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인 리치(M. Ricci, 利瑪竇, 1552~1610) 신부가 한문으로 집필한 교리서.
책이름은 저자가 직접 지은 것으로, 서양식 제목은 '하느님에 대한 진실된 토론' (De Deo Verax Disputatio)이다. 제목이 알려 주듯이 이 책은 하느님과 천주교를 논한 한역 서학서이다.
〔구성과 내용〕 이 책은 그리스도교 문화와 스콜라 철학의 전문적인 교양을 갖춘 서양의 학자인 서사(西士)와 유교 경전에 대한 교양과 유 · 불 · 도 3교를 터득하고 있는 중국 선비인 동사(東士) 사이의 대담 · 토론 형식으로 편술되어 있다. 상 · 하 2권 8편에 걸쳐, 174항목에 이르는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이 책은 천주교 서적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 및 서양 사상과 유교 및 동양 사상이 만나는 '서학서' 인 동시에, 스콜라 철학과 유교 철학이 만나는 '철학서' 이기도 하다. 이 책은 판각 직후부터 동양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아 왔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상권의 수편은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재하며 안양함' , 2편은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 , 3편은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의 그것과 크게 다름' , 4편은 '귀신과 인간의 혼은 서로 다르며 천하 만물은 한몸이라고 할 수 없음' 이다. 하권의 5편은 '불교의 윤회 · 육도 설과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그릇된 것이며 재계(齋戒)와 소식을 올리는 바른 뜻을 논함' , 6편은 '하느님의 의지는 소멸되지 않으며 죽은 후에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써 생시에 행한 선 · 악에 대해 응보가 주어짐' , 7편은 '인간 본성의 본래적 선을 논하고 천주교인의 올바른 학습 방법을 풀이함' , 8편은 '서양의 풍속에서 숭상하는 바를 총괄하고 서양 성직자가 결혼하지 않음과 천주께서 서양에 육화한 이유를 밝힘' 등이다.
이상 8편의 내용은 먼저 창조, 하느님, 영혼 불멸, 천당 · 지옥, 상선 벌악, 육화 등 천주교 교리의 기본 문제를 풀이하고, 둘째로 도교 · 불교가 공허한 가르침이며 유학의 '이' (理)도 만물의 참된 본원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가르침만이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밝힌다. 셋째로 유학의 옛 고전에도 이것이 밝혀져 있음을 들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입교 절차를 알려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간행 시기〕 《천주실의》의 편술 시기와 판각 연도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이견(異見)이 있으나, 편술된 것은 1593~ 1596년으로 통론되고 있다. 이 기간에 작성된 초고본이 중국 학자의 주목을 받게 되어 사본으로 일부 사대부 사이에 유포됨으로써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판각을 권하는 중국 학자의 권유에 의해 1595년 일차적으로 호남성 남창(南昌)에서 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601년 리치 신부가 북경 체류 허가를 얻어 선교 활동을 시작한 후, 그와 친교가 있었던 빙응경(馮應京)이 《천주실의》 수초본(手草本)을 얻어 보고 천주교에 입교한 후 판각을 계획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판각이 지연됨으로써 이 기간에 일부를 보정하여 1603년 북경 판 《천주실의》가 공간(公刊)되었다. 오늘날 유포되고 있는 판본 서두에 "만력 29년 맹춘곡단 후학 빙응경 근서"(萬曆二十九年 孟春穀旦 後學馮應京謹書)라는 서문이 있어 1601년에 판각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리치 신부 자신이 쓴 "만력 31년 세차발묘 7월 기망 이마두서"(萬曆三十一年 歲次癸卯七月旣望利瑪竇書)의 <서>(序)와 <인>(引)이 실려 있는 판본이 북경 제1 판본 《천주실의》로 1603년에 간행된 것이다. 북경 제1판이 간행된 후 북경 일원의 지식인들 사이에 《천주실의》가 급속히 유포되며 천주교에 입교하는 이들이 나타나자, 1604년 제2 판본이 예수회 동양 순찰사(巡察使, visitator)인 발리냐노(A. Valignano, 范禮安, 1538~1606) 신부의 주선으로 광동성(廣東省) 소주(韶州)에서 간행되었다. 그 후 1607년 리치 신부의 충직한 협력자였던 중국인 학자 이지조(李之藻, 1565~1630)에 의해 제3 판본이 항주(杭州)에서 판각 간행되었다.
'천주실의' 라는 책이름은 저자인 리치 신부 자신이 지은 것이나, 1615년을 전후하여 그리스도교를 '천학' 으로 표기하자, 한때 '천학실의' (天學實義)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일도 있다(현재 세계에서 이러한 간행본 4부가 발견되어 박물관 몇 곳에 보관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천주실의》 사본은 1603년에 판각된 것의 사본이다.
〔저술 배경〕 리치 신부가 《천주실의》에 거는 기대와 자부심은 대단하여, 이 책을 증보하여 판각하기 위해 간행이 뒤로 미루어졌을 때 "중국은 마치 죽어 가는 환자와 같이 아주 큰 죄악 속에 빠져 있다. 현재 그 중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책뿐이다"라고 적은 바 있다. 명말(明末)의 대학자이며 문신인 서광계(徐光啓 , 1562~1633)나 이지조 등 중국 천주교회 초기의 평신도들 다수가 《천주실의》를 읽고 세례를 받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천주실의》는 중국 선교가 효과를 거두는 계기인 동시에, 중국 사회에서 서학(西學)을 연구하는 학문 활동이 시작되도록 한 책이다.
리치 신부가 이처럼 품격 있는 학문서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나 서양 출신의 이국인으로서 이교 세계인 중국의 지식인들을 매료시킬 정도로 한문 구사 능력을 터득하고, 중국의 유학과 도 · 불교에 관한 해박한 학식을 갖추려고 한 리치 신부의 노력 덕분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1582년 마카오를 통해 중국 땅에 첫발을 들여놓은 리치 신부는 다음해인 1583년 동료 루지에리(M. Ruggi-eri, 羅明堅, 1543~1607) 신부와 함께 중국 광동성 조경(肇慶)에 머물게 되었다. 루지에리 신부는 리치 신부보다 불과 3년 앞서 중국에 진출하였으나, 어학 실력이 뛰어나 한문 학습의 성과가 놀라웠다. 그는 1584년에 서양인이 중국어로 쓴 최초의 저서로 후세에 알려진 《천주성교실록》(天主聖敎實錄)을 저술한 인물이다. 이런 루지에리 신부와 함께 지내면서 큰 자극을 받아 리치 신부도 한문 공부에 전력을 다하였고, 《천주성교실록》의 편술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조경에서 루지에리 신부와 같이 지낸 시간은 그가 뒷날 《천주실의》를 저술할 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리치 신부의 중국어 학습 성과도 놀라웠다. 서양인 최초로 어렵기로 유명한 유학의 기본 경전인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번역을 시작하여 1594년 번역을 완수하고 서양에서 간행하였다. 이 번역 작업을 통해 리치 신부는 유교의 기본 경서를 통독하고 그 내용에 통달할 수 있었다. 이 번역서는 예수회 신부들에게 중국 고대 사상을 이해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595년 리치 신부는 첫 한역 서학서인 《교우론》(交友論)을 저술하기에 앞서, 중국을 중앙에 위치시킨 한역 세계 지도인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판각하여 중국 지식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런 학문적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동서 사상이 만나는 사상서요, 동서 철학이 만나는 철학서이며, 천주교 선교의 '고등 호교서' 라 할 《천주실의》를 편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향과 의의] 《천주실의》는 중국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많은 명사들이 천주교를 믿도록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나라로 급속하게 전파되어, 전통 사회 지식인들의 서양과 서양 문화에 관한 학문적 활동인 서학과 천주교 신앙 운동을 촉진하는 계기를 조성하였다. 한편 유럽 사회에서 동양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환기하게 된 참고서이기도 하였다.
《천주실의》는 1603년 북경 제1판이 간행된 후 10년 이내에 조선 · 일본 · 몽고 등 한자 문화권 내의 여러 나라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조선에서도 일찍이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이 《천주실의》를 읽고 <천주실의 발문〉(天主實義跋文)을 지은 후 필사본이 나돌자, 《천주실의》를 읽은 후 자기 저서에 그에 관한 글을 수록하는 학자들이 늘어났다. 18세기 중엽에는 호기심에서 《천주실의》를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탐구욕을 가지고 《천주실의》를 연구하고 이 책의 내용에 관해 깊이 있는 글을 남기는 학자들도 생겨났다(홍유한, 안정복, 신후담, 이헌경 등). <천주실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서 조선 후기 사회에 천주교의 이질성과 위험성을 문제삼는 움직임과 천주 신앙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수용 실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은 《천주실의》가 깔아 놓은 서학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얻어진 것이다. 《천주실의》는 조선 교회 창설 후에는 한문을 가까이할 수 없는 서민층을 위해 한글로 번역되어 사본으로 유포되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1603년 간행본의 원문과 조선 후기 사회에 유포되었던 한글 필사본 《텬쥬실의》를 하나로 묶고 해제를 붙인 후, 1972년 한국교회사연구자료 제4 · 5호 합집으로 간행한 바 있다. (→ 리치, 마테오)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天主實義一부 ; 텬주실의》, 한국교회사연구자료 4 · 5 합집 호, 19721 朴鍾鴻, 〈西歐思想의 導入과 攝取〉, 《韓國天主教會史論文選集》, 한국 교 회 사연 구소, 1976/ 李秀雄, 〈天主實義 研究序說〉, 《安東大學論文集》 5집, 安東大學, 1983/ 崔基福, 〈儒敎의 祭天禮儀〉, 《理性과 信仰》, 수원 가톨릭대학교, 1993/ 利瑪竇, 송인배 외 5인 역,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北京 中華書局, 1989/ M. Ricci S.J., The True Meaning of the Lord of Heaven(Tien-chu Shih-i), Institut Ricci, Taipei · Paris · Hongkong, 1985. [李元淳]
《천주실의》 天主實義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