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天真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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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사 천진암 강학에 참여한 이들이 이용했다는 빙천.

주어사 천진암 강학에 참여한 이들이 이용했다는 빙천.

천주교회 사적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500소재.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배경이자 기원이 된 강학(講學)의 장소.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은 그의 문도들인 정약전(丁若銓) · 김원성(金源星) · 권상학(權相學) · 이총억(李寵億) 등을 이끌고 1768년부터 1784년까지 거의 매년 주로 겨울에 주어사(走魚寺, 현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와 그 너머에 있는 천진암(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소재) 등의 산사에서 강학을 하였다. 특히 1779년 겨울 강학 때 이벽(李檗, 세례자 요한)이 그 소식을 듣고 눈 오는 밤에 찾아와 참석함으로써 천주교 신앙을 포함한 서학(西學)이 본격적으로 연구 · 토론되었다.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는 이 1779년 강학에서 하늘 · 세상 · 인생 등에 관한 문제와 그에 대한 기존 학자들의 모든 의견, 성현들의 윤리서, 철학 · 수학 · 종교와 관련된 서학서 등이 연구 · 토론되었다고 기술하였다. 특히 서양의 과학 서적에 들어 있는 천주 교리의 초보적 이론, 즉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 영혼의 신령성과 불멸성, 칠죄종(七罪宗)을 극복하는 칠극(七克)의 내용 등이 연구되었으며, 참석자들은 이후 천주 교리의 이치를 어렴풋이 느끼고 기도 행위와 하느님 공경, 묵상 행위와 재(齋)를 실천해 나간 것처럼 설명하였다. 이 1779년 강학의 장소에 대해서는 천진암설과 주어사설이 있으나 천진암설이 맞다고 보고 이곳을 성지로 개발하게 되었다. 천진암은 이벽이 독서하던 곳으로 정약용(丁若鏞,요한)은 유배에서 풀린 뒤 그곳을 찾아가 이벽을 회상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천짐암 성지의 개발은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변기영(卞基榮, 베드로) 신부는 1975년에 천진암 터를 답사한 뒤 1978년에 그 터 3,000여 평을 매입하고, 1979년에는 40,000여 평, 1981년에는 15,000평, 1982년에는 23,200평, 1983년에는 10,289평을 추가로 매입하는 등 단계적으로 부지 20여만 평을 확보하여 성지로 조성해 가고 있다. 이 성지 조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한국 천주교 창립 선조들을 기념하는 대성당을 100년 계획으로 세우는 일이다. 이 계획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1986년에 확정되었으며, 1987년부터 대성당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였고, 1996년에는 대성당의 건축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건축 공사에 착수하여 단계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가고 있다. 대성당은 한국의 민족 종교들과 유교, 불교, 천주교 등의 건축미를 두루 반영한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또한 천진암 성지에는 천진암 준본당(광암 성당),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 연구원, 한국 천주교 박물관, 봉쇄 수도 원인 가르멜 수녀원이 설립되어 있다. 천진암 준본당은 1985년 2월 5일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기영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 연구원은 주로 1831년 조선 대목구 설정 이전 시기의 초기 교회사 자료를 수집 · 정리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1981년에 설립되어 현재 운영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 박물관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에 관계된 인물, 장소, 사건 등에 관한 유물과 각종 자료 및 103위 시성에 관계된 각종 자료와 200주년 기념에 관한 각종 자료의 수집, 정리, 보전 및 전시를 위하여 1988년에 설립되었으며, 가르멜 수녀원은 1980년에 설립되어 성지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아울러 천진암 성지에는 옛 천진암의 유물인 빙천(永泉) 및 굄물 방아확, 대성당 제대석, 대성당 교황 강복 머릿돌,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비,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5위 묘역,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가족 묘역, 조선 대목구 설립자 묘역 등의 기념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창립 선조 5위 묘역에는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 이벽 ·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 권철신의 묘가 이장되어 있고, 창립 선조 가족 묘역에는 정약용의 조부 정지해(丁志諧)와 조모 풍산 홍씨(豊山洪氏) 묘, 부친 정재원 (丁載遠)과 모친 의령 남씨(宜寧南氏) · 해남 윤씨(海南尹氏) 묘, 정약전과 그의 부인 풍산 홍씨 묘, 이벽의 부친 이부만(李溥萬)과 모친 양천 허씨(陽川許氏) 묘, 이벽의 누이이자 정약현(T若鉉)의 부인인 경주 이씨(慶州李氏) 묘가 이장되어 있으며, 조선 대목구 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丁夏祥, 바오로)과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의 묘가 이장되어 있다. 이 밖에도 천진암 성지에는 천진암 성지 위원회, 대성당 건립 위원회, 남자 천진회, 103위 성인 후손회, 창립 선조 후손회, 창립 선조시성 추진위원회, 정하상 성인 현양회 등의 각종 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 권철신 ; 남인과 천주교 ; 주어사·천진암 강학 ; 이벽)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달레 교회사》 상1 金玉姬, 曠菴 李蘗의 西學思想》, 가톨릭 출판사, 1975/ 변기영, 《이벽 성조와 천진암》, 진명 출판사, 1980/ 李元淳, 〈天眞菴 · 走魚寺講學會論辨〉, 《金哲埈博士華 紀念 史學論叢》, 지식산업사, 1984/ 崔奭祐 · 卞基榮, <한국 천주교회의 起源 문제>, 《司牧》 144호, 1991/ 徐鍾泰, 天真庵 走魚寺 講學과 陽明學〉 《李基白教授年退任紀念 韓國史論叢》, 1994/ 車基真, 《조선 후기의 西學과 斥邪論 연구》, 한국교회사연구소, 2002/ 윤민구, 《한국 천주교회의기원》, 국학자료원 2002/ http://chonjinam.or.kr. 〔徐鍾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