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천안시 봉명동 38-4 소재.1985년 2월 19일 천안 오룡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유대철 베드로. 관할 구역은 천안시성정1동, 봉명동, 다가동, 와촌동 전 지역. 〔교 세〕1985년 739명, 1989년 1,811명, 1993년 3,479명,1997년 2,196명, 2002년 2,349명. 〔역대 신부〕 초대이상룡(李相龍) 필립보(1985. 2~1990. 8), 2대 안문기(安文基)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0. 8~1996. 2) , 3대 윤석빈(尹錫彬) 루가(1996. 2~1999. 1), 4대 이계창(李啓場) 아우구스티노(1999. 1~현재). 현재 천안 봉명동 본당이 위치하고 있는 천안시의 서부 외곽 지대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천안시의 취약 지구로서 주민 대다수가 농민, 근로자 또는 영세 상인들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천안 오룡동 본당 관할인 이 지역은 자연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 집중으로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전교구는 이 지역에 본당을설립하기 위해 1984년 12월 31일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1985년 2월에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이상룡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상룡 신부는 가건물 50평을 성당 신축 예정 부지에 설치하여 임시 집회소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4월에는 천안 성황동본당으로부터 신자 120명을 이관받았으며, 10월 10일에는 본당에 천상의 모후 꾸리아가 창단되었다. 1986년9월 13일에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새성전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12월 24일 1차로 지하실과 1층 골조 공사를 완공하여 지하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첫 미사로 봉헌하였다. 1987년 5월 2차로 사제관,수녀원, 사무실 공사를 완료하여 입주하였으며, 10월25일에는 성황동 본당으로부터 성정동 일부 구역의 신자(190명)를 추가로 이관받았다. 1989년 3월 12일에 3차로 성전 공사를 완료하여 새 성전에 입주하였다. 2대 주임 안문기 신부는 1991년 3월 5일에 보좌 신부사제관을 매입하였으며, 10월 30일에는 제1회 본당의날 행사를 개최하였다. 1993년 1월에는 교리실로 사용할 주택을 매입하였는데, 이듬해 11월에 이 주택을 주차장으로 변경하는 공사를 완료하였다. 한편 1993년 8월10일에 성정동(현 천안 성정동)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385세대 1,107명의 신자를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그리고 1994년 4월에는 쌍용동 지역을 본당으로 분리하고자대지를 매입한 후, 이듬해 2월 6일 쌍용동(현 천안 쌍용동)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 331세대 1,009명의 신자를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3대 주임 윤석빈 신부는 1998년2월 2일 신방동(현 천안 신방동) 본당을 분리 · 설정하여470세대 1,495명의 신자를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4대 주임 이계창 신부가 부임함과 동시에 본당은 천안지구 지구장좌 본당으로 지정되었다. 이계창 신부는1999년 3월 6일에 사랑의 나눔회를 발족하였고, 4월13일에는 성당 제대와 감시대, 독서대를 석재로 교체하였다. 한편 2001년에는 대전교구가 교회 공동체의 봉사와 복음화에 기여할 평신도와 수도자를 양성하고자 1년과정의 복음화 대학을 개설하기로 계획하였는데, 천안봉명동 본당이 교육 담당 본당으로 선정되어 1년 동안대학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이처럼 짧은 본당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본당을 분리 · 설정시킨 천안 봉명동 본당은 현재 천안 지역의 전교 활동을 담당하는 중추 본당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전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편, 《대전교구 30년 : 교구 설정 30주년 기념 교구사 편찬 자료집》, 천주교대전교구,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 대전교구 홍보국 역편, 《대전교구 교세 통계 자료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0. 〔白秉根〕
천안 봉명동 본당 天安鳳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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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