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에 목판으로 인쇄되어 1972년 《가톨릭 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기도서. 일반적으로 '성교공과' 또는 '공과' 로 불렸다. 공과란 넓은 의미로는 매일의 기도를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주일과 축일 및 기타 기도문을 수록한 기도서를 의미한다.
제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입국한 1837년 말, 조선 교회는 한문본을 음독(音讀)한 기도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도서들은 어렵고 번역이 체계화되지 못하였으며 또 번역된 것을 여러 번 전사(轉寫)하였기 때문에 오자(誤字)나 탈자(脫字) 등이 적지 않았다. 이에 앵베르 주교는 모예(J.M. Moyé) 신부가 저술한 한문 기도서인 <천주경과>(天主經課)와 예수회원인 롱고바르디(Longobarti, 龍華民) 신부가 저술한 한문 기도서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教日課)를 축약한 디아스(Diaz, 陽瑪諾) 신부의 《수진일과》(袖珍日課)를 기초로 삼아, 조선에 맞는 기도서의 번역 및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로 앵베르 주교가 순교하였다. 이후 《천주성교공과》 작업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와 베르뇌(Bemeux, 張敬一) 주교 등에 의해 보완되고 정리되어 필사본으로 교우들에게 보급되는 가운데, 1862~1864년 사이에 4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천주성교공과》의 제1권에는 성수를 찍을 때 하는 기도, 성호경, 삼종 기도, 아침 기도〔早課〕, 저녁 기도〔晚課〕, 식사 전후 기도〔飯前後祝文〕, 영광송, 미사 참례하는 차례〔規式〕, 성체를 공경하는 기도,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 고해전후송(告解前後誦), 영성체전후송(領聖體前後誦)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2권에는 첨례하는 순서, 모든 주일과 파공(罷工) 축일에 하는 기도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3권에는 성모의 모든 축일에 하는 기도 및 성인들의 축일에 하는 기도가 실려 있고, 제4권에는 각종 기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내용 면에서 《천주성교공과》는 열 개의 기도를 제외하면 《천주경과》의 거의 완전한 번역서이다. 하지만 적은 삼덕송, 고해전후송 등 《천주경과》에 없는 여덟 개의 기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천주성교일과》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천주경과》에도 《천주성교일과》에도 없는 초행(初行) 공부와 십자가의 길 등 여섯 개의 기도는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만들거나 편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성교공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로 발행된 《가톨릭 기도서》가 나올 때까지 수없이 중판되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큰 변화 없이 100여 년 이상을 한국 교회의 공식 기도서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천주성교공과》는 한국 천주교회 입장에서 볼 때 1784년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세례로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신심 생활의 원천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천주교 서적 중 하나로, 또한 교회가 국어 발전에 이바지한 근원이 된 서적으로도 그 비중이 매우 크다. (→ 《수진일과》)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성교공과》/ 한국교회사연구소,《교회와 역사》 175호(1989. 12). 〔白秉根〕
《천주성교공과》 天主聖教功課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