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63-19소재. 1973년 11월 22일 양재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유대철 베드로. 관할 구역은 청담1 · 2동 전 지역과 삼성1동 일부 지역. 〔교 세〕 1973년 596명, 1979년 1,780명, 1983년 5,289명, 1987년 10,053명, 1992년 12,686명, 1999년 13,635명, 2003년 7,016명. 〔역대 신부〕 초대 이창숙(李昌淑) 그레고리오(1973. 11~1976. 5), 2대 최창정(崔昌鼎) 요아킴(1976. 5~1980. 10) , 3대 유재국(俞在國) 바실리오(1980. 10~1986. 8), 4대 김수창(金壽昌) 야고보(1986. 8~1989. 2), 5대 임덕일(林德-) 아마투스(1989. 2~1994. 2), 6대 이봉우(李奉雨) 토마스 아퀴나스(1994. 2~1995. 3), 7대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1995. 3~9), 8대 박순재(朴煩宰) 라파엘(1995. 9~1998. 9 9대 조순창(趙順昌) 가시미로(1998. 9~2003. 9), 10대 황흥복(黃興福) 요셉(2003. 9~현재).
〔복음의 전래와 공소 설립〕 숫골(현 청담동) 지역은 1904년 이곳 출신 이인의(李仁儀, 프란치스코)가 입교한 뒤 복음을 전함으로써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점차 신자수가 늘어나자 1908년에 약현(현 중림동) 본당의 두세(C.-E. Douset, 丁加彌) 신부는 숫골 공소를 개설하여, 공소 회장으로 이인의를 임명하였다. 숫골 공소 설립 초창기에는 강당이 없었으므로 신자들은 주일마다 주로 공소 회장의 집에 모여서 공소 예절을 보았다. 하지만 이인의 회장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에 힘입어 교세가 증가하면서 더이상 이 회장의 집에서 첨례나 성사를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에 1915년 이인의 회장은 일원(현 개포동)에 있던 건물 철거 자재들을 이용하여 청담리 262-1번지(현 청담2동 5번지 21~23호)에 10칸의 기와로 된 한옥 강당(20평)을 건립하였다.
1927년 4월 약현 본당에서 백동(현 혜화동) 본당이 분리 · 설정되자 숫골 공소는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47년부터는 잠실리(현 잠원동)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9년 봄에는 청담리 산52번지(현 강남구청 자리)에 총건평 50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신축하여 이전함으로써 협소한 장소 문제를 해결하였다. 하지만 공소 지역 땅의 소유가 개인에게 넘어감에 따라 1961년 말에는 교구청에서 매입해 준 청담동 264번지(현 청담2동 파출소 뒤편, 청담2동 13번지 51~53호)의 대지 170평에 공소 강당을 새로 마련하였다. 그런 가운데 1965년 7월 20일자로 잠실리 본당에서 말죽거리(현 양재동) 본당이 분리 · 설정되어 숫골 공소는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양재동 본당에는 1971년 이래 상주 사제가 없었다. 이에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속의 배논(Bannon,朴) 신부가 와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였고, 1973년 5월부터는 명수대(현 흑석동) 본당 5대 주임인 박병윤(朴炳閏, 토마스) 신부가 양재동 본당의 주임을 겸직하면서 자주 공소에 들러 미사를 집전하였다. 한편 1970년 초부터 서울시의 토지 구획 정리 사업에 따른 영동 지역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교세 발전이 예상되었다. 이에 교구에서는 1973년 11월 22일자로 청담(숫골)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으며, 초대 주임으로 이창숙 신부를 임명하였다.
〔본당의 설정과 발전〕 이창숙 신부는 부임 후 제일 먼저 교구청의 도움으로 청담동 청화아파트 가동 103호를 전세로 얻어 임시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성당 건축을 위한 대지 매입과 건축 준비를 시작하는 한편, 1974년에는 레지오 마리애를 조직하였다. 1975년 2월 11일에는 본당에 까리따스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파견되었으며, 이창숙 신부는 옛 공소 대지를 교구에 인계하는 대신에 교구에서 1,400만원을 받아 1976년 3월 30일 청담동 110번지의 대지 226평을 매입하여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본당 내 신심 단체 활성화에 주력하여 반장회, 중고등학생회, 성가대, 성모회, 사목 위원회, 연령회를 발족시켰다. 1976년 5월에는 이창숙 신부의 전임과 동시에 논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2대 주임 최창정 신부는 성당 신축에 주력하였으나,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비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1976년 10월 본당 신자인 김평준(디모테오)이 자기 소유의 토지 109평을 봉헌함으로써 해결되었고, 이어 1977년 5월 8일에는 연건평 237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7일에는 영동 지역 개발에 따른 신자수의 증가로 인해 잠실 본당을 분리하였다. 한편 최창정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단체의 활성화를 도모하여 파티마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1978. 2), 청년 혼성 쁘레시디움(1978. 3)을 각각 결성시켰고, 1978년 4월에 압구정에 공소를, 9월에는 도곡동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강남 개발의 영향으로 청담동 본당의 교세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임에 따라, 이 두 공소는 이듬해 5월 31일 압구정동 본당과 도곡동(현 대치동) 본당으로 각각 승격 · 분리되었다.
3대 주임 유재국 신부는 부임 후 주교 회의 및 서울대 교구의 사목 교서와 지침에 따라 사목 실천 방향을 설정하여 실천해 나가는 데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사목 위원회와 구역 · 반 등 기초 공동체를 재구성함으로써 사목 활동의 활성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인 1981년에는 본당의 사목 목표를 '신자 재교육의 해' 로 설정한 뒤, 매월 전 신자를 대상으로 신앙 강좌를 개최하였다. 또한 교세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성전 증축 계획도 세워 1982년 2월에 인접한 토지 329평을 추가로 매입하여 증축 공사를 시작한 뒤, 1986년 6월 29일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처럼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주임 신부들이 성당 신축 · 공소 분할 · 신자들의 재교육 등 본당의 기틀을 잡는 것을 현안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면,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수창 신부는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투명한 재정, 바른 전례, 평신도의 다양한 사목 참여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매년 기초 공동체를 재편성하고, 그해의 사목 방향에 적합한 단체를 신설하는 등 신자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5대 주임 임덕일 신부는 사목 목표로 능동적인 전례 참여, 신앙 생활의 내실화, 나눔의 생활 등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본당상을 정립하여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행사와 사회 복지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를 극대화하였다. 아울러 1993년에는 '청숫골 선교 100주년 기념 교육관' 건립 계획을 확정하고, 기금 모금 운동과 함께 기도 운동을 시작하였다.
6대 주임 이봉우 신부는 한마음 한 몸 운동의 일환으로 1994년 3월 27일에 헌혈 운동을, 5월 29일에는 헌미 봉헌 운동을 전개하였고, 1995년에는 그동안 분리 운영되던 주일학교 중고등부를 재통합시켜 운영하였다. 7대 주임 염수정 신부는 1995년 6월 9일부터 7월 28일까지 전 신자를 대상으로 8주간 성령 세미나를 실시하여 신자들의 신심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8대 주임 박순재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기도하는 본당, 전례의 생활화, 그리고 친교와 일치를 강조하면서 사목 활동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소공동체 운동의 활성화에 노력하여 1996년 3월에 청년 구역회를 조직하였으며, 12월 29일에는 새로운 사목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이와 함께 남녀 구역반 활동을 남성 · 여성 구역 분과 위원회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신자들의 소공동체 활동을 더욱 체계화시켰고, 1998년에는 전 신자들이 참여하는 성서 읽기, 성서 쓰기, 성서 필사 운동 등을 전개하여 성서 공부를 생활화하였다.
9대 주임 조순창 신부는 모든 신자의 일치와 화합에 주안점을 두어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9년에 대희년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한 전 신자 공동 선교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0년 9월에는 삼성2동(현 삼성동)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3년을 '청담 천주교 100년, 본당 승격 30주년 기념의 해' 로 정한 뒤, '참여 속에 쇄신하는 공동체' 라는 사목 목표 아래 영성 학교, 성서 학교 등의 재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소공동체 활성화를 꾀하였고, 생활 속에서 선교하는 본당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0대 주임 황흥복 신부는 2003년 9월 26일부터 10월 1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30주년 성서 학교를 개최하였으며, 10월 26일에는 '청담 천주교회 100주년의 해 기념 미사와 기념식' 을 거행하였고, 12월 24일에는 《청담동 본당 30년사》를 편찬하였다.
2004년 현재 청담동 본당은 본당 사목 목표를 '기도하는 공동체, 공부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청소년 및 청년 공동체' 로 선정하여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 압구정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청담동 본당 30년사 편찬위원회편, 《청담동 본당 30년사》, 천주교 청담동 성당, 2003/ 《서울대교구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白秉根]
청담동 본당
清潭洞本堂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