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 본당

青坡洞本堂

글자 크기
11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3가 132-19 소재. 1963년 8월 28일 중림동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청파동 1 · 2 · 3가, 효창동, 서계동, 원효로 1 · 2 · 3가 지역. (교 세] 1964년 1,600명, 1972년 1,880명, 1980년 2,467명, 1988년 4,014명, 1996년 3,190명, 2003년 3,107명. [역대 신부] 초대 김정수(金晶壽) 레오(1963. 8~1968. 6), 2대 최치규(崔致奎)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68.6~1973.5), 3대 김옥균(金玉均) 바오로(1973. 5~1978. 8), 4대 김충수(金忠洙) 보니파시오(1978. 8~1983. 8), 5대 구전회(具田會) 바르톨로메오(1983. 8~1988. 8), 6대 김무현(金武顯) 빈첸시오(1988. 8~1993. 10), 7대 이종효(李宗孝) 글레멘스(1993. 10~1995. 9), 8대 추교윤(秋敎允) 시몬(1995. 9~2000. 9), 9대 임인섭(林仁涉) 마태오(2000. 9~2003. 9), 10대 장강택(張康澤) 필립보(2003. 9~현재).
청파동 지역에 본당이 설정된 것은 이곳에 거주하는 여신자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 1960년대 초 이들은 본당을 설립하고자 현 본당의 앞마당 쪽에 있던 작은 적산 가옥을 610만환에 매입하여 계약하였다. 이들은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대지 대금을 완불한 뒤, 청파동 지역을 관할하던 중림동 본당 7대 주임 신인식( 申仁植, 바오로) 신부를 방문하여 본당 분할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신인식 신부는 77.7평의 대지 확보만으로는 본당 분할이 어렵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본당 설립의 뜻을 굽히지 않은 청파동 지역 신자들은 서울 대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에게 끈질기게 간청하여 마침내 본당 설립 승낙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이리하여 1963년 8월 28일 중림동 본당 관할의 청파동 1 · 2 · 3가, 용산 본당 관할의 효창동 · 신공덕1동, 삼각지 본당 관할의 원효로 1가 지역을 각각 이관받아 청파동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정수 신부가 부임하였다.
부임 후 효창 공원 언덕 담 밑에 임시 제대를 만들고 첫 미사를 집전한 김정수 신부는 교무 위원회를 조직하여 성전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64년에는 본당 최초의 신심 단체인 연령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 묘지를 구입하기로 결정한 뒤, 1965년에 일영 평화공원(현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 소재) 18,500평을 70만원에 구입하여 묘지를 조성하였다. 김정수 신부는 새로 조성된 교회 묘지를 평당 300원에 신자들에게 예매하게 함으로써 성전 건립 기금을 마련하였다. 또한 노기남 주교를 설득하여 이미 확보한 대지에 인접한 105평의 대지와 지상 건물을 교구로부터 이관받아 성전 건립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 최치규 신부는 1969년 5월에 임시 성당으로 쓰던 적산 가옥을 헐기 시작한 뒤 성전 건립 기초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 시작 1년 만에 1 · 2층 규모의 성전이 윤곽을 드러냈고, 본당 신자들의 봉헌으로 성전 정면의 청동 대형 십자가 · 화강암 제대 · 감실 등 내부의 모습도 갖추어졌다. 그리하여 1970년 6월 28일 공사를 끝낸 후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서 1969년 8월에는 공덕동 본당의 신설로 800명의 신자를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또한 최치규 신부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바오로 장학회를 설립하고, 많은 종교 교양 도서를 구입하거나 기증받아 본당 내에 도서실을 설치하였다.
3대 주임 김옥균 신부는 본당 운영의 행정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교적을 새로 만들고 각종 장부와 비품을 갖추었다. 그리고 1974년 10월 본당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시켰으며, 1976년 1월에는 여성 신심 단체인 데레사회를 창립하였다. 4대 주임 김충수 신부는 주일학교와 신심 단체 모임 장소를 위해 5개의 회합실을 마련하는 한편, 성가대석을 계단식으로 바꾸고 유아실과 고해실을 옮기는 등 비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개축 공사를 실시하였다. 이와 함께 성가대와 청년회를 조직하고,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에 노력하여 김충수 신부 재임기에 레지오 마리애는 7개의 쁘레시디움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활발한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으로 5대 주임 구전회 신부 재임기인 1986년에는 본당에 성모 성심 꾸리아가 창단되었다.
6대 주임 김무현 신부는 1991년 5월에 관할 구역 재조정으로 도원동 일부 지역을 용산 본당으로, 원효로 일부 지역을 삼각지 본당으로 각각 이관하였다. 7대 주임 이종효 신부는 1995년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 공사는 8대 주임 추교윤 신부 재임기인 1996년 4월 14일에 완료되어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추교윤 신부는 신자 증가와 성당의 노후화로 성전 신축을 계획하여 1999년 2월 28일 '새 성전 건립을 위한 묵주 기도 200만 단 바치기 운동' 을 시작하였고, 7월 18일에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9대 주임 임인섭 신부는 신축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에서 명동, 중림동(화재로 전소), 혜화동, 목5동 본당에 이어 다섯 번째로 본당 내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였다. 10대 주임 장강택 신부는 2004년 3월 13일 오르간 설치 후 처음으로 외부 인사들을 초청하여 연주회를 열었으며, 6월 27일에는 공사 시작 5년 만에 성당 신축 공사를 완료하여 정진석(鄭鎮奭, 니콜라오)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서울대 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본당 현황>(2001.9), ,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파동 성당.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