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마인츠(Mainz)의 주교이자 사회 정의의 기수인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1811~1877)와 마리 드 라 로쉬(Marie de la Roche, 1812~1857) 수녀가 교육 사업과 병자 및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를 위해 1851년 독일 핀텐(Finthen)에서 설립한 수녀회. 총원은 미국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에 있으며, 한국 성 요셉 관구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왕림리 220번지에 있다.
〔설립 배경과 과정〕 유럽 사회는 18세기 중엽 이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으로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던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사회의 생산 방법과 수단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계층이 생겨나고, 각 계층 간에는 이해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갈등과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갈등은 산업화가 진행되어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자들의 비인간화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마르크스(K. Marx, 1818~1883)와 앵겔스(F. Engels, 1820~1895)는 1848년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발표하여 사회주의만이 새로이 생겨난 무산 대중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가톨릭 교회는 당시 지배적이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견해를 인식하고 대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산업 사회의 노동자 문제라는 '새로운 사태' 에 직면하여 극복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하여 고심하였다. 그 결과 1891년 5
월 15일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해결 방책과 이론을 분석 · 비판함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 경제 질서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을 반포하게 된다. <노동 헌장>은 가톨릭 사회 교리 분야의 대헌장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것이 반포되기 40여 년 전 독일 마인츠 교구의 케틀러 주교는 이미 그 당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던 사회 문제들, 특히 노동자 문제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또한 케틀러 주교는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구체적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활동들은 <노동헌장>이 나오게 된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천주 섭리 수녀회의 설립자 케틀러 주교는 1811년 12월 25일 뮌스터(Münster)에서 태어나 1841년 아이히슈테터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44년 6월 사제 서품을 받고 뮌스터 인근 베쿰(Beckum)의 보좌 신부로 임명된 케틀러 신부는 가난하고 병든 지역 주민들을 돌보면서 후에 그가 사회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중요한 체험들을 하게 되었다. 1850년 마인츠의 주교로 서품된 이후 케틀러 주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는 당시의 사회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가 서로 적대시하는 계급 투쟁의 현장이라고 파악하고, 교회를 위협하던 무신론에 대항하여 교회와 인간의 참된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다. 특히 아동들의 교육과 복지 및 도덕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심하였으며, 교구를 순시하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구에 교육과 간호 사업에 종사하는 수녀회를 두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사회적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와 교육이야말로 시대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여러 수도원에 이 문제를 의뢰하여 협조를 구하였지만 도움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851년 여름 4명의 처녀들이 자신들의 본당 신부인 안톤 아우취(Anton Austsch) 신부에게 수도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아우취 신부는 케틀러 주교와 상의한 끝에 185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핀텐의 작은 집에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천주 섭리 교육 간호 수녀회' (후에 '천주 섭리 수녀회'로 변경됨)를 창설하였다.
〔정착과 발전〕 프랑스인이며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마리 드 라 로쉬 수녀가 1852년 11월 수련 과정을 마치고 핀텐으로 돌아오면서 수녀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아우취 신부가 영적 지도를 담당하였다. 1851년에 4명의 지원자로 시작한 공동체는 1861 ~ 1871년 사이에 24개의 학교, 4개의 학원, 5개의 직업 학교, 4개의 유치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총원장 빈센트(Vincent Schultheis) 수녀와 수도회의 고백 신부이며 교구 대리였던 하프너(Dr. Haffner) 신부가 수도회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케틀러 주교 역시 그의 수도회 딸들에 대한 내적인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1872년부터 1886년까지 계속된 독일 제국 정부와 가톨릭 교회와의 문화 투쟁(Kulturkampf)의 시기 동안 독일의 교회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1871년 7월 8일 독일 국회에서 로마 가톨릭 당이 해산되었고, 주(州)만이 학교 운영에 관한 통치권을 갖는다는 법이 1872년 3월 11일 통과되었다. 그 결과 가톨릭 기관에서 운영하던 많은 학교들은 문을 닫게 되었으며, 천주 섭리 수녀회 수녀들 또한 공동체의 주요한 사도직의 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에 많은 혼란을 겪던 수녀회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중 미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소속의 포트가이서(Pottgeisser) 신부로부터 사도직 활동을 제안받았다. 그리하여 1876년 7월 6명의 수녀들이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이들은 오직 하느님의 섭리에만 의지한 채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여 1877년 피츠버그(Pittsburgh)에 성 베드로 관구를 설립하였다. 이후 사회적 상황이 호전됨에 따라 수녀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1925년 교구 소속 수녀회에서 교황청 직속 수녀회로 전환되었다.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의 성 루이스 관구가 1930년 설립되었으며, 성 베드로 관구에서 파견된 수녀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1969년 푸에르토리코 (Puerto Rico)에 피츠버그 관구 소속 지부가 설립되었다. 한편 1931년에는 모든 수도회의 총원을 로마에 두기를 원하는 교황청의 권고에 따라 총원을 로마로 이전하였다가, 1999년에 다시 회원이 가장 많은 미국의 로드아일랜드로 이전하였다. 이후에도 해외로의 선교 활동은 계속되어 2002년 현재 한국 · 독일 · 미국 · 페루 · 푸에르토리코 ·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등 6개국에서 679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천주 섭리 수녀회의 영성은 "본 수녀회의 정신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정신이다" (회헌 1852)라는 회헌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천주 섭리 수녀회 수녀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 정신을 추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고자 하며,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힘쓴다. 이 정신 안에서 섭리의 하느님에 대한 증거를 봉사와 사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며, 열성과 인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한다. 또한 케틀러 주교의 삶을 특징 지은 교회에 대한 충성, 사회적 관심 및 참여 그리고 참되고 올바른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옹호를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초대 원장 수녀였던 마리 수녀의 활동 생활과 결합되는 관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겸손과 온유, 단순성의 모범을 통해 그분에게서 영적인 힘을 얻으며 깊은 신앙과 온전한 개방성을 본받고자 노력한다.
〔한국 진출과 성장〕 병원 사목을 수행할 수녀회를 찾던 대전교구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주교의 초청으로 당시 수녀회의 부총장이었던 케네스(M.M. Kenneth) 수녀와 나탈리(Natalie) 수녀가 1963년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듬해 대전교구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의 주선으로 한국인 지원자 13명이 로마 총본부에서 기초 양성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6년 미국 피츠버그 관구 소속의 베로스키(V. Verosky) 수녀, 세인트루이스 관구 소속의 앨버트(M. Albert) 수녀, 독일 마인츠 관구 소속의 나르시사(Narsisa) 수녀가 한국에 파견되어 서울 정동 아파트에 첫 공동체를 마련하였다. 수녀회는 대전 교구에서 사도직을 시작하려 하였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겨 1968년 인천시 중구 송월동 3가 9번지에 건물을 마련하였다. 한국에서 공동체가 자리를 잡아 가는 동안 로마에서 양성 교육을 받던 첫 성소자들이 1967년 첫번째 허원을 하였다. 수녀회는 1971년 인천시립병원에 간호 수녀를 파견함으로써 본격적인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1978년에는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수녀회의 후원회인 '섭리 가족회' 를 구성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에 협력하였다.
수녀회가 점차 정착됨에 따라 한국 공동체는 1975년 성 요셉 지부로 승격되었고, 박평자(제르투르다) 수녀가 1985년 첫 한국인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박 수녀는 수녀회를 내적으로 재정비하고, 수녀회의 더 큰 발전을 위해 모원을 수원으로 옮기고자 1986년 현 관구 자리인 경기도 화성시에 대지를 구입하였다. 1987년 기공식을 가진 후 시작된 공사는 이듬해 9월 완공되어 축복식을 가졌다. 이에 수녀회는 인천 송월동의 건물은 청원소로 사용하고, 모원과 수련소는 수원으로 이전하여 완전히 정착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수녀회는 전 회원들이 합심한 결과 1995년 '성 요셉 관구' 로 승격되었고, 1대 관구장으로 정애숙(헬레나) 수녀가 선출되었다. 2002년 현재 종신 서원자 115, 유기 서원자 17, 수련자 3, 청원자 3, 지원자 1명으로 총 139명의 회원이 있다.
〔사도직 활동〕 천주 섭리 수녀회 수녀들은 시대적 어려움에 투신하여 참여하였던 케틀러 주교가 지녔던 정신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파견되신 그리스도의 사명을 함께 수행한다. 또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 · 보건 위생 · 선교 · 사회 복지 사업 · 필요한 영역에서의 사회 봉사 등을 통하여 도움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안내를, 혼돈에 빠진 이들에게는 상담을, 가난한 이들에게는 우선적으로 필요한 영 · 육의 원조를 제공하고, 고독한 이들에게는 함께 있어 주며, 절망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려고 노력한다.
1971년 인천시립병원에서 시작한 병원 사목은 서울대교구 성모병원(1972), , 성 라자로 마을, 인천교구 기독병원(1973), , 백령도 적십자 병원, 수원교구 성 빈센트 병원(1974) 강화 그리스도왕 의원(1976) , 장미회(간질 환자 진료, 1978), 대전교구 성 요셉 병원(1983), 대구 밀알의 집(결핵 환자 요양원, 1984), 부평 안병원(1985), 의정부 성모병원(1987) 대구교구 논공병원(1988) 등으로 확대 · 전개되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1972년 서강대학교를 시작으로 성신여고(1974) 인천 대건중 · 고등학교 (1978), 인천 성아 유치원(1988), 송월동 어린이집(1993), 만석동 어린이집, 왕림 섭리유치원, 초당대학교(1994), 서울 한울 어린이집(1999), 건양대학교, 가톨릭 대학교 성심 교정(2000) 등에서 선교직을 수행하였다. 현재는 한울 어린이집, 수원 섭리유치원, 인천 섭리 어린이집, 만석 어린이집, 건양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 복지 분야에서는 1990년 사랑의 이웃집(빈민 사목) 활동을 시작으로 이후 수원 애덕의 가정(양로원), 안양 장애인 복지관, 인천 만월 복지관, 춘천 사회 복지회, 춘천 장애인 종합 복지관, 춘천 시립 양로원에서 활동하였다. 특수 사도직 분야에서는 인천교구 교도소 후원회(1979), 인천교구 사회 복지회(1981), 인천교구 교구청(1982), 송월동 피정의 집(1989), 수원교구청 · 춘천교구청(1990), 수원교구 청소년 사목실(1993) 등에서 활동하였다. 본당 사목으로는 해안동 본당(1972)을 시작으로 백령도 본당(1973) , 고잔 본당(1974), 제물포 본당(1975), 강화 본당(1976) 등 주로 인천교구에 분원을 마련하였으며, 1977년에는 서울대교구 시흥동 본당에 분원을 마련하였다. 본원을 수원에 마련한 이후에는 수원 교구를 비롯하여 대구 · 대전 · 광주교구에도 진출하여, 현재 7개 교구 20개 본당에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수녀회는 사도직의 영역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장하여, 1991년 독일 케틀러 병원 파견을 시작으로 시카고 한인 천주교회, 클리블랜드 한인 천주교회, 독일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rg) 관구 피정 센터 등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참고문헌 E. Iserloh · C. Stoll, 이연희 역, 《케틀러 주교》, 분도 출판사, 1999/ M.T. Kramer, 김화영 역, 《마리 드 라 로쉬》, 기쁜소식 2002/ 《회헌》/ 《교회와 역사》 331호, 2002. [천주 섭리 수녀회 편찬실]
천주 섭리 수녀회 天主攝理修女會 〔독〕Kongregation der Schwestern von der Gottlichen Vorsehung 〔영〕Congregation of Sisters of Divine Providence (C.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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