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산 본당

鐵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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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489-63소재. 1982년 3월 4일 광명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관할 구역은 광명시 철산3 · 4동 전 지역과 하안동 일부 지역. 〔교세] 1982년 500명, 1988년 5,779명, 1994년 14,837명, 2003년 6,179명. 〔역대 신부] 초대 장덕호(張德鎬) 갈리스도(1982. 3~1990. 11), 2대 김창린(金昌麟) 필립보(1990. 11~2001. 1), 3대 이광희(李光熙) 가브리엘(2001.1~현재).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에 인접한 광명리(光明里) 일대는 1970년대 초부터 대규모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인구가 급증하였다. 1981년 7월 1일 광명리는 시흥군 서면에 속하였던 철산리(鐵山里)와 통합되어 광명시로 승격하였다. 시로 승격되면서 인구는 더욱 급증하였으나, 이 지역에는 광명 본당뿐이었다. 따라서 광명 본당은 늘어나는 신자수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게다가 철산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본당 분리가 시급해졌다.
이에 광명 본당 2대 주임인 심영택(沈榮澤, 프란치스코) 신부는 어려운 본당 사정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도움으로 1981년 1월 14일에 광명시 철산동 산 63-2번지의 대지 1,469평을 매입하여 본당 분리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성당과 사제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원교구장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는 1982년 3월 4일자로 철산 본당을 설정하고, 초대 주임으로 장덕호 신부를 임명하였다. 장덕호 신부는 광명 본당에서 지원해 준 650만원으로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여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당이 지어지지 않은 초기에는 본당 총회장 사택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1982년 11월부터 지하실을 임대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자수는 증가하였고, 1983년 1월 사목 협의회를 결성하여 4월에 성당 건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8월 임시로 지하 성당을 완공하여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고, 바로 본 성당 공사가 이어 졌다. 1984년 2월에는 까리따스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본당에 파견되어 신자와 예비자들을 지도하였고, 이듬해 8월 30일에는 본당의 첫 번째 꾸리아인 '신비로운 장미' 가 설립되었다. 마침내 1989년 10월 20일 성당 신축 공사를 완료하여 김남수 주교와 교황 대사 이반 디아스(Ivan Dias) 대주교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2대 주임 김창린 신부는 본당의 신자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1991년 4월 하안동 241번지의 대지 540평을 매입하여 본당 분할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92년 10월 17일부터 이틀간 철산 본당과 광명 시민회관에서 본당 설립 10주년 행사와 김창린 신부 사제 서품 40주년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다. 한편 본당 분할을 위한 작업은 대지 매입 후 건축 기금을 마련하는 등 꾸준히 추진되었으나 부지가 그린벨트에 묶여 성당 건축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마침내 1996년 2월 6일자로 하안 본당이 분리 · 설립되었다. 김창린 신부는 1997년부터 필립보 장학금을 조성하여 매년 부활 둘째 주일날 예비 신학생들에게 수여하였으며, 1999년 6월 23일에는 수원교구가 추진한 제1회 도 · 농 본당 간 자매 결연식에 참석하여 궁리 본당과 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광명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제8회 가톨릭 합창제를 열어 광명 지역 신자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또한 3대 주임 이광희 신부 재임기인 2003년 12월 12일에는 본당 사진 동호회인 빛그림회에서 동호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을 광명 시민회관 전시실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설립 당시 신자수 280여 명으로 시작한 철산 본당은 2003년 현재 신자수 6,179명으로 급성장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도 한 몫을 담당하는 본당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 광명 본당 ; 수원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