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사적지.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산 56-1 소재. 천호산(天壺山) 기슭인 이곳에는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고, 1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天呼, 다리실 또는 용추네) 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천호 공소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부르며 사는 신앙 공동체로 형성되었다. 천호 산도 역시 그 이름처럼 순교자의 피를 담은 병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인 1866년 12월 13일(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이명서(베드로) · 손선지(베드로) · 정문호(바르톨로메오) · 한재권(요셉) 네 분 성인과 1866년 8월 28일(음)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礪山)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있다. 이 밖에도 천호산에는 여산 순교자들과 함께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
〔성지 조성 과정〕 순교자들의 묘가 있는 땅과 그 주변의 산은 조선조에 고흥 유씨가 하사받은 땅이었다. 이 때문에 그곳에 사는 신자들은 언젠가 쫓겨나야 할 처지였고, 순교자들의 무덤도 이장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되재 본당(현 고산 본당) 베르몽(J.M. Ber-mond, 睦世榮) 신부와 12명의 신자들이 45만 평 정도의 산을 매입함으로써 공소 신자들은 생활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고, 순교자들의 묘소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천호 공소 신자들을 주축으로 되재 본당은 1939년 8월 공소 수호 성인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100주년 기념 사업' 으로 가경자(可敬者) 손선지와 김성화(야고보) 외 여섯 분의 묘소에서 순교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1941년경 베르몽 신부, 김여선(金汝先) · 이만보(李萬甫) · 장정운(張正云) · 김현구(金顯九) · 박준호(朴準鎬) · 민감룡(閔甘龍) · 송예용(宋禮用) 등은 45만 평 중에서 순교자들의 묘와 종적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땅 23만 평을 교회에 봉헌하였다. 이로써 그곳을 성지로 가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1983년까지만 해도 천호 성지는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으며, 천호 공소 신자들과 되재 본당 신자들에 의해 보존 · 관리되었다. 게다가 손선지의 묘 외에 다른 순교자들의 묘는 구체적으로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성지 조성은 1983년 5월 호남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천호산에 묻힌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주교구장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 등이 참석한 발굴 작업에서 그동안 실전(失傳)되었던 복자 정문호와 한재권의 유해가 확인되었으며, 김성화 외 6인의 묘로 알려진 묘에서는 한 구가 더 발견되어 8인 묘로 확인되었다. 그 외에 무명 순교자 두 구를 발굴하여 총 12명의 유해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중 무명 순교자들은 넓은 바위(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의 광암) 출신의 김성첨(토마스) 가족 6명과 같은 마을의 신도들로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다.
1983년 12월 17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전주교구 상임위원회' 는 천호산에서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 현장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2월 18일 복자 정문호 · 한재권 · 손선지와 10명의 무명 순교자 천묘식이 거행되었다. 복자들은 일렬로 같은 위치에 모셨고, 열 분의 무명 순교자는 복자들 앞줄에 각각 일렬로 모셨으며, 차후 발굴될 경우를 생각해서 가무덤을 하나 더 조성해 놓았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유해는 차후 분배에 대비하여 정문호 복자의 하지골 일부만을 남기고 모두 무덤 안에 넣었다. 1968년에 절두산 순교 성지로 이장된 손선지 복자의 유해는 절두산 순교 성지에서 찾아와 복자 성당에 모셔 놓았던 두개골을 무덤에 안치하였다. 그런 다음 복자들에 대한 시성식이 끝난 뒤인 1984년 10월부터 천호 성지를 개발하여 1985년 11월 30일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선포일에 맞추어 새롭게 단장한 순교자 묘역을 축성하였다.
또한 1988년 9월 30일 고산 본당 수청리 공소와 석장리 공소 중간 길가에 있던 병인박해 순교자 김영오의 묘를 천호 성지로 이장하였고, 그 다음날인 10월 1일에는 이명서 성인의 유해도 천호 성지로 이장하였다. 이명서 성인의 유해는 시복식이 거행되던 1968년 5월 10일 절두산 순교 성지로 이장되어 유해의 일부는 성당 지하 묘에 안장되고 일부 유해는 서울대교구 각 본당에 분배되어 보관하였는데, 1983년에 김진소(金眞召, 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절두산 순교 성지에 안장되어 있는 이명서 성인의 하지골 일부를 찾아다 주교관 성당에 모셨다가 다시 천호 성지로 이장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1992년 3월 31일에는 성모상을 제작하여 성지에 설치하였고, 1993년 9월 15일에는 김진소 신부의 주관과 조각가 이춘만 선생의 노력으로 14처를 제작하여 성지에 설치하였다. 청동으로 제작된 이 14처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편 천호 성지에는 성지를 관리하는 피정의 집이 들어서 있다. 자치 교구 50주년을 맞아 전주교구민들이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신앙의 수련장으로 이 피정의 집을 세웠다. 1987년 8월 31일 완공된 연건평 535평 규모의 이 피정의 집에는 성당(128석), 강당(90석), 식당(90석), 휴게실 세 개, 사무실, 지도 신부 방 등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천호 공소에는 천호 성지 개발의 산실 역할을 하고, 한국 천주교회사의 연구와 지방 학문의 발달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 오고 있는 호남교회사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천호산 기슭에는 박해 시대 교우촌의 옛 터와 주변 환경이 손상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은 박해 시대 교우촌의 입지적 특성을 보여 주는 교육의 장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또한 숲의 향과 신선한 공기는 세파에 시달린 순례객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천호 성지는 이러한 입지적 조건을 살려 자연 친화적인 순례 장소로 가꾸어 가고자 종합 개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 여산 ; 전주교구 ; 호남교회사연구소)
※ 참고문헌 김진소, 《천호 성지》, 천호 성지, 1994/ -, 《천주교 전주교구사》 I ·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徐鍾泰〕
천호 성지
天呼聖趾
글자 크기
10권

1 / 2
천호 성지의 피정의 집(왼쪽)과 순교자 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