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 본당

清平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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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 4리 383 소재. 1953년 10월 7일 양평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라우렌시오. 관할 구역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설악면 전 지역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모곡, 설악 2개소. 〔교 세]1953년 271명, 1958년 1,177명, 1965년 898명, 1972년 662명, 1979년 786명, 1983년 574명, 1989년 669명, 1993년 798명, 1996년 880명, 2003년 1,220명. [역대 신부] 초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53. 10~1954. 10), 2대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1954. 10~1960. 3), 3대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1960. 3~1972. 3), 4대 오브라이언(A. O'Brien, 신) 안토니오(1972. 3~1974. 4), 5대 코놀스(K. Connors, 고) 가비노(1974. 4~1978. 1) , 6대 옥슬리(S. Oxley, 옥) 요한(1978. 1~1980. 8) , 7대 김현준(金鉉俊) 율리오(1980. 8~1985. 9), 8대 양완모(梁完模) 야고보(1985. 9~1990. 2), 9대 천신기(千信 基) 세례자 요한(1990. 2~1992. 7) 10대 문양기(文陽基) 다니엘(1992. 7~1996. 8), 11대 김현신(金顯信) 요셉 (1996. 8~2000. 9), 12대 김명식(金明植) 가브리엘(2000. 9~2004. 9) , 13대 신호철(申昊澈) 토마스(2004. 9~현재).
청평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해방 후 현 청평 본당 자리에 옹기 공장이 생겼는데, 이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 중 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공소 예절을 공장 책임자였던 김동수의 집에서 보았으며, 판공은 인근의 포회촌 공소(현 상색 공소)에서 보고, 대축일 때는 춘천의 죽림동 주교좌 본당까지 가는 등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한편 한국 전쟁 중인 1952년, 미 제2 사단장 플라이 소장은 이 옹기 공장 터에 전쟁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하여 개신교의 장광열 장로에게 운영을 맡겼다. 이후 미군이 고아원 운영을 윤을수 신부에게 부탁하자, 윤 신부는 고아원을 친애원이라 이름짓고 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았다. 이때 윤을수 신부는 친애원 강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청평 지역의 얼마 안 되는 신자들도 여기에 참석하였다.
1953년 10월에 청평 공소는 양평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임응승 신부가 부임하였다. 임 신부는 성당 건물도 없고 신자도 적은 어려움 속에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였고, 또 성전 건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당시 미군으로부터 성당의 건축 약속을 받고 서울 대목구의 승인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채 임 신부는 서울 대방동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2대 주임 윤을수 신부는 부임 후 성전 건립에 중점을 두어 1955년 8월에 기공식을 거행한 후, 12월에 공사를 완료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윤 신부의 열심한 선교 활동, 개간 사업, 구호 물자 배급 등으로 본당의 신자가 급속히 늘어남에 따라 각 지역마다 대지를 구입하여 공소 건물을 세웠다. 특히 1955년부터 1957년까지 가평 · 현리 · 대성리 · 임초리 · 항사리 · 대보리 · 지둔리 공소의 강당을 세웠으며, 새로 형성되는 공소 공동체에 유급 전교회장을 파견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공동체를 이끌어 가도록 하였다. 1957년 9월에는 본당 관할의 가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면서 가평읍과 북면 지역 그리고 상색 공소를 새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3대 주임 봉희만 신부는 1961년 5월에 사회 사업 단체인 '골롬바사' 관할 기관이던 친애원을 본당 관할 기관으로 인계받아, 전임 윤을수 신부의 뒤를 이어 고아 보육 사업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한편 1969년 11월 19일자로 서울대교구 관할이던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군이 춘천교구에 편입됨으로써 청평 본당 역시 춘천교구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70년 3월 17일 화재로 인해 250평의 친애원 건물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자, 봉희만 신부는 곧바로 친애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노력하여 9월 1일에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하지만 공사비 조달 문제로 1971년 12월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결국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친애원은 교구 차원에서 정리되고 말았다.
1972년 3월 4대 주임으로 오브라이언 신부가 부임하면서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들에 의한 사목이 시작되었다. 오브라이언 신부는 적극적인 사목 활동으로 본당 공동체 활성화에 진력하여, 1972년 12월에 본당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인 샛별 쁘레시디움을 창설하였다. 그리고 1973년 초부터 신자들에게 기도 생활을 강조하기 위해 매달 첫 번째 목요일에 성시간 예절을 가졌으며, 꾸르실료 교육을 이수한 신자들과 함께 이웃 본당에서 개최되는 지구 울뜨레야 모임에 참석하여 다른 본당 신자들과 삶의 체험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소의 활성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1972년에 임초리 공소의 강당을 새롭게 수리하였고, 다른 공소들도 자주 방문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옥슬리 신부는 교세 증가로 현리 공소가 협소해지자, 1979년 4월 현리 공소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7월에 공사를 완료하였다.
1980년 8월 30일자로 김현준 신부가 7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청평 본당에는 다시 한국인 사제의 사목 활동이 전개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김현준 신부는 1980년 9월 8일부터 11월 27일까지 본당의 발전과 일치를 위한 구일 기도를 총 아홉 차례 시행하였고, 10월에는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하여 이를 토대로 본당 사목 목표를 '기도하는 신자, 공부하는 신자, 봉사하는 신자' 로 정하여 추진하였다. 같은 해 11월 2일부터 서울 주보의 한 면을 활용하여 청평 주보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주보 발행에 힘입어 성서 공부 모임 및 그룹 피정을 포함한 신자 재교육이 활발히 실행되었다. 그리고 성당과 사제관의 노후화로 1983년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본당 내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찍이 부임 초에 성전을 신축하기로 결정한 김 신부는 2년 4개월 동안 본당 예산의 긴축 운영으로 1,000여 만원을 모았으며, 1983년에는 주백회 운동, 즉 '모든 신자가 1주일에 100원씩 봉헌하여 성전 건립에 동참한다' 는 운동을 전개하여 기금을 마련하였다.
8대 주임 양완모 신부는 전임 김현준 신부가 이루어 놓은 사목 방향을 토대로 하여 성전 신축에 중점을 두었다. 1986년 8월에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한 뒤, 4개월만인 12월 15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제5대 춘천교구장 스튜어트(T. Stewart, 朴)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1987년에는 성모상을 마련하였고, 1988년 1월에는 성당 내부 시설 완비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에도 중점을 두어 본당 청년회를 주축으로 정의의 거울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고, 이후 여러 쁘레시디움을 계속적으로 창단하였다. 이러한 본당 단체의 창설과 활동은 본당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새 성전 건립 후 옛 성당을 주일학교 교리실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회합실이 없어 교육관 개축의 절실함을 느낀 양 신부는 1989년 6월부터 교육관 기금 모금을 시작하였다.
9대 주임 천신기 신부는 1991년 6월 16일 20여 년간 방치된 기존의 슬라브 골조(공사가 중단되었던 친애원 건물)에 교육관 공사를 시작한 후, 10월 14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교육관 및 사제관 신축과 더불어 오르간을 교체하였고, 옛 사제관을 수녀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보수 공사를 시작하였다. 또한 천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활동에 중점을 두어 계속적으로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는데, 그 결과 1991년 4월 13일 본당에 사랑하올 어머니 꾸리아가 설립되었다. 이와 더불어 1992년 3월에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본당에 파견됨으로써 본당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10대 주임 문양기 신부는 본당 설립 40주년인 1993년의 사목 지침을 '따뜻한 공동체 형성과 주님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가는 해' 로 정하고 8월 28일 청년 연합회와 11월 29일 행복한 가정 운동회를 조직하였으며, 성서 공부 및 신자 배가 운동 차원에서 예비자 인도에 중점을 두어 본당의 교세를 크게 신장시켰다. 그리고 1993년 10월 9~10일 양일간 본당 설립 4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1994년 4월 24일에는 《청평 본당 40년사》 출판 기념회를 개최하였다.
11대 주임 김현신 신부는 1999년 8월에 모곡 기도의 집을 청평 본당 관할로 이관받았으며 10월에는 본당 성가대를 구성하였고, 12대 주임 김명식 신부는 2001년 5월에 소성당 및 다용도홀 공사를 시작한 후 8월 10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본당 설정 50주년인 2003년에는 '나부터 새롭게' (3~4월), '참가정 이루기' (5~6월), '좋은 이웃 되어 주기' (7~8월), '함께 가요 우리' (9~10월) 등을 신앙 생활의 목표로 설정하여 실천하였다. 이와 함께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묵주 기도 100만 단 봉헌을 연중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10월 12일 50주년 기념 미사를 성대하게 봉헌하였다. 현재 청평 본당은 13대 주임 신호철 신부의 사목 아래 본당 승격이 기대되는 설악 공소를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는 등 선교 활동에 진력하고 있다. (→ 봉희만 ; 춘천 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믿음의 공동체 - 경기 청평 본당>, 《경향잡지》(1986. 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청평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청평 본당 4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청평 본당, 1994/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 원회,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