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지식을 얻으려는 학문. 일정한 연구 대상이나 일정한 방법도 없으며, 시대와 학자에 따라 각기 다른 대상을 연구하였다. 교회는 초기부터 철학자들의 예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사목 44항). . :
I. 의 미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학문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명칭만 들어도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생물학은 생물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며, 역사학은 역사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명칭만으로 그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철(哲)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문 명칭이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것처럼, 철학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필로소피아' (Ф10000∮(α)도 '지혜(ooФiα)에 대한 사랑(Фilos)' 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2?~497/496)가 이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자신은 신(神)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진리를 완전히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진리를 찾고 지혜를 사랑할 뿐이라고 고백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일화로부터 철학자,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지혜(智慧)라는 말에는 '밝음을 아는 것' , 즉 근원적인 것을 밝힐 줄 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에서 철학의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으나, 다른 학문과 비교해 볼 때 그 내용이 충분히 설명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철학은 일반적으로 시대와 장소와 학자들에 따라 달리 정의되고 이해되어 왔다. 예를 들면 서양 고대 철학은 모든 학문의 원리를 포괄하는 것이었으며, 중세 철학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신학의 예비학( '신학의 시녀'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이었다. 또 근세에는 주로 인식의 근거를 밝히는 것으로 철학을 정의하였고, 현대의 영 · 미 철학자들은 언어의 분석과 의미의 명료화를 철학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전문가에게만 국한되는 학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철학의 내용이 시대와 문화 및 사회적 환경과 인간의 기질이나 취향에 따라 달리 논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은 어떤 연구의 영역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학문인 동시에 모든 것의 근원을 연구하는 근본적인 학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다.
: Ⅱ. 발단 및 근본 문제와 분야
〔철학의 발단] 무지의 깨달음 : 소크라테스(Socarates, 기원전 470/469~399)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아는 데에서부터 철학함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 모르고 있음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앎을 추구하게 만든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철학적인 근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어렴풋하기만 한 이 앎을 좀 더 확실히 알려고 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분명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져야 하고,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개념으로 해명될 수 있어야 하며, 여러 가지 모순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보다 높은 정신의 요구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미처 주목하지 못하는 곳에서도 문제를 찾아내며, 자명해 보이는 것까지도 문제삼는다. 잘 알려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충분히 인식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은 바로 철학함의 시작이며 철학의 고유한 의미이기도 하다.
회의의 극복 :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들으면서 얻게 된 경험적 앎은 참으로 믿을 수 있는가? 들길을 가다가 나뭇가지인 줄로 알았던 것이 뱀이었음을 보고 놀란 사람은,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이 모두 다 나뭇가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의 감각이 항상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감각은 그때그때 직면하는 심리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확실한 앎의 바탕이 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감각에 의거한 앎이란 자명한 것이 못 되며 의심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감각적 지식과 일상적 경험을 의심하면서부터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확실한 앎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의심을 신중하게 받아들여 생각해 봄으로써 회의 자체를 극복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회의를 극복한 위대한 철학자 두 사람을 철학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와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교부(敎父)로 추앙받고 있는 아우구스티노는 젊은 시절에 심한 회의주의에 빠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그는 회의(懷疑)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누가 의심한다면, 의심하는 그는 살아 있는 것이다. 누가 의심한다면, 의심하는 그는 무엇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를 기억하는 것이다. 누가 의심한다면, 그는 그 자신이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의심한다면, 그는 확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가 의심한다면, 의심하는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의심한다면, 의심하는 자신은 경솔하게 동의를 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지 어떤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있더라도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도대체 아무것도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데카르트는 근세 철학의 시조라고 알려진 철학자이다. 분명한 앎을 찾기 위해 그는 방법적 회의를 생각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어렸을 때 아직 우리의 이성을 완전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감각적 사물들에 대하여 많은 판단을 내렸다. 이때 우리는 많은 선입견 때문에 진리의 인식에서부터 빗나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있는 것을 모두 의심해 본다면, 이러한 선입견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과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린다면,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든가···우리 손과 발, 심지어 육체까지 있지 않다고 쉽게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이 인식은 방법적으로 철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것으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하며 첫째가는 인식이다."
이처럼 두 철학자는 철학의 출발점인 회의를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이끌어 갔다. 의심될 수 있는 것은 우선 '육체의 눈 으로 보고 있는 경험에 의해 주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의심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주어져 있는 것의 전제가 되는 '나는 생각한다' 는 '내적인 앎' 으로서의 이성의 진리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 너 자신 안으로 돌아오라! 인간의 내면에 진리가 있다" 라고 말하였다.
철학은 미리 어떤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철학의 방법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물음 그 자체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철학은 미리 주어져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전수된 어떤 것도 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철학적 탐구는 오직 사실과 문제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철학의 고유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사유 대상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면서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을 탐구하는 데에서 그 참된 의미가 발견된다.
〔근본 문제와 분야] 주요 과제 : 철학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시대와 장소와 철학자들에 따라 다르며, 많은 종류의 연구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철학의 주요 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다.
첫째로, "인간은 무엇이냐?" 라는 물음이다. 현대 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철학적 인간학' 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다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한다. 둘째로,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철학은 인식하는 것 자체의 가능성을 연구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밝히며, 인식의 전제와 한계에 관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식론' 이라고 불린다. 셋째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또는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여기서는 선악의 구별, 공정성, 의무와 책임, 가치의 의미 등에 대하여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는 '윤리학' 이라고 불린다. 넷째로,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물음이다. 여기서는 왜 인간은 영원을 동경하며, 우리가 위기에 처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왜 기도를 하게 되는가를 밝힌다든가, 또는 이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러한 연구를 '종교 철학' 이라고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어떻게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여기서는 의사 전달의 정확성과 명료성을 문제삼는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언어의 분석과 의미와 해석은 철학의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논리학' 과 '분석 철학' 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다.
분야 : 서양 철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철학의 주요 분야는 앞에서 이미 살펴본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는 인간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종교 철학, 분석 철학 외에, 특히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있다. 형이상학은 존재 자체의 본질을 연구한다. 즉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형이상학은 궁극적인 원리를 다루기 때문에 '제1 철학' 이라고도 불리며, 또 존재의 본질을 다루기 때문에 '존재론' 이라고도 불린다.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형이상학은 그리스어 '메타뛰지카 (petaciicurx)의 번역어인데, 이 말의 본래 뜻은 '물리학 다음의 학문' 또는 '물리학을 넘어서는 학문' 이다.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주역》(周易)에서 만물의 근원인 도 (道)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물질이 가지고 있는 소리, 냄새, 빛깔, 모습 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한자로서의 형이상학, 즉 도 와 서양어의 '메타필지카' 는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 원리를 다루기 때문에 모든 학문 분야와 만난다. 그래서 철학의 분야는 앞에서 열거한 분야 이외에도 중요한 분야가 많다. 예를 들면 아름다움의 본질, 느낌의 의미,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다루는 미학 또는 예술 철학, 역사의 본질과 인간의 역사성을 다루는 역사 철학, 법의 근원과 본질 및 중요성 등을 다루는 법 철학,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회성과 사회의 본질 및 사회 비판을 다루는 사회 철학, 과학의 본질과 근본 원리,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다루는 과학 철학 및 자연 철학, 학습 존재인 인간의 이해와 교육의 목적 및 본질 등을 다루는 교육 철학, 문화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 및 문화의 본질과 의미를 다루는 문화 철학 등이 있다.
그리고 철학은 연구 방법에 따라 분석 철학, 현상학, 해석학, 생의 철학, 실존 철학, 스콜라 철학, 구조주의 철학, 비판 철학, 그리스도교(가톨릭) 철학 등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한다. 또 철학은 크게 실천 철학과 이론 철학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고대 철학, 중세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지역에 따라 서양 철학, 동양 철학, 중국 철학, 인도 철학, 한국 철학, 영미 철학, 독일 철학, 프랑스 철학, 스페인 철학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동양 철학을 다시 도교 철학, 유교 철학, 불교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특성 : 우리가 던지는 철학적 물음들은 대체로 종교, 예술,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철학적 관심에는 근원적인 존재, 절대적인 최고 가치, 완전한 아름다움의 본질, 절대자 등을 파악하려는 넓은 의미의 종교적 관심과 예술적 관심은 물론, 엄밀한 논거와 치밀한 분석으로 세계의 기본 구조와 질서를 밝히려는 과학적 태도도 들어 있다. 그러나 종교 철학은 종교나 신학이 아니고, 예술 철학은 예술이 아니며, 또한 과학 철학과 수리 철학 및 자연 철학이 자연 과학일 수도 없다. 종교는 절대자(신)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중시하지만, 종교 철학은 종교적인 믿음에 대하여 비판적이며 절대자까지도 이성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을 중시하지만, 예술 철학(미학)은 이성적 논증을 중시하면서 예술 이론의 보편성을 문제삼는다. 과학은 어떤 특정한 면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토대로 경험적 지식을 제공해 주지만, 과학 철학은 우리의 경험적 지식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그 의미를 전체적으로 분명히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또한 철학을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구분해 볼 수 있으나, 이러한 구분들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중첩되는 내용을 가지기도 하며 상호 보완적일 수도 있다.
: Ⅲ. 철학 연구 대상의 사적 개관
철학은 인간의 지혜가 창출한 오래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독창적인 사고라 할지라도 전승된 사고와 역사적 지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을 하고 철학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며,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지만, 모든 철학은 미완성이며 불완전한 인간의 사고 과정에 불과하다.
철학사를 보면 다양한 철학 체계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시대의 철학이든 그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철학의 연구 대상이 다를 수 있다. 철학사는 단견(短見)과 오류를 진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철학 공부는 철학 발전의 역정(歷程)과 새로운 철학 창출의 단서를 찾고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사를 모르고서 철학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양 고대 철학을 모르고는 중세 철학을, 중세 철학을 모르고는 근대 철학을, 근대 철학을 모르고는 현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철학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간략하게나마 철학사를 개관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 고대 철학]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 ① 자연 철학 : 원시인들은 자연의 위력을 신화로 설명하였다. 어떤 인간 사회든지 신화가 없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신화에 만족하지 않고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 철학의 발상지인 밀레토스에 살던 사람들은 우주 전체가 생겨 나온 최초의 물질(iapx)이 무엇인가를 추구하였다.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을 자연 철학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자연 배후에 있는 본질이었다. 그들이 자연을 관찰할 때 자연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같이 보였고(物活論), , 자연 속에는 신들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은 자연을 인간과 같이 보았다(擬人觀) .
탈레스(Thales, 기원전 6세기경)는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만물은 '물' [水]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우주의 원질(原質)을 물이라고 한 이유는, 모든 사물의 종자는 수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물은 모든 생명체를 양육하고 증발하여 상승하고 비로소 하강하여 대지를 적시고 대지를 물위에 뜨게 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어 아낙시만드로스(Anaxi- mandros, 기원전 610~546/545)는 물과 같은 일정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부터 천차만별한 사물이 생겨 나올 수 없으며, 만물의 근원이 무규정적인 것(ionetpov)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세기경)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장하는 '아페이론' (dimetpov)이 우리가 직접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형태가 있는 사물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탈레스의 '물' 과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 을 절충해서 물보다는 고정된 성질을 가지지 않고 아페이론보다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만물의 원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것을 '공기' 라고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 최초의 사상가들이 차층 이론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의 물질에서 만물이 생겨 나온다는 것을 설명하려 한 것인데, 하나의 것이 변화하여 여러 가지 사물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난점이 많았다. 헤라클레이토스(HHeracledctos, 기원전 540?~480?)는 만물은 끊임없이 생멸 변화하고 유전되는 것이며 만물의 진상은 변화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변화의 상징으로 불 [火]을 들고,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 라고 하였다.
엘레아 학파에 속하는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기원전 560?~478?)는 만물은 일체(一體)이고 일체는 부동(不動)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515?~445?)는 유(有)만이 있을 뿐, 비유(非有)는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비유는 무(無)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가 아닌 것은 비유이다. 그런데 유가 생기는 것이라면 유를 만든 자가 있어야 한다. 유를 만든 자는 유이외의 것이어야 하는데, 유 이외의 것은 비유밖에 없다. 비유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유를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는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는 불생, 불멸, 불가분리(不可分離)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실체가 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이러한 원리는 추상적인 사상으로서 분명히 현저한 진보라 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영혼의 윤회 전생(輪廻轉生)과 인과응보설을 주장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중심 사상은, 만물은 수(數)이고 수에는 홀수와 짝수가 있으며, 홀수와 짝수의 대립 조합(對立組合)에 의해 사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학파의 수론에는 조화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모든 천체는 조화이고 수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엠페도클레스(Empedooles, 기원전 490?~430)는 우주의 '아르케' (ipxn)는 네 가지라고 주장하였다. 즉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를 만물의 뿌리라 불렀다. 이 네 가지 원소가 서로 결합하고 분리함으로써 사물이 생성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반면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는 우주의 원질은 무수한 원소로서, 이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에 의해 사물이 생성되고 소멸한다고 하였다. 그는 무수히 많은 원소들을 종자(Spermata)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들 원소들을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역할만 하는 동력 원소가 있는데, 이 특별한 원소를 누우스' (vois)라고 불렀다. '누우스' 는 '이성'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무수한 종자들을 어떤 목적하에 결합시켜서 세계를 생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 철학 말기의 레우키포스(Leucippos, 기원전 5세기 경)와 데모크리토스(Demobrios, 기원전 460?~370?)는 세계를 완전히 기계론적으로 설명하였다. 레우키포스는 우주의 태초에는 우주 공간에 무수히 많은 원자가 있어서 이 원자들의 이합 집산에 의해 사물이 생성되고 소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은 성질상 동등하고 크기와 형태가 상이하며 우주 공간에 산재해있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발적인 운동에 의해서 원자들이 우주 공간에 선회 운동을 일으키며, 원자들은 선회하면서 이합 집산하여 사물이 생기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물리학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고대 자연 철학은 끝이 났다.
② 소피스트 : 페르시아 전쟁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부터 아테네에는 입신 출세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로 인해 소위 소피스트(똑폭한 자, 궤변론자)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 근본적인 것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종전 물리학의 결과만을 응용하려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소피스트로는 프로타고라스(Proangomas, 기원전 485?~410?)와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를 들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 라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외계의 사물을 지각하는 것은 외계의 사물이 우리의 오관에 접촉할 때이다. 우리는 사물 자체는 알 수 없고 다만 사물이 우리의 감각에 비치는 것을 지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식은 인간이 서 있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고불변의 보편적 지식이나 도덕은 없고, 단지 주관적 · 상대적 · 감각적 지식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편 고르기아스는 파괴적 지식론을 주장하였다. 파괴적 지식론이란 첫째 진리란 존재하지 않고, 둘째 존재한다 하여도 알 수 없으며, 셋째 안다고 하여도 타인에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점점 파괴적이 되어 말기에는 법률까지도 부정하였다.
이와 같이 보편타당한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절대적 도덕의 기준을 확립하고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 : 그는 대화하는 과정에서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려 하였다. 도덕에 관한 지식은 소크라테스가 전 생명을 걸고 추구한 지식이다. 그는 인간 내면에 양심이 있다고 가르친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론을 전개한 것이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철학이다. 다방면에 걸친 플라톤의 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아(ldea)론이다. 즉 이 세계의 태초에 이데아가 있었고 우리의 영혼은 이 이데아를 보았으나, 지금은 우리의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이데아를 보지 못하고 그 그림자만 간신히 보게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이데아를 상기(想起)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최고의 이데아는 이데아의 이데아, 즉 '선(善)의 이데아' 이다. 개별적인 것은 이데아를 향해 나아가고,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를 향해 나아간다. 선의 이데아는 만물의 목적이자 동시에 만물을 있게 하는 제1 원인이며, 참다운 지식의 기초이다. 참다운 지식이란 감각적 지각도, 상상이나 억견(臆見, 8650x)에서 나오는 지식도, 오성적 지식 즉 수학적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이데아를 인식하는 이성지(理性智)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거대한 인간으로 보았고, 인간을 미소한 국가라고 보았다. 그의 국가론은 결국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고,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국가에는 구성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계급에 상응하는 고유의 미덕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치자 계급의 덕목은 지혜, 수호자 계급의 덕목은 용기, 생산자 계급의 덕목은 절제이다. 이 세 계급이 각자의 기능을 완수함으로써 국가는 바르게 되고 정의라는 덕이 생기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Anistames, 기원전 384/383~322/321)는 논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천체론, 심리학, 생물학, 윤리학, 예술론 등 많은 분야에 걸쳐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존재 탐구를 중시하고 이를 제 1 철학이라고 하였다. 그의 제1 철학, 즉 형이상학의 주요 부분은 실체,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 등에 관한 학설이다. 그는 인간 행위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하였다. 즉 만물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은 자아 완성인데 인간 역시 자기를 완성하려고 하며, 자기 완성이 성취될 때 인간은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헬레니즘 · 로마 시대의 철학 : ① 스토아 학파 :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 나서 그리스 철학은 쇠퇴하여 전성기는 지나가고, 헬레니즘 시대가 전개되어 세상은 급변하였다. 이 시대의 생활 이상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이다. 이 시대의 주요 사상 중 하나가 스토아 학파의 사상으로,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Apatheia)를 얻어야 하며 욕망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② 에피쿠로스 학파 : 이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Epicouros, 기원전 341~270)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③ 필론 : 필론(Philon, 기원전 160?~80?)은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신은 인식할 수 없으며 성질이 없고 이해하거나 규정하거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으나 존재한다고 하였다.
④ 플로티노스 : 헬레니즘의 마지막 철학자인 플로티노스(Plotinos, 204/205~270)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신은 어떤 개념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존재 개념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은 태초에 존재한 것이며, 일체의 사물은 신으로부터 나온다(流出說)고 주장하였다.
고대 말기의 사람들은 종교적인 것을 추구하였으며, 이 가운데 후세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서양 중세 철학] 교부 철학 : 중세 철학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이며, 고대 철학을 그리스도교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노가 계승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가 계승하였다고 일컬어진다. 1세기는 그리스도교가 형성된 시기이고, 2~8세기까지를 교부 시대라고 하며, 9~15세기까지의 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세의 본격적인 철학은 스콜라 철학이고, 교부 철학은 스콜라 철학의 준비 단계라고 한다.
그리스도교가 세계적인 종교, 초민족적인 종교로서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할 때 교부 철학이 형성되었다. 교부 철학이 탄생한 원인은 두 가지로 고찰할 수 있다. 하나는 교회 내부적인 원인이다. 그리스도교가 세계에 전파됨에 따라 선교 지역이 넓어졌고, 그로 인해 교회 내부에 교리에 대한 이견이 나타나 이를 통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철학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보호하기 위해 교리의 이론적인 해명을 한 것이 교부 철학이다. 교부 철학은 교회에 속한 교부들에 의해 연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테르툴리아노(Terullians, 155?~230/240?)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타락을 전제로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려 하였다. 교부 철학에서 최대의 철학자는 아우구스티노이다. 그는 《고백록》(Confessiones, 397~401)의 신에 대한 찬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 만드셨나이다.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 안식할 때까지 편안할 수 없나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신은 언제든지 우리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느님의 품안에 돌아갈 때까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인간의 인식 능력은 불완전하여 형체가 없는 것은 인식하기 어렵다. 더구나 종교적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물체를 지각하기 위해서는 태양 빛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신비에 속하는 교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빛이라는 조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아우구스티노의 '조명설' (照明說)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할 때 하느님을 알게 된다.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종교의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 인식되지 못하고 사랑에 의해서 파악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구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을 자기 안에 소유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 하느님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 의존하여 산다는 말이다. 즉 하느님만이 완전한 행복을 우리에게 줄 수 있으며, 그분만이 우리가 지니는 완전한 가치이다.
스콜라 철학 : 교부 철학을 이어받아 세워진 철학이 '스콜라 철학' 이다. 스콜라 철학은 스콜라(schola, 학원)에서 연구하며 강의하던 신학자이자 철학자들이 체계를 세워 놓은 철학이다.
① 안셀모 : 안셀모(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를 논하면서 두 가지 방식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믿음의 내용을 이성에 의해 설명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음의 내용에 한해서는 이성의 개입을 전혀 거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후자는 먼저 확고한 믿음 속에 설 것을 요구한다. 믿음은 이성이 그 신앙 내용을 알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으므로, 믿기 위해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알기 위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셀모의 독특한 생각은 그의 신존재에 관한 존재론적(혹은 본체론적) 증명 속에 나타나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은 바로 '최고 완전자 이다. 그 이상 더 완전한 것은 결코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최고 완전자' 이다. 이 같은 완전자는 우리의 지성 속에 존재할 뿐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참으로 최고 완전자라면 필연적으로 실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런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그 최고 완전자인 신의 실재적인 존재성을 결여하게 만드는 모순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② 보편 논쟁 : 11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범주가 사물(thing)이냐 혹은 음성(voice)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보편 논쟁(controversia de universalibus)이 일어났다. 이는 실재하는 사물, 즉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개념의 상관 관계를 논하면서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논쟁이다.
이에 대하여 안셀모 등은 "보편은 개물에 앞선 실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개개의 사물이 생성되기에 앞서 그 사물의 '무엇인 바 , 그 이데아는 불변한 것이기에 이미 선재(先在)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낱낱의 사물들이 실재하는 것이며 종(種)이나 유(類)는 그 개물들의 공통된 것으로서 한갓 추상적인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론하고, 보편은 다만 한낱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이런 견해가 바로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us)으로, "보편은 개물의 뒤에 생긴 이름이다" 라는 주장은 11세기 말에 로슬랭(Rosce-lin, 10502~1125?)에게서 비롯되었다.
이 두 견해에 대해서 보편 실재론과 유명론의 중간 위치를 견지하며 온건한 실재론을 내놓은 사람이 아벨라르(P. Abelard, 1079~1142)이다. 그는 "보편은 개물 속에 있는 실재" 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취한 입장과 같은 것이다.
③ 토마스 아퀴나스 : 스콜라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절정에 이르고 구원의 철학을 이룩하였다. 그는 "인간이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은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 안에서 항상 존재를 생각해야만 한다. 존재를 다루는 형이상학의 대상은 '존재로서의 존재' 또는 통일성, 현실태(現實態), 가능태(可能態) 등과 같은 존재의 보편적인 규정이며, 우리 자신의 지성적인 영혼의 인식을 거쳐 신의 명상적 인식에까지 올라간다"라고 말하였다.
④ 스코투스 : 스코투스(J.D. Scotus, 1265/1266~1308)에 의하면, 진정한 논증은 필연적이고 명증적인 원리에서 출발하여 삼단논법에 의해 결론을 내는 논증뿐이다. 그래서 그는 신의 존재나 속성 또는 영혼의 불멸성 같은 것은 이성적으로 논증할 진리가 아니고 계시된 것으로 받아들일 신앙의 진리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신의 자유 의지의 무한성을 강조하였다. 이 무한한 의지가 모든 것의 근원이며 따라서 도덕적인 선의 기준도 된다.
⑤ 자연법 :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모든 법률들이 근거로 삼는 근원은 '자연법' 이다.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적인 경향에 의해 밝혀지며, 이 성향은 부분적으로는 감각적 · 생명적 소질이요, 또 부분적으로는 가치에 대한 정신적 ·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성향은 원리의 직관과 구체적인 양심에 의해 파악되어 인식된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구가 자연법이다.
자연법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이고,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서 그 나름대로 본성적인 경향을 가지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자연법은 아무런 초월적 근거 없이 자연적인 빛인 이성에 의해서만 존립되는 것인가? 토마스에 의하면, 신의 지혜는 인간의 행위들을 그 섭리대로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서 영원법을 이루고 있다. 영원법은 신 안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자연법의 기원이며 원천이다. 자연법은 신의 힘으로 주어진 법, 즉 영원법에 의해서 그의 목적으로 인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근대 철학의 주요 흐름] 근대 철학의 주류가 되는 세 흐름은 대륙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경험론, 독일의 관념론이며, 근대 철학의 주안점은 인식론이다.
대륙의 합리주의 : 철학은 이성에 의존해야 된다는 사상을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라고 부르고, 경험에 의존해야 된다는 사상을 경험론이라고 한다.
①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시조이며, 합리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확고한 원리를 발견하였다.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하기 위해서는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원리이며, 철학은 이와 같은 명백한 원리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이 세계에는 정신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가 동시에 있다고 보았으며, 물질이나 정신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원론은 여러 가지 난점을 가지고 있다.
②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는 물질계와 정신계를 동일한 실체의 두 양태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극복하였다. 라이프니츠(G.W. von Leibniz, 1646~1716)는 합리주의의 근본 정신이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며, 합리적인 지식만이 참다운 진리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추론된 지식은 모두 참이라는 것이다. 한편 칸트(I. Kant, 1724~1804)는 현실 세계를 떠나 사유의 날개를 마음대로 펼치기만 하는 합리주의자들을 독단적 형이상학자라고 비판하였다. 영국의 경험론 : 이는 우리의 인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나온다고 하는 주장이다.
① 베이컨 : 베이컨(F. Bacon, 1561~1626)에 의하면, 모든 학문의 연구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하며,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개개의 사실을 수집하여 이 사실들의 일반적인 원인과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이 귀납법이다.
② 로크 : 로크(J. Locke, 1632~1704)에 의하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어떤 지식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
③ 흄 : 흡(D. Hume, 1711~1776)에 의하면, 감각적 경험론은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론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회의론은 인과율에 기초를 둔 근대 자연 과학의 확실성조차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독일 관념론 : ① 칸트 : 칸트는 근대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주관이 인식을 할 때 대상은 주관에 의해 구성된다. 즉 인식은 자기 이외의 대상으로부터 감각이 자극 · 촉발되어야 하지만, 인식 모두가 감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식의 중심은 대상에서 주관으로 옮겨진다. 그의 인식론은 인식주관의 내성적 작용에 기인한다고 함으로써 관념론적이다. 그는 《실천 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에서 도덕의 보편타당한 원리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도덕의 원리가 이성의 명령이라고 하였다. 이성의 명령대로 행위하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것이 된다. 그에 의하면, 도덕 법칙은 이성의 정언적 명령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지 그밖의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칸트의 윤리학은 '법칙 윤리학' 이라고 불린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며, 인격을 항상 목적으로 취급하고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② 헤겔 : 칸트에서 시작된 독일 관념론은 피히테(J.G.Fichte, 1762~1814),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을 거쳐 헤겔(G.W.F. Hegel, 1770~1831)로 이어졌다. 헤겔의 관념론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이나 셀링의 객관적 관념론과는 달리 '절대적 관념론' 이라고 불린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자연은 정신에 대비되는 독자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좌우되는 부수적인 성격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세계 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에 따라 자신의 모든 철학 세계를 이룩하였다.
독일 관념론은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 니체(F. Nietzsche, 1844~1900), 그리고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과 실존 철학(Existenzphilosophine) 등 비합리주의적 철학의 비판을 받고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현대 철학] 현대 철학은 다양하고 방대하여 일괄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대 철학은 대체로 근대 철학의 모더니즘, 즉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하며, 하나의 체계나 틀 속에 넣을 수 없고 각 학파 내에서도 통일된 견해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의 주제는 객관, 존재, 실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객관은 경험에 의해서만 파악되고 자연 과학적 방법만이 철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적인 신실재론, 신실증주의, 분석 철학, 실용주의 등이 있다. 둘째, 형이상학을 재건하려는 새로운 운동으로 존재를 밝히려는 신토마스주의(Nertoomisius) 등이 있다. 셋째, 비합리적인 직관적 방법으로 실존을 해명하려는 실존 철학, 현상학, 생의 철학 등이 있다.
실존 철학 :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rd, 1813~1855), 마르셀(G. Marcel, 1889~1973),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 등에 의해 형성되고 널리 알려진 현대 철학의 한 주류이다. 이 철학은 기술 문명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상실한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려는 사상이며, 문학과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또한 인간의 현재적 상태만을 고찰하기 때문에 역사와의 단절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상학 : 후설(E. Husserl, 1859~1938)은 합리주의적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현상학을 창시하였다. 현상학은 현대 철학의 주류를 이루며, 생의 철학, 실존 철학, 구조주의, 해석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분야별로는 종교 철학, 인간학, 윤리학, 사회 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미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더 나아가서 인문 사회 과학과 의학 분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또한 기준이 없고 주관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생의 철학 :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 등은 인식보다는 삶을 중시하고 삶을 직관으로 파악하며 이해와 체험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생의 철학은 주관에 치우친 나머지 결과적으로 상대주의에 빠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신토마스주의 :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을 20세기에 새롭게 부각시킴으로써 현대의 백가쟁명적(百家爭鳴的) 혼돈 속에서 구원(久遠)의 철학을 재건하려는 철학 운동이다. 이 사상은 특히 현대 사회 윤리의 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격적인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한다.
분석 철학 : 언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과제로 삼으며, 다의적인 언어 대신 기호를 사용하여 언어의 구조와 논리를 명료하게 분석하려고 한다. 분석 철학은 언어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당초의 주장대로 본래 가지고 있는 언어의 다의성과 애매성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특히 형이상학을 거부함으로써 철학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말놀이로 격하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 IV. 교회의 입장
가톨릭 교회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주요 교리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로 인해 초기의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동시에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중세와 근대 시기에도 마찬가지이며, 현대에도 신학 연구에 있어서 철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내용을 설명하려는 철학 분야에 대해서는 때로 단호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의 입장]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1965. 12. 7)은 철학이 "인류 가족이 진선미의 더 높은 이해와 보편 가치의 판단에 이르도록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라고 밝혔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 실천에서 멀어지고 있다"(57항)라고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지난 시대와 달리, 신이나 종교를 부정한다거나 거기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더이상 이상하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이는 마치 과학의 진보나 어떤 새로운 인본주의의 요구처럼 드물지 않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여러 지역에서 철학자들의 주장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다" (7항). 이러한 언급은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반포한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mimi Patris, 1879. 8. 4)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이 회칙에서 레오 13세는 이성과 신앙 중 어느 하나를 격하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종합한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으로의 복귀를 언급하였다. 이는 철학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가톨릭의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한 교회의 분명한 입장 표명이었다. 이 회칙으로 인해 가톨릭 학교와 사제직 지망자들에 대한 철학 교육은 더욱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Optatam Totius, 1965. 10. 28)은 "교회 학문 과정의 개편에서, 특히 철학과 신학의 과목들을 더욱 적절히 조화롭게 편성하여 신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갈수록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14항)라고 하였다. 또한 사제 양성 과정에서 철학 연구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밝혔다. "철학 과목들은 신학생들이 특히 인간과 세상과 하느님에 대한 건실하고 일관성 있는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야 한다. 영구한 가치를 지닌 철학 자산을 토대로, 시대의 진전에 따른 철학 연구, 특히 자기 나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연구와 최근의 학문 진보를 참작하여 신학생들이 현대의 특성을 올바로 파악하고 동시대인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적절히 준비시켜야 한다. 철학사는 신학생들이 여러 체계의 궁극 원리를 파악하여 거기에서 옳은 것을 받아들이고 오류의 뿌리를 찾아 논박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수법 그 자체로 신학생들에게 진리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켜 진지하게 진리를 탐구하고 증명하며 옹호하는 동시에 인간 인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게 하여야 한다. 철학과 실제 인생의 문제들, 신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들의 연관성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15항).
(교회법에서의 규정]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 참석한 교부들의 입장은 이 공의회 이후 새로 반포된 《교회법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신학교 자체에서 편성되는 철학과 신학의 학업은 사제 육성 지침서에 따라 순차적으로나 동시적으로 수업할 수 있다" 라고 밝히면서 철학 수업에 만 2년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250조). 또한 "영구히 가치 있는 철학적 세습 자산에 근거하여야 하고, 또한 시대의 진전에 따른 철학 연구도 참작하여야 하는 철학 수업은 학생들의 인간적 양성을 완성하고 정신의 예지를 향상시키며, 그들이 신학 학업을 이수하기에 더 적합한 자들이 되도록 전수되어야 한다" (251조)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교구장 주교나, 교구 연립 신학교의 경우 관련 주교들이 직접 철학 및 신학 교육을 감독해야 한다고 하였다(259조). 교회법이 이러한 내용들을 규정한 것은 철학과 신학 사이의 관계 및 학문적 연계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교의 철학 교수가 임무를 받는 시초에 신앙 선서를 하도록 의무로 규정한 것이다.(833조 6호)
[사제 양성에 관한 규정에서의 언급]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교육에서의 철학 교육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기본적인 지침들이 제시되었지만(사제 15 : 사목 62 : 선교 16항), 너무 광범위하였다. 그래서 가톨릭 교육성은 1972년 <신학교의 철학 교육에 관한 회람>(En cette priode)을 발표하였다. 이 회람은 철학 연구의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언급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사제들을 위한 철학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어서 철학 교육을 위한 몇 가지 지표들을 발표하였는데, 철학 교수들을 위한 연구 센터와 철학 연구 기관의 설립이나 연계 및 협력, 철학 교과 내용과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등을 언급하였다. 한편 이 회람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되풀이해서 천거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며 아직도 유효하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76년 가톨릭 교육성이 발표한 <미래 사제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서한>(Tra i molteplici segni)에서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이 서한은 신학이 근본적으로 어떤 철학적 체계와도 독립적이며, 철학이 제시하는 신학과 신앙에 대한 비판적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다(50항). 또한 "교회는 모든 신구 철학에 개방되어 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 만일 "교회가 어떤 철학을 활용한다면 그 근본 주장이 계시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51항) 그리고 "교회는 그 주장이 계시와 반대되는 철학을 받아들일 수 없다"(52항)라고 규정지으면서, 공의회가 "성 토마스를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하였다(53항).
이러한 입장은 1985년에 가톨릭 교육성이 발표한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Tra iam lustra)에서 종합되었다. 이 지침은 철학과 그 부수 학문의 목적을 "교육 과정이 어떤 모양으로 배정되었든 2년간에 걸친 것이라야 하고, 젊은이들의 인성 교육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야 하며, 학생들의 비판적 이해심을 길러 주고, 인류 가족이 세기를 통하여 쌓아온 옛 문화와 현대 문화를 깊이 깨닫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70항)라고 밝혔다. 또한 철학 교육은 영구 불변의 전통적 철학에 기초를 두고, 현대에 발전하고 있는 철학적 탐구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특히 현대 철학에 유의해야 함을 언급하였다(71항). 특히 철학사를 가르쳐야 하며(72항), 자연 과학, 수학 등 철학적 문제와 관련된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명시하였다(73항).
이러한 철학 교육의 강조는 철학이 인간과 우주와 하느님에 대하여 일관성 있는 확고한 인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1998. 10. 15)을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교회가 고유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 특정한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절충주의 · 역사주의 · 근대주의 · 회의주의 · 과학주의 · 실용주의 · 허무주의 등에 경고를 보내며, 그리스도교 철학을 회복하려는 노력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인간 이성에 대해 만연된 불신과 철학적 비관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발표된 이 회칙은, 교회가 철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경험론 ; 과학 철학 ; 그리스 철학 ; 근대 철학 ; 논리학 ; 독일 관념론 ; 라이프니츠 ; 로크 ; 마르셀 ; 미학 ; 베이컨 ; 보편 논쟁 ; 분석 철학 ; 브렌타노 ; 블롱델 ; 사회 철학 ; 생의 철학 ; 소크라테스 ; 쇼펜하우어 ; 스코투스 ; 스콜라학 ; 스토아 학파 ; 스피노자 ; 실용주의 ; 실존 철학 ; 아리스토텔레스 ; 아벨라르 ; 아우구스티노 ; 안셀모 ; 언어 철학 ; 에피쿠로스 ; 오컴 ; 윤리학 ; 인간학 ; 인식론 ; 존재론 ; 종교 철학 ; 중세 철학 ; 칸트 ; 토마스 아퀴나스 ; 토마스주의 ; 플라톤 ; 합리주의 ; 헤겔 ; 현상학 ; 형이상학 ; 흄)
※ 참고문헌 가톨릭 철학 교재 편찬위원회 편, 《젊은이들을 위한 철학》, 이문출판사, 1988/ J. Hirschberger, Gesshite der Philosophie, Freiburg, Herder, 1952, 1992(강성위 역, 《서양 철학사》, 이문출판사, 1997)/ Europciische Enzyklopädie zu Philosophie und Wissenschaften, Hamburg, 1990, pp. 672~688/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 Basel, 1989, pp. 795~8581 K. Rahner ed., Sacramentum Mundi, Freiburg, 1970/ H.J. Starig, Kleine Weltgeschichte der Philosophie, Stuttgart, 1970(임석진 역, <세계 철학사 상 . 하》, 분도출판사, 1976 · 1978/ The Encyclopaedia ofPhilosohy, New York, Macmillan, 1987, pp. 216~2251 《사제 양성 -신학생 교육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秦敎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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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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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