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 본당

青鶴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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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196 소재. 1939년 5월 부산진(현 범일)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령 강림. 관할 구역은 청학1 · 2동. 〔교 세〕 1957년 1,318명, 1960년 1,743명, 1965년 2,862명, 1970년 2,507명, 1975년 2,369명, 1980년 2,600명, 1985년 3,458명, 1990년 4,348명, 1995년 4,310명, 2003년 4,254명. 〔역대 신부〕 초대 김동언(金東彥) 베드로(1939. 5~1940. 8), 2대 서정길(徐正吉) 요한(1940. 8~1943. 2), 3대 신순균(申順均) 바오로(1943. 2~1944. 12), 4대 베르트랑(J. Bertrand, 韓) 율리오(1945~1949. 6), 5대 장병용(張丙龍) 요한(1949. 6~1950. 3), 6대 베르트랑(1950. 3~5), 7대 김기봉(金基奉) 필립보(1950. 5~1955. 1), 8대 김유재(金有宰) 그레고리오(1955. 1~1963. 2), 9대 김영제(金永濟) 요한(1963. 2~1965. 1), 10대 배봉룡(裵鳳龍) 바오로(1966. 12~1971. 10), 11대 양덕배(楊德培) 요한(1971. 10~1972. 7), 12대 배상섭(裴尙燮) 요한(1972. 7~1973. 7) 13대 이돈우(李敦雨) 레오(1973. 7~1976. 11), 14대 김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1976. 11~1980. 2), 15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80. 2~1986. 2), 16대 박태산(朴泰山) 요아킴(1986. 2~1989. 1), 17대 손덕만(孫德萬) 토마스(1989. 1~1990.
6), 18대 최영철(崔榮喆) 알로이시오(1990. 6~1992. 2), 19대 이승훈(李承勳) 루가(1992. 2~1995. 2), 20대 우종선(禹鍾善) 라우렌시오(1995. 2~1998. 2), 21대 오창열(吳昌烈) 요한(1998. 2~2000. 1), 22대 김경욱(金庚昱) 요한(2000. 1~2001. 2), 23대 정승환(鄭丞煥) 베드로(2001. 2~2004. 9), 24대 김성한(金晟漢) 안드레아(2004. 9~현재).
영도 지역에 언제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경주의 양반 출신인 김보윤(金甫允, 로무알도)이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섬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사람의 왕래가 적은 절영도의 조내기(潮落里, 현 청학동)를 은신처로 정하고, 이곳으로 찾아드는 신자들을 모아 공소를 세우고 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1890년 경남 일대에 본당을 설립하기 위해 절영도에 정착한 조조(M. Jo-Zeau, 趙得夏) 신부는 지금의 수녀원 자리에 초가 한 채를 지어 임시 성당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절영도를 경남 일대 사목의 중심지로 삼기에는 지역적으로 매우 불편하였다. 더구나 박해의 여파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개항된지 15년이 지난 부산이 항구 도시로서 활발한 발전을 하면서 교회의 중심을 구태여 섬에 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에 조조 신부는 1891년 7월경에 본당을 초량으로 옮겼고, 조내기 공소는 초량(현 범일) 본당 관할 공소로 유지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1906년 4월에 공소 신자들은 약 200여 평의 공소 부지를 매입한 후, 1907년 5월에 20평 규모의 성당 및 강당을 건립하였다.
1932년 10월 30일 조내기 공소는 대구 대목구로부터 청학 준본당으로 설정되어 김선배(金善培, 요한) 신부가
부임하였다. 하지만 김선배 신부가 이듬해 12월 1일 폐결핵으로 선종하자, 청학 준본당은 다시 공소가 되었다. 그 후 1939년 5월에 대구 대목구에서는 청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고, 초대 주임으로 김동언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동언 신부는 야학을 개설하여 문맹을 퇴치하고, 교리 교육을 실시하는 등 선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부인회를 결성하여 성미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점차 본당의 골격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신선동 공소(현신선 본당)를 설립하였다. 2대 주임 서정길 신부는 재임기간 동안 사제관을 신축하는 등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으나, 일제 말기였던 이유로 선교 활동은 대체로 미미하였고 본당에서 운영하던 야학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이후 1940년대 말까지 청학 본당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체로 병약한 신부들이 휴양을 위해 부임하였다.
7대 주임 김기봉 신부는 1953년 부산 대화재 때 난민들이 청학동으로 수용되자, 구호 사업을 펼쳐 많은 외교인들이 입교하는 계기로 만들었으며, 1955년 1월에는 신선 본당을 분리 · 설정하였다. 8대 주임 김유재 신부는 1956년 5월 13일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약 7개월 간의 공사 끝에 건평 120평의 새로운 현대 양식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듬해 6월 16일에는 사제관을 준공하여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의 봉헌식과 사제관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1960년 4월 6일 본당 내에 복자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7월에는 강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4월 9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9대 주임 김영제 신부는 난민 구호 사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1964년에는 본당 최초 레지오 마리애 단체인 황금 궁전 쁘레시디움을 창립하였다. 1964년 12월 김영제 신부가 옥포 본당으로 전임된 후, 2년여 기간 동안 주임 신부가 공석인 가운데 보좌인 신윤우(申允雨, 갈리스도) 신부가 사목하였다. 이후 청학 본당은 10대 주임 배봉룡 신부 재임기에 봉래 본당(1969. 3)을, 11대 주임 양덕배 신부 재임기에 태종대 본당(1972.2)을 각각 분리 · 설정시킴으로써 본당 관할 구역이 청학1 · 2동으로 축소되었다.
12대 주임 배상섭 신부는 1973년 1월에 사제관을 신축하는 한편 극빈자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고, 성당 내에 경로당을 설립하였다. 13대 주임 이돈우 신부는 1974년 에 주일학교를 개설하였고, 14대 주임 김태호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연수회, 꾸르실료 교육, 묵상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신앙 쇄신에 이바지하였다. 15대 주임 박문선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위한 기초 묵상회,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B.W.)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실시하는 한편, 1981년에 청년회와 부인회를 창립하였다. 16대 주임 박태산 신부는 부임 후 신심 단체 활성화와 교세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1986년 10월에 수녀원 및 사무실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5월 14일 완공하였다. 1988년 4월에는 성당 내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한편, 성가 경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성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새로운 성가 보급 기회를 마련하였다. 17대 주임 손덕만 신부는 1989년 5월에 부산 지역 선교 100주년 기념비를 성당 내에 세웠으며, 19대 주임 이승훈 신부는 1992년 5월 12일에 성당 마당을 아스팔트로 교체함으로써 본당 환경 개선에 힘썼다.
22대 주임 김경욱 신부는 2000년 5월에 신자들의 봉헌금으로 성당 종각 위에 예수 성심상을 세웠고, 8월 30
일에는 성당 내에 있던 선교 100주년 기념비를 성당 입구로 이전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홍보 효과를 가져왔으며, 9월 17일에는 노인 복지 차원에서 청학 노인 성서 대학을 열었다.
2004년 사목 지침을 '말씀을 나누는 가정 공동체' 로 정한 청학 본당은 현재 24대 주임 김성한 신부의 사목아래 가정 공동체의 참 복음화를 위해 전 신자들이 진력하고 있다. (→ 김기봉 ; 김동언 ; 김유재 ; 범일 본당 ; 봉래 본당 ; 부산교구 ; 신선 본당 ; 조조, 모이즈)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범일 교회, 《부산 선교 90년사-범일 성당 발전사》, 1979/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敎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安達遠, 〈釜山教區 前史의 研究 釜山 開港에서 教區 設立까지>, 《韓韓國教會史論文集》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白秉根〕