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天主 - 聖 - 修道會

[라]Ordo Hospitalarius S. Joannis de Deo(O.H.) · 〔영〕The Hospitaller Order of St. John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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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사도직 활동을 통해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수도회 정신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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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사도직 활동을 통해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수도회 정신을 살아가고 있다.

천주의 성 요한(Joannes de Deo, 1495~1550)이 사망한 후 그와 함께 활동하였던 5명의 동료들이 중심이 되어 1572년 1월 1일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에서 창설한 수도회. 이들은 요한의 사후(死後) 수도회 설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539년 겨울 요한이 설립한 '자선의 집' 을 모태로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본원은 로마에 있고 한국 준관구는 전남 광주시 북구 유동 115-1번지에 위치해 있다.
[수도회의 설립과 성장] 천주의 성 요한은 1495년 3월 8일 포르투갈 몬테모르 오 노보(MonteMor O Novo)에서 태어났다. 그는 8세에 한 순례자를 따라 가출하여 스페인의 오로페사(Oropesa)라는 도시에 도착하였다. 요한은 마요랄(Mayoral)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성장하며 세례를 받고 청년 시기를 양치기와 군인으로 보냈다. 1523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성지 순례를 떠난 요한은 이후 많은 시간을 묵상과 기도로 보내며, 그라나다의 엘비라(Elvira) 성문 옆에 성물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1539년 1월 아빌라의 요한(Joannes de Avila, 1500~1569) 신부의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 ?~288?) 성인에 대한 강론을 듣고 난 후 회심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런 그의 생활을 본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여겨 왕립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시설이 열악한 이 병원에서 요한은 비인간적인 치료와 학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환자들이 좀 더 편안하고 양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요한은 퇴원 후 영적 지도자인 아빌라의 요한 신부를 찾아가 1개월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한 뒤 과달루페(Guadalupe)의 예로니모회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병원과 의학 학교에서 병자 간호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을 배우고 3개월 후 그라나다로 돌아왔다. 그라나다로 돌아온 요한은 1539년 12월 루체나(Lucena)에 최초로 '자선의 집' 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거리에 버려져 있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고아, 과부, 정신병자 혹은 수용소에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요한의 이런 활동이 점차 알려짐에 따라 그와 함께 자선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 규모가 확대되자 스페인의 대도시로 활동 범위가 확대되었다. 1550년 요한이 사망한 후 정식으로 수도회가 설립되었고, 교황 비오 5세(1566~1572)에 의해 1572년 1월 1일 정식 수도회로 인가받았다. 수도회는 1587년 8월 로마에서 첫 수도회 총회를 가졌고, 1625년 창립자의 고향에 수도원과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1636년에는 프랑스에 관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1886년 5월 천주의 성 요한을 병원과 병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1877년에 아일랜드로 진출하여 1934년 아일랜드 관구를 설립하였다.
현재 전세계 50개국에서 1,400여 명의 수사들이 43개의 종합병원, 26개의 정신병원과 서비스 시설, 14개의 간호 진료소, 26개의 노인 요양원, 6개의 만성 질환자를 위한 병원 그리고 신체 장애인과 학습 장애인을 위한 16개의 서비스 센터, 정신 장애인을 위한 32개의 센터와 서비스 시설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의 수사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께 봉헌되어 정결과 가난 그리고 순종과 환대의 약속으로 자비로운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른다. 수도회는 환대 · 동정 · 존경 · 정의 · 탁월함의 다섯 가지 사명을 실천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이들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 7),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용기를 얻고, 자기를 버리고 신앙의 정신으로 겸손하게 일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희생으로 바친다. 또한 이런 삶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복음서의 내용대로 모든 이에게 선익을 베풀고 세상에서 활동하실 때 온갖 종류의 질병을 치유하셨던 동정심이 가득하고 자비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활동] 아일랜드 관구의 수사들은 1950년대 초반 의료 봉사 사업을 통해 혜택을 줄 수 있는 선교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광주교구장 헨리(H. Henry, 玄海) 주교가 아일랜드 관구를 방문하여 정식으로 그들을 초청하자, 1958년 5명의 수도사들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목적지를 광주로 정한 그들은 1958년 11월 광주에 도착하였다. 이리하여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한국에 진출한 최초의 수사 수도회가 되었다. 이들은 이동 진료와 가정 방문 활동을 시작으로, 광주 시내의 건물이 딸린 병원 부지를 구입하여 현대식 병원으로 건물을 개조하고 수도원을 신축하여 1960년 1월 병원을 개원하였다. 이들은 진료 사업 외에도 천주교 구제회의 도움을 받아 구호 활동도 함께 하였다. 1963년 초부터는 이동식 병원을 이용하여 광주 시내에 있는 부랑인 및 행려자 수용소인 갱생원, 나주에 있는 음성 나환자촌인 호혜원에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여 의료 활동을 펼쳤다. 이후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 매년 5만 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였으며, 결핵과에서는 매달 무료 투약을 시행하고, 음성 나환자촌의 주민과 갱생원에 수용된 걸인 및 구두닦이 소년들에게 무료 진료를 시행하였다. 이를 위해 수도원은 계속해서 병원의 규모를 확장하였다.
1972년에는 한국 지부에 수련소가 설치되었고, 첫 수련자의 서원이 1977년에 있었다. 수도회는 봉사 활동을 계속하는 중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 사업의 시급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1년 광주 무등 갱생원에 정신과 병동을 신설한 것을 계기로 1973년 10월 정신과 외래를 신설하였으며, 1976년 9월부터는 전국 최초로 정신과 낮 병원(주간 생활 회관)을 운영하였다. 1975년에는 고아들을 돌보아 주는 '소년의 집' 을 개원하였다.
1980년부터는 각종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독거 노인 및 가정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가정 방문 팀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 강원도 춘천시는 수도회에 춘천의 갱생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수도회에서는 1984년 1월부터 춘천 시립 갱생원(현 춘천 시립 복지원)을 위탁 운영하였다. 또한 1983년에는 관구 회의에서 한국 지부의 관구 대리구 승격 요청이 승인되었다. 1990년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알코올 상담 치료 센터(그라나다 알코올 센터)를 개원하여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과 재발 예방 프로그램 및 대중 교육을 실시하고, 1999년 3월부터는 전문 알코올 상담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교구장 초청으로 서울에 진출하여 당시 평신도가 운영 중이던 정신 지체 장애인 시설 '늘푸른나무' 를 위탁받아 운영을 시작하였다. 이 시설은 성인 학습 장애인의 직업 재활을 통해 지역 사회로의 통합을 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수도회는 증가하는 환자들을 위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쾌적한 환경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1997년 3월 옛 병원과 수도원을 매각하였다. 그리고 당시 정신과 자리에 현대식으로 설계된 병원과 수도원을 신축하여 준공 및 축복식을 갖고, 정신과는 '천주의 성 요한 정신병원' 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98년에는 아일랜드 관구 소속이었던 한국 지부가 준관구로 승격되어 아일랜드 관구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고, 초대 준관구장으로 강영환(姜永煥, 타대오) 수사가 임명되었다.
1999년 5월에는 전남 담양의 교육 센터인 대건 센터의 축복식이 있었으며, 12월부터는 광주 공원 노인 복지 회관을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 또한 서울 늘푸른나무 복지관은 2000년 1월 새 건물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광주 천주의 성 요한 병원에서는 치매 노인들을 위한 주간 치매 센터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2001년 2월 26일부터 3월 3일까지는 준관구 본부가 있는 광주에서 필레스(Pascual Piles) 총장 수사와 평의원 수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첫 번째 준관구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한국 준관구의 계획과 평가가 있었으며, 아울러 2대 준관구장으로 원유창(元裕昶, 베네딕도) 수사가 선출되었다. 2003년 현재 종신 서원자 22, 유기 서원자 3, 수련자 2, 청원자 2명이 있다. (← 천주의 성 요한 병원 · 의원 ; → 요한, 천주의)
※ 참고문헌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한국) 역,《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의 역사와 생활》,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1983.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