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학고>

天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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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중국과 조선에 전해진 기원을 밝히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 1785년에 집필한 논고.
안정복은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창기인 1780년대 초성호학파(星湖學派)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천주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자, 천주교를 뜻하는 '천학' 은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 이미 오래 전에 들어온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저술하였다. 따라서 <천학고>는 천학, 즉 천주교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래된 역사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한서》(漢書) · 《통전》(通典) · 《열자》(列子) · 《북사》(北史) · 《자치통감》(資治通鑑) · 《당회요》(唐會要) · 《홍서원시비서》(鴻書原始秘書) · 《오학편》(吾學編) · 《경교고》(景敎考) · 《명사》(明史) · 《일지록》(日知錄) 등 11종의 중국 문헌 기록을 들어 중국 고대부터 명대(明代)에 이르기까지 서양과 중국의 접촉을 고찰하면서 서방의 풍습과 지리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알레니(G. Aleni, 艾儒略, 1582~1649)의 《직방외기》(職方外紀)와 리치(M.Ricci, 利瑪竇, 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한역 서학서를 인용하여 예수의 탄생과 행적, 부활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국내 문헌으로는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수록된 천주교 기록을 인용 · 소개하였다. 그리고 <천학고>의 말미에는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요약하여 붙이고, 이어 자신의 안설(按說)을 통해 이익이 서학에 관심을 두었다는 당시 일부 학자들의 견해는 모함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는 당시 성호학파의 학자들 중에서 이익이 생전에 서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들어 천주교 수용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반박한 것이다.
안정복은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에 이미 서양 국가와 통교하였다고 하면서, 이 서양 국가는 모두 천(天)을 섬긴다고 믿었다. 또한 당(唐) 개원(開元) 7년(719) 토화라국(吐火羅國)에서 중국 조정에 법당을 설치하였다는 《일지록》의 기록을 들어, 이는 리치가 북경에 천주당을 설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보고, 천학이 중국에 일찍 들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젊은이들이 새삼스럽게 천주교에 심취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요컨대 <천학고>는 천학의 전래를 역사적으로 밝힘으로써 사람들이 이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 보려는 의도에서 <천학문답>(天學問答)과 함께 쓰여진 것이다. (→ 안정복 ; <천학문답>)
※ 참고문헌  강세구,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연구》, 혜안, 1996. 〔姜世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