' (人卽天) ·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집약된다.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니〔人卽天〕,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事人如天〕"도가르쳤다. 또한 그는 "천지 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나니〔侍天主者〕,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물건을 먹음은 이곧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니라" 고 함으로써 우주 만물 모 두에 한울님이 내재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범천론(汎天論)의 입장을 나타냈다. 이러한 그의 '한울님' 신앙은 경천(敬天) · 경인(敬人) · 경물(敬物)의 삼경설(三敬說)로체계화되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한울님을 공경할 뿐 아니라, 온갖 탐욕을 물리치고 도덕적 인격을 닦음으로써 '한울님' 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양천주 (養天主) 사상을 제시하였다. 한편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제3대 교조 손병희의'한울님' 신앙은 '사람이 곧 한울' 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표현되었다. 손병희는 '한울님' 이나 '인내천' 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천도교 초기의출판물인 《각세진경》(覺世真經) · 《도결》(道訣) · 《삼전론》(三戰論) · 《천도태원경》(天道太元經) · 《무체법경》(無體法經) 등의 한문체 글들과 《몽중문답가》 · 《무하사》 · 《권도문》 등과 같은 국문체 글들에서는 '한울님' 이초월적이고 인간 외적인 신이 아니라, 내재적이며 이미인간 속에 갖추고 있는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인내천' 이란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그 몸이 곧 '한울' 이고 그 마음이 곧 '한울' 이다. 그러므로 '한울님' 을 모신다는 것은 내 마음을 모신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오늘날 천도교에서는 '한울님' 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즉 "한울님은 무궁한 절대자로서 만물을 화생하는 조화의 주재자이며, 아직 인간의 역사 창조에 뜻을다 이루지 못하고 계속 인간을 통하여 일하고 계시는 조화의 신이다. 한울님은 우주 만물을 낳으신 초월적 존재이며 동시에 만물 속에 내재해 계시면서 무궁한 생성 ·변화와 그 조화를 주재하는 존재이다. 한울님의 조화는자연계와 모든 생명과 사회와 인간 그리고 우주 만유의끊임없는 생성 변화와 그 질서를 주재하는, 지공무사(至 公無私)하고 전지전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는 곧무위이화로서 어떤 다른 힘의 작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한울님의 섭리대로 저절로 되는, 말하자면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 창조 · 진화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한편 천도교에서는 내세에서가 아닌 현세에서 지상 천국을 건설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기위해서 주관적으로는 개인의 인격을 완성하여 정신 개벽을 이루며, 객관적으로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 인간성 본연의 윤리적인 사회를 이룩하여 세계의 신앙을 통일하는 등 세계를 하나의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강조한다. 〔경 전〕 천도교의 경전으로는 창교자 최제우가 한문으로 저술한 《동경대전》(東經大全)과 한글로 지은 가사집(歌詞集) 《용담유사》(龍潭)詞)가 있다. 《동경대전》은<포덕문>(布德文) · <논학문>(論學文) · <수덕문>(修德文) ·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용담유사》는 <용담가>(龍潭歌) · <안심가>(安心歌) · <교훈가>(敎訓歌) ·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 <도수사>(道修詞) · <권학가>(勸歌) . <도덕가>(道德歌) · <흥비가>(興比歌) · <검결>(劍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앙 행위 및 의례〕 천도교에서는 신자들이 반드시수행해야 할 덕목으로 '오관' (五款)을 강조한다. 즉 주문(呪文) · 청수(淸水) · 시일(侍日) · 성미(誠米) · 기도(祈禱)의 다섯 가지 정성을 의미한다. '주문' 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서 장생(長生)의 글이며, 한울님의 덕을 천하에 펴는 법문(法文)이다.항상 독송(讀誦)함으로써 천심을 회복하여 진리를 깨닫고 천덕사은(天德師恩)을 염념불망(念念不忘)하여 만사여의(萬事如意)에 이르고 이신환성(以身換性), 천인합덕(天人合德), 도성입덕(道成立德)을 이루는 기도문이다. 현재는 21자 주문(3 · 7자 주문), 강령 주문(降靈呪文), 본주문(本呪文) 신사 주문(神師呪文)이 사용되고있다. '청수' 는 개인적으로 기도하거나 집단적인 의식을 거행할 때 봉전(奉奠)하고 거룩한 정신을 마음에 새기기위해 사용되는 기도와 의식의 표준물이다. 천도교의 모든 의식은 반드시 청수를 봉전하고 진행하며, 가정에서는 매일 저녁 9시에 청수를 봉전하고 기도를 한다. 이를'매일 기도' 라고 하는데, 절차는 온 가족이 도장을 정결히 하고 청수상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 진행한다. 특별한 사정으로 9시 기도에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은 현재의 위치에서 봉행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심고(心告)만 하고 귀가하여 따로 봉행한다. '시일' 은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울님과 스승님을 모시고 함께 기도하며 감화를 받는 날을 말한다. 매주일요일 오전 11시에 소속 교구 또는 인근 교당에 모여의식을 행한다. '성미' 는 천덕사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도교의 목적인 포덕천하(布德天下) · 광제창생(廣濟蒼生) · 보국안민(輔國安民) ·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에 이바지하는 물질적 정성을 말한다. 신자 가정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 밥쌀을 낼 때마다 식구 한 사람에 한 숟가락씩 생쌀로떠서 일정한 성미기(誠米器)에 모아 두었다가 월말에 소속 교구에 바친다. '기도' 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오관에서 지칭하는기도는 시일 저녁에 행하는 시일 기도 및 특별 기도를 말한다. (→ 개벽 사상 ; 《동경대전》 ; 동학 ; 신종교) ※ 참고문헌  《천도교 개관》, 천도교 중앙총부, 1997/ 《천도교교리와 사상》, 천도교 중앙총부, 1990/ 《천도교 운동사》, 천도교중앙총부, 1990/ 《천도교 의절》, 천도교 중앙총부, 1990/ 최동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1, pp. 798~801/ 노길명, <동학의 천주 사상>, 《한국 신흥 종교 연구》, 경세원, 1996/ 《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관광부, 2000. 〔盧吉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