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학고>(天學考)와 함께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의 대표적인 천주교 비판 논고.
주로 리치(M. Ricci, 利瑪竇, 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겨냥하여 저술하였는데, 1724년 신후담(慎後聃, 1702~1761)이 지은 《서학변》(西學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천학문답>은 '천학혹문' (天學或問) 또는 '천학설문' (天學設問)이라는 이름으로 유포되었다가 후에 '천학문답' 으로 바뀌었고, 내용도 수정 · 보완되었다. 안정복이 <천학문답>을 저술한 배경은, 서양의 학술과 우리 나라 학술의 차이를 비교하고, 천학을 비판하여 척사(斥邪)의 입장에서 천주교를 배척하려는 것이었다.
리치가 《천주실의》에서 중국 선비인 동사(東士)가 질문하고 서양의 학자인 서사(西士)가 대답하는 형식을 사용한 것처럼, <천학문답>도 31개의 '혹문' (或問)과 '혹왈' (或日)의 체재를 갖추어 문답식으로 쓰여졌다. 그리고 이 글의 말미에는 <천학고>와 같이 부록을 두어, 일찍이 이익(李濞, 1681~1763)이 천주교에 호의를 보였다는 당시 일부 학자들 사이의 풍문을 해명 ·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내 용] 이 논고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이 하늘을 섬기는 일〔事天〕은 서양에서뿐만 아니라 유교에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천학에서는 내세를 위해 하늘을 섬기지만, 유교에서는 상제(上帝)가 내린 성명(性命)을 따라 하늘을 섬길 따름이라고 하였다. 둘째, 천학은 불교의 이설(異說)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예수의 탄생은 석가모니가 현성현령(顯聖顯靈)한 것이라 하고, 선교 방법이나 신부의 종교 활동, 대부(大父)를 세우고 세례명을 쓰는 일 등을 모두 불교 예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단이라고 규정하였다. 셋째, 천학은 오로지 내세를 위한 종교라는 것이다. 현세를 부정하여 금수의 세상이라 하거나 자기 몸과 세속을 원수로 여긴다면, 인륜이 파괴되고 종국에는 인류가 멸망한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마귀를 원수로 삼는 것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하였고, 천당과 지옥의 존재, 영혼 불멸설, 생혼(生魂) · 각혼(覺魂) · 영혼(靈魂)의 삼혼론(三魂論)을 부정하였으며, 오직 유교의 극기와 욕심의 절제, 중용을 지킬 뿐이라 하였다.
넷째,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지 창조와 인류 조상론을 배척하였다. 상제가 이(理)의 근원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이해한 반면, 성서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원조설' 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고, 인간도 만물처럼 기(氣)로써 형(形)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도 하늘을 모독하고 상제를 모욕한다 하여 배척하였다. 다섯째, 성서는 대개 신성한 사람이 나타나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성서 내용 역시 그들만의 주장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안정복이 리치의 주장을 모두 부정한 것은 아니며,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였다. 이를테면《천주실의》에서 리치가 천주와 상제를 같다고 본 것, 현세에서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 불교의 윤회설을 거짓이라고 본 것 그리고 리치의 이기성정(理氣性情) 논의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이다.
요컨대 안정복이 <천학문답>을 통하여 천학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유는 하늘을 공경하고 받드는 목적이나 방법에서 유교와 천학이 크게 달랐고, 안정복의 철저한 유교적 현세관과 그리스도교의 내세 중심적 세계관이 기본적으로 부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세의 선악에 대한 응보(應報)가 내세의 천당 · 지옥에 연결되는 그리스도교 사상이 유학자 안정복에게는 애당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안정복은 <천학문답>을 누구보다도 당시 천주교에 발을 들여놓거나 관심이 많았던 성호학파(星湖學派)의 젊은이들에게 읽어 보도록 권유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1736~1801)이나 이기양(李基讓,1744~1802) 등 비교적 재능과 학식이 뛰어난 소장 문인들이 주된 대상이었다. 특히 권철신은 이익이 살아 있을 때부터 성호학파를 이끌어 갈 전도 유망한 인물로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그의 천주교 입교와 활동은 성호학파의 진로 문제와 함께 적지 않은 파문을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복은 권철신과 그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을 천주교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설득과 함께 <천학문답>을 돌려 읽도록 하였던 것이다.
〔평 가〕 이 논고는 19세기로 이어지는 안정복 계열 성호학통의 벽위(闢衛) 사상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남한조(南漢朝, 1744~1809)나 정종로(鄭宗魯 1738~1816)와 같은 영남 남인을 통하여 영남 지방에 보급되어 영남인들의 천주교 이해와 벽위 사상을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안정복 ; <천학고>)
※ 참고문헌 李元淳, 《韓國天主敎會史研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강세구,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연구》, 혜안, 1996/ ─, 《성호학호학통 연구》, 혜안, 1999. 〔姜世求〕
<천학문답>
天學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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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