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본당

青松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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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막 1리 316 소재. 1965년 2월 13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미카엘 대천사. 관할 구역은 청송군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진보 · 눌인 · 월외 등 3개소. 〔교 세〕 1965년 29명, 1971년 275명, 1977년 368명, 1982년 573명, 1987년 975명, 1992년 1,059명, 1997년 1,551명, 2003년 1,275명. 〔역대 신부〕 초대 르베리에(R.A. Leverrier, 呂東贊) 로제리오(1965. 2~1967. 5), 2대 도크(R.M. Doc, 박로제) 로제리오(1967. 5~1972. 8), 3대 정호경(鄭鎬庚) 루도비코(1972. 8~1973. 2), 임시 지글메이어(G. Zieglmeyer, 신걸만) 제오르지오(1973. 2~4), 4대 정양모(鄭良謨) 바오로(1975. 2~1976. 5), 5대 바힐로(P. Bahillo, 方一賢) 바오로(1976. 5~1983. 1), 6대 공한영(孔漢英) 고스마(1983. 1~1987. 3), 7대 조종율(趙宗泊) 베르나르도(1987. 7~1992. 2), 8대 이희정(李熙正) 요셉(1992. 2~1995.6 9대 김상진(金常珍) 아우구스티노(1995. 6~2000. 1), 10대 권중희(權重熹) 베드로(2000. 1~2003. 7), 11대 전장호(全壯鎬) 프란치스코(2003. 7~현재).
1964년 4월 7년 동안 안동(현 목성동) 본당 8대 주임으로 활동하였던 르베리에 신부는 프랑스로 휴가를 떠날 때 청송에 갈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1964년 5월부터 이듬해 2월 12일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프랑스에서 순회 강연 및 강론을 하면서 청송 본당 건립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1965년 2월 13일 청송 본당이 설립되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후, 청송읍에 가정집을 임대하여 사무실과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현 본당 부지를 매입하여 봄부터 사제관 · 강당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해 가을 사제관에 입주하여 완공된 강당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성당 공사를 계속하여 1966년 6월에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본당의 기초를 다졌던 르베리에 신부의 뒤를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도크 신부는 특히 어린이 전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눌인 공소를 건립하였다.
4대 주임 정양모 신부는 눌인 공소 강당을 신축하여 1976년 5월 축복식을 가졌다. 5대 주임 바힐로 신부는 냉담자 회두와 예비자 인도,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교회의 협력 등에 역점을 두고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회(현 예수 그리스도 수녀회) 자매들의 파견을 요청하여, 1976년 현직 교사 · 약사 · 간호사 등 몇몇 직장인들로 구성된 자매들의 공동체가 구성되었다. 이들은 본당에 거주하면서 야간 학교와 '사랑의 학교' 운영 및 불우 청소년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고, 사랑의 학교는 이후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정식 유치원으로 성장하였다. 그 뒤 바힐로 신부는 이 공동체의 자매들로 하여금 눌인 공소와 진보 공소에 거주하면서 공소 발전과 신자 교육에 협조하도록 하였다. 또한 멀리 덕천동 월외동 · 중평동 · 거대동에도 자매들과 봉사자를 파견, 사랑의 학교를 실시하여 1년에 한 번씩 본당에 초청하였는데 많게는 200여 명씩 참석하기도 하였다. 사제관을 신축하고 학비 보조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었던 바힐로 신부는 약 7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본당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6대 주임 공한영 신부는 냉담자 방문과 예비자 인도에 전력을 기울여 청송 지역민들의 가톨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또한 강당을 이용하여 청송 주부 대학을 개설하였으며, 청송 지역의 불우 이웃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다. 1987년에는 구 사제관을 개조한 뒤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공한영 신부의 전임 이후 약 4개월간 주임 신부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이때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하여 본당 사목회와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본당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이후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종율 신부는 본당에 컴퓨터를 설치하여 모든 사목 업무를 전산화함으로써 복잡한 본당 사목 절차를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유아실과 성가대석을 증축하는 등 외부적인 보수 공사에도 힘을 기울였다.
8대 주임 이희정 신부는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사목회를 새로 구성하여 활성화시켰고, 남성 신자들의 단체 활성화를 위하여 밀알회, 진보 공소 나눔회를 구성하였다. 특히 공동체의 활성화, 가족적인 분위기 만들기, 기본적인 신앙심 기르기 등을 주요 사목 방침으로 내세우며 구역 모임의 활성화, 냉담자 회두, 예비자 인도, 생명 운동 전개 등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 나갔다. 10대 주임 권중희 신부는 재임 기간 중 청송 감호소 감호자들에 대한 교정 사목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을 위해 극단 아리랑을 초청, 여러 차례 공연을 마련하였다. 11대 주임 전장호 신부는 2004년 5월 26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주왕산 대전사(大典寺)의 봉축 기념 법회에 참석하여 종교 간화합의 장을 이루었다. 청송 본당과 대전사는 3년째 성탄절, 부활절, 부처님 오신 날 등 각종 행사 때마다 서로 방문하여 친교를 나누고 있다. → 방일현 ; 안동교구)
※ 참고문헌  《본당, 활동 수도 단체, 교구 단체 · 기관 - 안동교구사 자료 제6집》, 천주교 안동교구, 1997.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