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본당

清凉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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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1동 220 소재. 1955년 4월 5일 제기동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라우렌시오. 관할 구역은 청량리 1 · 2동, 전농1 · 2동, 답십리3동, 용두동, 제기1동 전 지역과 회기동 일부 지역. 〔교 세〕 1958년 2,910명, 1962년 5,912명, 1967년 3,451명, 1972년 3,190명, 1977년 4,376명, 1982년 5,914명, 1987년 5,966명, 1992년 5,641명, 1997년 5,196명, 2003년 4,203명. 〔역대 신부〕 초대 이종순(李鍾淳) 라우렌시오(1955. 4~1958. 2), 2대 이계항(李啓恒) 베드로(1958. 2~1959. 9) 3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59. 9~1964. 8), 4대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1964. 8~1971. 5), 5대 조인환(曹仁煥) 베드로(1971. 5~1976. 5), 6대 유영도(柳榮道) 디오니시오(1976. 5~1982. 8), 7대 안경렬(安慶烈) 토마스 아퀴나스(1982. 8~1988. 8), 8대 이봉우(李奉雨) 토마스 아퀴나스(1988. 8~1989. 2) 9대 남국현(南國鉉) 요한(1989. 2~1994. 8), 10대 조순창(趙順昌) 가시미로(1994. 8~1998. 9), 11대 최용록(崔鏞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8. 9~1999. 9), 12대 이기헌(李基憲) 베드로(1999. 9~2001. 2), 13대 권흥식(權興植) 바오로(2001. 2~2002. 9), 14대 전종훈(全鍾勳) 시몬(2002. 9~현재).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제기동 본당에서 관할하던 청량리 · 휘경동 · 이문동 · 답십리 · 전농동 및 제기동 일부 지역에 거주하던 신자들은 청량리 지구에 본당을 신설하기 위하여 '본당 건립 기성회' 를 발족하였다. 당시 모본당이었던 제기동 본당도 설립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본당을 분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청량리 지구와 제기동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신자들의 미사 참례가 힘들었으므로 기성회를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본당 신설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 결과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지원으로 청량리에 거주하는 한 신자 소유의 직조 공장(동대문구 전농동 617-2번지 소재, 200여 평)을 매입하여 본당 건립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본당 설립을 위한 부지와 가건물이 마련되자, 서울 대목구에서는 1955년 4월 5일 청량리 본당을 설정하고 당시 혜화동 본당 보좌 신부로 있던 이종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종순 신부는 부임 후 이숭녕(李崇寧, 토마스) 박사의 집에서 6개월 동안 머물며 미리 마련한 본당 부지에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10월 5일 이사하였다. 이후 이 신부와 신자들의 노력으로 1957년 9월 지상 160평, 지하 120평의 성당이 완공되었으며, 11월 9일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2대 주임 이계항 신부는 본당을 건축하는 데 들였던 빚을 모두 상환하고, 현 사제관 자리의 대지(101.4평)를 마련하며 교세 확장에 힘썼다. 3대 주임 이삼복 신부는 사제관(31.5평)과 사무실(2.5평)을 1961년 7월에 마련하였으며, 신자수가 증가하여 답십리 · 이문동 등 성당과 거리가 먼 곳의 신자들이 불편을 겪자 이문동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하고 대지를 마련하여 1962년 12월 1,856명의 신자를 이관하였다.
본당의 시설들이 어느 정도 완비된 후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인원 신부는 본당의 내적 성장을 위한 사목 활동에 초점을 두고, 신자들의 본당 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많은 평신도 사도직 단체를 설립 · 육성하였다. 또한 장궤틀과 예수 성심상을 마련하였으며, 1965년 12월에는 답십리(현 전농동) 본당을 분리하고 양주군 주내면에 본당 묘지(55,560평)를 조성하여 '다볼산' 이라고 명명하였고, 1968년 7월 본당 주보를 발행하였다. 한편 1957년 12월 8일부터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 4명이 본당 인접한 곳에 가건물(30평)을 짓고 성 바오로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수녀회에서는 성 바오로 병원 소속의 수녀 1명을 본당에 파견하였는데, 이는 본당의 주일학교 운영과 전교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5대 주임 조인환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교우 상호 간의 유대와 단결, 성지 순례를 통한 신자 재교육 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교회의 안정과 정착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다볼산 묘지 확장을 위해 1971년 양주군 주내면에 52,890평의 토지를 구입하였으며, 1972년에는 수녀원(2층, 40평)을 신축하였다. 6대 주임 유영도 신부는 5년간 봉쇄되었던 다볼산 묘지 진입로를 대신할 우회 진입로를 1979년 9월에 개통시켰다. 또한 묘지 관리의 효율화 · 합리화를 위해 1980년 1월 묘지 관리 운영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981년 10월에는 당국으로부터 다볼산 묘지 확장 허가를 받았다. 유 신부는 성당이 20년 이상 되어 낡고, 증가한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되자 성당 신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1980년 '신축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고 외부의 자금 지원 없이 새 성당(3층, 287.2평)을 신축하여 1981년 12월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안경렬 신부는 본당의 위치가 전농동 본당 관할 구역과의 경계에 치우쳐 있으며, 윤락가와 인접해 있어 신자들의 정서상 · 교육상 어려운 점이 많아 본당의 이전을 검토하였다. 이때 마침 본당 초대 사목회장이었던 이숭녕 박사의 집(현 본당 위치)이 매각된다는 소식을 들은 안 신부는 1984년 9월 성당 이전을 승인받았다. 1987년 3월 기공식을 갖고 1년 5개월간 공사를 진행한 결과, 새 성당(787평)을 완공하여 1988년 7월 30일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갖고 본당을 이전하였다.
9대 주임 남국현 신부는 1989년 4월 성당의 방음 및 편의 시설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본당 신자들의 성서 지식 함양을 위하여 1993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성서 공부를 실시하였다. 10대 주임 조순창 신부는 1995년 3월 본당 40주년 기념 행사의 일원으로 공모전을 통하여 본당 상징 도형을 채택하였으며, 11월에는 본당 청년들을 위한 청년 성서 모임을 조직하였다. 또한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와 소속감 고취를 위하여 1997년 6월 본당은 우리' 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이듬해 3월에는 구 신협 건물을 철거하고 성당 마당을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하였다. 11대 주임 최용록 신부는 1998년 여름 홍수로 다볼산 묘지가 모두 훼손되자, 이듬해 2월부터 묘지 주인을 찾아 이장시키는 등 묘지 복구에 힘썼다. 12대 주임 이기헌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위해 1999년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에 기본 교리 · 성서 · 교회법 등의 강의를 실시하였고, 사이버 시대를 맞이하여 2000년 7월 본당 홈페이지 제작에 착수, 12월 개통하였다.
13대 주임 권흥식 신부는 2002년 4월 6일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관 및 사제관과 수녀원을 준공하였다. 현재 14대 주임 전종훈 신부는 성서의 생활화를 통한 성서 중심의 사목과 가정 공동체 성화를 위한 공동체의 활성화 및 사회 복음화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이숭녕)
※ 참고문헌  《清凉里聖堂四半世紀》, 天主教清涼里教會, 1982/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