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2 소재. 1964년 7월 7일에 규암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 며, 주보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청양군 전 지역. 〔교 세〕 1964년 310명, 1968년 438명, 1976년 375명, 1984년 350명, 1990년 488명, 1995년 363명, 2001년 369명, 2003년 375명. 〔역대 신부〕 초대 김동억(金東億) 바오로(1964. 6~1968. 12), 2대 윤석빈(尹錫彬) 루가(1968. 12~1972. 8), 임시 풍세(G. Poncet, 서봉세) 질베르토(1972. 8~10), 3대 김신호(金信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72. 10~1973. 8), 4대 김진화(金鎭和) 바오로(1973. 8~1975. 3) , 임시 백승옥(白承玉) 이시도로(1975. 3~8), 5대 변갑철(邊甲喆) 바오로(1975. 8~1976. 9), 6대 나기순(羅基淳) 루도비코(1976. 9~1980. 8), 7대 방윤석(方潤錫) 베르나르도(1980. 8~1986. 8), 8대 최병석(崔炳石) 마리아노(1986. 8~1991.8), 9대 윤인규(尹仁圭) 라우렌시오(1991. 8~1993. 8), (주임 서리) 10대 김용덕(金容德) 야고보(1993. 8~2000. 2), 11대 강전민(姜銓民) 스테파노(2000. 2~현재).
청양 지역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와 그의 부친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성인이 출생한 곳이자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다락골 줄무덤 성지(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소재)에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와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순교한 신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줄무덤이 남아 있다. 청양 지역 신앙 공동체들은 은골 · 산막 · 녹평 · 금정 등의 공소로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공소들은 이후에 설립되는 규암 본당과 청양 본당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양 본당은 1964년 7월에 규암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초대 주임으로 김동억 신부가 부임하였다. 5대 주임 변갑철 신부는 1975년 11월 새로운 성당과 사제관의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5월 준공하였다. 7대 주임 방윤석 신부는 대전교구청 사목국의 요청에 따라 줄무덤 성지 개발 사업에 착수하여, 1982년 11월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의 집전으로 줄무덤 성지 묘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1983년 11월에는 본당에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을 설립하였고, 1984년 5월 줄무덤 성지 성역화 사업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으며, 1986년 3월에는 최경환 성인의 유해 일부를 절두산 순교 기념관(현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본당으로 옮겨왔다. 9대 주임 윤인규 신부 재임기인 1991년 10월에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수리 · 이전하였고, 1992년 12월에는 비봉 · 금정 · 광암 공소를 폐지하여 본당 구역으로 편입하였다. 10대 주임 김용덕 신부 재임기인 1994년 8월에는 새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고, 1996년 8월에는 성지로 사용하기 위해 임야 3,900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1997년 9월에 새 성당 기공식을 가졌고, 2년 후인 1999년 11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청양 본당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보존하려는 성역화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규암 본당 ; 대전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方潤錫, <다락골과 새터>, 《교회와 역사》 91호(1983. 1), 한국교회사연구소/ 차기진, <청양 일대의 사적지와 鳴谷里 교우촌 (1)>, 《교회와 역사》 209호(1992. 10), 한국교회사연구소/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 자료집- 1883~1989 교세통계표》, 천주교 대전교구, 1990. 〔梁仁誠〕
청양 본당
青陽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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