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4월 4일 빈센트 팔로티(Vincent Pallotti, 1795~1850) 신부가 복음 전파라는 공동 목적을 위하여 로마에 사제, 수사 · 수녀, 평신도들로 구성된 '천주교 사도 연합' (Pious Union of the Catholic Apostolate)을 조직한 뒤 그 연합의 중심부에 사제와 수사만으로 구성하여 설립한 사도회. 현재 총원은 로마에 있고, 한국 지부 본원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다.
〔설립과 활동〕 설립자 팔로티 신부는 1795년 4월 2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 대학과 사피엔차(Sapienza) 대학에서 공부한 후, 1818년 5월 사제 서품을 받고 1828년까지 사피엔차 대학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1827년부터 로마 대학의 영적 지도자로, 때로는 여러 대학을 다니며 미래의 사제들을 위해 고해 신부로 활동하였다. 팔로티 신부는 기계공 길드를 부활시키고, 어린 노동자들을 위한 학교를 창설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1837년 유럽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구조대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그의 영적이고 자비심이 넘치는 활동은 당시 로마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편 팔로티 신부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행동 위원(교구 사제와 수도 사제, 사도직 수행에 참여하는 평신도) · 기도 위원(기도와 영적인 헌신으로 활동) · 보좌 위원(물질적인 제공 또는 전문적인 봉사) 중 어느 하나의 조직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동하기를 원하였다. 이를 위해 팔로티 신부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식을 자각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였고, 더 나아가 이러한 의식을 온 세상에 전파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동료들에게 선교사가 파견되는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신앙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 신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성직자로서 필요한 양성 과정, 선교를 위한 강론 교육, 외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 가톨릭 본연의 활동 안에서 성직자를 돕기 위한 평신도의 특수 임무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팔로티 신부는 1835년 4월 로마에서 천주교사도 연합을 설립하였고, 같은 해 7월 11일 교황 그레고리오 16 (1831~1846)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그는 천주교 사도 연합의 회원들이 증가하고 활동이 확대되자, 이 사도 연합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회로 '천주교 사도회' (Congregation of the Catholic Apostolate)를 설립하였다. 이 사도회는 교구 사제와 수도 사제(수도자)들이 모인 단체였기 때문에 교구 사제의 특징과 수도원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 사도회는 창설 후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하였다. 리용의 전교회(The Lyons Sociery for the Propagation of the Faith)가 천주교 사도회의 활동이 자신들의 활동과 중복될 뿐이라고 주장하여 1838년 천주교 사도회는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 때문에 팔로티 신부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자신들의 활동을 다시 설명, 해명해야했고 그 후에야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한편 '사도회'(Apostolate)라는 단어가 성직자 계급제를 유지하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그래서 1854년 그 명칭을 경건한 선교회' (Pious So-ciety of Missions)로 변경하였으나, 1947년 현재의 명칭으로 복귀되었다.
이와 같이 천주교 사도회는 외부의 탄압과 1850년 창립자 팔로티 신부의 사망 등으로 1880년까지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1890년 카메룬에 복음 전파를 위해 소속 수도사들을 파견하면서 활동 영역을 점차 확장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독일에서 성모 마리아의 정신과 천주교 사도회의 정신으로 평신도를 교육하여 쇄신을 도모하고자 하는 '쇤슈타트 운동' (Schönstatt Movement)이 일어나면서 사도회는 더욱 발전하였다. 1921년에는 미국으로 진출하여 미국 밀워키(Milwauke) 지역에 첫 번째 관구인 '주의 어머니 관구' 를 세우고, 병원 · 외국인 보호소 · 평신도 사도회 · 각종 학교 및 공공 기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전세계 39개국에서 2,500여 회원들이 팔로티 신부의 이상에 따라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살아가도록 일깨우는 활동들을 하며 평신도의 사도직 소명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 성] 천주교 사도회의 수사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1요한 4, 16)라는 성서 말씀에 따라 사제 · 수사와 수녀 · 평신도가 세상 안에서 함께 일하고 신앙을 새롭게 하며 사랑을 밝히려는 교회의 사명을 증진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사도회는 인내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봉사하는 삶 · 나눔의 생활 · 봉헌된 독신 생활 · 순명 · 가난' 이라는 여섯 가지 약속에 따라 각자의 사도적 소명으로 모든 사도들의 아버지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을 체험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근본 규율로 삼고, 부활 안에서 주님과 완전한 일치를 바라는 희망으로 완덕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한국 진출 및 사도직 활동〕 수원교구장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는 1987년 폴란드를 방문하였을 때 천주교 사도회가 폴란드에서 다양한 사도직을 활발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폴란드 그리스도 왕 관구에서는 2명의 선교 사제를 1990년 5월1일 한국에 파견하였다. 천주교 사도회 자비로우신 예수님 한국 지부는 그동안 수원교구 내에서 본당 · 병원 · 군종 사목을 해 왔으며, 1998년 경기도 분당에 본원을 마련하여 수원교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 사도회는 한 가지 특별한 사목 활동에 중점을 두지 않으며, 모든 회원들이 각자의 재능을 필요한 곳에서 발휘하도록 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행하는 다양한 사도직에 서로 협조하며, 시대의 필요에 맞는 사도직 활동을 개발하고자 노력한다. 한국에서의 사도직 활동으로는 분당 성 요한 본당에서 본당 사목을,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군종 사목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분당 보봐스 병원과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병원 사목을 펼치고 있으며, 분당 본원에서는 상설 고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심 신심의 전파를 위해 매일 오후 본원에서 성시간을 지내고 있으며, 매달 1회 송탄 본당에서 하느님 자비심 신심 미사 및 고해성사와 강의를 진행한다. 한편 매월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양덕원)에 있는 '하느님 자비심의 피정의 집' 에서는 성모 신심 미사 및 밤샘 성체 조배를 진행하며, 분당과 수원에서는 일일 피정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신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3년 현재 폴란드 성모 영보 관구 소속 선교사 4명(사제 3, 수사 1)과 한국인 유기 서원자 1명이 활동하고 있다. (⇦ 팔로틴회 ; ← 쇤슈타트 사업회)
※ 참고문헌 Rev. N.M. Wilwers, S.A.C., M.A., The Story of Vincent Pallotti, Divine Word Publications, Techny, Illinois, 1942/ F. Bonifazi S.A.C., Soul Of A Saint : ST. Vincent Pallotti Pioneer of Catholic Action, Fathers and Brothers of the Society of St. Poul, New York, 1962/ K. Stelzer S.A.C., Vincent Pallotti : A Saint For Today, trans. by E. Riechers, S.A.C., Canada Craftsman Graphic, Calgary, Alberta, 1990. 〔천주교 사도회 편찬실〕
천주교 사도회 天主教使徒會 〔라〕Societas Apostolatus Catholici(S.A.C.) 〔영〕The Society of the Catholic Apost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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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