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본당

千戶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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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동구 천호3동 397-413 소재. 1958년 7월 8일 신당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안나와 성 김성우 안토니오. 관할 구역은 천호1 · 2 · 3 · 4동 전 지역과 길1동 일부 지역. 〔교 세〕 1960년 1,316명, 1966년 1,617명, 1973년 3,176명, 1979년 6,520명, 1985년 12,440명, 1990년 6,044명, 1995년 7,068명, 2001년 7,707명. 〔역대 신부〕 초대 박고안(朴稿安) 프란치스코(1958. 7~11), 2대 임종국(林鍾國) 바오로(1959. 5~1962.9), 3대 임종구(林鍾求) 바오로(1962.9~1963.6), 4대 임종국(1963. 6~1967. 4), 임시 김몽은(金蒙恩) 요한(1967. 3~4), 임시 이문근(李文根) 요한(1967. 4~8), 임시 김대성(金大星) 바오로(1967. 8~1968. 6), 5대 김대성(1968. 6~1970. 1), 6대 조인환(曹仁煥) 베드로(1970. 1~1971.5), 7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71.5~1976.5), 8대 김병일(金秉溢) 요셉(1976. 5~1981.8), 9대 남영희(南永喜) 이시도르(1981. 8~1986. 8), 10대 오태순(吳泰淳 토마스(1986. 8~1992.9), 11대 이종남(李鍾男) 라이문도(1992. 9~1997. 9), 12대 고명철(高明哲) 아우구스티노(1997. 9~1998. 9), 13대 최창화(崔昌和) 토마스 아퀴나스(1998. 9~1999. 11), 14대 최준웅(崔俊雄) 바르나바(1999. 11~현재).
천호동 지역은 1950년대 초반 철원 지역 피난민들의 정착 지역으로서 다른 공소들보다도 발전 가능성이 많은 지역이었다. 천호동 공소가 정식으로 설정된 것은 1955년 봄 강진석(요셉)이 신당동 본당에서 본당 신부를 모시고 와서 공소 예절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천호동 공소가 점차 자리를 잡아 가자 본당 신설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즉 천호동은 물론 방이동 · 오금동 · 광장동 · 길동 · 성내동 지역의 신자들이 신당동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주일 미사에 참석하기 어려우므로 천호동 지역에 성당을 짓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58년부터 총 600평 가량의 부지를 매입하였고, 신자들이 마련한 기금과 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성당 건립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1958년 7월 본당이 설정되어 박고안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성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하지만 박신부는 지병이 악화되어 11월에 독일로 떠나고, 이후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돌아가며 본당의 사목을 맡았다. 본당 신부가 부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당 신자들은 앞으로 부임할 신부를 위하여 1959년 초 20평 정도의 벽돌 기와집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1959년 5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임종국 신부는 사재를 모두 성당 부지 매입 기금으로 내놓았고, 신자들도 기금 조성에 활발하게 동참하였다. 그 결과 1959년에 2,000여 평의 땅을 매입하였고, 1960년에 400평을 추가로 매입하였다. 이어 성당 신축이 진행되어 1962년 9월 198평의 현 성당과 82평의 사제관을 준공하여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3대 주임 임종구 신부는 반장들의 임무를 중시하여 매주 반장 회의를 개최하였고, 본당 활동에 그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정책을 펴 나갔다. 2대 주임을 역임하였던 임종국 신부가 신자들의 요청으로 4대 주임으로 재부임하여 1965년 7월 25평 규모의 수녀원을 완공하였고, 11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임 신부가 지병으로 성모 병원에 입원하자 김몽은, 이문근 신부가 임시로 본당을 맡아 사목 활동을 하였고, 1967년 8월부터 임시 주임 대리로 있던 김대성 신부가 1968년 6월 5대 주임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김 신부는 1968년 11월 현 효명유치원의 전신인 효명유치부를 설치하여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천호동 본당이 관할하는 거여동 · 가락동 공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6대 주임 조인환 신부는 과도기적인 '집단 회장단 체제' 를 구성하여 오랫동안 본당 활동에 참여한 평신도들이 본당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7대 주임 이삼복 신부는 1971년 7월 천호동 본당 운영 위원회 발기 총회를 개최하여 본당 운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고, 1972년 10월 새 유치원 교실을 완공하여 그해 11월 서울시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후 부족한 교리실 및 유치원 교실을 보충하기 위해 1975년 11월 사제관과 성당 사이에 약 20평의 교리실을 다시 증축하였다. 8대 주임 김병일 신부는 본당 운영 위원회를 폐지하고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운영상의 쇄신을 도모하였고, 1978년 10월 새 사제관(2층 63평)과 유치원 겸 교리실(2층 120평)을 완공하였다. 한편 1977년 6월에 매입하였던 성당 입구 도로 쪽 대지 42평의 공간에 교육관 건립을 계획하여 1981년 5월 교 육관(600평)을 완공하였다. 9대 주임 남영희 신부는 본당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중시하였으며,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함으로써 전교 활동을 활성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당 분할에 따른 구역 · 반의 재정비와 교구 방침에 따른 사목 협의회의 재구성을 통해 기초 공동체를 체계화하고, 노인 학교 · 유치원 · 신협 등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유대 관계도 중요시하였다. 1982년 10월 대대적인 성당 내부 수리 작업을 시작하였고, 현재의 사제관과 이시돌 교육관을 1984년 10월에 완공하였다.
10대 주임 오태순 신부는 부임 직후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본당 사목을 위한 기초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함께하는 교회, 적극적인 재교육 활동을 통한 신자로서의 자세와 신심 함양' 을 사목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1988년 4월부터는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아 지역 사회와 함께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복지 시설 및 문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기념관 건립 운동이 시작되어 1990년 5월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강동 가톨릭 문화원' 의 축복식을 가졌다. 11대 주임 이종남 신부는 1996년 초 대대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여 같은 해 12월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12대 주임 고명철 신부는 1998년 3월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천호동 본당 40년사》를 간행하기 위한 간행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鄭鎭奭, 니콜라오) 대주교는 1998년 9월 25일부로 15개 지구마다 1개의 지구장좌 본당을 설정하는 조치를 취하였는데(서울대주교의 교령 제 98-2), 그 결과 천호동 본당이 제9 지구 지구장좌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최창화 신부가 13대 주임 겸 제9 지구 초대 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최 신부는 지구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 강동 가톨릭 회관 1층에 있는 본당 사무실을 이전하고 이곳을 개조하여 지구장과 본당 주임 신부 사무실을 겸한 지구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14대 최준웅 신부는 2002년 7월 강동 가톨릭 회관 지하 소성당 및 다목적 홀 공사를 완공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천호동을 중심으로 송파 · 강동 지역에 아파트 단지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인구 유입이 급증하자 신자수가 증가하여 여러 차례의 본당 분할이 있었다. 분리된 본당으로는 1981년 1월 암사동 본당과 둔촌동 본당, 1985년 8월 길동 본당, 1986년 2월 고덕동 본당, 1987년 8월 명일동 본당, 1989년 2월 풍납동 본당이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천호동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 《천호동 본당 40년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천호동 교회 , 1999.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