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 7리 854 소재. 1955년 죽림동 주교좌 본당 공소에서 시작하여 1957년 6월 4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주님 공현. 관할 구역은 철원군 철원읍 14개리, 동송읍 35개리, 갈말읍 1개리. 관할 공소는 대마리 1개소. [교 세] 1968년 1,587명, 1976년 991명, 1984년 1,328명, 1990년 1,560명, 1995년 1,611명, 2001년 1,848명, 2004년 1,919명. [역대 신부] 초대 크로닌(P. Cronin,盧) 베드로(1957~1962. 10), 2대 오브리언(J.O'Brien, 인) 야고보(1962. 10~1963. 10), 3대 헤이워드(H. Hayward, 오) 후베르토(1963. 10~1967), 4대 머피(C. Murphy, 전) 코르넬리오(1967~1967. 11), 5대 로체(J. Roche, 지) 요한(1967. 11~1969. 11), 6대 김정식(金晶植) 토마스(1969. 11~1973), 7대 배넌(P. Bannan, 반) 파트리치오(1973~1975), 8대 둔(G. Dunne, 손) 제라르도(1975~1979. 5), 9대 코놀스(K.Connors, 고) 가비노(1979. 5~1983. 5), 10대 천신기(千信基) 세례자 요한(1983. 5~1990. 1), 11대 송병철(宋炳哲) 야고보(1990. 1~1995. 8), 12대 오세철(吳世哲) 가브리엘(1995. 8~2000. 2), 13대 이상철(李相鐵)요한(2000. 2~2003. 9), 14대 송문식(宋文植) 베드로(2003. 9~현재).
한국 전쟁으로 수복된 철원 지역에 1953년 이후 주민들이 모여들면서 천막촌이 형성되었다. 1955년 강원도 동송읍으로 입주한 신동균(스테파노)은 교우들을 모아 자신의 집에서 공소 활동을 시작하고, 이를 춘천교구에 알렸다. 이에 춘천교구는 그 지역을 죽림동 주교좌 본당 공소로 설정하여 매달 신부를 보내어 미사를 봉헌하게 하였다. 1957년 미국의 전후 복구 지원 사업에 따라 일본에서 들여온 조립식 건물 자재로 성당을 건립하였고, 초대 주임으로 크로닌 신부가 부임하여 같은 해 6월 4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관할 구역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 갈말면 · 동송면과 경기도 연천군 관인면이었고, 소속된 공소는 지포리 · 용화동 · 문혜리 · 관인 공소였다.
1959년 김화 본당을 분리하였고, 1970년에는 본당 관할인 지포리 · 관인 · 문혜리 공소를 운천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같은 해 철원읍 대마리에 부지 130평을 구입한 후 1971년 부활절에 공소를 마련하였으며, 1985년 8월에는 새 성당 건물을 완공하여 본당의 모습을 일신하였다. 2000년 춘천교구 주관으로 개막된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 대회' 에서 철원 본당의 신자들은 인근 본당의 신자들과 함께 원활한 행사를 위한 안내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001년에는 본당 신자들의 화합과 이웃 공동체와의 친목 도모를 위해 '한밤의 작은 음악회' 를 개최하였다. 현재 철원 본당은 지역 거주 신자들뿐만 아니라 인근 군부대 장병들의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다. (→ 김화 본당 ; 운천 본당 ; 춘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가톨릭신문>/<평화신문> 《경향잡지》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梁仁誠〕
철원 본당
鐵原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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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