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

敎會 - 政治

〔라〕acclesia et politica · 〔영〕church an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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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구스타브 도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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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구스타브 도레 작).


교회가 현실 정치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맞서 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하여 교회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간여하지 말아 야 하며 교회는 오로지 종교 생활과 윤리 문제에만 전념 하여야 한다는 입장과, 교회는 그 구원사적 사명을 실천 하기 위해서는 현실 정치 문제에 관해서도 입장을 표명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현실 참여도 하여야 한다는 입장 이다. 교회의 정치 관여를 부정하는 입장은 "카이사르의 것 은 카이사르에게···" (마태 22, 15-22 ; 마르 12, 13-17 ; 루 가 20, 20-26)라는 성서 구절을 흔히 그 근거로 제시한 다. 이에 대하여 교회의 정치 관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 장은 이 성서 구절은 교회와 국가의 권한 영역이 다르다 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일 뿐 교회와 국가의 기능이나 역할이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전혀 별개의 것임을 말하 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입장은 교회의 공식 입장이 갈라져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의 개인적 의견이 갈라져 있을 뿐이다. 사랑과 정의의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사랑 과 정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정치 현실을 용인하거나 묵인할 수 없으며, 교회가 정치 권력의 비도덕성과 폭력 성을 시정할 것을 촉구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 로 발전한다. 교회의 정치 관여에 대하여 부정론을 펴는 근거인 "카 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라는 성서 구절은 교 회의 정치 관여를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주 장하는 바와 같이 교회와 국가의 권리 영역이 서로 다르 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으로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원 사적 사명과는 무관하다.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서 흔히 는 권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권리에는 일정한 의무가 수반된다. 그러나 교회의 경우, 교회가 가지고 있 는 권리는 교회의 구원사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 적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교회가 가지는 의무의 영역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리의 영역보다 훨씬 광범 위하다. 따라서 정치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의견을 제시 하는 것은 권리 행사라기보다는 구원사적 사명의 실천이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사명은 인간의 구원에 있으며 인간의 구원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총체적 구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 현상은 다른 사회 현상 예컨대,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현상과는 달리 총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 다. 그래서 정치 질서는 사회 생활 전반에 관한 총체적 규제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다른 어떤 부분 사회의 질 서보다 정치 질서는 직접적으로 인간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와 정치는 그 활동의 종국적 가치로서 인간 구 원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하여 일정한 수준의 현실적 관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 관여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정치 는 간접적으로 인간 구원에 관계될 뿐이나 교회의 사명 은 직접적으로 인간 구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의 정치 관여는 정치 운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 로 끝나야 한다. 교황 회칙이나 공의회 문헌 및 기타 교 회의 공식 문헌에 나타나는 교회의 정치 관여에 대한 교 회의 공식적 입장 역시 이와 같은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규범 선 언적 발언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 실천적 과제는 교회의 의무가 아니다. 정치 윤리의 실현은 신자 들의 사회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가 운데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I . 정치적 인간 모든 정치적 관계의 원천적 주체는 개인으로서의 인간 이며, 구원사의 종국적 목표 역시 인격적 주체인 인간의 구원에 있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정치 현 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정치 현상의 주체인 인간 즉 정 치적 인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교회는 정 치적 인간 즉 정치 활동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창조 질서 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 상에 따라 창조된 지성과 자유를 갖춘 존재이며(창세 1, 26 ; 지상의 평화 6항) 이와 같은 인격적 주체인 인간이 정 치 과정에 놓여 있을 때 구체적으로 인간의 인격적 완성 을 위하여 어떤 정치 질서가 형성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교회는 이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피조물의 세계에는 물질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분야 와 물질적 원리 외에 이성(理性)과 자유의 원리에 의하 여 움직이는 분야의 존재는 물리적 원리에 의하여 움직 이는 분야에 비해 본질적으로 보다 높고 귀한 가치를 가 진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을 물질적 원리로 움직이는 존 재 중의 하나로 보는 유물론적 해석을 철저히 배격한다. 정치 · 사회 · 문화 · 경제에 관한 교회의 이해는 그 저변 에 인간은 이성과 자유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인격적 주체라고 보는 교회의 인간에 대한 인식을 깔고 있다. 정치적 인간의 본질 :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 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하나마 하느님이 하느님 인 이유인 절대적 자유와 완전한 이성을 닮은 인간 나름 의 이성과 자유를 본질적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지상의 평화 6항). 인간의 이와 같은 위상을 신학적으로는 유비 적 의미의 신적 위격체(神的 位格體)라고 말할 수 있으 며 철학적으로는 인격적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위격적 주체인 인간은 정치적 관계 곧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른바 주권의 주체로 나타나게 된다. 교회는 자유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그 자체로서 가장 이상적인 이념으로 보지 않으며 또 나름대로 완결된 정치 제도로 보지는 않지만(동 47항) 국가의 모든 구체적 공권력의 원 천인 주권이 인간 즉 개개의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히 하고 있다. 인간이 이성과 자유를 갖춘 위격적 주체로서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계몽주의 이후의 정치 이 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이념적 요청이 아니 며, 그것은 하느님을 정점으로 하는 모든 존재계의 질서 가운데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정치 질서에 반영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 질서에 있어서 인간은 모든 가치 의 중심에 위치하며 모든 공권력의 행사는 인간의 이성 과 자유를 완전히 실현함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여야 한 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다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이 점에 있어서 정 치 질서에 대한 그리스도적 인식은, 국가나 사회, 작게는 지역 사회나 문중을 의미하는 이른바 대아를 위하여 소 아(개인, 인간)의 희생을 권장하는 전통적인 유교적 정치 윤리와는 그 근본 원리를 달리한다. 정치 질서에 대한 그 리스도교적 윤리에 의하면 모든 정치 제도와 정책은 각 개인(국민)이 날 때부터 타고난 이성과 자유가 최대한으 로 육성 ·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인간의 주권적 주체성은 창조적 질서에 따라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느 누구에 게도 양도되거나 위임될 수 없다(동 6항). 따라서 국민의 주권을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양도받거나 위탁을 받았다 는 논리적 전제를 깔고 있는 정치적 장치 - 예컨대 군사 독재나 이른바 민중 집중 체제 - 는 정치적 가치 질서가 전도된 통치 구조이며 실제로 그러한 정치 구조 아래서 는 개인의 이성과 자유가 발전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 에, 그리스도교적 정치 윤리에 의하면 그러한 정치 구조 는 극복하여야만 할 대상이다. 인간의 정치적 기본 권리 : 정치적 관계는 국가와 국민 의 관계를 주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개인의 주권적 주체로서의 위상은 일정한 기본적 권리를 누리게 된다.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서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되어 있는 권리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본권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국민이 누리게 되는 이른바 헌법에 의하여 창설된 권리 가 아니라 인간의 주권적 주체성 즉 이성과 자유를 갖춘 위격적 주체성에서 나오는 타고난 권리이며, 따라서 그 것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인간에게 심어져 있는 권리이다. 교회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인간의 위격 적 주체라는 존엄성에 맞는 품위 있는 생활을 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스 스로의 힘으로 품위 있는 생활을 할 능력이 없을 경우 국 가나 기타 정치 공동체로부터 필요한 수단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동 8항). 그 외에 도 인간은 명예와 교육의 기회와 같은 도덕적 문화적 가 치를 누릴 수 있는 권리, 신분 선택의 자유, 결사의 자 유, 참정권과 이주의 자유 등을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동 9~13, 16~29항). 특히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중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기본적 권리로 인정 하고 있다. 노동의 보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매우 독특한 것으 로 그리스도교의 인간의 노동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종 교적 입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교회는 노동의 보수를 노동자의 생계비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비 용이나 혹은 생산 과정의 비용이라고 보지 않는다. 교회 는 임금의 성격에 관하여 이른바 생계비설, 노동 재생산 설 및 생산 비용설 등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동 14~15 항). 노동의 보수는 경제 공동체의 생산 활동에 참여한 결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품위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분배받는 것으로 이해한다.즉 노임은 생산비 산출 항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 활 동의 결과물을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분배하는 과정 즉 정치 과정으로 이해된다. 노동의 보수에 대한 교회의 이 같은 인식은 앞으로 경제 정책이 어 떤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는 중요한 가르침이라 하겠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현재의 정치 · 경제 체제 에는 국민 주권이라는 정치적 정의와 경제 관계에 있어서 다수 노동자들의 소외라는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는 현상 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극 복할 수 있는 기본적 열쇠로 교회는 노 임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강조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노 동이 상품일 수 없기 때문에 노임 문제 를 시장의 원리에 맡길 수 없음을 강조 하고 있다(어머니와 교사 71항). 인간의 신적 속성인 이성과 자유를 신장하고 완성하기 위하여 교회는 혁명 적이며 급진적인 방법보다는 점진적이 며 진보적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명적 방법은 폭력을 수단으로 하며 폭력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나름대로의 역동적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권리의 행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 러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하고 있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정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완성을 위한 협력이기도 하다. 인격의 존엄한 위격적 주체인 인간은 정치 관계에서는 주권적 주체로 나타나며 모든 주권적 주체들은 정치적으 로 평등하다. 따라서 이러한 주체들로 형성되는 정치 공 동체인 민족들 사이에도 평등의 보편적 원칙이 적용된 다. 그러므로 어느 특정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한다 면 그것은 곧 지배받는 민족의 구성원들이 이성과 자유 의 원리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적 정치 윤리에 위배된다. 따라서 이성과 자유의 원리 는 개인과 국가나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이다. II 국가 정치와 국제 정치 〔국가적 정치 질서〕 정치적 공동체 및 공권력의 필요 성 : 인격적 주체인 개인의 자아 완성은 사회적 연대 관 계 속에서 이성과 자유가 도덕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말 한다. 따라서 사회는 인간의 자아와 완성을 위한 현장이 다. 현실적으로 인간이 바라는 모든 가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져 있는 가치이다. 명예와 돈과 애정 그리고 집 단에의 귀속감 등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기를 바라는 모 든 가치는 사회라는 기초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자 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추구하는 가치를 사회적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자아 완성을 위해서 는 사회 즉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필연적이다(사목 74 항).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은 각자 독자적인 이 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충돌하는 이해 와 관심이 공동체적 결속을 파괴하고 사회 전체를 이른 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빠져 들게 할 위험이 있 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다양한 관심과 이 해를 조절하여 전체 사회의 공동체적 질서를 만들어 낼 공권력이 필요하게 된다(동 74항). 여기서 명백히 밝혀 둘 필요가 있는 것은 공권력이 비 록 공동선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앞에 말한 바 와 같이 공동체의 질서가 와해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데 에 그 근본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국가는 어디까지나 사 회적 자율 기능이 본래대로 수행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국가의 보 조적 성격(subsidiarity)이라고 하며 이는 국가의 기능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인식의 핵심적인 요소이다(지상의 평 화 46항). 그것은 국가와 사회 및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국가 권력의 보조성 원리는 국가 권력의 도덕 적 정당성의 한계가 된다. 즉 국가 권력이 비록 공동선을 위하여 행사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의 자율적 자기 규제를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동원된 경우라면 그러한 공권력의 행사는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다(사목 74항 ; 지상의 평화 38항). 공동체의 질서 즉 공동선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나 혹은 모든 개인이 멸망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 한 전쟁으로부터 인류 공동체를 구하기 위하여 공권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공권력의 필요성은 존재의 구조적 질서이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의 객관적 질서를 잡아 놓 으신 하느님으로부터 공권력이 기원한다고 가르치고 있 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국민의 주권을 인정한다. 즉 구체 적으로 누가 공권력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민 들의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공권력 에 대한 교회의 인식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정곡을 찌르 고 있다. 공권력의 과제와 그 한계 : 공권력의 존재 이유가 공동 선의 추구에 있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말하였다. 공권력 의 원천적 정당성의 근거는 물론 공동선에 있으나 공권 력이 공동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행사된다고 해서 모든 공권력의 행사가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당한 공권력도 그 행사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예컨대, 처벌과 같은 강제적 제재나 혹은 교도소 수감과 같은 공권력의 행사 는 최소 한도에 끝나야 하며 그 이상의 제재나 폭력이 동 원되는 공권력의 행사는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지상의 평화 37항). 공권력은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해 구 체적으로 두 가지 과업을 가지고 있다. 즉 공권력은 한편 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여야 하는 소극적 과업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더욱 신장 · 촉진하는 적극적 과업을 가지고 있다(동 43, 46항). 이 두 가지 과업은 많은 경우에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즉 한편의 자유를 신장하고 촉진하면 다른 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두 가지 과업이 항상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 조하고 있다. 이 두 과업의 조화는 구체적으로 경제 성장 정책과 복지 정책의 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느 특정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를 위하여 다른 집단이나 개인 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예컨대 흔히 후진국에서 그 정당 성이 강변되는 개발 독재와 같은 독재 정치는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교회는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 러나 교회는 한 정치 공동체 안에서 모든 국민들 사이에 그 정치적 기능을 담당함에 있어 완전한 정치적 평등 즉 정치적 절대 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다(동 41항). 국가 공권력에 대한 개인의 몫은 각자의 공 적과 직책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공권력은 그것이 원천적으로는 하느님으로부터 연유 되고 또 그 담당자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다 하 더라도 그 행사가 위에서 말한 공권력의 한계를 벗어나 즉 공동선의 도덕률과 시민 사회의 자율성을 파괴할 때 그러한 공권력의 행사는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이탈한 입법 행위나 행정 및 사법적 조치 등은 국 민들의 양심에 그 어떤 의무도 부가할 수 없는 일종의 폭 력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동 38항). 국민들은 이러한 공권 력에 순종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공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 산업 시대에 있어서 국가 공권력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교회는 완전 고용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동 31, 45항). 그러나 국가가 부담하는 완전 고용의 실현은 국가 가 고용주로서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기회를 배분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며, 국민 경제가 완전 고용 을 창출할 수 있도록 경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정부는 국민 경제의 자율적 활동 즉 시장 경제의 메커니즘이 전체로서 완전 고용을 창출 하도록 경제 구조를 짜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 실업이란 곧 사회적 소외의 극단적 형태이기 때문에 완전 고용은 개인의 자아 완성을 위한 중요한 사회 · 경제적 조건 중 의 하나가 된다. 정치 발전과 이념 : 교회는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 될 때까지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며 그 발전의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역사의 한 부분인 정치 발전의 가능성과 미래 또한 언제나 열려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특정한 시기나 어느 특정 문화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시간과 문화권을 초월하는 인류의 이상적 정치 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 지 않는다(동 47항). 그렇다고 해서 정치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판단 즉 어느 특정한 정치 체제에 대한 도 덕적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서 특정한 정치 체제를 이상적 이념 으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떤 나라의 구체적 정치 체제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을 할 때에도, 어떤 이상적 정치 체제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오 로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공권력의 도덕적 원칙 즉 정 치 윤리를 근거로 판단한다. 물론 교회는 민주주의와 의 회 제도를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사회관에 맞는 정치 제도로 인정하고 있으며, 의회 민주주의 제도가 완벽하 게 실현되기를 간곡히 바라는 의지를 여러 가지 공식 문 헌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이상적 제도로 고정시켜 놓은 것은 아니며 의회 민주주 의가 교회가 바라는 이상적 정치 이념도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교회는 모든 정치적 교조주의를 배격한다. 교회가 정치 발전에 관하여 '도덕적 자아 완성' 이라는 당위론적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도달하는 과 정으로서 단계를 설정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는 근본적 배경에는 교회의 독특한 역사관이 깔려 있다. 즉 모든 역사는 인간 해방을 그 종국적 목적 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며 거기에 이르는 작업(단계)은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과 자유를 통 하여 쌓아야 한다는 역사 인식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역 사의 각 단계에 대해 인간은 공동체로서 이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 교회는 사회주의 정치 체제와 전체주의적 통제 경제를 배격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해 서도 끝없는 비판과 자기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양비론적인 동시에 양시론적인 입장은, 역사의 미래는 열려 있으며 변화의 가능성은 거의 무한한 가운 데 인간은 이성과 자유를 도구로 역사의 완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 주체로서의 역할을 교회는 인류 해방을 향한 창조주와의 협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제 정치의 원리〕 국제 질서의 자연법적 원리 : 규범 에 관한 교회의 인식에 의하면 모든 규범은 하느님을 포 함한 존재계 전체에 적용되는 하나의 규범 체계에 속하 며 규범들 사이에는 위계적 구조가 있다. 하느님의 의지 인 신법 혹은 영원법은 그 일부가 인간의 의식에 자연법 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따 라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자연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교회는 인류 사회 전체를, 하느님을 구조적 정점으로 하는 공동체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각 민족 국가들 사이에 자연법 질서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러 민족과 국가들로 형성되어 있는 국제 사회의 정치 는 아직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나갈 수 있는 실 정법 체계가 대단히 미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연법 적 규범의 실질적 적용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이 다. 특히 각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 적 파괴력을 감안할 때 자연법의 실천적 적용은 인류의 사활에 직접 관련되는 문제이다. 도덕적 정당성으로 나 타나는 자연법은 국제 사회의 정치적 관계에 있어서도 공동선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곧 국제 사회의 평화적 질 서이다. 교회는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나 혹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유지 되고 있는 상태나 혹은 억압적 통제에 의한 지배적 질서 로 이해하지 않는다(사목 78항 ; 지상의 평화 71항). 교회가 말하는 평화적 질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정의의 실 현을 말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공동체의 바탕이 정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정의의 구체적 내 용은 평화와 신뢰를 통하여 규정해야 한다. 이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정의의 내용이 힘에 의하여 정해지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힘이 동원될 때 그 힘은 폭력이 되며 국제 사 회에 있어서 폭력은 곧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 라서 평화와 신뢰에 의한 정의의 실현만이 인류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 · 번영할 수 있는 길이다. 군비 경쟁 : 군사적 충돌 즉 전쟁에 관하여 교회는 결 코 절대적 평화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일정한 조건 아래서는 보다 더 큰 질서의 파괴를 막기 위 한 작은 질서의 파괴인 작은 규모의 전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 무기 체제의 전면적 파괴력 때문에 오늘날에 있어서 전면전은 인류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곧 질서 파괴 이전에 인류 전체 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경우 에도 전면전만은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있다(사목 80항). 교회는 또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전쟁을 예방하는 것 이 곧 평화라고 생각하고 힘의 균형을 통하여 전쟁을 예 방하고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 며 또 오늘날 국제 사회도 이러한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 는 우선 평화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쟁이 없는 소극 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바탕으로 정의가 실현 되는 적극적 상태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리고 교 회는 힘의 균형을 통하여 전쟁을 방지하려는 노력은 필 연적으로 군비 경쟁을 초래하게 되며, 군비 경쟁은 인류 사회라는 전체적 측면에서 볼 때 인류가 스스로를 파멸 로 몰아넣을 수 있는 파괴력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군비 경쟁은 본질적으로 평화와는 양립될 수 없는 것이 라고 본다. 그리고 교회는 국제적 갈등이 오로지 신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동 81항). 경제적 가치 체제가 군비 경쟁에 의하여 파괴 내지는 전도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교회는 군비 경쟁의 경 제적 부도덕성을 비판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 체계는 경 제 활동이 인간의 자아 완성과 자아 실현을 위하여 필요 한 물질적 기반을 조성하여야 한다는 경제적 당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경제적 생산 활동이나 노동 이 인간의 인격적 주체성을 실현하는 한 과정이 되는 이 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노동하는 인간 6, 7항). 군비 경쟁 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군수 산업은 본질적으로 인간 자체의 파괴를 위한 경제 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은 경제 활동의 가치 체계를 뒤집어 놓는 파멸의 경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난한 후진국 국민들의 생활 조건을 감안한 다면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이른바 선진국들의 군수 산업은 경제적 죄악이다. 국제 공권력의 필요성 : 인간은 누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각 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요구를 보편적 원리 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의 인류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지상의 평화 79항). 오늘날 인류는 고도의 기술 발달과 높은 생산성에 힘입어 물질적 풍요 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고도의 현대 기 술을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통제하지 못하면 인 류 전체가 파멸로 치다를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여 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기술과 문명을 인류 공동체의 공동 선을 창출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을 가진 국제적 공권력의 확립이 절실 히 요구된다(사목 82항 ; 지상의 평화 79항). 특히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국제 사회의 경제 문제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질서를 강 대국의 손에 방치할 수 없으며 범세계적 복합성을 띠고 있는 현대적 국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국제적 공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 공권력은 곧 현존하는 국가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 니며 현재의 국가 주권이 인정되는 가운데 모든 국가들 이 그 정당성과 강제적 구속성을 인정하는 초국가적 권 력이어야 한다(지상의 평화 85항). 따라서 국제 공권력은 현재의 국가적 주권에 대하여 보호적 기능을 가지는 것 은 아니며 오히려 국가 주권의 조정과 신장이라는 이중 적 과제를 부담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국제 공권력은 폭력이나 강압에 의하여 수 립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국제 공권력의 확립을 위한 수단으로서 전쟁이나 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국 제 공권력 확립은 점진적 역사적 발전을 통하여 달성되 어야 할 중간 목표라고 보고 있다(동 101항). 교회가 말 하는 국제 공권력 확립론은 이른바 국제 노동자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세계 정부의 수립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 의적 세계 혁명론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교회는 국제 공권력의 필요성과 그 성격을 말할 뿐 그것의 구체적 체 제 즉 국제 공권력의 정치적 체제는 주권 국가들이 결정 할 문제로 남겨 두고 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 교회는 인류가 지리 · 문화 · 인 종적 조건에 따라 같은 민족을 단위로 정치 공동체를 형 성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다. 그러나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구성은 자연히 소 수 민족의 문제를 초래하게 되며 이 문제는 반드시 인간 의 존엄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특히 민족들 사이에도 역시 인간적 평등주의와 같은 민족 평 등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교회는 주장한다(동 60항). 각 민족은 나름대로의 특수한 문제와 이해 관심을 가 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민족의 희생을 대가 로 치러서는 안된다. 더구나 민족적 이기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 다. 그리고 약소 민족 역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자 신의 이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민족의 특수성을 앞세운 나머지 자신의 권익을 인류 사회의 공동선보다 더 중요 한 것으로 강조하는 것 역시 자연법적 질서에 배치된다 (동 64항). 따라서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와 조화를 이룬 범위 안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다(사목 84항). 여기서 교회 는 과학 · 문화 경제 등에 있어서 앞서가는 선진국은 그 들의 우월한 능력을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자국의 이해 증진을 위하여서만 배타적으로 이용하거나 더 나아가 다 른 민족과 국가를 억압하는 데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인 류의 역사에 대한 죄악임을 밝히고, 선진국은 그들의 능 력을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더욱 증진시키는 데에 사 용하여야 할 역사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지상의 평화 59항). 그리고 교회는 선진국들에 의한 제국 주의 정책을 부당한 정책이라고 명백히 그 입장을 밝히 고 있다(동 61항). 제국주의 경제는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위한 물질적 기반 조성이라는 경제의 본질적 성격을 뒤집어 놓은 전 도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의 원료 공급과 높은 가격의 공산품 판매 시장을 폭력을 통하여 확보하는 이른바 식민지 정책은 자연법을 정면으로 파괴 하는 국제 정치적 죄악이다. 교회는 후진국 지원을 통한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증진시킴에 있어서, 선진국들은 후진국의 전통적 문화와 고유한 도덕적 가치관을 존중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원조 대상 국가와 민족 사회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동 74~75항) 특히 다국적 경제 활동과 관련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 정책의 일환으로 자본과 노동의 국제적 이동 에 대하여 교회는 노동의 국제적 이동보다는 자본의 국 제 이동이 훨씬 합리적임을 강조한다(동 67항). 왜냐하면 노동의 이동은 이동하는 노동자의 실향과 그에 따른 인 간적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오늘 날 한국에서 외국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생산 활동에 종 사하는 현상을 '인력 수입' 혹은 '노동력 수입'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를 생산 활동에 종 사하는 '사람' 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하나의 '생산 요 소' 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Ⅲ . 정치 윤리의 실천 정치 윤리는 선포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완결되는 것 은 아니며 실천될 때 비로소 규범으로서의 기능이 완수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 윤리를 선포하였다고 해서 그실천까지 교회가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 회와 국가 사이에는 일정한 역할 분담이 있으며 교회 역 시 이 점을 엄격히 지켜 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사목 76 항). 교회는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기득권을 가지 고 있지만 그것을 고집하거나 고수하여야 할 권리로 보 지 않으며 오히려 공동선의 증대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그것을 포기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정치 일반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신자들 사이에는 정치계의 부 도덕성과 음모성 때문에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기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정치 기피 경 향에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현실적 정치 참 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42항). 비신자보다는 신자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윤 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인식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신자들이 그러한 확신 위에서 구원사 적 목표 곧 공동선의 완벽한 실현을 위하여 성실하게 정 치에 참여하는 것이 요청되고 있음을 교회는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 과정에 있어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평신도의 정치 활동과 교회의 기능 수행 사이에는 각자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교회는 정 치 윤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의 요건으로서 정치인 들은 사회 봉사의 자세와 정의를 지키고 그것을 더욱 많 이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부단히 추구하는 성실성과 시민 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와 같은 내심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시민적 연대 속에서만 정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도 아울 러 강조하고 있다. 즉 정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토양 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인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인격적 연대이다. 인격적 연대의 한 조직 형태로서 이른바 기독교 정당도 가능하다. 기독교 정당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그리스도교적 기초를 가진 보편적 정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정당을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 정 당은 기독교 신자들의 정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리고 전체적으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정치 윤리의 실현은 평신도들의 몫으로 이해된다. (→ 교회와 국가 ; 기독교 민주당) ※ 참고문헌  R. Barzel, Die geistigen Grundlagen der deutschen Parteien, Bonn, 1947/ L. Bergstraesser, Geschichten der politischen Parteien in Deutschland, Mannheim, 1921/ W. Mommsen, Deutsche Parteiprogramme, München, 1951/ G. Toniolo, La Democrazia Cristiana, Rom, 1900/J. Schöningh, christliche Politik?, in Hochlans 41, 1948 . 1949/ L. Schwering, Die Entstehung der CDU, Köln, 1947/ G. Ebeling, Kirche und Politik, in Wort und Glaube Bd III, Tübingen, 1975, pp. 574~592/ H. Büchele, Christliche Glaube und Politische Vernunft, Für eine Neukonzeption der Katholischen Soziallehre, Europa Verlag Wien, Zürich und Patmos Verlag Düsseldof, 1987/ 김종민, <교회와 사회의 상호성>, 《사목》 143호(1990. 12). 〔金鐘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